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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청소년문학캠프 참여후기]어떤 밤 여러분에게도

  • 작성일 2014-02-24
  • 조회수 229


[글틴 청소년문학캠프 참여후기]



어떤 밤, 여러분에게도


조우리(소설가)






버스 문이 닫힌다. 버스는 앞으로 두 시간을 달릴 것이다. 출발 전 급하게 물걸레로 닦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 뒷좌석 남자의 스킨 냄새, 이번이 마지막 작동인 듯이 힘겹게 돌아가는 히터의 먼지 냄새, 그리고 옆자리 여자가 바스락 바스락 조심스레 땅콩 껍질을 벗길 때마다 퍼지는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 나는 눈을 감고 그 냄새들에 얼른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옆자리 여자가 무릎 위에 보물상자처럼 올려놓은 종이봉투 속에는 볶은 땅콩이 가득 들어 있다. 버스는 앞으로 두 시간을 달릴 것이다. 원주 터미널을 출발해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는 시외버스다. 비가 오고 있다. 버스가 원주 터미널을 벗어나기 위해 모퉁이를 돌 때, 우산도 없이 저희들끼리 웃으며 날개라도 달린 듯 훨훨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지난밤 보았던 얼굴들이다.


지난밤, 나는 몹시 횡설수설했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내 앞에 있었다. 문득 열일곱 혹은 열여덟의 나도, 그때 만난 말간 얼굴의 내 친구들도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문학’이라고 입에 올리는 나를 내가 아는 얼굴들이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데, 자꾸 무어라도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저 그 자리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얼굴들을 조금 더 마주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 부끄러운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버스에 오르기 전, 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문우(文友)로 부르기에 주저함이 없어, 문자 메시지로 전해온 청첩의 200자조차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느껴져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휴대폰 액정 속 글자가 일렁여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종종 “이제 글 같은 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러 장난을 치며 화제를 바꿨다. 농담처럼 말하려는 친구의 얼굴이 어쩐지 비장하고, 그래서 더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기억이 났다. 지난밤 나는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창작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런 스스로를 괴로워하지 말라고. 그것만이 문학을 사랑하는 방법의 전부는 아니라고.


열일곱 혹은 열여덟의 여름, 나는 김유정문학관에 있었다. 폐교를 수리한 문화교실에 전국에서 모인 또래 아이들이 다글다글 엎드려 글을 쓰고 있었다. 청소년문학캠프의 마지막 밤이었고, 작은 백일장이 열렸다. 아마 그 전에는 캠프파이어도 했던 것 같다. 글을 마친 아이들은 어두운 운동장으로 나갔다. 별이 많았다. 정글짐이거나 시소거나 그네거나 그런 차가운 기둥들에 걸터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저마다의 자리에 오랫동안 고여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백일장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에 결혼 소식을 알려온 친구가 ‘장려’였나 ‘입선’이었나 그런 상을 탔다. 나는 입상하지 못했고, 똑같이 빈손이었던 친구와 얼마 뒤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대형 서점의 회전문 안에서였다. 우리는 ‘어? 어?’하면서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열아홉의 겨울, 나는 수련원에서 진행된 또 다른 청소년문학캠프에 와 있었다. 감기가 심해 열에 들뜨고 약에 취한 채로 정해진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옮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사실은 만사가 귀찮아진 나른한 몸의 게으름으로,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한 걸음 뒤에 앉아 있었다. 시구에 맞춰 탈춤을 추고, 누가 더 능청스럽게 아이돌의 노랫말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처럼 연기하는가를 겨루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혼자 자주 웃었고, 그러다 밤의 복도에서 바닥에 누워 우는 아이를 보기도 했다. 나는 그 애가 유령처럼 느껴졌고, 어쩌면 그 애도 나를 유령처럼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린 서로를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그 애는 몇 번 죽으려고 했다가 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먼 나라에서 커피를 만들고 빵을 굽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애의 얼굴도 떠올릴 수가 없다. 그저 어떤 밤이었다고만 생각한다. 우리가 만났던 어떤 밤. 그때, 우리는 너무 진지했고, 그런 스스로가 너무 무거워서 가벼워지려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는 울었을 수도 있다. 그런 밤들은 왜 그렇게 길었는지, 그러면서도 어쩜 그렇게 찰나였는지. 장면들은 생생한데 어째서 명확하게 생각나지는 않는지, 이상하지만 그 이상함이 좋았다.


어쩌면 우리가 만난 건 김유정문학관도 수련원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느 대학 지방 캠퍼스의 기숙사였을 수도 있고, 도심 한복판 고궁의 앞뜰이었을 수도 있겠다. 밤새 얼음 녹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던, 그리고 기어이 아침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야 말았던 2014년 1월의 토지문화관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기억할 만한 어떤 순간, 그 순간에 꼭 하고 싶었지만 무엇인지 잘 몰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들과 그 대신 자꾸만 커지던 웃음소리와 가까스로 익숙해졌던 냄새, 지겹고 낯선 얼굴들이 있다. 지금도, 나에게. 그리고 아마 여러분에게도.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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