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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거야!]‘경쟁에서 이긴 인간’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 작성일 2014-05-31
  • 조회수 391


[후회할 거야_시즌2]



‘경쟁에서 이긴 인간’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김경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경쟁심에 멍든 불행한 아이가 되는 것보다 어른들 말 안 듣는 행복한 아이가 되는 게 낫다고. 그러니까, 가끔 ‘땡땡이’를 치더라도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고, 위대한 자연을 느끼고, 노래하고, 춤을 추라고.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 시골에서 자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한 행운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별거에 들어가면서 나와 작은오빠는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로 휙 던져졌다. 그야말로 내동댕이쳐졌다는 표현이 딱 맞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작은오빠랑 손을 잡고 시골로 가는 와중에 고속버스 안에서 오줌을 지렸던 기억이 난다. 장거리 버스 안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일 수도 있었으나 워낙 어렸으니 엄마랑 떨어지는 게 두렵기도 했을 거다. 그런데 그 느닷없는 시골 생활에 어린 소녀가 얼마나 적응을 잘했는지 육 개월 후 ‘지 에미’도 몰라볼 정도였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엄마한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은 말에 의하면 이랬단다.
“새까맣게 탄 그 꾀죄죄한 얼굴을 붙들고 내가 나름 서럽게 우니까 니가 그러더라. 아줌만 누구예~유? 그래서 내가 서울서 왔다 하니까 니가 또 그 더러운 쇠파리 같은 몰골로 해맑게 웃으며 우리 엄마도 서울서 사는디? 하더라. 그것도 마치 자랑하듯이 말이다.”
참 지겹게 여러 번 들은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웃기다. 뭐 그딴 게 다 있나? 엄마는 어린 딸의 머릿속을 하얗게 점령한 서캐와 이를 보며 기겁을 하는데 지 에미도 몰라보는 소녀는 무슨 신 나는 일이라도 되는지 오빠랑 소여물을 베러 가야 한다며 그 손길을 귀찮다는 듯 뿌리친다. 그러곤 그게 좀 미안했는지 선물이랍시고 뱀을 잡아다 엄마에게 주었단다. 참 유별나게 자연 친화적이고 씩씩한 애였구나 싶다. 기억력도 탁월하고.


혼자 감나무에 올라가곤 했다. 학교를 마친 오빠가 저 멀리 흙먼지 나는 길 끝에서 나타나길 기다리며 감나무에 올라가 오래 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의 끄트머리를 살짝 베어 먹었다. 떫었다. 다른 놈을 베어 본다. 역시 떫다. 그럼 이것은? 마찬가지다. 그럼 저건? 에잇. 그렇게 하루 종일 세상에 있는 모든 감을 다 베어 먹고 놀 수도 있을 것 같은 나만의 태평성대.(물론 할아버지에겐 재앙이었다. 내가 그해 감 농사를 그런 식으로 다 조져 놓았으니까, 여하튼.)
생각해 보면 서울에 올라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순간부터 인생이 지겨운 희비극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어영부영 눈치 깐 거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표에 맞춰 살겠다고 달음박질하는 순간부터 슬슬 행복지수의 감소가 시작된 거다. 게다가 나는 시골에서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개구리며 메뚜기, 뱀 등을 ‘원샷 원킬’로 때려잡던 아이 아닌가? 그런데 바보같이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녀야 하는 도시의 학교생활이라니……. 갑갑하기 짝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쳇, 코 좀 흘리면 어때? 근데 여긴 왜 이리 시시해. 야, 그거 이리 줘 봐.”
그런 식이었다, 어릴 때 나는. 그 때문에 늘 ‘주의가 산만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선생들의 속 좁은 평가서가 적힌 통지표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이 나를 유독 미워했던 게 기억이 난다. “너처럼 가정교육이 엉망인 애는 처음 본다.”라고 했던 무서운 통찰력을 지닌 여자다. 그 얘기를 들은 반 아이들이 덩달아 어찌나 나를 미워하고 야만인처럼 무시했던지. 그래도 난 기죽지 않았다. 기가 죽기는커녕 혼자 시나 소설을 읽으며 의기양양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됐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혼자 나무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소녀였고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 뒤에 소설이나 시를 숨겨서 읽는 아이였다는 사실이……. 세상만사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늘 선생님들로부터 ‘주의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 마땅히 주의가 산만해야만 한다. 보고 듣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는 나이니까.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자연이 준 선물을 마음껏 느껴야 하니까. 그런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으로 요즘 아이들은 성적과 텔레비전, 컴퓨터게임, 외모와 이성 친구 말고는 거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논리로 얼마나 경쟁의식을 고취시켜왔는지 다른 아이들에 대한 경계와 증오, 불신이 남모르게 싹터 오늘날과 같은 학교 폭력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경쟁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누구한테든 복수를 해 주고 싶을 만큼 병들게 만든다. 그 쓸데없는 경쟁심이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거나 위험 요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전무한 나약한 아이들뿐이다. 그건 왜일까? 위니콧(Winnicott)이라는 한 유명한 아동심리학자의 표현대로라면 ‘거짓 자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짜 느낌과 본능적 욕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특히 자식의 입신양명을 바라는 부모)의 바람에 따라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세상을 자신의 주관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질서에 순응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인생을 대부분 무의미하고 하찮게 느낀다는 거다.


지난해 겨울 ‘캐몽’이라는 1백만 원, 혹은 2백만 원, 심지어 3백만 원이 넘는 초고가 패딩 브랜드(‘캐나다구스’와 ‘몽클레어’)가 유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속물근성’을 퍼뜨리는 방송이나 신문에 의해 형성된 ‘거짓 자아’의 욕망. 연세대 심리학과의 황상민 교수의 말처럼 ‘자녀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져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다. 생각해 봐라. 아이들이 고가의 옷 말고 어떻게 자부심이라든가 자긍심 같은 걸 가질 수 있겠나?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소비 말고는 사실상 거의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고 보면 다 어른들 잘못이다. 유년시절은 내 어린 시절의 영웅 ‘빨간 머리 앤’이 그랬듯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감탄하는가 하면 아무 걱정 없이 동화책을 읽는 데 몰두하는 ‘순진무구한 환희의 시기’여야 한다. 그런데 그건 입시 경쟁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살벌한 서울에서 자란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 같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우리가 경험하는 유년시절은 그저 ‘이를 악물고 견뎌 내야 하는 시기’일 뿐이다. 나도 그런 시절을 통과한지라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내게 만약 자녀가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을 자유를 주고 싶다. 집에서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더 재밌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교학사 따위의 교과서를 보지 않아도 될 자유. 어떠한 주입식 교육도 받지 않을 자유.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했듯 ‘틀에 찍어 낸 듯한 인간이 되지 않을 자유’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부모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거 안다. 아마 전 세계 인구 중 1%도 안 될 거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경쟁심에 멍든 불행한 아이가 되는 것보다 어른들 말 안 듣는 행복한 아이가 되는 게 낫다고. 그러니까, 가끔 ‘땡땡이’를 치더라도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고, 위대한 자연을 느끼고, 노래하고, 춤을 추라고. 그와 함께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을 누려 보라고. 물건을 구매를 통해 얻기보다 스스로 만들어 쓸 줄 아는 능력을 얻게 되면 스스로 뭔가 창조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될 거라고. 그게 바로 자존감을 높이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쟁에서 이긴 인간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정말 후회하게 될 거다.




김경


어릴 때부터 남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표에 맞춰 살기 위해 달음박질 하는 인생이 참 지겹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운이 좋아 대학에 가고 잡지사에 취직하고 얼핏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이는 20대와 30대를 보냈다. 값비싼 유행의 진원지와도 같은 패션지 에디터로 살았던 지난 17년의 경험과 정신없이 바쁘고 불안한 도시를 떠나 강원도 평창에서 화가 남편과 소박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얻은 통찰을 결합하여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를 썼다. 그 밖의 저서로 칼럼집 『뷰티풀몬스터』,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여행에세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 있다. 트위터로 세상을 향한 (@kimkyung19)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글틴 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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