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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만화 최강자전의 강자 <시타를 위하여>

  • 작성일 2014-09-24
  • 조회수 1,068


[문학특!기자단]



대학만화 최강자전의 강자 <시타를 위하여>

- 웹툰 작가 하가 인터뷰




박지영(문학특!기자단 2기)




2014년 대학만화 최강자전의 예선 접수가 성황리에 마감됐다. 네이버 웹툰 측은 예선에서 독자 투표수가 가장 많은 상위 32개 작품을 대상으로 지난 9월 2일부터 토너먼트를 진행 중이다. (http://goo.gl/WS4Xr8)
대학생들의 열정과 독자들의 관심이 웹툰 시장을 달구는 한편, 작년 8강 진출작의 연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 신인 작가 하가의 <시타를 위하여>는 현재 9화까지 감상할 수 있다. (http://goo.gl/2wr47Y)
2013년 가을, 대학만화 최강자전의 경쟁을 뚫고 하가 작가의 <시타를 위하여>가 8강에 진출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대학생들이 웹툰 작가로 데뷔할 수 있도록 일명 만화 오디션인 대학만화 최강자전을 실시해 8강 진출작까지 차등적으로 연재 기회를 주고 있다.
대학만화 최강자전은 네이버 회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투표를 통해 각 토너먼트마다 더 많은 득표율을 얻은 작품이 다음 리그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게다가 실력이 뛰어난 대학생들의 선의의 경쟁을 지켜보며 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제도이다. 만화 전공 교수와 한 팀을 결성해야만 참여 자격이 주어져, 사제지간의 친목을 다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출판 만화 시장이 침체되고 웹툰 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각 포털 사이트들은 정식 웹툰 승격에 관한 체계적인 기준들을 마련해왔다. 기존에는 도전 만화와 베스트 도전 작품 중에 웹툰 관리자가 일정한 심의 기준을 적용해 정식 연재 작품을 결정했다. 이에 아무 보수도 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생활고로 연재를 중단하는 웹툰 작가 지망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자의 기호에 따라 정식 연재를 할 수 있는 만화가를 선출하는 대학만화 최강자전의 방식은, 웹툰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토너먼트라는 형식의 또 다른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2013년 대학만화 최강자전 진출작 중 박지영 글틴 기자가 꼽은 가장 문학성이 높은 작품은 하가 작가의 <시타를 위하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작품의 신선한 스토리와 감정 묘사는 기존 판타지 장르가 받아왔던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타를 위하여>는 생소한 네팔 문화를 배경으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덧붙여, 32강 토너먼트 때부터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 하가는 아름다운 색채의 네팔 의상들과 화려한 장신구를 그대로 재현했다. 독자들은 사진보다도 더 생생한 그림을 접하며 한국과는 다른 문화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뛰어난 연출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 같기도 하다. 문화를 초월한 사랑을 주제로, 서정시를 닮은 웹툰이다. 박지영 글틴 기자는 하가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1) 하가 : 2013년 대학만화 최강자전 8강 진출작 <시타를 위하여> 창작자




박지영 : <시타를 위하여>는 살아 있는 신으로 추대된 쿠마리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타를 위하여>는 작가가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공통적인 요소를 갖는데요. 작가님께서 평소에 네팔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떠한 계기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나요?
하가 :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봉사활동 차원에서 네팔에 14박 15일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본래 동아시아의 문화를 비롯해 만화라는 매체에서만 표현 가능한 전통 의상과 문양의 시각적인 화려함을 그림에 담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네팔의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그 여행 기간 동안 생긴 것 같네요. 카트만두의 쿠마리 사원을 지나며 들은 이야기, 고개만 내밀어 얼굴을 보여주던 소녀를 통해서요.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원 달러, 원 달러’ 하는 호객행위나 여성들의 액세서리,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동물들, 전반적인 만화의 색감 모두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작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지영 : <시타를 위하여>를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소설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시타를 위하여>의 내용이 시간을 뛰어넘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만큼, 스토리 진행에 고려해야 할 부분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스토리 구상과 웹툰 콘티를 짜는 데에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하가 : 아무래도 시간 순서가 역행이라 두 캐릭터의 감정선이 어느 시점에서는 원래와 같고, 어느 시점부터는 얼마만큼 달라지는지 계산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습니다. 처음 스토리를 짤 때 가장 이런 고민을 많이 했고, 지금도 후반부 스토리텔링을 손볼 때마다 매번 작은 사건들의 배치가 어렵네요. 하지만 그만큼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엔딩은 정해져 있으니 가는 길을 얼마나 맛깔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욕심 낼 때마다, 즐거운 고민을 합니다.


박지영 : 마음가짐이나 생활에서 네이버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과 데뷔한 후의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하가 : 작가가 되기 전보다 지금이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학업과 공모전 등을 함께 준비하던 때보다 하고 싶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만큼 부담도 되지만요. 한창 방학 시즌이라 생활 패턴도 제가 조절할 수 있어 좋습니다.


박지영 : 작가의 말에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글귀 등을 인용하시는데, 평소 좋아하는 구절이 있으신가요? 시나 소설, 영화 등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가 : 존 키츠, 그리고 기형도 시인의 글을 좋아합니다. 특히 1화 마지막에 사용했던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어요. 나의 종교는 사랑이며, 당신은 나의 유일한 교리입니다.’ 라는, 존 키츠의 러브레터 속 구절에서 스토리텔링 초반 작업에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지영 : 현재 청강 문화산업대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타를 위하여>의 연재가 끝난 후 계획이 정해져 있으신가요?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하가 : <시타를 위하여>의 시즌 2를 그리고 싶지만 이 부분은 저 혼자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조만간 블로그를 통해 소식 전하겠습니다.



○ 작품 소개

살아 있는 여신이라고 불리는 쿠마리 자리를 박탈당한 시타는 사창가를 전전한다. 한편 네팔을 방문한 한국인 의사 상민은 환자가 있다는 아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시타를 만나게 된다. ‘골목을 가득 메운 쓰레기 냄새 중에 시들어가는 들꽃이 한 송이- 바글루의 깊은 골목 안 그녀는 빛나고, 나는 박탈당한 신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시타와 상민은 혼례를 올리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한다. 그러던 도중, 시타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상민은 네팔 사원을 찾아 숨도, 목소리도, 심장까지 다 바칠 수 있으니 신이 있다면 그녀를 살려내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다음 날 상민이 눈을 뜨자 그의 앞에는 어린 시타가 서 있고, 주름이 생긴 자신의 손을 발견한다. 늙어버린 자신과 여섯 살 남짓한 소녀가 된 시타, 상민은 기도의 대가로 자신의 젊음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다. 한편 시타는 아픈 동생을 위해 쿠마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까다로운 선발 과정에 합격한다. 경전에는 쿠마리의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하며 허벅지는 사슴과 같고,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하며 목은 고등 같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몸에 상처나 흉터 역시 없어야 하며, 짐승의 시체와 피가 가득한 어두운 방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버텨야 쿠마리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쿠마리가 된 소녀는 여신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다. 그러나 화려한 쿠마리의 삶 뒤에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쿠마리 출신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일찍 죽는다는 속설 때문에 쿠마리 자리에서 물러난 소녀들은 대부분 여생을 혼자 고독하게 보내거나 사창가를 전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사타는 쿠마리가 되고, 상민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초경을 시작하면 쿠마리 자격에서 박탈당할 시타의 미래를 과연 상민이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국경과 문화, 나이를 초월한 이 둘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bjy-11. 쿠마리가 된 시타를 보며 미래를 걱정하는 상민.


bjy-22. 화려한 쿠마리의 의상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시타.


bjy-33. 걱정과 축복 속에서 결혼하는 시타와 상민.



《글틴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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