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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캠프 참가후기] 캠프 안 오타쿠

  • 작성일 2013-03-15
  • 조회수 803


캠프 안 오타쿠

— 글틴캠프 참가후기


이종산(소설가)

 

 

 

 

 

   캠프가 끝났다. 세어보니 한 달이다. 한 달이 지났다. 캠프 장소는 천안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이었다. 캠프가 끝난 날 역 앞에서 호두과자를 먹고 헤어졌다. 글틴 캠프 초창기부터 몇 년 째 참여하고 있는 세 명의 친구와 호두과자를 먹었다. 두 명의 친구가 더 있었는데 그 둘은 캠프 첫날부터 앓다가 마지막 날 폐회식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단호박 앙금이 든 호두과자를 한 상자 사서 집으로 갔고 함께 호두과자를 먹고 나온 세 친구는 노래방에 갔다. 셋 중 하나는 목이 쉬었다.
   목이 쉰 친구가 우리를 오타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기도 그렇고, 그와 그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우리는 문학 오타쿠야.” 오타쿠라니. “이승우나 정영문을 사랑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서는 아니야. 바깥사람들은 김애란조차 몰라. 이런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이런 것이라니. 바깥사람들이라니.
   캠프에 모인 친구들은 술도 안 먹고 밤을 새워 문학에 대해 떠들었다. 헤어지는 날 캠프에서 나오는 버스 안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들의 가방에는 집에서 가져온 책과 캠프에서 얻은 책이 들어 있었다. 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한 친구가 나에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평소에 아주 곤란하게 생각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답을 이리저리 에둘렀겠지만 그 친구에게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왜였을까.
   문학 오타쿠라는 말이 영 까끌까끌하지만 우선은 그렇게 치자. 문학 오타쿠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작가만한 문학 오타쿠도 없을 것이다. 작가들이야말로 오덕 중의 오덕이다. 오타쿠의 좋은 습성과 나쁜 습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나쁜 습성은 오타쿠가 아닌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습성은 한 가지 분야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인데 문학 오타쿠의 경우에는 책 욕심이 많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추잡스러워 보이기도 하니 좋은 습성이 아닐 수도 있다.
   캠프의 중심이었던 강당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협찬 받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캠프 참가자들에게 줄 상품으로 준비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초대작가들과 도우미들이 슬금슬금 책이 있는 테이블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이틀 간 호시탐탐 책을 노리며 군침을 흘렸다. 물론 나도 그랬다. 출판사에서 엄선해서 보낸 새 책들은 반짝반짝을 넘어서서 번쩍거렸다. 너무나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웠다.
   하나쯤 슬쩍할까? 그러나 오타쿠들로 득시글한 그곳에서 책을 훔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눈알 한 짝을 빼놔야 할지도 모른다. 과장이 아니다. 캠프에 모인 오타쿠들은 무시무시했다. 둘째 날 ‘선배 작가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글틴 출신이거나 글틴 출신 작가와 친구 관계인 젊은 작가 다섯 명이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질문 중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가?”라는 것이 있었다. 누가 그런 후진 질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후진 질문에 두 사람이 후지게 답을 했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라고. 끔찍하게 후진 답변이다. 그렇게 후진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니, 뭐 이래? 이 사람들.
   둘째 날 밤에 일어난 일은 더 이상했다. 두 시인과 한 평론가와 두 소설가는 야밤에 습격이란 것을 해야 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밤에 다음 날이 없을 것처럼 놀고 있는 사람들의 방에 쳐들어가는 임무였다. 나는 촬영을 담당했던 원해솔 양의 카메라를 무기 삼아 들고 습격을 시작했다. 몇 개의 방에 사람들이 조별로 나뉘어져 들어가 있었다. 그 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 같은가?
   그 공기가 기억난다. 그 뜨끈한 공기. 온기 같기도 하고 열기 같기도 한 이상한 공기.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둘러앉아 문학 얘기를 하고 있었다. 새벽이었고 아무도 취해 있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어 모인 사람들, 글을 쓰는 다른 사람을 만나러 온 사람들, 글을 쓰는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을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별종이어도 괜찮은 짧은 시간.
   습격은 실패다. 돌아가자. 그들은 나와 동류였다. 나는 어떤 방에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어떤 방의 사람들은 나를 붙잡았고 어떤 방의 사람들은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꼈다. 아주 불편했다. 밤은 짧았고 사람들은 자기와 닮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살아왔던 날들을 맞춰 보거나 앞으로의 날들을 겹쳐 보고 있었다. 열심히 말하거나 듣거나 놀이에 열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마지막 방에서 슬쩍 빠져나와 캠프 도우미들이 모인 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편안했다.
   지금 나는 캠프 바깥에 있다. 캠프 안의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캠프 바깥에서 내 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무엇을 하세요?” “글을 써요.” 그걸로 그만이다. 안과 바깥이 있다는 말은 불편하다. 안과 밖을 나눈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말은 불편하다. 배척, 편견, 외면, 그런 것들.
   안과 밖은 소통할 수 없다. 반감이 일어나는가? 나에겐 그렇다. 반감이 일어난다. 캠프 안에서 느꼈던 유대감은 따뜻하면서 불편했다. 애정이 강렬해질수록 바깥이 선명해졌다. 촌극을 보면서 우리는 많이 웃었다. 서로를 좀 ‘돌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바깥사람들’이 봤다면 어땠을까?
   목이 쉰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자. ‘바깥사람들은 이런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동의하면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습격을 하면서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불편한 애정, 소속될수록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
   캠프에 가기 전에 나는 두려웠다. 십대를 만날 기회는 드물었고 소문은 무성했다. 요즘 아이들은 ‘컴싸’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다니며(나중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이천오백 원짜리 아이라이너가 있는데 뭐 하러 컴퓨터 사인펜을 쓰겠냐고 했다), 노스페이스를 입고(이제는 유행이 지났다고 한다.), 담배와 술을 즐긴다는 말이 떠돌았다.
   단체생활이라면 두드러기가 나는데 그것도 어설프게 조숙한 십대들과 삼 일 동안 한 공간에 갇혀 지낸다니! 당일 아침이 되자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은 위험해보이지 않았고 어설픈 어른도 아니었다. 그들은 무해했다.
   아래 지방 말씨를 가진 여자애들과 어두운 길을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꽤 먼 길을 걸어온 황인찬 시인을 마중 나갔다. 이원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녀서 잡을 수가 없던 정세랑 작가와 책 한 권을 나눠 읽었다.(“다 보셨어요?” “다 봤어요.” “넘길까요?” “네.”) 여러 계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커다란 식당에 모여 밥 몇 끼를 같이 먹었고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를 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때울까 걱정했던 삼 일이 금세 지나갔다.
   캠프 안에 있던 삼 일 동안에는 안과 밖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안에서 밖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캠프 밖으로 나오자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졌다. 안과 밖을 나누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글틴에 속한 사람들과 글틴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쓰는 사람들과 읽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글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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