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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소설 멘토-멘티의 만남

  • 작성일 2018-10-01
  • 조회수 2,164

[글틴 - 인터뷰]



글틴, 소설 멘토-멘티의 만남



ㅇ 인터뷰어 : 김선재 소설가
ㅇ 인터뷰이 : 김재희(필명-넌출월귤)







● 2016년부터 올해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틴에서 소설 멘토로 활동했습니다. 의욕만 앞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는데 마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배려로 글틴에서 활동하던 멘티 중 한 분(넌출월귤, 김재희)과 만나 그동안 서로 나눌 수 없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흔쾌히 시간을 내어준 김재희 님께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불어 저와 재희 씨가 나눴던 수다들을 소개합니다.


선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글틴에 올렸던 작품 두 편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재 : 우선 「나비」라는 작품은 제가 글을 쓴 이후 가장 오래 퇴고를 한 작품이에요. 한 이 년 정도 했으니까요. 이 작품은 제가 밀양에 이사 오기 전 부산에 살 때의 경험을 쓴 글이에요. 제가 살던 곳이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사이에 있는 낡은 담장과 녹슨 철근들이 보이는 그런 곳이었어요. 「나비」는 그곳을 떠돌던 고양이들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었는데요. 이 글에 등장하는 화자는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다가 방치된 아이예요. 그 아이가 매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오는 고양이를 보며 자신을 버린 엄마와 화해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고, 「곱슬머리」라는 작품은 제 얘기를 소설로 써본 작품이었어요. 제가 곱슬머리라서 고등학교 다닐 때 겪었던 여러 어려움들을 이야기로 써보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선 : 두 편의 소설을 올려 주신 이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재 : 고3 때는 문예창작학과를 가고 싶어서 실기 준비, 수능 공부를 하며 지냈고 수능이 끝난 후에는 발 수술을 받아서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소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그 후에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좀 바빴고요.


선 : 아무래도 창작과 관계없는 학과에 진학하면 자연스레 습작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늘 마음은 있지만 말이에요.


재 : 네, 맞아요. 한동안은 그것 때문에 저도 많이 아쉬웠는데요. 대신 다른 방식으로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만약 문예창작학과를 갔더라면 생각해 보지 못했을 방식이죠. 제가 외대에 진학하게 됐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꿈이 생겼거든요. 제가 쓴 작품들을 외국어로 번역해 보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에요. 제가 지금 스페인어를 공부 중이에요.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스페인어나 영어로 번역된 내 글은 어떻게 읽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지 않아도 글은 계속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선 : 저도 동의해요. 문예창작학과를 다니지 않아도 글은 계속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글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선택한 분들의 글이 훨씬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글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글과 관련 있는 학과에 가기 위해 고민하거나 그런 학과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전공과 큰 상관은 없는 것 같아요. 창작 관련 학과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글쓰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나"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어떤 사유를 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결국 내가 쓰는 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것들이 결국 내 글에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고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길이에요. 저도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지만 때론 내가 오래 우물 안에 있는 것은 아닌가, 낯선 것과 부딪히기보다는 우물 안에서 우물 안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하거든요. 더불어 문학을 하는 동안에는 단번에 성과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모든 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글쓰기는 오래 달리기와 같아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치지 않는 것이겠죠. 단번에 뭔가가 이뤄지지 않아서 실망하고 포기하려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 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방법을 모색하라는 말이 고작이에요. 그게 정답이니까요. 가능하면 천천히 지치는 것이 결국 자신의 글을 좋은 쪽으로 이끌 거라 믿어요. 말을 하다 보니 사변이 너무 길었네요. 다시 재희 씨의 작품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제가 2년 동안 글틴에서 멘토로 활동하면서 많이 했던 얘기가 소설의 구성 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인물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했던 이유는 바로 전형적 인물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였어요. 재희 씨의 두 작품에도 그런 전형적 인물, 서사가 등장하죠. 부재중인 엄마, 무능력한 아빠, 병약한 할머니 등등으로 구성된 그런 이야기들 말이에요. 글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여건상 그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전형성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재희 씨의 작품 두 편을 읽으며 반가웠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더불어 「나비」에서 드러나는 공간적 배경이 현실적이고 감각적이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인물과 배경을 구상하며 염두에 두는 점이 있나요.


재 : 어떤 의미에서 보면 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물이나 배경이 단순히 허구라기보다는 저와 제 주변을 모델로 삼은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나비」는 초고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됐어요. 「나비」의 초고에는 등장인물이라고는 화자 하나였거든요. 단 하나의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들을 하면서 등장인물을 한 명씩 추가하게 됐고요. 결국 단순히 주인공뿐만이 아니라 화자와 관계를 맺는 인물들도 서사를 끌고 나가는 데 중요한 중심축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공간적 배경 같은 경우는 두 작품 모두 제가 살던 곳을 그대로 옮겨오다시피 했고요. 제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동네에서 고양이와 마주칠 때마다 물과 음식들을 챙겨 주며 그들을 관찰하곤 했는데 결국 그런 구체적인 경험들이 작품 속에 깃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체험하고 관찰했던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지금에야 얘기하지만 아버지도 글을 쓰세요. 제가 쓰는 글을 읽어 주시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가장 강조하셨던 것도 인물, 사건, 배경이었어요. 그것들에 왜 디테일이 필요한지 일러주신 것도 아버지였죠. 제 작품을 읽은 아버지는 늘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에 대해 그것이 꼭 필요한지를 물으셨어요. 덕분에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부터 왜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맞는지, 과연 그 장면에서 그런 사건을 만드는 것이 맞는지 늘 생각해야 했죠.



선 : 사실 지금 재희 씨가 한 얘기들은 굉장히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정들이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막연한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거든요. 예를 들면 아동 폭력에 관한 기사를 읽은 날이면 아동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외국인 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기사를 읽은 날이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죠. 각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구체적인 고민 없이 말이에요. 저는 관심 있는 세계와 잘 쓸 수 있는 세계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심이 있는 세계에 대해 써야겠다는 작정을 하고 나서는 그 '관심 있는 세계'를 자세히 공부하고 익힐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생략되니 막연하고 전형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겠죠. 각설하고 다시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재희 씨가 쓴 두 작품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저는 "보호자의 부재"를 들고 싶어요. 왜 그럴까요?


재 : 사실 그 이유는 저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예요. 다만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아직 미성년인 두 작품 속 화자가 극적인 사건을 겪게 하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없음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 '있음'을 그려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한 곱슬머리 같은 경우에는 보호자의 부재를 통해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기보다는 학내에서 흔히 겪는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어요. 그 둘의 갈등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방패막이 되는 보호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게 더 효과적으로 그려질 거라는 판단이었고요. 두 작품 모두 그런 모색 과정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보호자가 부재하게 됐는데 제가 쓴 작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선 : 제가 읽은 두 작품만 그랬다는 거네요. (웃음)


재 : 네.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됐어요. (웃음)


선 :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 제가 2년 동안 소설 멘토를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새삼스레 생각나네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었을 텐데 아무래도 시, 공간에 대한 제약이 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제대로 짚어 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직접 소통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도 서로 가지고 있었을 테고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처음 재희 씨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해요.


재 : 아버지 영향이 가장 컸어요. 아버지도 직업적 글쓰기는 아니지만 글을 쓰시는 분이거든요. 덕분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매일 일기도 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를 소설처럼 구성하며 쓰는 버릇이 생겼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일상을 나열하는, 그저 기록에 그치는 일기보다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써보는 게 훨씬 더 재밌더라고요. 제 소설 쓰기는 거기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내 생각을 묘사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찰흙을 주무르듯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 와중에 제 글을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생겼고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어요. 처음에는 소설을 쓰는 것이 무척 어려웠어요. 그건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기분이었어요. 없는 인물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행동해야 한다는 일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묘사였어요. 내가 생각한 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 과정을 지나면서 스스로도 조금씩 글을 쓰는 힘이 생기는 걸 느끼게 됐고 또 그런 자각이 저를 더 열심히 쓰도록 만들었던 것 같아요.


선 : 저도 가끔 텅 빈 화면에 빈 커서만 깜박거리는 걸 바라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답니다. (웃음) 다음 질문을 할게요. 재희 씨가 글틴을 알게 된 계기와 과연 글틴이 재희 씨 자신에게 도움이 됐는지 궁금해요.


재 :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 1학년 때 글틴에서 주최하는 문학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아직도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문학캠프에 참가하면서 제출했던 제 글에 대한 조언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님에게 말이에요. 그 캠프에서 글틴에 대한 소개도 받을 수 있었고요. 사실 그때 저에게는 누군가의 그런 도움이 절실했어요. 학원을 다니며 문예창작학과를 준비하는 다른 수험생들과 달리 저에게는 제 글을 가감 없이 평가해 주거나 조언해 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때 제가 살던 곳이 밀양이었는데 부산, 경남 지역에는 문예창작학과와 관련된 학원이 아예 없어요. 그것과 관련된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하는데 그럴 만한 상황이 못 됐죠. 다른 지방에 사시는 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즈음에 우연히 알게 된 글틴은 정말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됐죠. 물론 작가님이 해주신 조언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 작품에 대한 댓글을 읽은 후로는 늘 맞춤법에 신경을 쓰게 됐거든요. 소설만이 아니라 제가 쓰는 모든 글 속의 문장과 단어에 신경을 쓰게 된 거죠. 또 하나 제가 글틴에 고마웠던 게 있어요. 제가 글을 쓰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글에 대한 자신감이었어요. 대회가 있을 때마다 힘들게 서울까지 올라와 여러 백일장에 참석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지 못해 정말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 저에게 처음으로 전국 단위 대회의 상을 준 게 바로 글틴이었어요. 월장원으로 뽑힌 것도 놀랍고 기쁜 일이지만, 문장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훨씬 더 놀랐고 기뻤죠. 그때 그 상을 받지 못했다면 저는 계속 글을 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그만큼 자신감이 없던 시기였거든요. 그때는 내가 글쓰기에 아예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제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니까, 이제 그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었죠.



선 : 글을 쓰는 또래끼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소가 없었나요? 그랬다면 좀 나았을 텐데요.


재 : 제 주변 친구들은 제가 책 얘기를 하면 손사래부터 쳤어요. 제가 어떤 책이 재밌다고 하면 그런 책을 왜 읽느냐고 묻곤 했죠. 그리고 제가 살던 도시가 소도시라서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도 찾기 어려웠고요.


선 : 온라인에는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는 공간이 있지 않나요?


재 : 제가 알기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공간은 글틴이 유일해요. 간혹 글을 쓰는 학생들이 모인 사이트에 가입하면 입시를 위한 실기 위주의 공간이기 십상이었죠. 작품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분위기를 견디며 글을 쓸 자신이 없었어요. 덕분에 제 고등학교 시절은 글을 가장 열심히 쓰던 때이면서 동시에 글쓰기를 가장 혐오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글틴은 그런 시기를 보내던 저에게 그야말로 용기와 자신감을 준 유일한 곳이었죠. 그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선 : 이 대목에서 제가 한 마디 거들자면 인생에서 최후의 승자는 지치지 않는 사람이에요. 특히 문학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정도 했으면 됐어, 가 아니라 이 정도 했으니까 더 할 수 있어. 이것이야말로 문학뿐만이 아니라 삶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승패의 결정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다음 질문은요, (아주 상투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글틴에 바라는 게 있다면요?


재 : 잘은 모르지만 글틴에 글을 올리는 친구들의 사정은 대개 저와 비슷할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은데, 혹은 글을 쓰는 미래를 꿈꾸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글틴이 유일한 소통의 창구이거나 자기 글을 점검받을 수 있는 곳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글틴 활동이 만족스러웠어요. 그러나 조심스럽게 드리는 부탁은 정말 짧은 글이라도 좀 더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에요. 자신의 글을 관심 있게 읽어 주고 댓글을 달아 주는 것이야말로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되거든요. 더불어 지방에 사는 친구들을 위한 소통 공간이 좀 더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행사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한정되다 보니까 지방에 사는 학생들은 마음은 간절해도 참석하기 어려워요. 그런 의미에서 재작년에 부산에서 글틴 문학당이 열렸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그런 문학 캠프나 행사들이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계기가 돼요. 저 또한 문학 캠프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


재 : 궁금한 게 있어요. 가장 글을 열심히 썼지만 결국 원하던 학과에 가지 못해 힘들었던 시기가 바로 고3 시절이었어요. 문예창작학과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었거든요. 그 뒤로 몇 개월 동안은 독서조차 편하게 하기가 어려울 만큼 힘들었어요. 제 인생 최대의 슬럼프가 찾아온 시기가 바로 그때였던 것 같아요. 작가님도 만약 그런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선 : 전 지금도 슬럼프예요. (웃음) 늘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면서 글을 쓰죠. 문학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겠죠. 그래서 우리는 다시 끊임없이 그 질문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작가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좀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겠죠. 그건 옳고 그름의 층위에서 던지는 질문이라기보다 존재의 의미를 담보하는 질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작가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듣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세계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또 좌절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결국 그런 과정들이 자신의 꿈에 한 발 다가서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작가는 슬럼프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내내 슬럼프를 겪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또 어두운 통로를 거의 다 지나 있겠죠.


재 : 작가님은 소설의 소재를 어디서 찾으시나요?


선 : 그때그때 다른데요, 최근에 낸 소설집을 묶을 때는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천착했었어요. 어느 날 문득 늘 거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나 사물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유지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문학이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삶이라는 추상성을 형상화해 가는 작업일 텐데 나는 그 삶 속의 무엇을 그리고 싶은 걸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져요. 최근에 낸 소설집에서는 그게 추모의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고요.


재 : 저는 좋은 글과 나쁜 글에 대한 규정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선 : 제가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나누는 기준은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세계를 얼마나 잘 보여주고 있느냐에 있어요. 그건 윤리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와 다른 층위의 문제겠죠.


재 : 만약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선 : 지금도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그야말로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 같아요. 잘 상상이 안 되기는 하지만요. 인생에는 삶의 방향을 바꿀 몇 번의 계기가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때로는 결과를 바라지 않고 그 선물 같은 계기를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재 : 오늘 여러 가지 말씀 감사했어요.


선 :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모쪼록 바라는 쪽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










작가소개 / 김선재

2006년 《실천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 2007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부문 등단.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어디에도 어디서도』,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 시집 『얼룩의 탄생』, 『목성에서의 하루』가 있음.



《문장웹진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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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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