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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시인과의 만남

  • 작성일 2011-11-21
  • 조회수 1,803

 

〈네 꿈을 펼쳐라_시즌2〉

 

조연호 시인과의 만남

 

 

● 일시 : 10월 22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2시 30분

장소 : 대학로 민들레 영토 4층 세미나실

 

 



섯 번째 ‘시즌 2 글틴 인터뷰 탐험대’에서는 조연호 시인과 중학생 이영철, 장태영 학생이 만났습니다. 이영철 학생은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위해 이벤트 신청을 하는 정성을 보였고, 장태영 학생은 친구가 긴장을 할까 염려돼 함께 나왔습니다. 이영철 군은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학교 글쓰기 대회에서 몇 차례 수상을 하며 도서상품권을 선물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라고 합니다. 인터뷰 오는 길에는 청소년 성장 소설 『라운드』(마커스 주삭, 우리교육 출판사)를 읽기도 했답니다.

의 단짝인 장태영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인을 꿈꾼 학생입니다. 영철 군은 태영 군이 ‘전교 1등’이라며 칭찬해줬습니다. 평소 과학을 좋아하며 카이스트 진학을 꿈꾸고 있는 중학생입니다. 요새는 판타지 등의 각종 소설류와 자기계발서 등을 즐겨 읽는다고 합니다.

양에서 살고 있는 둘은 ‘글틴 인터뷰’를 위해 시월 셋째 주 놀토에 서울 대학로 혜화동을 방문했습니다. 대학로 카페가 처음이라는 그들은 치즈, 토마토 도리아를 재빨리 10분 만에 먹은 뒤, 조연호 시인을 기다렸습니다. 시인이 얘기할 때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게 미안할 거라며 점심밥을 급히 해치웠습니다. 조연호 시인은 학생들이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등장했습니다. 시인은 다음 스케줄이 있었기에 ‘짧고 굵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글틴 학생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조연호 시인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시’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철 군은 인터뷰 내내 조연호 시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태영 군은 시인에게 “직업에 대한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둘은 조연호 시인의 조언을 들은 후, “집에 가자마자 매일 한 편씩 시를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영철 군은 “친구가 매일 시를 쓴다면 내가 먼저 읽고 아버지에게도 보여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게다가 “글틴 문학 행사는 다음에도 꼭 참석하고 싶다”며 친구에게 “또 같이 가자”는 부탁을 했습니다.

10월 22일, 조연호 시인과 중학생 글틴들이 나눈 멘토멘티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글틴 학생들은 인터뷰 도중, 2011년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농경시』 시집을 선물 받았습니다. 당장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시를 꾸준히 좋아하는 이상 언젠간 즐겁게 보리란 기대로 책을 챙겼습니다.

 

 

조연호 시인 간단 프로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재학,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2009년 제10회 현대시작품상, 2003년 제5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2011년 제16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시집 『농경시』, 『천문』, 『저녁의 기원』, 『죽음에 이르는 계절』, 산문집 『행복한 난청』 등 발간.

 

 

글틴 이영철_ 저는 (안양) 신안중학교 3학년 5반 이영철입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신청했어요.

 

글틴 장태영_ 저는 장태영입니다. 막상 앞에 오시니까 되게 긴장되네요. 긴장된다고 밥도 너무 빨리 먹었어요.

 

조연호_ 학생은 하나도 긴장한 눈치는 아닌데요. (웃음)

 

글틴 장태영_ 포커 페이스예요.

 

조연호_ 독후감까진 아니더라도 간략하게 제 시를 읽은 소감을 얘기해 주세요. 어린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매우 궁금해요. 낯선 시인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공지를 보고 거기에 참여하겠다고 선택을 하게 된 데는 어떤 원대한 의도가 있지 않을까요?

 

글틴 장태영_ 전 따라 왔어요. 친구가 혼자 가기 긴장된다고 해서요.

 

조연호_ 따라 왔다? 그것도 좋은 이유죠. 이영철 학생은요?

 

글틴 이영철_ 글 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어요. 먼저 찾아서 읽어봤는데 어려웠어요.

 

글틴 장태영_ (『농경시』 시집을 들고) 소설이에요? 시예요? 산문 시예요?

 

조연호_ 시죠. 시가 뭔지는 알죠? 형태상으로는 산문시죠. 그럼 시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글틴 장태영_ 정형시와 자유시, 산문시요? 그 정도밖에 몰라요.

 

조연호_ 정형시와 비정형시의 차이는요?

 

글틴_ 형식이 있거나 없거나요?

 

조연호_ 정형은 음보가 정해져 있어요. 정해져 있지 않으면 산문시라고 해요. 최남선의 신체시는 정형시와 자유시의 중간형태인데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서 새로운 형태의 시, 즉 신체시라 불렀죠.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는?

 

글틴 장태영_ 최남선 시요? 모르겠어요.

 

조연호_ 주요한의 「불놀이」가 있죠. 들어봤어요?

 

글틴 장태영_ 못 들어본 거 같아요.

 

조연호_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는 「불놀이」라고 아마 교과서에 나올 거예요. 그 「불놀이」의 형태가 바로 산문시예요. 행이 안 나뉘어 있죠. 제가 드린 시집 『농경시』도 바로 그런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시의 표면적 분류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시가 뭐냐?’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말 할 거예요? ‘정형시가 있고 자유시가 있다’라는 대답은 의미 없는 대답이죠. ‘시는 이런 형식을 가졌다’ 이런 건 정답이 될 수 없어요. 표면적인 것 뒤에 시가 있습니다. 시에 대해 답변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은 곧 그의 문학관 전체가 됩니다.

 

글틴 장태영 『농경시』처럼 이렇게 긴 시는 처음 봐요. 시인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시를 쓰게 된 동기는요?

 

조연호_ 누나가 어릴 때 시를 썼어요. 그땐 여중생, 여고생들이 감수성이 풍부했어요. 지금과는 다르게 놀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거든요. 문화적 유희로 할 수 있는 게 글 읽기였어요. 영화관도 몇 개 없고 비싸고, 여타의 문화생활은 예전엔 사치와 같은 것이었죠. 우아하게 놀 거리가 많지 않던 상황이었던 거예요. 때문에 문학을 요즘의 인터넷 즐기듯 즐기는 것으로 사용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르게 문학적 지식과 그 유희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나도 주변의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시를 썼어요. 그런데 읽어 보니, 시라는 것도 모르고 책도 잘 안 읽었는데도 저는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게 있지 않나요, 모르는 사람이 잘 하면 잘 하는 건데, 가족들이 잘 하면 좀 의심스러워지는 거. 누나는 나와 싸우기도 하고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를 쓴다니, 저도 못쓸 게 있는가 싶어서 써봤죠. 그래서 써서 보여줬더니 의외로 잘 썼다고 하는 거예요. 칭찬받아 기분이 좋으니 계속 쓰게 됐고, 백일장이나 사생대회에서 상도 받고, 투고하여 등단도하고 시집도 내고……. 그런 식으로 시 쓰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시를 잘 쓰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누군가 칭찬을 해주고 제가 그것에 흥미를 가지면서 그것이 저의 대표성이 되었습니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나는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을 좋아한다’, ‘이런 것에 대해 조금 얘기할 수 있다’ 그런 단호한 마음가짐이 정체성을 뚜렷이 부각시켜 주는 것이죠. 저에게 대표성은 시였습니다. 보통은 어떤 일을 이룰 때에 노력만 하라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날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이제부터 위대한 시를 쓰겠어’ 그럴 순 없잖아요? 알게 되는 계기라는 게 흥미인데, 재미가 없으면 안 하죠. 재미가 있어야 뭘 계속 할 거 아니에요? 재미가 없는데 계속 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문적인 것,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간에 관련된 학문을 폭넓게 인문적인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인문적인 것은 처음에는 무척 재미가 없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정신으로 쌓아온 위대한 결과물인 인문은 짧은 시간 경험해서는 알 수도 없는 것이고 보통의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옛날 것은 답답하고 고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현재보다 더 강하고 더 찬란한 것입니다.

예술이 반드시 인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문적이지 않은 예술이 좋은 예술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문학에 뜻을 둔다면 이 거대한 벽은 반드시 부딪쳐야만 하는 관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워하지만 말고 흥미와 호기심으로 그 벽을 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인문이라는 얘기 들어봤어요?

 

글틴_ 인문계라고 할 때 들어봤어요.

 

조연호_ 인문계 반대말은?

 

글틴_ 실업계? 전문계?

 

조연호_ 실업계는 인문이 아니에요. 먹고 사는 문제, 즉 재화와 그것의 생산, 교환 등을 바탕에 두고 있는 계열입니다. 정신활동이라기보다는 경제활동이죠. 인간에 관련된 모든 정신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문학 등 그런 게 다 인문학이죠.

 

글틴_ 과학도 인문계에서 배우는데요?

 

조연호_ 순수과학은 인문과학과 다른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인문계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까지는 배움의 갈래가 거의 세분화되지 않는 ‘종합교육’이고, 편의상 그 분류를 나누고 있는 것이지 엄격한 분류는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문이라는 말을 알아야 되는 이유는, 지금부터 제가 추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얘기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를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 돼요. 추상의 의미를 알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가 알면, 문학뿐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서 이해가 높아지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되죠. 추상은 뭘까요?

 

글틴 이영철_ 보이지 않는 거요.

 

조연호_ 공기도 안 보이잖아요? 공기도 추상인가?

 

글틴 장태영_ 추상이 추상이죠.

 

글틴 이영철_ 상상이요.

 

조연호_ 개념적으로 대상이 있을 때 대상을 그대로 가리키면 그게 구상이고, ‘뺄 추(抽)’, ‘모양 상(象)’, 가령 지금 여기 이 컵에서 모양을 뺀 것, 빼고 남은 그 부분이 추상이에요. 컵이 실제 있는 게 아니라 없는 그 컵에 대한 생각이 바로 추상입니다. 문학을 포함하여 예술이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죠. 만약 예술이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고자하도 그것은 ‘근사하게’ 즉 비슷하게만 재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장 시각적으로 대상과 비슷할 수 있는 미술 역시 대상을 똑같이 그릴 수 없습니다. 그려진 것은 이미 보고 그린 대상과는 다른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문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추상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얘기해줄 것인데요, 추상에 대해 얘기할 때는 반드시 언어에 대한 이해 역시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 중에 『시학』이란 책이 있어요. 분량은 짧은 책이에요. 기원전에 씌어진 최초의 예술 이론서예요. 시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시라는 것이 앞서 맨 처음에도 얘기 했지만, 형태로만 말하거나 표면적으로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우에 따라 어떤 사람은 ‘여름의 파란 잎사귀가 가을이 되어 붉게 변하는 것이다’하고 비유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시는 게임의 세계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글틴 이영철_ 저희 아버지가 시는 싱거운 거라고, 맛을 제대로 못 본다고 말씀하셨어요.

 

조연호_ 그래요. 시라는 것에 대해서 정의 내리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르죠. 예술 이론을 미학이라고 하는데 미학이라고 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아요. 정답이 없는 무한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애매하고 불투명한 세계이기 때문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시학, 미학은 그러한 중류의 재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얘기를 하다 끊겼는데 다시 이어가자면, 『시학』에서 서두에 나오는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학은 재현이다’, ‘문학은 미메시스다’. 미메시스는 문학 공부를 계속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듣게 되는 단어 중에 하나일 텐데, 모방이라고도 얘기하고 재현, 표상이라고도 해요. 이 세 가지 단어, 모방, 표상, 재현에는 하나의 의미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단어들은 여기 컵이 있다고 하면 컵을 그대로 복사해내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재현이라고 하면 다시 보이게 한다는 거잖아요? 표상이라고 하는 건 이것에서 이것으로 복사해서 가져오는 거예요. 문학에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겠어요? 만약에 컵이 하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예술적이라면 예술가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이미 완성된 예술이기 때문이지요.

가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시는 삶이다’, ‘시는 인생이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앞에 말한 미메시스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그런 말은 굉장히 잘못된 말처럼 들려요. 시는 인생을 말할 수는 있어도 인생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어요. 시는 인생에 대한 모방이고 재현이에요. 그것은 대상에 대해 2차적인 것이고 재구성되거나 가공된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방식은 추상적 방식입니다. 대상의 방식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방식으로 대상을 말하는 방식이지요. 좀 쉽죠?

 

글틴 이영철_ 이해가 됐어요.

 

조연호_ 더 곤란한 부분은 사물이 없을 때예요. 없는 것을 표상하는 건, 존재하는 것을 표상하는 것보다 어렵겠죠? 이제 우리는 추상화된 것의 개념을 알았죠. 컵이 있으면 컵에서 형상이 사라지고 개념만 남은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의 개별적 시가 아니라 ‘시’ 전체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요?

 

글틴_ 없어요.

 

조연호_ 실체가 없지요. 어느 한 사람이 얘기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말, 한국어든 미국어든 말하고 의사소통하는 언어 그 자체는 실체가 있어요? 없잖아요. 그런 걸 다 추상이라고 말할 수 있죠. 컵 말고 이런 커피숍이라는 개념도 실체가 있어요? 없죠? 여긴 민들레영토라는 구체적 장소이지만, 찻집이라고 무형의 개념은 실체가 없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이렇게 거의 다 추상화된 거예요. 추상화 안 된 게 몇 개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이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추상화 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를테면 '배운다', ‘학교간다’라고 했을 때, 등급이 올라가는 행위는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일 텐데, 이것은 하나의 개념이잖아요. 가령 ‘진학 한다’고 했을 때, 진학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개념이 아니죠. 추상이죠. 그런데 추상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왜냐하면 ‘진학’이라고 말 하면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떠오르고 간단히 이해되는 게 있기 때문이지요. 중3이었다가 고1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어와 상황들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효율적으로 말하기 위해 그것을 압축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중3이었다가 고1이 되는 과정을 간단하게 그냥 ‘진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라고 약속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냥 진학한다고 말하면 되는 언어의 편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추상 덕에 우리는 단순하고 편리하게 복잡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분명하게 추상화된 것들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것을 추상으로 인식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추상화된 것 역시 우리가 뚜렷이 구체화된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고 느낄 때의 감각, 즉 구상화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진학해서 내년에 고3이 된다’라고 했을 때 진학도 추상이고, ‘하는 것’(해서)도 추상이고, 내년도 추상이고, 고3도 추상이고, ‘되는 것’도 추상이죠. 짧은 문장 안에서 하나하나 다 추상인데, 한 번 듣는 순간 한꺼번에 우리는 그것을 무리 없이 인식합니다. 이는 우리의 언어가 자체로 추상이지만 또한 그 자체가 사물화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유의 방법이 효율적으로 변함으로써 명확한 대상을 바라보듯 어려운 개념 역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인식된 것은 언어로 발화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내년’이라고 말했을 때 ‘내년’은 천체의 주기를 바탕으로 365개의 날을 만들고, 달[月]의 공전 주기를 기반으로 임의로 대략 30개의 날로 나눈 것을 ‘달’로 부르기로 한 후, 그 달이 12개가 모인 것을 ‘년’으로 부르기로 한 다음, 하나의 년이 지나고 그 다음 첫 달이 오게 되는 시간의 구체적 경과점,을 말하는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에요. 내년이라는 단어가 있기 전의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년’을 설명하기 위해 분명 무척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입니다. 이 수고스러움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위에 말한 개념을 ‘내년’이라고 이름붙이기로 하자고 합의할 때부터, ‘내년’은 추상으로부터 사물화된 거예요. 그 자체는 추상이지만 이제 편의상 구상이 됐어요.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가 대부분 그렇죠.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어떤 말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철학책을 읽을 때에 더러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지식과 논리의 체계성이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기에 생기는 인식의 간극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논리를 내면화하면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지요. 의학과 과학 등 전문분야의 언어도 마찬가지지요. 아직 우리가 그것을 덜 사물화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난해성일 뿐이고, 충분히 숙지된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비하면 시는 매우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시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직 덜 사물화가 진행되어 발생하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 아닙니다. 시의 언어는 구상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근본적으로 추상적 언어예요. 사물화가 불가능한 언어이니 효율적으로 압축해서 사유할 수도 없고, ‘대상에 대한 재현’이라는 가치와 결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다른 어떤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의 아름다움, 예술의 아름다움이죠. 시적 대상은 우리 인식 안에서 사물화되지 않는, 혹은 사물화할 수 없는 모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대상을 말할 때의 예술가는 반드시 덜 말하거나 반드시 더 말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극히 비효율적으로 우리가 앞서 예를 든 ‘내년’을 규범적 의미이거나 통념적 의미가 아닌 것으로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이 기이한 언어는 사전적 의미로 비유와 상징 등의 기법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대상을 말하기 위해 그것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 대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유나 상징은 추상화의 과정입니다.

실생활에서도 우연히 이런 경험을 해보았겠지만, 만약 어떤 식으로든 관습화되거나 관례화될 수도 없고, 단순하게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고 복잡하거나 대단히 생략되는 방식으로 말하여질 수밖에 없는 말을 어느 때의 내가 하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바로 시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바로 시인입니다. 때문에 시인은 기존의 것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가 오늘 만난 중학생들에게 해주고 싶던 얘기는 대략 이런 거였어요. 시는 아마도 영원히 사물화 될 수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 시적 경험을 바탕으로 보증하건데 그 세계는 우리 언어의 세계보다 맑고 풍성한 세계입니다.

 

글틴 장태영_ 그럼 시를 잘 쓰기 위해서 혼자 많이 쓰는 게 좋을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게 좋을까요?

 

조연호_ 두 가지가 장단점이 각기 있어요. 전자는 자율성을, 후자는 체계성을 각각 장점으로 하고 있는 반면, 단점으로 전자는 오판(誤判)을, 후자는 진부함을 배우게 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학교에 다니면 끊임없이 내 스스로가 다소 나태하더라도 나한테 지속적으로 문학을 접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어요. 다시 말해 자극을 만들어주는 거죠. 반면 혼자 문학에 흥미를 느끼다가 문학에 대한 흥미를 조금이라도 잃으면 순식간에 점점 멀어지게 돼요. 시는 사회의 효율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니까요.

하지만 어떤 교육적 여건을 밟든 근본적으로 시는 혼자 쓰는 거예요. 혼자 세계를 만들어야하죠. 체계화된다는 건 모범적 롤 모델을 커리큘럼으로 가지고 있다는 건데, 롤 모델만 따르면 독창성을 잃게 됩니다. 물론 그 세계를 계승 발전시킨다면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과학은 그 지식과 발전에 있어 누적되는 역사성의 시스템이지만, 예술은 공고해 보였던 전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폭발적 행위로 그 새로움을 인정받고 새로운 전통을 이루는 비역사성의 시스템입니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글을 배우는 것은 충분히 효과적이고 자신의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하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학자가 반드시 좋은 문학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시를 쓰는 그 어느 누구나가 시적 세계의 완성에 있어서는 어차피 가야할 같은 총량(總量)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글틴 이영철_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연호_ 앞서 말한 추상을 구상화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즉 사유의 편리와 효율을 버리고, 추상을 추상으로 받아들이고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스스로 써보는 훈련이 그것을 도울 것입니다. 시의 세계는 개념적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가능한 세계가 아닙니다.

 

글틴 장태영_ 미리 형태나 내용을 정하고 시를 쓰는 게 좋아요? 나빠요?

 

조연호_ 충분히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좋은 시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편적인 규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제가 헤 드릴 수 있는 말은 좋은 시 나쁜 시라는 문학행위 결과물로서의 판단이 아니라, 그 과정의 충실함과 엄격함입니다. 글을 쓰는데 있어 가급적 관습을, 익숙함을 만들지 마세요. 모든 예술은 관습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자기 반복, 자기 복제를 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좋은 시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요.

끝으로 해 드릴 말은 앞서도 말했던 부분과 중복되는 말입니다. 문학은 비효율적인 거예요. 실제 재화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정신의 세계에서도 그렇습니다. 문학적 보상은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단지 한 편의 좋은 시로 보상받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실제 세계와는 아주 다르고 결코 세계와 일대일 대응시킬 수 없는 너무도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세계의 존재를 모르며, 적은 수의 사람들이 그 세계의 비논리적인 면에 조소를 보내며, 아주 적은 사람들이 그 세계에 흥미를 가집니다.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어느 부류의 사람이 되든 실제 살아가는 데에 불편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세계를 본 자의 감격과 그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우아함의 유무가 있을 뿐이지요.

진로와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지금 전문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교과서에 나오든 이런 (글틴 이벤트) 계기를 통해서든 글을 접하게 되잖아요? 공부를 하기도 바쁜데 시를 언제 보나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시를 읽을 기회는 고등학교까지밖에 없어요. 대학 올라가서 뭔가 문학적인 것은 나중에 보면 되겠지 하다 보면 문학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멀어져요. 지금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세요. 세상에는 몸으로 살아가는 삶도 있지만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어느 부류의 사람이 되든 살아가는 데 불편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세계를 본 자의 감격과 그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우아함의 유무가 있을 뿐이지요.

좋은 인연 감사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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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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