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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문학 뻥쟁이 할머니의 편의점 레시피
뻥쟁이 할머니의 편의점 레시피 송혜수 1. 산삼의 주인 꿀을 곁들인 생 산삼 (혹은 도라지) 레시피 1. 이끼와 흙을 조심조심 털어낸다. 잔뿌리는 그대로 둔다 2. 토종 꿀을 그릇에 담는다 3. 콕 찍어 한 입에 먹는다 (단점 : 한 뿌리에 50만원) 아빠가 조심스럽게 스티로폼 상자를 열었다. 엄마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상자 안에는 초록색 이끼만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산삼이 어딨어? 이끼 밑에 있나?” “정신 없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엄마가 인상을 썼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빠는 조심조심 이끼를 들췄다. 애걔, 내 손가락만한 길쭉한 뿌리가 파들파들 잔뿌리를 떨며 누워있었다. 고작 저만한 게 오십만 원이나 한다니. “사기꾼 아냐? 그 심마니란 사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아빠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꾸 왜 그래? 트집 잡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어머님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하시는 게 하루 이틀이야? 이번에도 그냥 하시는 소리 같아서 그렇지.” 그건 그렇다. 할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다. 엄마가 안 받으면 아빠, 아빠가 안 받으면 학교에 있는 나한테도 전화를 했다. “영은이냐? 나 곧 죽게 생겼다.” “할머니 또 아파요? 어디가 아픈데요?” “어디긴 어디야. 무릎은 개가 물어뜯은 것처럼 너덜거리고, 어깨엔 집채만한 호랑이가 올라앉은 것 같고, 허리는 곧 툭, 하고 끊어질 것 같고, 오늘 아침엔 누가 이만한 망치를 들고 정수리를 쪼개는 것 같고······.” “저번에도 그랬는데 병원 가니까 다 정상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놈들이 알긴 뭐 알어?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할머니, 저 학원 왔어요.” “하나뿐인 손녀가 할미가 곧 죽는데 나몰라라구나.” “할머니 곧 안 죽는다니까요?” “늬가 어떻게 알어? 어젯밤엔 돌아가신 늬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단 말이야!” 물론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할머니 말에 심드렁했던 건 아니다. 할머니가 자신이 아무래도 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던 날, 우리 집은 완전 초비상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연중무휴를 자랑하는 우리 편의점 문을 닫고 할머니를 서울의 큰 병원에 모시고 갔다. 하지만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특히 폐인지 신장인지는 신체나이로 마흔 살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마흔 살이면 우리 아빠보다 젊은데. 할아버지
작성일 2023-09-20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정해윤 - 똥침 한 방 어때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똥침 한 방 어때요? 정해윤 1. 임비와 곰비 “쳇, 하필 헌책을 고르냐.” 검정 비닐봉지에서 누렇게 바랜 책이 나왔다. 책에서는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났다. 혹시나 하고 나달거린 표지를 열어 보았지만 역시나 뻔하고 시시한 옛날이야기 책이었다. 루다는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전래동화인 『이야기보따리』 책은 정확히 쓰레기통에 거꾸로 박혔다. 루다는 이어폰을 끼고 바닥에 벌렁 누웠다. 더운 길을 걸은 탓인지 온몸이 푹 가라앉았다. “임비야,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만이냐?” “하도 오래돼서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어!” “기막히고 코 막힌 시간이었어. 그렇지 않냐?” “책장 사이에 끼어 있는 시간은 정말이지 엿 같았어. 곰비 너도 그렇지?” “꽁청장이 나쁜 놈이지.” 귓속 이어폰에서 신나는 랩이 들려왔다. 어깨를 들썩이던 루다가 벌떡 일어났다. “곰비, 임비, 꽁청장?” 루다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뭐지?” 루다가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른한 여름 오후가 쫀드기처럼 늘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 “진짜 조마조마했다니까” 소리가 나는 곳은 쓰레기통이었다. 루다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다짜고짜 쓰레기통을 들어 뒤집었다. 방바닥으로 코를 팠던 휴지랑 아이스크림 껍질이 우수수 쏟아졌다. “임비야, 이번엔 꼭 성공할 수 있겠지?” “실수란 있을 수 없지.” 그사이에도 랩은 계속되고 있었다. 쓰레기를 휘젓던 루다의 손이 딱 멈췄다. 랩은 고물 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다가 고물 책을 집어 들어 휘리릭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책 중간쯤에서 손이 딱 멈췄다. “도깨비잖아?” 루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책 가운데 홀로그램이 무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도깨비들이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안녕, 루다야?” “반갑다. 이루다.” 도깨비가 루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밤톨이 튀듯 책 속에서 톡 하고 튀어나왔다. 도깨비는 머리에 도도록한 뿔이 나 있고, 커다란 초록 잎사귀를 들고 있었다. 강원도 어디 두메산골에만 자생한다는 도깨비부채였다. 너울대는 잎맥마다 부챗살이 날카로웠다. “헐, 진짜 도, 도깨비야?” 루다가 책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게 틀림없었다. 대낮에 헛것이 보이다니. 루다가 양 볼을 꼬집었다. 혹시나 하고 눈도 비벼 봤지만 역시나 도깨비였다. 도깨비가 루다 눈앞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많이 놀랐구나?” “놀랄 만도 하지!” &ldqu
작성일 2022-10-07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고궁 빌라에는 킹콩이 산다
고궁 빌라에는 킹콩이 산다 김은아 1. 불협화음 챙챙! 드럼의 심벌 소리가 밴드 합주의 시작을 알리자 일렉트로닉 기타의 화려한 전자음이 합주실을 채웠다. 세영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6개의 줄을 쉴 새 없이 넘나들 때마다 현란한 소리가 심장을 쾅쾅 울렸다. 박진감 넘치는 일렉 기타에 건반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쌓이고 저음을 받치는 드럼과 베이스가 리듬을 타면, 풍부하고 입체감 있는 흥을 돋우는 합주가 될 터였다. 만약 그것이 조화롭다면 말이다. 일렉 기타를 치는 세영은 늘 그렇듯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했다. 드럼을 치는 두진은 일렉을 쫓아가려니 서투른 베이스의 정아가 못내 걸렸고, 또 베이스에 맞추자니 일렉이 치고 나가는 게 신경 쓰여 주춤대다가 리듬감을 완전히 잃었다. 건반의 하진 또한 제각각 노는 악기들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다 엇박자로 연주했다. 워낙에 웃음이 많아 이름도 미소인 미소 샘이 웃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자자! 잠깐 멈춰 봐.” 미소 샘은 턱에 손을 괴고 이리저리 서성이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공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안 맞아서야 밴드라고 할 수 없지. 오늘은 자기 파트 각자 연습하는 걸로 하고 내일 다시 모이자. 내일은 합주를 더 많이 할 거야. 알았지?” 미소 샘의 시선이 베이스를 담당하는 정아를 향했다. 정아는 합주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제 탓인 양 풀이 죽어있었다. “정아야 오늘 시간 되니? 선생님하고 조금 더 맞춰보면 어떨까?” 정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아는 나 따라오고 너희들은 내일 보자!” 미소 샘과 정아가 합주실을 나가자 세영은 앰프에 연결된 기타 줄을 뽑고 어지러운 전선을 정리했다. 하진과 눈이 마주친 두진은 도리질을 하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제발 싸우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두진의 부탁은 아랑곳없이 곧바로 세영에게 쏘아붙였다. “야! 안세영, 이럴 거면 넌 밴드를 왜 하니?” 두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전선을 감던 세영은 풋, 입으로 바람을 불어 앞머리를 날리고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하진에게 말했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안 샘과의 약속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그러니까 시비는 걸지 마.” “뭐, 시비? 너는 내가 일부러 시비 거는 걸로 보여?” 하진이 팔을 허리춤에 얹고 발끈하자 두진이 하진을 말렸다. “하진아, 제발 참아. 우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려면 일렉 기타 필요해. 지금으로서는 세영이밖에 없잖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데? 이래서는 미소 샘 말처럼 무대에도 못 올라갈 거라고!” 하진이 분통을 터트리자 세영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이럴 시간에 가서 연습이나 더 해.”
작성일 2023-11-01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비밀상자」외 6편
비밀상자 강벼리 상자 속에 작은 기차를 넣었습니다 나는 작은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기억을 찾아 달렸습니다 비밀고개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연필 한 자루가 뚝 떨어졌습니다 오래전에 훔친 친구 연필이었습니다 부러져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옵니다. 덜커덕 흔들리는 소리에 상자 하나가 뚝 떨어졌습니다 훔친 마음을 넣었습니다 나는 상자 속에서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기차가 부러진 친구 연필처럼 멈추었습니다 인형의 집 여기가 너희 집이니? 금이 간 대리석 식탁과 축축한 캐노피 침대와 조잡한 장식의 상앗빛 화장대··· 네가 사는 곳이 우리 집보다 더 차가워서 좋아 우리 집은 밥상과 책상을 함께 써 침대는 행복한 꿈속에서나 만나지 거울 달린 작은 화장대가 갖고 싶어 나도 이제 식탁 위에 앉아 밥을 먹고 싶어 엄마 아빠가 없더라도 말이야 나도 이제 침대 위에서 잠들고 싶어 나쁜 꿈을 꾸더라도 말이야 나도 이제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고 싶어 네가 되는 연습을 계속 할 거야 웃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되잖아 여기에 슬그머니 내가 살아도 아무도 모를 거야 우리 집에 너를, 매일 밤 초대하고 싶어 빨간 구두를 신으면 거짓말 잘하는 인아가 빨간 구두를 신고 학교에 왔습니다 반짝반짝 빨갛게 빛났습니다 체육 시간에 인아는 운동화로 갈아 신었습니다 아무도 몰래 빨간 구두를 신어봤습니다 얼굴이 금세 빨간 구두처럼 새빨개졌습니다 인아가 보기 전에 얼른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머뭇머뭇 빨간 구두를 내려다봤습니다 낡은 운동화보다 빨간 구두를 계속 신고 싶습니다 갑자기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이 춤을 춥니다 두 다리가 나무줄기처럼 타오릅니다 숨기고 싶은 낡은 속옷도 빨간빛에 풍덩 빠진 것처럼 불타오릅니다 나는 거짓말쟁이 빨간 구두가 되었습니다 작은 컵 난 수영장을 갖고 다녀 작은 컵이지만 뜨거운 여름날, 파란색 물방울을 또르륵 따르면 작은 수영장이 돼 출렁출렁 넘치기 전에 얼른 다이빙을 해 봐! 동그란 수영장을 개복숭처럼 떠다니거나 물개 박수 헤엄치며 일곱 바퀴 돌다 보면 물방울이 조금씩 줄어들어 두 발이 바닥에 닿으면 개구리처럼 팔짝 뛰어야 해 안 그러면, 넌 작은 컵이 되는 거야 다람쥐 동생의 꿈 앞니가 뾰족한 내 동생은 도토리가 좋은가 봐 저녁 반찬 도토리묵만 오물오물 파먹고 있어 젓가락질도 잘 못 하면서 물컹물컹한 도토리묵이 뭐가 맛있다고··· 말랑말랑한 푸딩은 달달하기라도 하지 나는 떫은 도토리 맛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어 푸딩은 이 썩는다고 많이 못 먹지만 도토리묵을 잔뜩 먹으면 엄마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동생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처음 속마음을 말하는 거야 언젠가 상수리나무 위에 쪼르르 올라가게 되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도토리를 따놓고 기다릴 거래 숲속에서 처음 본 동생 모습이 떠올랐어 얼마나 울고 다녔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작성일 2023-08-09 댓글수 1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배고픈 마녀, 학교에 가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배고픈 마녀, 학교에 가다 한아 1. 편식쟁이 마녀 “아이고, 배고파! 규칙만 아니었으면 벌써 행복한 어린이를 먹었을 텐데.” 삐쩍 마른 몸, 회색 털실 같은 뻣뻣한 머리카락, 하얗고 푸석한 얼굴, 매부리코 끝에 난 붉은 점 하나. 바로 까르르 마녀야. 까르르 마녀는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까르르까르르 웃었대. 까르르 마녀는 아무 때나 웃음이 터져 나왔어. 까르르 마녀가 웃기 시작하면 웃음을 그치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 그래서 ‘슈바실라’라는 이름 대신 까르르 마녀로 불렸지. 마녀들은 까르르 마녀가 일부러 웃는다고 생각했어. 다른 마녀들을 괴롭히려고 말이야. 까르르 마녀의 웃음은 들어 주기 힘들었거든. 나는 새가 떨어진 적도 있었다지. 마녀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며 까르르 마녀를 싫어했어. 마녀들은 하나둘 까르르 마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 까르르 마녀는 속상하고 억울했어.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내 웃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멈출 수가 없다니까.” 아무도 까르르 마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어. 까르르 마녀는 외롭고 슬펐어. 그즈음부터 까르르 마녀는 편식하기 시작했어. 구하기 어려운 음식만 고집하는 거야. 오천 년 묵은 소나무 뿌리 샐러드, 겨울을 다섯 번 보낸 두꺼비 껍질 튀김, 귀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잡채 같은 거. 하지만 까르르 마녀는 어떤 음식에도 만족하지 못했어. 어느 날, 까르르 마녀는 마녀들의 역사책을 읽고 있었어. 마녀는 책을 읽다가 어린이를 먹지 말라는 규칙이 만들어진 사연을 읽게 되었어. 삼천 년 전 한 마녀가 길 잃은 어린이를 만났대. 처음에 마녀는 어린이를 잡아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아이와 삼 일을 보낸 뒤에 마음이 바뀐 거야. 이제부터 어린이는 우리의 친구다. 친구는 우리의 음식이 아니며 우리의 실험 대상도 아니고 마법의 재료로도 쓰면 안 된다. 어린이는 마녀의 친구로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꼬르륵 꼬르륵, 마녀 배 속에서 소리가 났어. 문득 까르르 마녀는 궁금해졌어. ‘그럼 예전에는 어린이를 먹었던 거야? 어린이는 무슨 맛일까? 만약에…… 행복한 어린이를 먹으면 내가 행복해질까? 에잇,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혹시…….’ 그 뒤로 까르르 마녀는 행복한 어린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행복한 어린이를 먹으면 나도 행복해질 것 같은데.” 까르르 마녀가 먹을 수 있는 건 물뿐이었어.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었겠지만, 까르르 마녀는 다행히 마녀잖아. 마녀는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아. 다만 끔찍한 배고픔에 시달릴 뿐이야. “배고파!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롬 자르카차!” 까르르 마녀가 휘파람을 불었어. 곧 자가용 빗자루가 휘릭 소리를 내며 나타났어. 마녀는 빗자루에 걸터앉아 빗자루를 꼭 움켜잡았지. “여기서 가장
작성일 2022-10-28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이상하고 신비한 얼음 나라 이야기 - 세이두르
이상하고 신비한 얼음 나라 이야기 - 세이두르 손수자 마법의 알사탕 “공간 이동을 했다고요?” 아이슬란드에서 우리나라까지, 그 말을 들은 해윤은 웃음만 나왔다. “21세기에 축지법이라니. 흐흐.” 외삼촌의 전화를 받은 해윤은 자전거를 타고 연구실로 바퀴를 빠르게 돌렸다. 가로수가 온통 배롱나무 길이었다. 꽃은 활짝 피어 방글거리고, 바람도 가로수길 사이로 헤집고 다녔다. 강의가 없는 토요일 오후였지만, 강의실 밖에는 노트북을 든 형과 누나들이 많이 보였다. 노크도 하지 않고 교수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이, 해윤!” 해윤은 외삼촌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외삼촌한테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 그 품에서 떨어진 해윤이 말했다. “에이, 거짓 뿌리!” 해윤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한 외삼촌이 말을 이었다. “분명 아이슬란드에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교수실 창밖을 보고 있더라니까.” “그보다 나에게는 낯선 나라인데, 아이슬란드는 어디쯤 있어요?” “북유럽에 있는 섬나라야, 대서양의 중앙에 있지.” “정말 궁금한 것은 이름처럼 얼음 나라예요?” “이름보다는 따뜻해. 대서양의 따뜻한 기운과 북극의 찬 공기가 만나 기후 변화가 심하더군.” 외삼촌은 신나 보였다. “아이슬란드에서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5분만 기다리라는 말이 있어. 금방 비가 왔다 개이고, 개었다가 또 비가 오더라고.” 외삼촌은 책상에 놓여있는 구슬을 가리켰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노랑 빛깔의 구슬 같은 사탕이었다. “사탕이잖아요.” “그래, 마법의 알사탕이지.” 외삼촌은 여행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해윤에게 건넸다. “여기, 선물.” “그림책이잖아요!” 해윤은 실망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멋진 선물을 기대했었는데, 그림책이라니 실망스러웠다. 단단한 표지에 보통 그림책보다 가로가 길었다. 주황색 뭉툭한 부리를 가진 새가 도깨비 같은 트롤의 어깨 위에 앉아있었다. “아이슬란드 새 퍼핀이란다.” “퍼핀? 펭귄을 닮았네요.” “그래, 알사탕과 그림책 덕분이지,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헷갈린단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고요?” 꿈을 꾸는 듯한 외삼촌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마치 무대에 선 배우 같았다. 외삼촌의 볼록 튀어나온 목울대가 무척 낯설었다.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잡고 오른손으로 턱을 감싸며 말했다. 내가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간다고 하니 조교 선생님이 말했지. “아쿠레이리에 가거든 카페 ‘파란 주전자&rs
작성일 2023-08-16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다혜 - 토롱토롱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토롱토롱 김다혜 하얀 입김이 눈 앞을 가린다. 길 위에 곤두선 살얼음이 버석거린다. 몸을 웅크려도 덜덜 부딪치는 이를 어쩔 수 없다. 싫어도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토롱토롱. 걸음을 멈추고 귓가에 맴도는 소리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시 토롱토롱. 반가운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멈추었던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실은 토롱토롱 소리에 교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시선을 멍하게 두고 정신을 코끝으로 집중시키면, 태양계 끝자락을 뒤로하고 외우주로 나아가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의 모습이 보인다. 지구의 메시지가 담긴 골든 레코드를 장착한 보이저 1호는 오늘도 초속 17km로 별과 별 사이를 가로지른다. “보이저 1호, 전방에 부딪힐 만한 건 없어?” 토롱토롱. “깨끗하다고? 좋아. 분광기에는 이상 없지?” 토롱토롱. 홀로 우주를 탐험하는 보이저 1호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안 봐도 뻔했다.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 2호와는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고, 더 이상 2호와 교신이 어려워진 1호가 같은 주파수를 지닌 생명체를 찾다 158AU나 떨어진 내게 닿은 것이 틀림없었다. 살얼음을 피해 걷다 보니 어느새 아파트단지에 들어섰다. 동 출입문 앞에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는 노르쉬 형이 보였다. “이제 와?” 작업복을 입지 않은 형의 모습은 언제 봐도 낯설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형은 아빠 공장에서 일했었다. 공장에는 형 말고도 다른 외국인 아저씨들이 많이 있었다. 노르쉬 형은 그중에서도 한국말을 유독 잘해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찬영아. 사장님 어디 있어? 집에 안 계시던데.” “몰라. 아빠가 찾아오지 말랬잖아.” “사장님 꼭 만나야 하는데 연락을 안 받으셔. 오늘도 돈 못 받으면 나 내일부터 길에서 자야 해.” 형은 정말로 지친 듯 보였다. 바깥에 오래 있었는지 까맣고 기다란 속눈썹에는 작은 얼음들이 맺혀 있었다. “나도 어디 있는지 몰라. 정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 보면 나 마주쳤다는 말은 하지 말고. 안 그러면 아빠 화낸단 말이야. 저번에도…….” 나는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노르쉬 형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핸드폰 있지? 사장님한테 전화해 보자, 지금.” “형이랑 같이 있는 거 들키면 큰일 나는데…….” “괜찮아. 내가 사장님한테 말할게.” 나는 하는 수 없이 노르쉬 형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형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더니 먼 곳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통화 대기음을 들었다. 나는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머리 위로 노르쉬 형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분을 삭이는 듯한 콧김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토롱토롱. 내 마음을 위로하듯
작성일 2023-03-31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두 친구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두 친구 장은영 1. 사진관에서 만난 사람 “저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히카다 선생님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윤서가 제대로 말했다. 조선인도 천황폐하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국신민서사」를 꼭 외워 오도록 한다. 알겠나?” “네.”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아이들에게 난 다르다는 것도 보여 주고 싶었다. 공부를 못하는 조선 아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싫었다. 일본 아이보다 더 일본인 같은 모범생이 되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미자네 집으로 왔다. 「황국신민서사」 외우는 걸 서로 봐주기로 했다. 나는 눈을 감고 「황국신민서사」를 외웠다. 미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틀리는 곳이 없는지 듣고 있었다. “짝짝짝!” 갑작스러운 박수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우리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아버지” 미자가 달려가 안기자 아저씨가 덥석 안았다.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았다. “미자 친구니? 잘하는구나.”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사랑채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다시 마루에 앉았다. 이번엔 미자 차례였는데 미자는 자꾸만 더듬거렸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들었다. “어휴, 왜 이렇게 안 외워지지?” 미자가 투덜거리며 일어나더니 변소에 갔다 온다고 했다. 미자가 집 안으로 사라진 사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크고 작은 돌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석탑 하나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석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득 아버지가 골동품을 모은다던 미자의 말이 떠올랐다. 정원을 벗어나 담 모퉁이를 돌아가니 사랑채 마루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하얗고, 푸른 그릇들을 들고 뭐라고 하는데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막 몸을 돌리는데 어떤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총독부의 고위 관리께서 초상화가를 찾아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혹시 주변에 아는 화가가 있습니까?” “글쎄요. 그런데 왜 총독부에서 초상화가를 찾지요?” “제 생각에는 관리들을 그려 총독부에 걸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초상화가를 물색해서 눈도장을 찍으면 여러 가지 이권에 개입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들 여기저기 손을 써서 찾아봅시다.” 나는 사람들이 맞장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안채 마루로 갔다. 주위를 둘러보던 미자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윤서야,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 “그랬구나. 어서 와 이거 먹어.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한
작성일 2022-10-14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토리숲의 보물창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토리숲의 보물창고 박그루 1. 숲속의 꼬마, 카쥬 토리숲의 아침이 밝았어. 얼기설기 얽힌 나뭇가지 사이로 내린 햇살에 카쥬가 눈을 떴지. 카쥬는 온몸에 갈색 털이 난 킨카주야. 얼굴은 너구리같이 동그랗고 눈동자는 흑진주처럼 까맣지. 카쥬가 몸을 길게 뻗치며 기지개를 켰어. “으하암! 캣은 일어났을까?” 카쥬는 바나나 나무를 쪼르르 타고 올랐지. 몸통만큼이나 긴 꼬리를 가볍게 휘두르면서 말이야. 졸졸 흐르는 개울을 폴짝 건넌 카쥬는 곧장 바위 언덕으로 향했어. 바위 언덕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로 가득해. 돌 바위 언덕 중간쯤에 호리병 모양의 동굴이 있고, 그곳에 미어캣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어. 동굴 앞 큰 바위 위에 미어캣 히만이 망을 보고 있었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사방을 살피던 히만이 외쳤어. “카쥬?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냐?” “안녕하세요, 히만 아저씨. 캣은 일어났어요?” “글쎄. 한번 들어가 보렴.” 카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속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어. 히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어. “쯧쯧, 매일 몰려다니기나 하고…….” 캣은 새끼 미어캣들 사이에서 쿨쿨 자고 있어.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입까지 헤벌린 채 말이야. “캣! 캣!” “으응. 누구야?” 캣이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떴어. “이힛!” 카쥬가 캣의 코앞까지 얼굴을 쑥 들이밀었고 캣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어. “으악!” “헤헷. 늦잠꾸러기에게 딱 맞는 선물이지?” “너, 깜짝 놀랐잖아!” 캣이 앞발을 휘두르며 벌떡 일어났어. 고요하던 동굴이 시끌벅적해졌고 새끼 미어캣들도 깨어 버렸어. 카쥬는 작은 귀를 쫑긋거리며 밖으로 후다닥 달아났지. 캣도 그 뒤를 바짝 쫓았어. “아침부터 무슨 난리들이냐?” 히만이 나무랐지만 카쥬와 캣에게는 들리지 않았어. 둘은 쫓고 쫓기며 신나게 바위 언덕을 누볐지. 짱짱 숲의 아침이 활기차게 열렸어. 카쥬에게는 엄마 아빠가 없어. 카쥬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떠났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가끔 외롭기는 했지만 카쥬는 괜찮다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니까. 그냥 지금 없을 뿐인 거지.’ 하지만 주위 몇몇 동물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나 봐. “어쩜, 새끼를 버리고 그렇게 가 버렸데?” “그러니까 말이야. 킨카주들은 원래 자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토끼들도, 새들도 수군수군했어. “카쥬는 너무 천방지축이야. 혼자 커서 그런가?” 어른 킨카주들은 걱정하듯 말했어. 모두들 서로의 생각만 얘기하느라 정작 카쥬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지. 카쥬는 커 갈수록 쑥덕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졌어. 또래 친구들이 바라
작성일 2022-10-21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최인정 - 치노 엄마와 나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치노 엄마와 나 최인정 “으아아아악!” 발바닥에 와닿는 기분 나쁜 축축함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되는 이 끔찍한 상황이 정말 싫다. 그러나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얘가 왜 자꾸 실수를 하나 모르겠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가.” 치노 엄마는 치노의 오줌을 닦으며 그렇게 중얼대는 게 전부였다. “동생이니 네가 이해해야지. 응?” “얘가 왜 내 동생이야?” 아빠의 넉살에 나는 반사적으로 발끈했다. “너는 열두 살, 치노는 세 살! 그러니까 동생이지. 그렇지, 치노야?” 아빠는 오줌싸개 치노를 끌어안으며 날 약 올린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어이없다. 아니, 배신감까지 든다. 아빠는 원래 털 달린 동물을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고, 아빠랑 함께 동물원에 가 본 적도 없다. 일곱 살 때 유치원 견학으로 동물원에 꼭 한 번 가 본 게 다였다. 그런데 아빠가 이토록 치노를 애지중지 싸고도는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처음엔 치노 엄마가 함께 살던 강아지를 데려온다는 사실이 눈곱만큼 좋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치노 때문에 이렇게 찬밥이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똥오줌으로 날 이렇게 기겁하게 만들 줄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래서 치노의 구불구불한 갈색 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유혹해도 난 끄떡 않는다. 여태껏 한 번도 치노를 안아 보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로 안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치노에게 딱 하나 고마운 게 있긴 했다. 억지로 함께 살게 된 아빠의 아내를 부를 만한 호칭이 애매했는데 다행히 치노가 있어 난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치노 엄마’라고 부르게 됐다. “우리 치노, 엄마가 맘마 줄게.” “우리 치노, 응가 했어요?”라며 치노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에 그만큼 딱 들어맞는 호칭은 없으니 말이다. 카푸치노를 좋아하는 치노 엄마 때문에 ‘치노’라는 이름을 갖게 된 녀석. 그런 치노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나는 가끔 휴지를 슬그머니 가져다주곤 했다. 언젠가 휴지를 뜯어먹고 있는 치노 모습에 기겁하는 치노 엄마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휴지는 치노가 제일 좋아하는 불량 식품인 동시에 치노 엄마가 아주 질색하는 것! 그러니 나는 치노를 위해, 동시에 치노 엄마를 위해 치노 앞에 휴지를 슬쩍 갖다줄 수밖에. 치노 엄마는 요즘 들어 부쩍 구석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다. 뭘 하는지 긴 시간 숨죽인 채 있다가 나오곤 했다. 책을 읽는 건가? 책은 거실 소파나 안방에서 읽어도 될 텐데……. 어떤 날은 지친 표정으로, 어떤 날은 조금 들뜬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도대체 뭐지? 수상한 냄새가 스멀스멀 솟아났다. 치노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살그머니 구석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탐정이 된 듯 매서운 눈초리로 방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최인정 - 파란만장 개, 살구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파란만장 개, 살구 최인정 “뭘 봐?” 녀석이 턱을 건방지게 치켜들고 이죽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이, 대답 안 해?” 녀석이 둔한 몸을 일으켜 슬슬 다가오는 듯했다. 단단히 텃세를 부려 볼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나는 대꾸 없이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갑자기 녀석이 사납게 내 몸 위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새파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심심하셔? 그래서 시비야? 낮잠이나 자라고!” 벌떡 몸을 일으켜 녀석을 내동댕이쳤다. 뚱보 녀석이 날 얕잡아 보게 놔둘 순 없다. “어쭈, 신고식 한번 제대로 해 볼까?” 녀석은 금방이라도 무슨 짓을 할 것처럼 등을 곧추세웠다. 그 순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산만 한 덩치의 오락 씨가 들어왔다. “옹주야! 아빠 왔다.” 기세등등하던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낭창하게 오락 씨에게로 달려갔다. 어울리지 않게 토끼처럼 깡충거리는 꼴이 어이없었다. 그동안 길에서 봐 온 고양이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빠 보고 싶었쪄? 배고프징? 얼른 맘마 줄게.” 오락 씨도 참 웃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혀 짧은 소리라니. 녀석은 밥 소리에 흥분해서 혀를 날름거렸다. 새파란 두 눈이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빛났다. “어이, 방랑자! 너도 밥 먹어.” 나를 보고 오락 씨가 그릇을 툭툭 치며 말했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선뜻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고양이 사료를 얻어먹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본체만체 녀석은 맛나게 쩝쩝 사료를 먹어 댔다. 저렇게 먹어 대니 뚱보가 됐지 싶었다. 어제저녁, 근처 길모퉁이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오락 씨와 마주쳤다. 오락 씨는 처음 본 나를 망설임 없이 끌어안았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꼬질꼬질한 나를 품에 안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에고, 찬비를 쫄딱 다 맞고! 감기 들겠네.” 오랜만에 사람 품에 안겨 본 나는 그 포근함에 울컥했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선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바로 저 옹주라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옹주 녀석도 나를 안고 들어오는 오락 씨를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온 나를 향해 못마땅한 기색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오락 씨는 몽글몽글 샴푸 거품을 내어 냄새나는 내 털을 깨끗이 씻겨 주었다. 얼마만의 목욕인지, 개운함이 오히려 낯설었다. 예전에 쓰던 샴푸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향이 꽤 괜찮았다. 오락 씨가 드라이어로 털을 말려 주자 나는 어느새 복슬복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뭉치고 눌린 털이 다시 살아나니 어깨가 저절로 쫙 펴졌다. “방랑자, 어쩌다 길을 잃고 떠돌고 있었냐? 너, 집이 싫어 가출한 거지? 아니면 못생겼다고 버림받았냐?” 가출이라니! 못생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오락 씨가 어이없었다. 알고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이라야 - 반구대에서 본 것
반구대에서 본 것 이라야 1. 15인승 버스가 몸을 세웠다.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주차장이었다. 이준이 형은 차에서 먼저 내려 뒤이어 내리는 고고학 동아리 친구들을 이곳의 주인인 양 맞았다. 서울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지라 못 잔 잠을 버스에서 보충한 회원들은 한결같이 비몽사몽이었다. 벌써 다 왔냐며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고 얼른 잠에서 깨고 싶어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터는 사람도 있었다. 이준이 형은 친구들 등을 두드려 주며 즐거운 기를 부추겼다. 나는 이곳 울주군 대곡리에 분명 처음 왔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다. 거부하고 싶은 온화한 바람과 한 걸음에 다가설 수 없는 산의 능선이 그랬다. 여린 새싹으로 돋아나 이제 제대로 된 형태를 잡아 가는 나뭇잎과 그것들을 키워 내는 나무, 울창해지려는 숲이 반갑게 살랑이고 있지만 익숙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주차장 바닥에 찍히는 내 발자국을 보았다. 블록이 깔린 바닥이고 화창한 날이라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힐 리 없지만 그래도 봐 줘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5월 5일. 전국의 어린이가 들뜨는 날, 반구대 암각화를 탐험한다는 고고학 동아리에 예기치 않게 얹혀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그러니까 중간고사가 끝나면 후련한 마음으로 늘어지고 싶었던 계획이 첫날부터 박살난 거다. 나 하나의 역사도 감당하기 힘든데 무슨 인류의 역사까지 알아야 한단 말인가. 역사란 모름지기 승리자의 기록이 아닌가. 패배자 아니 존재 자체가 잉여 인간인 나 같은 사람에게 역사란 가당치 않다. 내가 역사를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이유이다. 태생이 문과생이고 이해와 암기를 잘하는 나이지만 역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역사 시험은 무조건 찍는다. 다른 과목에 비해 형편없는 점수를 보고 담임과 역사 선생은 의아해한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되새기기 싫어요.” 선생들은 별난 놈이라며 혀를 찬다. 갈 수 있는 좋은 대학을 역사 때문에 못 간다며 으름장 놓는다. 안타까움이 한 방울이라 섞여 있다면 재고해 볼 가치가 있는 우려이지만 이건 자기 실적을 위한 단순한 협박이다. 그래서 나는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억지로 끌려온 투명체이다. 일단 고개를 끄덕였으니 자발적 동반인가. 이준이 형에게 메시지가 온 건 4월 초였다. 종례를 마친 담임이 교실을 나가는 찰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짝꿍이 일어나며 책상을 힘껏 밀어버리는 바람에 앞자리 의자가 덜컹하는 소리를 들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급. 5월 5일 시간 빼.’ 그날 저녁 야자를 마치고 온 형은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하면 고고학 동아리에서 현장 답사 가는데 인원이 한 명 모자란다. 기본 인원을 못 맞추면 지원이 안 되고 계획도 취소된다. 원래 자기 고등학교 학생만 되는데 특별히 같은 학교 재단에 소속 중학교 3학년인 나를 끼워 주기로 했다. 그래서 간신히 인원을 맞췄고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치 떨
작성일 2023-10-06 댓글수 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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