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두 겹의 노래

  • 작성일 2023-05-26
  • 조회수 2,006

두 겹의 노래


박숲


    CCTV 화면 속 여자는 유리코가 틀림없었다. 문득 생의 끝에서 맞닥뜨릴 그녀의 기억들이 궁금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유리코의 미소가 너무도 무구(無垢)해 보여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마주한 채 멍하니 서 있는 유리코. 차체에 몸이 튕겨 나가는 순간까지 그녀의 눈동자는 다른 세계를 경유하듯 풀어헤쳐져 있었다. 내 눈에는 꼭 그렇게 보였다. 색과 소리가 사라진 CCTV 속 사고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마치 시공을 벗어난 다른 차원에서 벌어진 사고처럼 아득하고 멀었다.


*


    오늘도 그녀, 유리코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주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조 군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부직포 구멍에 마 끈을 끼워 넣었다. 내리다 만 창문 블라인드 아래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 군의 머리에 햇살이 닿아 머리카락이 은회색 빛을 냈다. 조 군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부직포 주머니와 흰색 마 끈을 슬그머니 잡아 뺐다. 유리코 양은 왜 안 왔어요? 조 군은 발음이 잘 안 되는지 입술을 비틀며 대답했다. 몰라. 어머나, 여자 친구가 왜 안 나오는지 몰라요? 난 몰라. 치매 과정이 급격히 진행된 조 군에게 제대로 된 답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이 주째 유리코는 나오지 않았다. 육 개월 동안 한 번도 활동에 빠진 적 없던 그녀다.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상담 활동 초기만 해도 조 군은, 내 여자 친구 예쁘지? 자랑스럽게 소개했었다. 그녀는 새침하고도 도도한 표정을 지었고, 활동 시간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다. 대개 조 군의 일방적 애정 공세 때문이었다. 조 군은 입술에 힘을 주며 내 손에 들린 부직포를 쳐다보았다. 나는 부직포 구멍을 연결한 끈이 뒤엉킨 부분부터 모조리 빼냈다. 다른 노인들은 주머니 구멍에 마 끈을 끼우는 것에 집중했다. 좌석을 둘러보며 질문을 유도했다. 다들 떡국은 드셨어요?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들은 제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그럼, 먹었지. 당연히 설에 떡국을 먹어야지. 선생님은 먹었어? 노란 햇살이 긴 탁자 위로 구부정하게 드러누웠다. 

    드뷔시의 〈아마 빛 머리의 소녀〉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상담 작업실을 일 층에서 이 층으로 옮긴 뒤부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음악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노인들과 달리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작업을 하다가도 잠깐씩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세요? 물으면 도도한 표정으로, 이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곡이야, 쉿, 이 부분은 너무 애절하지? 하며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감춰 둔 기억의 한 조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스치듯 보았던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자 작고 여린 새 한 마리가 가슴 한복판을 통과하며 지나갔다. 문득 그녀, 유리코 얼굴에 내 할머니 미소가 겹쳤다. 

    요양원에 위탁한 뒤 돌아설 때 짓던 할머니의 미소. 그 미소는 비나 눈을 맞으면 색이 사라지고 투명하게 변하는 산하엽이라는 꽃과 흡사했다. 삶 안에 생이 제거된 영혼처럼 서서히 투명해지던 미소. 나는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었다. 고향 바다 가니까 좋지? 할머니는 고향에 간다는 말에 처음엔 설레는 눈치였다.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요양원에 가는 동안 할머니는 내게 끊임없이, 엄마 어디가?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고향 바다에 가는 거라고 답했다.

    나는 재빨리 숨을 고른 뒤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말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그 노래 아시죠? 설날은 지났지만 우리 그 노래 같이 불러 볼까요? 기억을 끄집어내고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노래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그러나 노인들이 기억할 수 있는 노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유리코는 다른 기억들이 모두 빠져나가도 노래나 음악에 대한 기억만큼은 생의 불씨처럼 놓지 않는 것 같았다. 사라지는 것과 붙잡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의 역할은 노인들이 각자의 기억을 좀 더 지연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들의 인지력을 자극해야 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이고 생일이 언제인지, 내가 살던 집은 어디이고 자식은 몇 명인지, 자식들의 성별은 무엇이고 나이는 각각 몇 살이며 그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런 인지 정보는 가장 기본적인 기억이었다. 그마저도 사라지면 노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불완전한, 너무도 아슬아슬한 존재들. 노인들의 기억은 점점 투명해지고 얇아지고 희박해져 갔다. 

    노인들 곁을 지나며 잘못 끼워진 끈을 빼내고 다시 끼우라고 했다. 노인들은 손이 떨려 자꾸만 구멍에 끈을 뒤집어서 끼우거나 엉키게 끼웠다. 어떤 행위 앞에서 이곳 노인들은 자주 어린아이가 되었다. 어머니, 끈을 처음부터 제대로 끼우셔야죠. 안 그러면 다 풀어내고 다시 끼워야 돼요. 끝에 앉은 김 노인이 대꾸를 했다. 그려, 뭐든 첨부텀 잘 끼워야지 안 그럼 실패하는겨. 맞은편 심 할머니가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여? 선생님이 대신해 주면 안 될까? 아이고 난 못 하겠어. 활동 시간마다 스스로 하기보다 유난히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할머니였다. 육 개월째 활동에 진전이 없었다. 소근육 발달을 위해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야 하니 스스로 해결하라고 다독여 보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수업 내내 불평을 하며 징징대거나 아이처럼 조르며 나를 옆에 잡아 두곤 했다. 

    아이구, 거 자꾸 혼자 해 볼라고 해야지. 누가 대신해 주면 그게 뭔 소용이여. 끼어들기 좋아하고 바른 소리를 잘하는 정희 할머니가 심 할머니를 나무랐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 남의 일에 신경 쓰냐고 되받아칠 만도 한데 심 할머니는 그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심 할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른 뒤 손을 잡고 부직포 주머니의 구멍에 마 끈을 함께 끼워 넣었다. 활동 시간 내내 나를 붙잡아 두려는 심 할머니의 속셈을 모른 척했다. 자신의 존재가 잊힌다는 것은 곧 사라짐을 인정하게 되는 의미일 테니까. 

    조 군, 잘 돼 가요? 조 군은 끈을 구멍 하나에 끼웠다 뺐다 하며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조 군, 이 선물 주머니 만들어서 누구 줄 거예요? 조 군은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노인들은 꼭 웃어야 할 때 웃는 게 아니라 아무 때나 잘 웃었다. 그런 건 아이들과 비슷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아 버린 듯한 노인들의 웃음은 아이들의 웃음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들의 웃음에는 다 읽지 못한 책을 어쩔 수 없이 덮어야 할 때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거나 처연한 구석이 있었다. 기억을 많이 소실한 노인들은 웃지 않을 일에도 자주 웃었다. 그러나 유리코는 잘 웃지 않았다. 잘 웃지 않는 노인은 어떤 슬픔을 안고 있기 때문일까. 노인의 적막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몰랐던 걸까. 나는 유리코가 웃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유리코에게 더 끌렸을지 모른다. 잘 웃는 다른 노인들의 명랑은 내가 굳이 돌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내 앞에서 한 번도 웃지 않던 할머니. 할머니와 유리코는 왜 웃지 않는 노인이 되었을까.

    스팽글 통을 들어 노인들 앞에 적당량을 쏟아부었다. 하이구 이쁘다, 심 할머니가 말했다. 노인들 앞에 쏟아 놓은 스팽글에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튕겨 나갔다. 이게 뭐야, 아유 신기하네. 노인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한 노인은 별 모양을 크기별로 모두 골랐고 심 할머니는 꽃 모양을, 최 할머니는 크고 작은 동그라미 모양을 골랐다. 나뭇잎만 고르는 노인도 있었다. 조 군은 은색 꽃 모양을 모조리 골라내었다. 조 군, 은색 꽃이 좋아요? 나는 문득 조 군이 무의식중에 유리코가 말했던 산하엽꽃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어 보였다. 무의식이라는 건 사소한 것보다는 지울 수 없는 중요한 것에 머무는 거니까.

    글루 건의 전기 코드를 콘센트에 꽂은 뒤 조 군이 고른 꽃 모양 스팽글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조 군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내 거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조 군의 손은 의외로 악력이 강했다. 손목이 저릿했다. 거칠고 축축한 감촉이 손목을 옥죄었다. 조 군의 육체는 여전히 어떤 힘의 조건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조 군은 고집스러운 아이의 표정처럼 바뀌어 소리를 질렀다. 유리코 줄 거야. 나는 재빨리 조 군의 손등을 붙잡으며 달래듯 말했다. 그래요, 이건 유리코 줄 거예요. 나는 슬그머니 손목을 빼냈다. 유리코 어딨어! 조 군이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의자가 꽈당 넘어졌다. 너희들이 유리코를 뺏어 갔지? 나쁜 새끼들. 그 여자는 쪽발이가 아니란 말이다! 너희들만 피해자인 줄 알아? 조 군은 시간의 어떤 구간을 찾아간 걸까. 어떤 기억으로 담겨 있기에 저토록 분노하는 걸까. 유리코 찾아와! 당장 내 앞에 데려오란 말이다! 조 군은 팔을 뻗어 탁자 위에 펼쳐진 스팽글을 모조리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심 할머니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고, 다른 노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조 군을 안심시키려 그의 팔을 붙잡았다. 조 군이 내 팔을 세게 뿌리치며 상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통을 쳤다. 나는 바닥으로 꽈당 넘어지며 탁자 모서리에 팔꿈치 급소를 찍혔다. 쇳덩이에 뼈가 눌린 듯 저릿한 통증이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조 군은 오랜 세월 커다란 몸집이 품었을 우렁찬 기운이 잠에서 잠깐 깨어난 것 같았다. 이 자식들 내가 누군 줄 알아? 너희들은 내 발목 근처도 못 따라올 것들이야. 내 말 한마디면 수십만 명이 벌벌 떤다고, 감히 어디서 까불어! 내 것을 뺏어 가면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어. 복지팀 직원 두 명이 뛰어와 조 군의 몸을 붙들었다. 조 군은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서너 개의 의자가 바닥으로 넘어지고 밀렸다. 구석에 몰려 있던 노인들은 파도에 휩쓸리듯 옆쪽으로 몰려갔다. 

    직원들은 조 군의 팔을 뒤로 꺾어 힘을 통제했다. 나는 팔을 문지르며 상황을 지켜봤다. 조 군의 입에서 고함과 비명이 연달아 터졌고, 다른 노인들 역시 비명을 터트리며 울었다. 직원들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권위적이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만! 멈춰! 자리에 앉아! 등으로 명령했다. 조 군은 달래거나 설득하는 것으로 통제가 불가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겨우 잠잠해진 조 군을 의자에 앉혔다. 갑자기 조 군이 훌쩍거리며 울었다. 어쩌면 조 군은 가능했던 세계와 가능하지 않은 세계의 경계에서 견디기 힘든 몸부림을 겪는 중일지 몰랐다. 나는 다른 노인들을 안심시키며 차례로 자리에 앉혔고,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노련한 복지팀 직원들은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조 군 앞에 다시 은색 꽃무늬 스팽글을 모아주었다. 조 군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나는 안 죽어, 절대 안 죽어! 무의식중에도 자신을 챙기려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를 보자 무상함에서 오는 쓸쓸한 감정이 스쳐 갔다. 유리코는 조 군의 이런 순정한 마음을 알고나 있을까. 조 군은 유리코의 기억을 머지않아 완전히 떠나보내게 될 것이다. 유리코가 자리에 있었다면 쌀쌀맞은 표정으로 냉소했을 것이다. 

    은색 꽃 모양 스팽글에 글루 건을 쏘아 조 군의 부직포에 붙여 주었다. 유리코는 활동 시간마다 꽃 모양에 유난히 집착을 보였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주제 활동 시간이었다. 뭐든 자유롭게 만든 뒤 각자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인들은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냈고 자신의 작품에 담긴 추억들을 깊은 수면 아래서 건져 올리듯 즐거워했다. 유리코는 하얀 잎에 노란 수술이 있는 조그만 꽃 모양을 여러 개 만들었다. 조 군이 예쁜 꽃이라고 감탄하며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꽃 이름이 뭐예요? 유리코는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이 꽃을 보면 뭐가 생각나세요? 나는 유리코의 기억을 끄집어내려 이것저것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잠 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그녀가 공포에 찬 표정으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유리코입니다! 와따시노 나마에와 유리코데스! 그녀는 벌벌 떨면서 똑같은 문장을 우리말과 일본어를 섞어 반복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뭉개진 밀가루 반죽처럼 처참했다. 나는 재빨리 유리코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며 진정시켰다. 다른 노인들이 아이들처럼 한꺼번에 울음을 터트렸다. 치매 노인들의 집단 활동에서는 종종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유난히 심각한 분위기로 흐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다독이듯 동요를 불러 주었다. 다행히 분위기는 진정되었고 활동을 다시 이어 갈 수 있었다. 유리코는 김미자라는 본명보다 유리코라고 불러야만 자신을 기억했다. 

    활동 시간이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던 유리코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산카요우! 유리코의 눈동자가 검은 포도알처럼 반짝거렸다. 네? 뭐라구요? 이 꽃 이름 말야, 산카요우라구. 일본 살 때 매일 봤던 꽃이야. 나는 재빨리 물었다. 일본에 사셨어요? 살았던 동네 이름 기억나세요? 그러나 유리코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나를 비껴간 눈동자는 마치 인형에 부착된 까만 플라스틱처럼 변했다. 나는 유리코를 자리에 앉힌 뒤 산카요우를 검색한 뒤 큰소리로 읽어 주었다. 우리 말로는 산하엽이라고 했다. 아유 이름이 어렵네. 일본 지역에 주로 분포된 꽃인데, 비나 이슬을 맞으면 꽃잎이 투명하게 변하는 꽃이래요. 아이구 그런 희한한 꽃도 있어? 몇몇 노인들이 신기한 듯 물었다. 유리꽃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유리꼬랑 이름이 비슷하구먼, 심 할머니가 참견했다. 꽃의 색이 빠지고 나면 뼈대만 남은 것 같아 영어권에서는 ‘해골꽃’으로 불리거나 ‘유령꽃’이라 불린다는 말은 생략했다. 노인들은 유리처럼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꽃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다. 꽃잎은 마치 영혼이 탈색되고 껍질만 남은 나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득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할머니가 왜 요양원을 빠져나와 낯선 도시를 헤매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막기 위해 어린 나이에 강제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일본 앞잡이들에게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평생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 보지 못한 할머니. 어른이 된 아빠가 지병을 앓다 죽자 나와 동생을 떠맡아야 했다. 고행의 연속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나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이나 멀게 느꼈다. 할머니에게 유난히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집을 나가버린 엄마의 유전자를 재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글루 건에 열이 가해져 뜨거워지자 나는 노인들 주머니에 차례로 스팽글을 붙여 주었다. 꽃 모양을 만들어 나비가 날아오게 하거나 별이 떠 있는 하늘을 표현한 노인, 또는 하트만을 가득 채운 노인. 그들의 현재 감정이 작품 하나하나에 여과 없이 드러났다. 나는 전혀 그들의 작품에 간섭하지 않았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을 붙여 줄 뿐이었다. 허리를 펴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창밖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햇볕이 알맞게 파고든 안쪽에서는 매서운 바깥의 기온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곳 노인들 역시 시시각각 퇴화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태는 여느 노인들처럼 평범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유리코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해요? 심 할머니가 물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깊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노인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며 완성된 분홍색 미니 가방의 손잡이를 들어 보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마지막 활동인 거 아시죠?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해서 많이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건강하게 지내셔야 해요. 노인들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별이라는 단어 앞에선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노인들. 왜애? 어디 가는 거야? 누군가 물었고, 갑자기 왜 마지막이라고 해? 또 누군가 물었고, 가지 마, 누군가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자 유리코의 행방이 더욱 궁금했다. 노인들은 겪을 거 다 겪고 살 만큼 다 살아서 모든 거에 익숙한 줄 알지. 우리도 죽는 건 두려워한다는 걸 젊은 애들은 이해 못 해. 언젠가 유리코가 중얼거리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죽음이 앞당겨질 거라 자식들은 믿는다며 어떤 간병인이 말을 흘린 날이었다. 그럴까?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닐까. 

    유리코를 볼 때마다 할머니의 생전 모습들이 오버랩될 때가 많았다. 유리코의 ‘미자’라는 본명이 할머니와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에 쉽게 무너지는 다른 노인들과 달리 두 사람의 단단하게 둘러쳐진 ‘냉정’ 또는 ‘냉랭’으로 위장한 방어막 때문이었다. 어린 동생이 매일 엄마를 찾을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엄마를 쫓아냈다고 일러줬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얼음처럼 냉랭한 손바닥이 등짝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우리 자매를 키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할머니가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엄마를 욕하고 우리를 미워했다면 차라리 덜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고 억척스러움으로 냉정을 유지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냉정함은 평생 자신을 지탱하려는 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고모네 식당은 문을 닫았고 우리는 쫓겨났다. 고모네 식당에 딸린 단칸방은 고모 부부의 욕설을 견디는 공간이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공장과 고모네 식당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했다. 이사 간 첫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보일 듯 말 듯 입가를 스치던 미소를 보았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의 그 미소를 한줄기 희미한 빛처럼 가슴에 품고 산다. 마른 꽃잎이 바스러질 듯 스치던 안타까운 미소. 그 희미하고 아스라한 미소의 의미를 헤아리기까지 긴 시간을 건너왔다.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한 날, 할머니의 눈빛은 바닷속 심연처럼 고요하게 잠겨 있었다.      

    노인들이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한 명씩 간병인의 손을 잡고 상담실에서 빠져나갔다. 조 군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잠깐 내게 시선을 두었지만 금세 잊어버린 건지 간병인이 이끄는 대로 문을 나섰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조 군을 안았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내 인사가 조 군에겐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그 순간 조 군의 몸이 가볍게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기억하는 방식은 어쩌면 뇌가 아닌 몸에 새겨진 어떤 익숙함의 흔적들이 아닐까. 조 군은 상담실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 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유리코. 

    탁자 위 어지럽게 쏟아진 스팽글을 통에 쓸어 담았다. 복지사 팀장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복지사 팀장은 하얀 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딱딱한 표정의 그녀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달 재료비예요. 그녀의 손에서 봉투를 건네받았다. 나는 유리코가 왜 계속 나오지 않는 것인지 물었다. 복지사 팀장은 평소 사적인 얘기 나누는 것을 꺼렸다. 참 전형적인 타입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진행된 반복된 일상이 그녀를 심한 매너리즘에 빠트렸을 것이다. 그녀는 늘 수업을 마치면 내게 상담일지를 건네받은 뒤 딱딱한 인사와 함께 사무실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뭘 그렇게 관심을 가지세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잘 계시긴 한 거죠? 그녀는 못 들은 척 일지를 달라고 했다. 

    나는 일지가 담긴 파일을 손에 든 채 말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려서요. 팀장은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인사를 한들 뭐합니까? 어차피 순간만 존재하는 분들인데… 돌아서면 아무것도 기억 못 해요. 그녀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지를 그녀의 손에 넘겼다. 기억을 못 하면 감정도 사라지나요? 나는 항의하듯 말했고, 복지사 팀장은 눈을 치켜뜨며 툭 내뱉었다. 그 할머니 나간 지 벌써 이 주 넘었어요. 왜요? 어디로요? 복지사 팀장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이 사람에겐 또 어떤 피로와 고통이 있기에 저토록 냉정할까. 피로와 고통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팀장은 일방적인 인사를 남긴 뒤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날따라 유리코는 병실로 올라가지 않으려 했다. 간병인이 데리러 왔는데도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간병인이 짜증을 부렸다. 당황한 나는 간병인에게 좀 있다가 모셔 드릴 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간병인이 투덜거리며 나간 뒤로도 유리코는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무리를 한 뒤 외투를 걸치고 나는 유리코 앞에 앉았다. 지금 가기 싫어요? 나랑 더 있고 싶어요? 유리코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나는 당황하여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 무서워, 살려 주세요, 와따시와 유리코데스. 그녀는 손을 싹싹 비볐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은 조금만 힘을 줘도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그래요 유리코 맞아요. 제가 지켜 드릴 테니 무서워 마세요. 약속해요.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끌어당겨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건 채 쓰러지듯 내 품에 안겼다. 유리코는 상처 입은 새처럼 내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떨었다.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달랬지만 그녀는 끝내 아이처럼 엉엉 울다 스르륵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정신을 잃었다. 

    시디를 9번 트랙으로 옮겼다. 유리코가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유리코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 모든 면에서 풍족한 삶을 살았을 것 같았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 노인들은 유난히 고운 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기억들 역시 어딘지 모르게 여유와 기품이 있었다. 내 할머니의 처절한 삶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특히 유리코의 싸늘한 냉대와 조소가 깔린 말투에는 부유했던 삶의 순간들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조 군은 유리코에게 늘 당하면서도 그녀의 쌀쌀맞은 말투나 행동마저도 모두 예쁘다고 했다. 의도적이라 할 만큼 그녀는 자신의 삶의 행적들을 적재적소에 집어넣는 걸 좋아했다. 

    탁자 위에 널린 재료들을 정리하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 할머니의 간병인이었다. 최 할머니 손수건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간병인은 의자 아래에 떨어진 손수건을 챙기며 말했다. 아쉽네요. 우리 엄마는 선생님 시간을 제일 좋아했는데. 하긴 809호 할머니가 더 좋아했던가? 나는 귀가 솔깃해져 물었다.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된 거예요? 간병인은 사무실 문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 할머니 쫓겨난 거나 다름없어요. 입실비가 많이 밀렸다나 봐요. 이곳 노인들은 축적한 재산이 많거나 자녀들의 후원으로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입실비가 밀려 쫓겨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간병인에게 요구르트를 건네며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우리 엄마 낮잠 주무실 시간이라 상관은 없는데, 왜요? 

    여긴 어디지? 집에 데려다줘. 와따시와 다레데스까? 나는 누구야? 그녀는 증세가 갑작스럽게 심해졌다고 했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일본어와 한국어를 뒤섞어 물었고, 종일 중얼거리며 유령처럼 복도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너무 신기한 게요, 어쩌다 정신이 들면 꼭 선생님을 찾더래요. 나는 울컥 올라오는 덩어리를 목 아래로 구겨 넣었다. 집도 몇 채나 있고 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재산을 몽땅 정리해서 해외로 떠났다는 거 같기도 하고. 암튼 옛날엔 선생이었다, 사업가였다, 가수였다, 수시로 직업을 바꿨더랬죠. 일본에서 살다 왔다는데 그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 간병인들이야 다 그러려니 받아 주지만, 노인들 거짓말은 항상 뻔해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노인들이 자신의 치매 증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 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 밴 행동과 말투 등은 치매를 인정하기 싫어서 단순히 꾸며 낸 거짓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물티슈 한 장을 뽑아 탁자를 닦으며 간병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유리코가 일본에 살다 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실버타운 노인 중 그녀와 비슷한 세대는 수탈과 전쟁의 피해자였고, 그들의 기억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유리코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상담 초기에 그녀는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은 조국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했다. 고국에 뼈를 묻겠다는 소원은 이뤘지만 아직도 조국은 자신을 온전히 받아 주지 않는다며 횡설수설 말을 이어 붙였다. 그때는 단순히 공통된 세대가 지닌 상처의 부작용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녀는 유령과 다름없던 김미자의 삶보다 유리코였을 때 삶에 치열했고, 그래서 현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을 유리코라고 소개했을 때의 표정은 결연하고 단호했으며 소모적이지만 에너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유, 전 이 생활 꽤 해 봐서 아는데, 재산이 많으면 뭐 해요. 어차피 늙고 병들면 짐승 취급받는 건 다 똑같아요. 그래도 고독사하는 노인들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죠. 유리코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자살자’들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유리코는 한 줄기 가느다란 바람 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디로 갔을까요? 간병인은 한숨을 쉬며 이곳의 마지막 코스는 지방 요양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처럼 쫓겨난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간병인은 벽시계를 쳐다보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며 인사를 했다. 

    실버타운을 벗어나자 커다란 눈송이가 공중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산발적으로 흩날리는 눈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문득 사라진다, 는 단어가 가진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사라진다 나는 낮게 소리 내어 발음해 보았다. 눈송이가 차창 유리에 닿자마자 사라지듯 나 역시 눈송이처럼 공중으로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센터의 기관장은 돈도 안 되는 노인들 치료는 왜 계속하냐고 타박했다. 그 시간에 장애우나 아동 치료를 더 늘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였다. 나는 기관장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노인들의 집단치료를 고집했다.

    할머니의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시장 입구에 차를 주차한 뒤 시장으로 뛰어갔다. 건미역과 황태포와 제수용 과자를 사고 포장된 대추와 밤과 몇 가지 나물을 샀다. 생선 가게 주인은 조기에 소금을 뿌리며 싱싱하다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따져 볼 여유가 없었다. 물건을 담은 검은 봉지가 늘수록 손가락과 팔목이 저리고 아팠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인절미도 한 팩 산 뒤 시장을 빠져나왔다. 할머니 제사에 늦지 말고 일찍 와. 아침 일찍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동생은 어떻게 된 걸까. 나는 물건들을 식탁 위에 쏟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시험 기간이겠지. 시험이 끝나도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는 동생은 언제나 시험 기간이었다. 동생의 얼굴은 늘 초췌하고 창백했다. 점점 공부에만 집착하는 동생이 무서웠다. 동생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다섯 시간 정도, 그마저도 자는 동안의 얼굴뿐이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소고기를 볶아 미역국을 끓였다. 두부를 썰어 부치고 조기 세 마리를 깨끗이 다듬어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 가스레인지 불을 올렸다. 콩나물을 삶아 낸 물에 시금치를 데쳐 놓고 고사리를 삶아 물에 불려 놓았다. 다진 돼지고기와 두부와 여러 가지 다진 야채를 반죽하여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수육 대신 등갈비를 만들었다. 등갈비는 어린 시절 고모네 식당에서 할머니가 종종 몰래 싸 왔던 메뉴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배가 몹시 고팠다. 제사상 앞에 앉아 음식들을 훑어보았다. 지금쯤 동생은 집으로 오고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하얀 쌀밥의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우두커니 앉아 바라본 제사상은 온기가 사라진 뒤처럼 싸늘했다. 어린 시절 동생이 재잘거리던 장면이 흑백영화처럼 떠올랐다. 할머니 왜 밥 먹기 전에 꼭 담배를 피웠어? 고요한 침묵을 깨는 내 목소리가 처연하게 울렸다. 우리 곁에서 빠져나간 생의 어느 한 지점의 텅 빈 공간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액자 속에서 할머니가 인상을 썼다. 

    동생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제사상 앞에 앉아 식어 버린 밥알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다시 데워 올까? 할머니에게 물었다. 국그릇을 잡았던 손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급격히 진행된 할머니의 치매 증상 때문에 나와 동생은 삶이 마비될 정도였다.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되었고 동생은 우울증이 심해졌다. 나 역시 수시로 해왔던 할머니 엄마 역할의 감당이 버거웠다. 할머니가 낯선 도시를 떠돌다 사고사를 당한 뒤, 동생의 우울 수치는 심해졌다. 동생은 할머니의 영혼이 자신의 주변을 떠돌며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노인들을 위해 일한다고 할머니를 버린 죄가 가벼워질까? 우린 결코 용서받을 수 없어. 나는 동생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여러 번 상담을 권했고, 그때마다 동생은 소리를 질렀다. 내가 환자로 보여? 

    삼 인분의 식사를 모조리 개수대에 쏟고 제사상을 정리했다. 집안 곳곳에 놓인 작은 소품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었다. 제 자리를 지키는 사물들이 내 시선 안에서 새롭게 빛을 냈다. 집안의 사물들은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이었다. 사물마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생의 작은 일부들이 환하고 소란스러운 기억들을 피워올렸다. 사물들에서 반짝이는 기억을 끌어내는 동안 내 몸에 품고 있던 빛이 조금씩 밝아졌다가 어느 순간 희미하게 꺼졌다. 할머니는 어떤 기억을 담아 갔을까. 할머니는 죽은 뒤에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던 경찰의 말 탓인지 새까맣게 그을린 할머니가 자주 꿈속에 나타났고, 어떨 땐 눈만 감아도 짐승처럼 형형한 빛을 내는 눈동자가 나를 쏘아보았다. 할머니가 떠난 지 이 년이 지났지만 동생은 나보다 훨씬 증상이 심각했다. 어쩌면 우린 둘 다 씻을 수 없는 죄의식과의 싸움을 끝없이 반복하는 중일지 몰랐다. 

    날이 밝자마자 실버타운에 전화를 걸어 복지사 팀장을 바꿔 달라고 했다. 팀장은 오프여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유리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했다. 문득 실버타운 노인들의 얼굴과 표정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기억을 그들은 어떻게 감당할까. 그들에겐 ‘지금-현재’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긴 할까. 자신의 첫사랑을 실버타운에서 만났다고 좋아하던 조 군. 그는 빠르게 유실되는 기억의 틈 안에서 여자 친구와의 기억을 어떻게 움켜쥘까. 잠깐씩 찾아오는 삶의 기억들이 그들을 한없이 낯설고 이물스러운 나락으로 빠트릴지 몰랐다. 그들이 놓아 버린 크고 작은 순간의 기억들. 

    집안을 서성거리며 동생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다. 계속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실버타운 복지사 팀장이었다. 고민 끝에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토록 쌀쌀맞던 팀장에게 내 마음의 어떤 면이 전달되었던 걸까. 얼마 전 실버타운 근처에서 할머니 한 분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혹시 모르니 알아보라고 했다. 몇몇 직원이 실버타운 근처에서 유리코가 돌아다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사고 확인 안 해 보셨어요? 강제 퇴소시킨 분을 일부러 확인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나는 팀장의 몰인정함에 화가 치밀었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사설 기관의 직원일 뿐이라지만 저토록 매정할 수 있는지 안타까웠다. 팀장은 궁금하면 관할 경찰서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머릿속이 까맣게 변했다.

    가방을 챙겨 집에서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거세게 몰려들었다. 차를 몰아 동네를 빠져나오긴 했지만 팀장이 말한 경찰서로 가면 유리코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높은 건물과 앙상한 가로수 사이로 가느다란 햇빛이 차갑게 빛을 내기도 했다.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유리코가 내 차 앞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햇빛이 반사되어 하얀 머리카락이 은회색으로 빛났다. 유리코! 유리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재빨리 차에서 내려 노파의 팔을 붙든 채 유리코를 불렀다.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나와 노파를 쳐다보았다. 노파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신호등이 바뀌었다. 클랙슨 소리와 함께 욕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나는 유리코가 아닙니다’ 하더니 재빨리 횡단보도 너머로 사라졌다. 그 순간 노파의 말은 긴 여운처럼 내게 서늘하게 각인되었다. 

    경찰서는 실버타운에서 멀지 않았다. 복지사 팀장이 일러 준 대로 실버타운 근처 교통사고 관할 담당자를 찾았다. 내가 맡은 환자가 사라졌음을 강조하며 꼭 확인해 보고 싶다고 담당자를 설득했다. 복지사 팀장과 전화를 연결하여 신원을 확인시킨 뒤, CCTV를 꼭 확인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연고자 사고사의 CCTV를 확인할 수 있다. CCTV 속 노인은 뭔가를 찾고 있는지, 목적 없이 헤매는 것인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서성거렸다. 노인의 몸짓은 날개를 다친 새처럼 불안해 보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나는 화면 속 노인이 CCTV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심장이 툭 잘린 것 같았다. 

    CCTV 속 노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떠돌고 있었다. 쇠락한 기억을 더듬듯 먼 곳을 향한 몸짓.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색이 사라진 세계, 소리와 감각과 표정이 사라진 다른 차원의 세계. 그녀가 찾고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인도를 서성이던 노인이 갑자기 4차선 도로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 앞쪽에서 트럭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무섭게 달려드는 트럭을 마주한 채 노인은 아득한 세계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그녀의 표정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내 할머니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뒤의 무연한 표정과 보일 듯 말 듯 희박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를 스쳤다. 마치 투명하게 변한 산하엽, 아니 산카요우 꽃잎처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미소였다. 

    경찰서에서 나와 차에 타자마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녀의 마지막을 확인한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인의 신원은 확인이 되지 않았고, 일주일 넘게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은 무연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될 거라고 했다. 내담자들의 상처를 다독여 응어리진 아픔을 희석해 주는 나의 역할은 기억이 사라진 노인들에겐 별 효과가 없었다. 그들과 마주하면 오히려 깊은 무력감에 빠질 때가 많았다. 어쩌면 나는 버림받은 자들의 고통을 언제까지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를 버리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유리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존재는 다 사라지기 마련이지. 진짜 슬픈 건 말이야,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지. 나는 그녀가 정신을 잃던 날 그녀를 지켜 주겠다던 약속을 왜 했는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걸 알면서 왜 그런 말을 쉽게 내뱉었는지. 그녀와의 약속이 가시처럼 온 신경을 날카롭게 찔러 댔다. 유리코는 자신이 산카요우 꽃을 닮았다고 말했다. 산하엽이면서 산카요우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김미자이고 유리코였던 그녀. 노인이 어떤 꽃에 대해 자신을 닮았다고 말하는 건 오만이었다. 노인이 어찌 꽃을 닮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젠 유리코와 내 할머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꽃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겨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추천 콘텐츠

이백만 원어치 마음

이백만 원어치 마음 박이강 이십여 년 만에 언니를 본 것은 아빠의 장례식에서였다. 장례식장은 정릉 끝자락에 위치한 변두리 병원에 가건물처럼 옹색하게 붙어 있었다. 고 김길우의 빈소는 복도 끝 제일 작은 방이었다.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혼자 상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혜선일 터였다.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다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찾아온 엄마의 조의금을 꺼냈다. 봉투는 동전 때문에 묵직했다. 조의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던 여자는 몇 초간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다가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왔구나. 내 등 뒤로 얼굴을 떨어뜨린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길어지는 포옹이 어색해 칼칼한 기침이 올라왔다. 혜선은 그제야 내게서 몸을 풀었다. 아빠한테 인사해. 묵례를 하고 몇 초를 더 서 있다 나왔다. 어디선가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급하게 혜선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했다. 혜선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게 혜선이 말했다. 도련님이야. 도련님? 그게 뭔데? 혜선은 피식 웃더니 남편의 남동생이라고 대답했다. 아. 나는 어색하게 응수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이라는 단어에 혜선의 존재가 새롭게 환기되었다. 나는 왜 혜선이 결혼했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남편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첫날만 왔다 갔어. 사정이 있어서. 혜선이 대답했다. 돌아가려는 나를 혜선은 극구 말렸다. 결국 떡 몇 조각과 방울토마토가 놓인 탁자에 오렌지 주스를 하나씩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당혹스러웠다. 마주한 그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한국에서 가져간 사진첩에는 어린 나와 혜선이 같이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었지만 한 번도 서로 닮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녀의 얇은 눈꺼풀, 눈 아래 밋밋한 광대 그리고 좁은 매부리코에서 아래 인중까지 이어지는 얼굴 중앙의 생김새가 나와 너무나 흡사했다. 십중팔구 아빠의 얼굴을 닮은 거겠지. 상복 한 벌 더 있는데. 입을래? 혜선이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젓자 그녀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명함 있지? 명함 좀 줘. 차마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백에서 명함 지갑을 꺼냈다. 아, 나 이 빌딩 알아. 꽃집에서 일할 때 몇 번 배달 간 적 있거든. 명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혜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멋지다. 그녀는 장례식장 입구까지 따라 나와 나를 배웅했다. 상 치르고 한번 보자, 혜린아. 이어 말없이 뒤돌아 걸어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내가 갈게. 너 회사로. * 아빠의 부고를 전해 준 사람은 엄마였다. 숙이 이모가 알려 주었다고, 처음에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장례식을 가든 안 가든 그건 너의 결정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하다 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엄마는 천 달러를 보내왔다. 환전하자 은행 직원은 백이십삼만이천구백 원을 내주었다

  • 최고관리자
  • 2023-05-2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