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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람

  • 작성일 2017-06-01
  • 조회수 867

[글틴 스페셜_에세이]



어린 사람



서윤호





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장차 시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집에는 시집이 몇 권 있었다. 초등학교 학년별로 읽어야 할 동시를 정리한 시집부터 유명한 시들을 묶어 놓은 선집도 있었다. 나는 학교가 일찍 파할 때면 그 책들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즈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처음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경이로움이 반가웠다. 몇 번을 되새겨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 정도 시는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자라났던 것 같다.
가끔 학교에서는 동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긴밀하게 행동했다. 하얀 에이포 종이를 먼저 꺼냈다. 연필을 쥔 뒤, 읽었던 시를 몇 개 떠올리고, 멋있는 말을 쓴다고 생각하며 나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적어 갔다. ‘작업’이 끝나면 종이 양 끝을 잡고 멀찍이 둔 채 글자 더미를 감상했다. 나 혼자 써서 나 혼자 만족했다면 재미는 빠르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를 부풀게 했다. 나는 스스로 시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또래와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적어도 그렇기를 소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는 마음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두 해가 흘러 열 살 무렵이었다. 나는 진주청소년수련관으로 갔다. 그곳 작은 방에서는 북아트 행사가 열렸다. 나누어주는 재료로 얇은 책을 만들고, 색연필 따위로 꾸며 완성한 책을 가져가는 행사였다. 아마 방학숙제를 하나 더 추가할 심산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실상 책이랄 것도 없었다. 뻣뻣한 골판지 십여 장을 노끈으로 묶어 고정한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과정이 퍽 지루했다. 기실 미숙한 가위질만 계속하는 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몇 번을 자르고 붙이자 책이 허우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속을 채워야 했다. 나는 그 안에 시를 쓰고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 꾸미기로 했다. 그때부터 좀 신났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내가 도맡아 하려 했다. 그림을 그렸다. 시를 새겨 넣었다.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가령 라디오를 그렸지만 곤충 겹눈처럼 보이는 식이었다. 결국 나는 색칠만 거들어야 했다. 시를 쓸 차례였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시를 여러 개 생각해 냈고 머지않아 분량을 채울 수 있었다. 기억에, 시들은 다 비슷했다. 대부분 영탄조로 시작했고(왜 첫 문장은 물음표로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의미 없는 수식이 가득했고(‘빠알간’ 따위는 너무 유명하다), 그다지 깊은 사유를 담지도 않았다. 애당초 평범한 열 살의 능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싶다. 시 개수는 합쳐 봐야 열 개 남짓이었다. 나는 한두 개 정도를 제외하고는 만족해했다. 선집에서 읽었던 시들과 나의 시가 거의 대등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내가 만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부족했다. 한두 개 작품이 탐탁찮았던 이유도 끝에 강렬함이 부족하거나 따위의 사소한 이유였다. 글을 고칠 줄도 몰랐다.
앞표지를 꾸미고 책을 완성했다. 개학을 하고 과제 검사를 할 때, 나는 그 책을 과제 더미 맨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이 지나다니며 과제물에 확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나는 내심 선생님이 도장을 찍다 말고, 책장을 한번 들추어 본 뒤, 나의 재능에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무심한 얼굴로 도장을 찍고 지나갔다. 그걸로 검사는 끝이었다. 나는 섭섭해 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 일들로 우울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모든 과제물이 그렇듯 책도 효용가치를 잃은 채 책장 한 귀퉁이에 처박혔다.
그때 즈음 고민이 생겼다. 약간은 회의가 섞인 고민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썼던 시들은 잡다한 주제를 다뤘고 개인 경험의 재현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다 보면 분명 작가가 경험하지 않았을 법한 내용을 담은 시가 많았다. ‘그렇다면 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나는 물음을 던졌다. 사실 답은 물음을 던지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작가의 경험만이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시는 진실하지 못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경험과 같은 경지의 생생함에 다다를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지금 와서 내 모습과 견주면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나는 시의 범위를 스스로 축약했다. 그것을 확고한 진리라고 믿었다.
역설적으로, 고민을 떨친 후 무기력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경험도 더 적었다. 내가 쓴 것들을 볼 때면 서서히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고, 소재가 바닥난 나머지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애정도 식어버렸다. 무엇보다도 당시 나의 눈엔 머리 아픈 시 쓰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시를 쓴다는 건 점차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갔고,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도 완전히 시 습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백일장에도 참가하고, 학교 전시회에 시화를 제출한 적도 있고, 이따금 수첩에 끄적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시보다는 ‘시 비슷한 것’들이었다.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재능이라는 허상에 어떻게든 덧칠을 해 실체를 구하려고만 했다. 나를 부끄러워하게 되면서 그 재능은 신기루였음을 깨달았다. 시에 흥미를 잃고서는 시 읽기도 그만두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도 달갑지 않았다. 다시 읽게 된 건 일 년 전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헤어졌던 사람을 다시 만난 듯 어색했다. 그러나 어렸던 나와 일 년 전의 나는 또 다른 입장이었다.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음미할 수 있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로소 시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는 시를 쓰지 않고, 앞으로도 쓸 마음이 없다. 완전히 마음을 거두었다. 산문 쓰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시를 잘 쓰는 사람들만이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에 관해서는 둔재임을 어려서부터 몸소 깨달아야 했다. 그래도 영원히 독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에 그 정도로 충분하다.
오직, 아무리 사랑했더라도 마음은 쉽게 변할 수 있으며, 잊은 척해도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된다는, 미숙한 단상만이 남았다.














작가소개 / 서윤호

대아고등학교 재학. 글을 씁니다.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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