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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이미지 텍스트에서의 색의 의미

  • 작성일 2020-11-01
  • 조회수 2,584

[리뷰 - 그래픽노블]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그래픽노블 이미지 텍스트에서의 색의 의미

- 『열세 살의 여름』


김지은




1. 그래픽노블만의 무엇
그래픽노블을 읽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해외의 주요 작품들이 부지런히 번역되고 있으며 창작 그래픽노블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백란이는 그래픽노블의 미학적 조건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내용적으로 서사구조의 복합성과 주제의식의 문학적 깊이를 지녀야 하고 시각적 기준으로는 작가주의적 스타일과 아트워크 퀄리티가 남다르게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1) 만화와 그래픽노블의 경계에 대해서는 여러 비평적 견해가 있고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시리즈명 등을 붙일 때 회사마다 각각의 다른 기준으로 쓴다.2) 그럼에도 현장에서 책을 고르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어떻게 다른가요?”라는 물음이다. 만화로 불리는 작품과 그래픽노블로 불리는 작품에 분명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혼용되고 있어서 서점에서 작품명을 모른 채 분야별 찾기를 따라가서 책을 발견하거나 그래픽노블만 모아서 한꺼번에 경향을 살펴보기란 상당히 어렵다. 어떤 작품은 어린이와 청소년 분야에, 어떤 작품은 인문이나 과학 분야에, 또 어떤 작품은 예술이나 문학 분야에 흩어져있다.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의 중간 지대쯤 있어서 양쪽에 중복으로 포함된 작품도 눈에 띈다.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비교적 뒤늦게 시작된 까닭에 개념을 정의하고 구체적인 분류 기준을 만들어가는 중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찍부터 만화가 발달한 벨기에의 경우에는 독자층이 가장 탄탄하다. 최근에는 책방 서가의 절반가량을 그래픽노블 작품들이 차지할 정도로 새롭게 출간되는 종수도 많고 다루는 주제와 분야도 다양하다. 에르제( Hergé, 본명 Georges Prosper Remi)가 모험 만화 『땡땡의 모험』을 시작한 것이 1929년이었는데 1976년에 이르러서야 23권에 걸친 단행본을 종결했으며 그는 19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 시리즈를 직접 각색하였다. 액션과 판타지, 미스터리를 오가면서 당대의 복잡한 세계정세와 대립하며 변화하는 각종 사회적 논점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땡땡(Tintin)을 읽으며 성장한 독자들은 어떤 질문이 떠오르든지 그래픽노블 서가에 가서 원하는 작품을 찾는다. 따라서 벨기에의 경우 잘 알려진 고전 문학작품을 그래픽노블로 다시 쓰는 것은 물론 대중적 서사부터 깊이 있는 논변이 필요한 철학서까지 그래픽노블로 출간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유럽 만화의 중심이 되었던 곳은 프랑스다. 르네 고시니(René Goscinny)가 글을 쓰고 알베르 우데르조(Alberto Aleandro Uderzo)가 그림을 그린 인기 만화 『아스테릭스』는 1959년에 시작해서 2019년 10월까지 꾸준히 출간되었다. 시리즈는 무려 10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는 기록을 남겼다. 1963년부터 서부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블루 베리』의 작가로 그래픽노블의 정체성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장 지로(Jean Giraud)는 뫼비우스(Moebius)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와 함께 『잉칼』(L'Incal)을 발표하면서 SF 그래픽노블의 지평을 본격적으로 열기도 했다. 이무렵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그래픽노블이 더욱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8년에 일어난 학생혁명이었다. 시대정신을 투영한 자유로운 비판과 통찰이 담긴 작품이 늘었고 이어서 1971년 라루스 알파벳 대백과사전에 만화가 제9의 예술로 기록되면서 만화, 혹은 그래픽노블을 독립된 예술 장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사회 일반에 자리 잡았다. 이제 그래픽노블이 예술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편 이미 존재하던 예술작품이 그래픽노블의 방향을 향해 움직여가는 일도 많다. 독자에게 잘 알려진 걸작이 그래픽노블로 재화되면서 그 안에 담긴 예술적 함의가 재조명되는 것이다. 암흑 같은 가부장제의 모순을 파고든,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작 소설 『시녀 이야기』를 2019년에 르네 놀트가 그래픽노블로 재창작했는데 이 작품 안에서 주조색으로 쓰이는 검정은 물러서지 않는 절대적인 색이다. 반면 빨강은 농도와 명도를 미묘하게 변화시키면서 독자의 감정을 조율한다. 이 그래픽노블은 “선과 색을 극적으로 탈바꿈시켜 공포와 체념, 자포자기, 실낱같은 희망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르네 놀트는 좋았던 한때를 기록할 때는 채도를 낮게 하고 악몽 같은 경험을 그릴 때는 굵고 짙은 선을 사용한다. 독자들은 원작 소설과 달리 그래픽 노블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잔혹한 순간에 독자로 하여금 완전히 혼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처연한 공간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래픽노블만이 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1) 백란이, 『그래픽노블』, 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2018, 19면.
2) 창비, 열화당 등이 일관되게 ‘만화’로 쓴다면 돌베개, 풀빛, 시공, 비룡소, 황금가지, 문학동네 등은 ‘그래픽노블’과 ‘만화’를 골고루 쓰는데 ‘그래픽노블’로 분류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가볍지 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 아동청소년 그래픽노블
한동안 작가주의 특성이 강한, 성인 독자 대상의 유럽 그래픽노블들이 소개된 데 이어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모으는 작품을 살펴보면 영미권의 아동청소년 그래픽노블이 많다. 아마존의 그래픽노블 분야 판매량 순위에서도 지난 몇 년간 부쩍 아동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늘었다. 탁월한 예술성을 지닌 신인 작가들이 그래픽노블 창작 대열에 속속 진입하고 있으며 주제나 소재, 플롯에서 한결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것도 눈에 띄는 경향이다. 거의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아동청소년문학상인 뉴베리상은 그동안 그래픽노블을 자신들의 리스트에 올리지 않다가 최근 입장을 바꾸었다. 2015년, 농인인 시시 벨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그래픽노블 『엘 데포』가 뉴베리상 최초로 명예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2016년에는 빅토리아 제이미슨의 『롤러 걸』이 한 번 더 명예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제리 크래프트의 『뉴 키드』가 뉴베리 대상을 받으면서 청소년문학으로서 그래픽노블이 갖는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일상 속의 미묘한 인종차별을 고발한 이 작품은 같은 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코레타 스콧킹상도 수상했다.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를 앞두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 젠 왕의 화제작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크로스드레싱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근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학적 매력 가득한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위와 같은 독창적인 해외 그래픽노블들은 큰 시차를 두지 않고 번역되어 우리 독자를 만나고 있다. 부천만화대상 수상작들을 필두로 한 우리 창작 그래픽노블 작가들의 활약도 상당하다. 그러나 아직도 만화라고 하면 어린이 학습만화나 게임 캐릭터 만화의 인기가 친숙한 우리 입장에서는 아동청소년 그래픽노블의 강세가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공공 도서관에서는 만화라는 이유로 희망도서 신청에서 반려되기도 하고 학교 추천도서에서도 그래픽노블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작가주의 그래픽노블은 난해할 것이라는 편견에 부딪히고, 생활 서사를 담은 그래픽노블은 읽어보나마나 가벼울 것이라는 오해를 겪으면서 진지한 독서의 목록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래픽노블은 스펙트럼이 넓어 어떤 범위 안에 가두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인종, 성, 장애 차별과 같은 소수자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미지 텍스트와 글 텍스트가 조응하는 과정에서 입체적으로 의미에 접근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장르다. 그 중 뛰어난 작품성으로 장르의 숨은 매력을 알려주는 국내 그래픽노블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사랑을 다룬 이윤희 작가의 청소년 그래픽노블, 『열세 살의 여름』(창비. 2019)이다.


3. 노랑, 파랑, 여름의 사랑
이윤희 작가는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이 작품을 연재했고 2019년 7월에 단행본으로 펴냈다. 출간되자마자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까지 받으며 중쇄를 거듭했다. 연재 당시에는 제한된 독자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독자층을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야기는 간결하다. 1998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아빠의 장기 출장지가 있는 남쪽 바닷가 마을로 놀러간 열세 살 해원이가 주인공이다. 해원이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가 뜻밖에도 거기에서 같은 반 산호를 만난다. 첫사랑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의외성이며 작가는 그것을 장소에서 확보한다. ‘그 바닷가의 낯선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와 내가 마주친 낯선 바닷가’가 새로운 의외성을 만들어내면서 지켜보는 독자들이 이 둘의 첫사랑에 매끄럽게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교실에서 만날 때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아이인 산호는 파랑으로 가득한 바다에서 만났을 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해원은 떠나기 전에 바다를 한 번 더 보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바다’는 이미 ‘산호’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산호가 해원이 잃어버렸던 노란 모자를 들고 달려온다. 해원이 산호 앞에서 붉어진 뺨을 가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노란 모자를 되찾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원은 그날의 일들을 바다를 닮은 연한 파란 일기장에 차곡차곡 적는다. 바다에서 산호와 해원 사이에 일어난 우연한 일들은 노랑과 파랑의 변주로 표현된다. 하지만 방학은 창틈에 새어 들어온 짧은 빛처럼 스쳐 지나가고 해원은 흔한 일상의 색이 가득한 도시로 복귀한다. 오직 바다와 산호와 나만 있었던 여름방학 끄트머리와 달리 개학하고 되돌아온 집에는 사방에 무늬도 많고 어지럽게 늘어놓은 사물도 많다. 해원과 산호의 바닷가 여름이 충분히 단정한 몇 개의 선으로만 표현되었다면 도시의 여름에는 수직과 수평의 선이 빼곡하게 교차한다. 이윤희 작가는 여기에 인물과 사물의 선을 채워 넣어 참을 수 없는 혼잡함을 나타냈다.
이 작품에서 장면에 선이 드물어지는 순간은 해원의 마음에 첫사랑이 스미는 순간들이다. 산호를 생각하는 텅 빈 계단에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던 휑한 침대에서 해원의 곁에서는 선이 엷어지거나 드물어진다. 산호를 생각하며 일기를 쓰는 개학날 밤에는 해원과, 산호를 생각하는 해원의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제외하면 다른 선들은 모두 침묵하듯 검은 배경이 감싸 안아 버린다. 산호와 해원이가 수족관 앞에서 다시 만나고 산호가 공을 맞아 다친 해원에게 고래 밴드를 줄 때, 색은 노랑만, 사람은 둘만 남기고 그 밖의 선은 모두 장면에서 사라진다. 해원은 이때 산호 앞에서 아득한 기분을 느끼는데 그것은 산호만 남기고 다른 세상이 다 사라져버리는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이윤희 작가는 사랑을 위한 노랑과 파랑에 견주어 대조적으로 일상을 나타낼 때 분홍과 청록을 사용한다. 분홍은 충분히 열세 살 첫사랑의 상징색이 될 만한 관습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여기서는 청소년기의 감정을 상투적으로 지칭하는, 둔감한 색으로 쓰인다. 분홍과 청록과 여러 개의 바쁜 선으로 채워진 교실 뒤 게시판에 산호의 그림, 채도 낮은 노랑과 바다빛깔 파랑이 나타났을 때 독자는 숨을 멈추고 그 색에 주목한다. 둘은 그렇게 색으로 사랑을 나누고 작가는 독자에게 색으로 각별한 의미를 전한다. 두 사람의 노랑과 파랑이 많고 많은 분홍과 초록 속에 조용히 걸려 있는 ‘작은 전시회’ 장면은 일종의 약속된 사인 같은 것이다. 독자는 이 사인을 보고 이제 둘의 사랑이 다른 레벨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65면에서 산호가 해원의 손목을 잡을 때까지 청록으로 그려졌던 배경은 “이렇게 아래쪽으로 쓰다듬어 봐.”라는 문장과 함께 잠시 바다빛깔 파랑이 된다. 이렇게 잠시 교차하듯 등장하는 색의 변화를 하나하나 의식하면서 읽는 독자는 많지 않겠지만, 독자의 감정은 그 변화를 감지한다. 의식하지(conscious) 못해도 불현듯 언젠가 알아차리게(aware), 또는 감지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이미지 텍스트의 의미 전달 방식이다. 이윤희 작가는 정교하게 이 변화를 이끌어가면서 독자의 감정을 조율한다.
12화에서 둘의 감정이 무르익으면서 해원이 바다색 셔츠에 노란 티셔츠를 받쳐 입고 노란 반팔 라운드 셔츠를 입은 산호와 만나는 189면에서 독자는 살짝 환호한다. 둘의 마음이 더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신호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 텍스트로 “산호도 나랑 똑같은 색 입었네.”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203면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던져놓고 독자에게 14면에 걸친 상상의 시간을 준다. 심지어 해원이와 산호가 커플 셔츠를 입고 노랑과 파랑의 세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한 그날의 점심 급식 메뉴는 ‘카레’다. 카레는 해원의 노랑, 산호의 노랑과 같다. 누군가는 그래픽노블 읽기를 ‘글과 그림의 춤’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의미의 엇갈림과 합일을 발견하는 것이 그래픽노블을 읽는 즐거움이다.
첫사랑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장면에는 독자를 급습하듯이 또 다른 노랑이 등장한다. 221면의 달걀 프라이 장면은 대표적이다. “오오, 되고 있어!”라는 문장과 더불어 해원의 달걀 프라이가 프라이팬에서 익어간다. 그러나 곧 달걀이 팬에 들러 붙어버리고 독자는 노른자가 터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해원과 산호의 사랑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무심하게 등장하는 엄마의 핸드백이 노랑인 것은 엄마가 이 사랑을 방해하지 않는, 암묵적 조력자일 것임을 예감하게 만들면서 독자를 안심시킨다.
노란 은행잎이 가득한 가을의 한복판에서 해원은 친구에게 이제 유산호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노란 러브레터의 등장이라든가, 이런 색깔의 복선들은 독자를 긴장시켰다가 이완시키고 이야기는 첫사랑의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번잡한 일생의 색이었던 분홍과 초록이 사라지고 장면의 선들은 한결 간소해지며 둘의 사랑이 어떤 결말에 이른다는 것은 이미지의 측면에서 자명해진다. 독자는 이걸 모르고 읽더라도 산뜻한 사랑의 마무리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감동시켰다고 느낌으로써 그렇게 전개되는 색의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책을 덮는 순간 참 맑은 사랑 이야기 한 권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어느새 해원과 산호처럼 노랑과 파랑과 여름의 첫사랑으로 젖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다른 열세 살의 이야기, 『올 썸머 롱, 나의 완벽한 여름』
뉴욕타임스 베스트 그래픽노블 목록에 올랐던 작가이며 그래픽노블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아이스너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호프 라슨은 2019년에 『올 썸머 롱, 나의 완벽한 여름』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과 『열세 살의 여름』은 같은 열세 살의 이야기이며, 여름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들의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란히 읽으면 흥미롭다.
이 작품은 밴드에서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는 열세 살 비나가 친구도 없는 쓸쓸한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시작한다. 비나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오스틴의 누나 찰리를 만나게 되고 찰리 덕분에 전혀 인연이 닿을 수 없었던 새로운 반경의 사람들과 함께 여름을 보낸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두 달동안의 성장서사는 주황색의 단일색조로만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이렇게 하나의 색만을 사용한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종의 인물들이 모두 고르게 동등한 존재로 비추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고민의 결과다. 실제로 주황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인종에 대해서 현실을 대입해 생각하지 않고 차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법을 익히게 된다. 불안한 성장의 사이클을 안정적인 주황색이 꾸준히 받쳐주는 것도 이 작품에서 단일색조가 지니는 장점이다. 호프 라슨은 『열세 살의 여름』에 비하면 훨씬 역동적이고 강렬한 선을 구사하는데 이는 밴드 음악을 하는 청소년이라는 비나의 특성과 결합하면서 이 작품만의 청각적 고유성을 만들어낸다. 그밖에 너그럽고 자유로운 비나의 부모를 비롯한 주위의 호의적인 어른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시종일관 곡선이 강조된 둥근 형상으로 그려져 있으며 청소년을 든든하게 지켜보는 적절한 조력자로서 매우 적절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픽노블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이미지 텍스트와 글 텍스트의 조합을 고려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선율을 감상하는 행위다. 두 권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색과 선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단조롭거나 복잡하다고 해서 꼭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픽노블 읽기는 회화성이 좀 더 강조되는 그림책 읽기에 비해서 이미지 텍스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컷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훨씬 섬세하게 이미지를 전개하기도 하고 극적 흐름과 조응하는 방법도 더 복합적이다.
우리가 그래픽노블을 읽을 때 조금만 더 시각적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면서 본다면, 한 권의 작품은 전혀 다른 감상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적 의미를 의식하고 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들의 독서 행위는 감성과 이성을 동반하지만 감각의 작용이기도 하며 그래픽노블은 그 감각의 활동을 극대화하는, 주관성을 향해 활짝 열린 장르이기 때문이다.











김지은
작가소개 /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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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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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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