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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색깔로 탐색하는 문학의 장-
모색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통해서 본 ‘관계’의 의미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학은 여러분들이 그동안 매일 만나던 친구나 선생님들과 헤어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기간이지요. 때문에 그동안 가졌던 친구들과의 ‘관계’ 또 새로 만나 맺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관계는 그만 두고 싶기도 하고, 어떤 관계는 더 친밀하게 갖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러분 누구나 다 잘 아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통해서 “관계란 인간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네 장미를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이야.”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 하여 비행기를 고치던 중 어린 왕자를 만난 어느 조종사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어느 작은 별에 어린 왕자가 홀로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디에선가 씨앗하나가 날아와 씩을 띄우고 자나나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습니다. 평소 무척 외로움을 느끼던 어린 왕자는 곧바로 이 꽃을 사랑하게 되어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었지요. 하지만 꽃은 무척 거만하고 까다로웠습니다. 바람막이를 해 달라, 유리덮개를 씌워 달라, 요구하는 것도 많고 불평 또한 많았어요. 이에 실망한 어린 왕자는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멀리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 꽃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자기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주변의 별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첫 번째 별에서는 권위적인 임금님을, 두 번째 별에서는 허영심 많은 남자를, 세 번째 별에서는 술꾼을, 네 번째 별에서는 부자가 되려고 일만하는 사업가를, 다섯 번째 별에서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을 그리고 여섯 번째 별에서는 고지식한 지리학자를 만나지요. 하지만 어린 왕자는 매번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라고 말하며 그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지구를 방문합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에 떨어진 어린 왕자는 우연히 뱀을 만나, 그에게 이곳은 쓸쓸하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뱀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도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지요. 외로움의 원인이 ‘상대의 없음’이 아니라, ‘사랑의 없음’ 곧 ‘관계의 없음’ 때문인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것을 증명하는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어린 왕자는 오천송이도 넘는 장미가 피어있는 정원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신의 별에다 놓아두고 온 꽃이 수많은 장미꽃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에 슬퍼져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지요. 이때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나 ‘길들이는 법&rsqu
작성일 2005-07-30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912상세보기 -
모색 오정연 - 단어가 내려온다
[글틴스페셜] 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오늘도 단어는 내리지 않을 모양이었다. 화성에 도착하고 일주일. 매일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눈부터 떠보지만 끝내 실망하며 잠드는 나날이었다. 화성 궤도 진입 직전 최서연이 지구에서 지학 소식을 알려 왔다. 이로써 우리 반에서 단어가 내리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니, 사실 나는 이미 우리 반도 아니었다. 평생 평균 이하 그룹에 속했던 기억이 없는 내가 그렇게 된 것은 내가 '여기'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물리적, 심리적, 언어적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했기 때문에 생긴 지연 현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___________________ 만 15살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린다. 어느 날 갑자기 단어가 턱 하고 ('턱'인지 '짠'인지 '쾅'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내리는데, 들러붙는 느낌에 가깝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아시아 지역에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지학이라고 부른다. 〈논어〉에 따르면 열다섯에 學이라는 글자를 받은 공자가 이를 계기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는 일화 때문이다. 모두가 서둘러 어른이 되고, 재빨리 늙는 시절. 15세쯤이면 결혼하고 직업을 정하고, 평생 어떻게 살겠다는 결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15살에게 무슨 결정권이 있을까. ____________________ 15살의 마지막 날들을 나는 화성 검역소 가족 생활동에서 보냈다. 블랙홀과 함께였다. 우리 반에서 반장이 최초로 단어를 받았다는 소문을 전한 날, 엄마는 다음 달 화성에 가자고 말했다. 마치 옆 동으로 이사한다는 말처럼. 옆 동네도, 옆 도시도, 옆 나라도 아닌 옆 행성, 화성으로 가자고 했다. 항공우주 기술자인 엄마는 항공우주연구소 연구원으로 초광속항법 개발을 위한 다국적 프로젝트에서 5년째 일하고 있었다. 미국의 NASA, 중국의 국가항천국, 유럽의 우주국 등이 참여하는 팀이 실험 완료는 물론 우주선의 개념 디자인까지 마친 직후, 화성 공전궤도 원일점 근방에서 웜홀이 관측됐다. 그러자 다국적 프로젝트팀을 화성으로 불러들여 본격적인 연구소를 세우기로 각국 정부가 합의를 했다. 스페이스 특공대가 따로 없었다. 그날은 중등교육 졸업시험을 정확히 100일 남겨 둔 날이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지 아닌지를 좌우하는, 사실상 대입 시험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중학생이라면 시험이라는 블랙홀로 일상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기. 어차피 따라야 하는 결정이었고 파격적으로 좋은 조건이라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을 엄마가 태평하게 전했다. 엄마 자체가 블랙홀 같았다. 나는 전의조차 상실했다. 엄마는 한국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 내가 이번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화성의 대학도 요즘엔 지구 못지않은 수준이고 내 성적이면 대학과 전공을 골라서 갈 수 있다는데, 말문이 막혔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기억이나 했던 걸까, 이 블랙홀. 일본에 있는 아빠가 재혼만 안 했더라면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라면
작성일 2019-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119상세보기 -
모색 강수환 - 세 죽음과 어떤 죄책감 : 백온유 『유원』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세 죽음과 어떤 죄책감 백온유, 『유원』(창비, 2020) 강수환 “나는 미안해하며 눈을 떴다.” 백온유의 장편 청소년소설 『유원』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무사히 돌아온 나를 부둥켜안아 주었다.” 소설을 제대로 읽기 전에 우선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확인해 보는 것은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나의 오랜 습관 중 하나다. 최소한의 단서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짐작해 보려는 것인데, 물론 추측이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틀릴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리라는 나름의 방향성을 미리 설정해 두면, 비록 작중 인물들이 방황을 거듭하고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더라도 덜 힘든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유원』의 두 문장을 읽고서 나는 안심했다.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미안함을 느끼던 주인공은 어떤 여정을 거쳐 무사히 돌아와 행복한 결말을 맞겠구나, 더구나 그 자리에는 “부둥켜안아” 줄 친구가 있는 모양이구나. 과연 그럴까.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주인공이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그 성장의 여정을 동행해 볼 시간이다. 책임질 수 없는 죄책감 『유원』은 화재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주인공 유원의 성장기를 다룬다. 첫 문장에서 보다시피 그는 미안해하며 눈을 뜬다. 살아남았다는 것,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미안한 것이다. 너무 어린 시절에 벌어진 일이기에 유원에게는 기억이 많이 남지 않은 듯하다. “기사에 나와 있다”(32쪽)거나 “그랬다고 한다”(34쪽)는 표현에서 보듯, 유원은 자신의 기억이 아닌 누군가의 진술에 의지하여 당시의 사건을 술회한다. 그런 유원은 누구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걸까? 먼저, 유원의 언니 예정. 불이 난 11층 아파트에서,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예정은 침착하게 동생 유원을 젖은 이불에 말아 바깥으로 던져 대피시켰다. 그리고 예정은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는다. 유원이 미안함에 눈을 뜬 저 날은 바로 죽은 예정의 생일이었다. 사고 이후, 유원의 가족과 주변인들은 12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예정의 생일을 기념했다. 올해도 그들은 유원의 집에서 예정을 추도하는 예배 시간을 갖는다. 죽은 이를 그가 태어난 날에 기억하는 사람들. 그 자리의 누구도 예정이 부활하리라고 믿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예정을 기리는 이 순간 이 자리에서만큼은, 여전히 예정은 그들 사이에 살아 있다. 이 자리에 없음으로써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현존하는 존재. 예정은 죽은 채 여전히 유원 곁에 살아 있는 것이다.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언니에게 유원이 미안함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음은
작성일 2020-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902상세보기 -
모색 아니 - 열병
[창작 - 그래픽노블]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열병 아니 작가소개 / 아니 1년에 1편 그립니다. 《문장웹진 2021년 8월호》
작성일 2021-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702상세보기 -
모색 시인 또는 뮤지션, 이상협 아나운서를 만나다
네 꿈을 펼쳐라 시즌_2 [인터뷰] 시인 또는 뮤지션, 이상협 아나운서를 만나다 “유희열, 이선균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것 같았어요.” 문학을 좋아하는 십대들 중에는 연예인보다 작가들을 만나는 데 더 설레어하는 친구도 있다. 아나운서이자 시인인 이상협 씨를 글틴들이 만났을 때도, 학생들은 문인 이상협에 더 초점을 두고 질문을 했다. 그가 글을 쓰는 계기라든가 방식, 현재 글 쓰는 생활 패턴에 대해서 더 궁금해 했다. 학생들이 아나운서의 방송 생활 전반에 대해 물어볼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문득, 그의 목소리를 연예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상협 KBS 아나운서는 시인이자 뮤지션, 방송인으로 올해 월간 《현대문학》에 ‘앵커’, ‘너머’ 등 5편의 시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등단했다. ‘음악풍경’, ‘생방송 스포츠 와이드’, ‘정다운 가곡’ 등을 진행했고, 1997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 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도 데뷔했다. 2010년 ‘에고트립’이라는 이름으로 동명의 음반을 발표했고 현재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각종 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은 글틴들에게 감흥이 될 얘기를 건네준 만큼, 이상협 아나운서의 시를 읽고 글틴만의 ‘에고트립’을 그리는 건 어떨까? ■ 일시 : 7월 28일 토요일 ■ 장소 : 여의도 KBS 본관 ■ 글틴 참가자 : 백지연, 이태희, 심혜지, 김지영 시를 쓸 땐 시인의 자아가 돼서 시에 온전히 다 마음을 쏟으면 되는 거고, 밥벌이를 할 때도 그렇고, 음악을 할 때도 그렇고요. 뭐가 더 좋은가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 테니까요. ○ 이상협 아나운서의 근황, 등단 이야기 ▶ 글틴 :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 이상협 : 3월에 시를 내서 5월에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썼던 시를 훑어보고 있어요. 저희가 파업을 했거든요. 파업 접은 지 한 달 조금 넘어 복귀하느라 힘들었고요. ▶ 글틴 : 새로 시 발표한 게 있으신가요? ▶ 이상협 : 아직 없어요. 문장에서 청탁을 해주셔서, 9월에 2편 나갈 것 같아요. ▶ 글틴 : 시는 꾸준히 쓰고 계시나요? ▶ 이상협 : 저희 아나운서가 되게 바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일단 자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요. 저녁 방송이든 새벽 방송이든 출근 기준으로 9시간 일해요.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늦게 출근을 하죠. 자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은 되게 바쁘지만, 프로그램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뉴스 하나 하고 들어가는 날도 있어요. 방송으로 소모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다른 데서 끌어와요. 영화를 본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그렇죠. 아나운서실에서 미드를 봐도 누가 제지 안 하고, 책 읽어도 돼요. 방송국에서는 &
작성일 2012-08-31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498상세보기 -
모색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서 본 ‘구원’의 의미(1)
괴테(J. W.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는 서구 문학이 낳은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며, 독일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번역되어 책으로 출판되고, 연극으로 공연되며, 음악으로 작곡되고, 교과서로 읽히며, 다양한 해석서가 나오고, 수없이 인용되며, 심심찮게 패러디되기도 하지요. 음악을 예로 들면, 구노, 도니제티, 베릴리오즈, 보이토, 부조니 등이 오페라로 만들었고,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볼프, 무소르그스키가 가곡으로 창작했으며, 리스트는 피아노곡으로 작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스트의 교향곡, 바그너의 서곡, 슈니트케의 칸타타 등에 소재로 쓰이고,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 말러의 ‘천인 교향곡’도 『파우스트』의 한 대목에서 가사를 따왔다지요. 그런데 이 위대한 작품에는 한 가지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이 시종 따라다닙니다. 이제 곧 보겠지만, 자신의 욕망을 쫓아 쾌락을 탐닉하다 살인까지 한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거지요. 『파우스트』를 보고 이런 물음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서, 쾌락을 향한 불같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원도 역시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겠지요. 역사에서 신화로 걷다 16세기 초 독일에 널리 알려진 떠돌이 마법사 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의 이름이 ‘게오르크 파우스트’였는데, 흔히 라틴어 이름인 ‘파우스투스’나 그냥 ‘파우스트 박사’로 불리었지요. 1480년경 뷔르템베르크 주(州)의 소도시 크니틀링겐에서 태어나 1540년경 같은 주의 다른 소도시 슈타우펜에서 죽은 이 사내는 약 40년 동안 주술사, 점성술사, 마술사, 예언가로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살았답니다. 파우스트는 점성술사로 성공을 거두었고, 예언자로서도 재미를 보았지요. 남아 있는 자료에 의하면, “현자 파우스트 박사”는 밤베르크 주교에게 1520년 2월 12일 “별점 또는 운세”를 보아주고 당시로는 상당한 수수료인 10길더를 받았고, 1535년 6월 25일 밤에 재침례교파 점령자들로부터 “뮌스터시를 되찾을 것”을 예언하여 맞추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당시 신학자, 예컨대 뷔르츠부르크의 수도원장인 요하네스 트리트하임(J. Tritheim) 같은 사람들의 공공연한 공격을 받은 이유는 자신이 죽은 자들의 혼과 소통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흑마술(黑魔術)을 쓸 줄 안다고 했기 때문이었지요. 악마를 불러내는 마술을 실제 시연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술로 그가 신화적 인물이 된 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당시 마술사들이 자주 하던 일종의 사기극이었다니 말입니다. 파우스트를 신화적인 인물로 만든 사람은 종교개혁을 한 마틴 루터(M. Luth
작성일 2006-04-09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391상세보기 -
모색 최인훈의 『광장』을 통해서 본 ‘유토피아’의 의미
사람들은 예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이상사회를 꿈꾸어왔습니다. 우선, 영국 민중시 「코케인의 나라」에 나타난 코케인(Cockaygne)을 들 수 있지요. 코케인이란 한마디로 무한한 물질적 풍요와 끝없는 쾌락이 어떠한 수고나 노력의 대가 없이도 주어지는 일종의 환락적 사회이지요.(마약의 이름 코카인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답니다). 다음이 아르카디아(Arcadia)입니다. 흔히 ‘황금시대의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곳으로서, 자연이 풍요롭고 인간 욕망이 조화롭게 절제된 낙원이지요.(전설적인 라(Ra)시대의 이집트, 삼황오제 시대의 중국, 유가(Krita Yuga)시대의 인도 등이 여기에 속했다고들 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세워질 천년왕국(Millennium)을 들 수 있지요. 그리고는 유토피아(Utopia)입니다. 유토피아는 희랍어 접두사 ‘u’(유)와 장소를 뜻하는 ‘topia’(토피아)의 합성어이죠. 그런데 ‘u’는 ‘없다’(ou)는 뜻과 ‘좋다’(eu)는 뜻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토피아란 ‘세상에 없는 곳’(outopia)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곳’(eutopia)을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세상에 없기에 좋은 곳인지, 좋기에 세상에는 없는 것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유토피아는 -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말처럼 - “지리적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하여간 “좋은 곳”이죠. 그런데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말해진 것들과는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곳’입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상사회들은 모두 자연적으로 또는 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유토피아는 인간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상사회입니다. 즉 유토피아는 인간이 이성에 의해 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이루려는 그 어느 것보다 현실적인 이상사회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실현이 쉬운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된 우리민족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고통스럽고도 서글픈 이야기이지요. ‘광장’은 어디에 최인훈의『광장』은 1960년 《새벽》 10월호에 처음 발표됐는데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작가의 대표작이자 현대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도 하지요. 이 소설은 6. 25 전쟁 후 석방포로를 싣고 인도로 향하는 배에 탄 이명준이라는 한 젊은이의 회상으로 시작됩니다. 철학과 3학년인 명준은 8. 15 해방 직후 월북한 아버지의 친구의 집에서 살았지요. 그 집 딸인 영미와 아들 태식의 자유 분방한 생활을 보아온 명준은 고고학자인 장선생과 나눈 대화에서 남한의 자유주의 사회를 비판합니다. 자유주의
작성일 2005-10-14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378상세보기 -
모색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지난 며칠간 나와 내 가족에게 때로는 목숨줄이 되어주고 때로는 논다니줄이 되어주었던 돈이 없어진 지금, 나는 이 강가에 홀로 앉아 죽음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지난 며칠간 내가 지녔던 그 돈은 정말 나와 내 가족에게 때로는 목숨줄이, 때로는 논다니줄이 되어주기는 되어줬던 것일까. 목숨즐은 슬프고 논다니줄은 줄거우니, 나는 논다니줄로 그 돈을 썼을까. 그렇지만 나는 진정 그 돈들을 쓰면서 즐겁기만 했는가... ..." 내가 지금 이 강가에 홀로 앉아 있게 된 원인은 단 한가지, 내가 반장의 짝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어찌 할 수 없이 바쁜 반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뿐이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나는 지금 내가 이 강가에 홀로 앉아 있어야 하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은 불지 않는다. 그러나 강가는 춥다. 아니, 춥다기보다 차갑다. 안개는 아침나절이 다 가도록 걷히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하얀 덩어리인 안개는 그 속에 있으면 자디잔 물방울들의 부유가 환하게 눈에 보인다. 물방울들은 자유롭게 유영하여 내 머리에, 내 얼굴에, 내 목덜미에, 급기야는 내 옷 속으로 파고든다. 나는 안개에 감추어져 오전 나절동안 세상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강가에 있는 모든 것, 나무도 풀도 물오리도, 새도 이 시간이 편안한가.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잠자고 먹고 입을 돈이 아니라, 학교에 가져다 줄 돈이 없다. 잠자고 먹고 입을 돈은 엄마한테서 나온다. 엄마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만원, 이만원이 우리 식구 목숨줄이다. 돈도 여러질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돈도 여러질이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돈은 질기디 질긴 목숨줄이고 한량한테 들어가는 돈은 연하디 연한 여흥줄이다.” 나는 여흥줄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다시 말했다. “논다니줄이지 뭐야.” 지난 며칠간 나와 내 가족에게 때로는 목숨줄이 되어주고 때로는 논다니줄이 되어주었던 돈이 없어진 지금, 나는 이 강가에 홀로 앉아 죽음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지난 며칠간 내가 지녔던 그 돈은 정말 나와 내 가족에게 때로는 목숨줄이, 때로는 논다니줄이 되어주기는 되어줬던 것일까. 목숨즐은 슬프고 논다니줄은 줄거우니, 나는 논다니줄로 그 돈을 썼을까. 그렇지만 나는 진정 그 돈들을 쓰면서 즐겁기만 했는가. 나와 내 가족은 내가 지니고 있던 그 돈으로 산 군고구마 한봉지와 햄버거 한 개와 한 켤레씩의 털장갑과 양말 그리고 생일케잌 한상자로 분명 행복한 한때를 누렸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또 그 돈을 쓰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천원어치 군고구마를 사들고 골목을 뛰다시피 걸어갈 때,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너무나 죽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너무나 죽을것만 같아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며 이 강가에 앉아 있는 것이다. 죽으면 편안해질 것인가. 그래서 아버지도 사는 것 보다는 죽는 게 편안해서 일찌감치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일까. 내가 지금 안개 속에 갇혀서
작성일 2005-10-18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110상세보기 -
모색 작사가 양재선님과의 만남
"내 귀는 시와 음악을 그리워하오" -작사가 양재선 님과의 만남- "가사는 노래예요. 가사는 읽는 게 아니라 듣는 거잖아요. 읽었을 때, 아무리 좋은 글이라고 해도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좋은 가사가 될 수 없어요. 가사의 내용으로 어떤 이의 슬픈 죽음을 쓰고 싶은데 그것이 음절에 맞지 않거나 음악과 어울리지 않다면 그 글은 포기해야 돼요. 음악이 먼저라는 얘기죠... ..." * 양재선 작사가 얼굴사진 * "내가 이제껏 마음을 비우고 음미하던 노래는 김광석 정도였다. 특히 근자에 와서 나도 모르게 더 깊이 있게 들리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그야말로 내 마음을 ‘쏙쏙’ 후빈다. 약속 장소인 신사역 부근에 당도해 보니 맑은 햇살이 한 자락 야윈 느낌이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카페의 구석자리를 찾아냈다. 그 자리는 고래뱃속처럼 아늑해 보였다. 평소 최신 노래와 가수 정보에 게으른 나로서는 작사를 현업으로 하는 이의 말에 귀를 바짝 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사로 주고받는 말 사이에는 어느새 카페에서 방류한 구수한 커피 향과 노래가 들어와 있었다. " -----------------------------------------------------------------------------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앞두고 제가 잘 모르는 작사가에 대해 나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요즘 인기 가수들 못지않게 선생님도 바쁘시더군요. 작사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하는 일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쓰는 일과 가르치는 일뿐이에요. 아, 대학원도 다니고 있구나. 가르치는 일로는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작곡가 김형석 씨가 운영하는 K-note에서 작사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저도 배우는 입장이죠. 그리고 요즘 쓰고 있는 가사로는 10월에 방영될 드라마 의 OST가 있어요. 신승훈 씨랑 일을 할 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녹음하고 모니터하고, 또 녹음하고 모니터하는 스타일이라서 녹음을 했다고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오늘도 한 문장 바꿔달라고 전화가 왔네요. 오늘 이렇게 작사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있지만, 실은 작사가란 호칭이 제겐 익숙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작사가를 만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간혹 시에 곡이 붙어 우연찮게 시인이 작사가가 된 경우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을 만난 건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어떠신가요? 혹시 생활하면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들으신 적이 있는지요? 작사가에 대한 인식부족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홀대 쪽이라고 할까요. 작사가는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노래들만큼 존재하는데 이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는 그리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혹시 이런 분위기
작성일 2009-10-05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12상세보기 -
모색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2)
『죄와 벌』은 죄보다는 오히려 벌에 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량으로만 보아도 그렇지요. 에필로그(끝맺음 말)를 포함하여 모두 7부로 구성된 이 방대한 작품에서 죄는 100쪽쯤 되는 1부에 다 드러납니다. 나머지 약 700쪽은 모두 그 죄에 대한 지옥체험과 같은 벌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기나긴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통을 통해 죄에 대한 벌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에 가진 힘을 다 쏟았지요. 그 결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라고 경탄했답니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을 쓴 러시아 출신의 소르본 대학 문학교수인 콘스탄틴 모출스키(konstantin Mochulskij)는 이렇게 말했지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기독교 작가들인 단테, 세르반테스, 밀턴, 파스칼의 옆 자리를 차지한다. 단테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지옥의 모든 단계를 통과한다. 그런데 이 지옥은 『신곡』의 중세적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에 나타난 그 벌이 도대체 무엇이며 또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를. 벌은 시작되었다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벌은 2부와 함께 곧바로 시작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 라자베타를 살해한 이후 신경발작과 열병으로 앓아눕지요. 다음날 정신이 들자 범행 증거물이 될 만한 것들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알고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뭐야! 정말 벌써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형벌이 벌써 이렇게 찾아왔단 말인가? 그래 정말로 그렇구나.”라며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요. 이때 경찰서에서 소환장이 날아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범죄 사실이 발각된 것이 아닌가 걱정하지만 사실인즉 밀린 집세 때문에 집주인이 고소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사실을 안 다음 일단 안도했지만 경찰서를 나오다 자기가 저지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신경발작을 일으켜 졸도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에게 의심을 사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집에 돌아온 라스콜리니코프는 훔친 돈이 든 지갑과 전당품들이 방 안 구석의 벽지 뒤에 그대로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강가로 나갑니다. 그러다가 겁에 질려 그 물건들을 그냥 어떤 집 마당 한 구석에 박혀있는 바위 밑에 숨기지요. 그러고는 한편으로는 “그래, 시작되었다는 말이지. 이렇게 시작되었단 말이지. 노파니, 새로운 삶이니 하는 것은 다 악마에게나 잡혀가라고 해! 맙소사!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추한가!”라고 범행을 후회합니다. 그러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저지른 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 일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거라면, 너는
작성일 2008-02-12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826상세보기 -
모색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서 본 ‘디스토피아’의 의미
유토피아란 ‘인간이 이성에 의해 기획하고 만들려는 이상사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실험된 유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보듯이, 자유주의 유토피아든 사회주의 유토피아든 모두가 우리가 꿈꾸던 이상사회는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유토피아가 아님’, 바로 여기에서 비(非)-유토피아라는 뜻의 합성어 디스토피아(distopia)가 탄생했습니다. 따라서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가 빚어낸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지요. ‘실패한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발표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우리 문학사에 매우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천국’이라는 이름을 빌어 어떤 새로운 유토피아를 보여주려 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실패한 어느 디스토피아를 고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당신들의 천국』은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고발인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나, 사회주의적 디스토피아에 대한 비판인 오웰(G. Orwell)의 『동물농장』, 『1984년』등과 구분되지요. 『당신들의 천국』은 오히려 - 주어진 극한 상황 하에서도 -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그 어렵고 힘든’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다시 최인훈의 『광장』과도 갈라섭니다. 『광장』도 유토피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에 이르는 어떤 ‘긍정적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지요. 단지 실험된 유토피아들이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입니다. 이와는 달리 『당신들의 천국』은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길이 주어진 역사적, 사회적 정황 아래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또 어떻게 하면 실패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려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한마디로 ‘유토피아공학에 대한 처절하고도 치밀한 보고서 내지 길라잡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럼, 이 길라잡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 볼까요? 그 길이 옳은지 그른지, 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따져보는 일은 우선 뒤로 미루지요. ‘천국’으로 향하는 그 어렵고 고단한 길 (제1부)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나환자들의 집단거주지인 소록도 (전라남도 고흥군 소재-관리자 주)에 조백헌이라는 신임 원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됩니다. 군의관이자 현역 대령인 조백헌 원장은 그곳 나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주려는 진정과 열정을 가진 인물이지요. 그는 부임 후 가진 첫 연설에서부터 정정당당, 인화단결, 상호협조를 내세우며 섬을 “여러분의 새로운 낙토”로 개혁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보입니다. 하지만 원생들은 원장의 말을 “귓등에도 스치지 않는 것”같이 흘려버리고, 보건
작성일 2005-11-21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551상세보기 -
모색 『모모』를 통해서 본 ‘시간’의 의미
독일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의미’ 곧 “우리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소설입니다. 폐허가 된 옛날 원형극장에서 사는 모모는 뒤엉킨 고수머리에다 작은 키에 마른 체격을 하고 언제나 자기 몸보다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 다니지만 무척이나 예쁜 눈을 가진 소녀이지요. 그녀에게는 별난 능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달리 할 일이 없는 모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래서 모모를 찾는 친구들이 언제나 많았지요. 하지만 이 도시에 회색신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도시는 점점 예전의 따뜻한 인정은 사라지고 차갑고 삭막하기만한 회색도시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모는 신비한 노인 호라 박사와 30분 후의 미래를 알고 있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훔치는 회색신사들과 싸우게 됩니다. 결국 모모가 그들을 물리치고, 마을사람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는 행복한 삶에 찾아준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지요. 시계로 재는 ‘회색신사들의 시간’ - 크로노스 우리는 소설『모모』에서 두 가지의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회색신사들이 가진 시간입니다. 이것은 시계로 재는 시간이지요. 철학에서는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위에 앉았기 때문에, 자신도 자식들에게 쫓겨날까 두려워 자식들을 낳는 대로 모두 잡아먹는 신이지요.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여섯 번째 아들인 제우스에게 밀려나게 되죠. 결국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쫓김을 당하는 이 신화가 뜻하는 것은, 시간이란 뒤에 오는 것이 앞의 것을 밀어내게 되어 있다는 것, 아무리 머물려고 노력해도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즉 만물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크로노스는 언제나 미래에서 다가와 현재를 지나 과거로 밀려 흘러가버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의 본질은 소멸, 파괴, 죽음이지요. 때문에 회색신사들의 말처럼, 시간을 저축하고 절약하여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당연히’ 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이런 시간에 맞춰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 산업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였지요. 그 이전 농경시대에 사람들은 훨씬 풍요롭고 성스러운 시간 속에서 살았지요. 해가 떠서 밝아지면 들로 나가고, 저녁이 와 어두워지면 멀리 교회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그날 하루에 일어난 모든 것들에 대해 신께 감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밀레가 그린 유명한 그림「만종」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아
작성일 2005-09-08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289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