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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문학창작산실-
수필 조원희 - 어머니의 손어머니의 손 조원희 승전보를 알리는 아군의 깃발 같다. 고통도 잊어버린 손가락 끝마다 허연 반창고가 붙었다. 물밀 듯이 밀려온 고난과 시련도 모성애의 힘으로 거뜬하게 물리친다. 적군의 성벽 위에 필사적으로 오르는 아군의 함성처럼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감동의 소용돌이. 곱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너무도 곱고 아름다운 손이다. 볼수록 민망하고 안쓰럽다. 크고 두툼한 손이 손가락마저 굵다. 손등과 손바닥 살결이 오랜 가뭄에 지친 논바닥처럼 갈라져 노송(老松)의 껍질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랑을 만든 손가락 끝마다 피가 새어 나온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연 반창고로 갈라져 피가 새어 나오는 손가락 끝을 대충 땜질하고는 생활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다. 마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부러뜨리고 비장한 각오로 적진으로 달려가는 용감한 장수를 보는 듯하다. 갈퀴 같은 손이 장사(壯士)의 힘을 지녔다. 열 개의 손가락이 소나무 뿌리같이 꿈틀거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손임을 누구라도 알아채겠다. 분투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한 뼘의 손에 모였다. 감출 수도 없는 손. 도저히 여자의 손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하고 큼직한 손은 막일꾼 장정의 손보다 억세다. 희고 고와야 할 손은 아니더라도 부드럽게 가꾸어야 하는 게 여자의 손이건만 그런 손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가난한 어부의 아내였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은 약을 올리듯 늘어났다. 아버지가 생선을 잡아 오면 어머니는 동네 아낙 서넛과 함께 생선을 머리에 이고 새벽이든 밤중이든 가리지 않고 팔러 나갔다. 생선을 빨리 팔아야 했기에 세상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눌 겨를이 없었다. 버스와 시계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가난한 시골에는 버스도 시계를 가진 자도 드물었다.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걸어서, 고을고을 집집마다 다니며 생선을 팔았다.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해가 중천을 넘어서면 마을 어귀로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올 때까지 죽치고 기다렸다. 어둠살이 내려도 개의치 않았다. 여섯 살 터울 여동생을 등에 업고 생선을 보리쌀로 바꾸어 이고 올 어머니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여동생은 내 등에 오줌을 싸고도 따개비처럼 찰싹 붙어서 꼼짝을 안 했다. 뜨뜻한 오줌이 버젓이 등을 차지하면 등의 반기가 만만찮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중이 더 중요했기에 망부석이 되어 앙버티었다. 어머니가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기다림으로 지쳐 있던 얼굴이 제일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내게 개선장군보다 더 당당하고 위대해 보였던 어머니. 어쩌면 나는 어머니보다 든든하게 내 배를 채워 줄 보리쌀을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구수한 밥으로 부풀어진 배를 쓰다듬으면 하루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 뿌듯했다. 가난은 모성애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그토록 자식을 지키려 애를 썼건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아홉 살 터울 큰오빠는 중학교를 끝으로 머구릿배1) 선원이 되었다. 아직은 투정 부릴 나이에 눈물을 훔치며 험난한 바다로 나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작성일 2024-11-04 댓글수 7상세보기 -
수필 조현숙 - 「자반고등어」 외 1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자반고등어 조현숙 갈바람에 가랑잎들이 나무를 떠난다. 그 자리에 발덧 난 햇살이 내려앉는다. 늘비한 국수 난전에서 끓어오르는 육수 냄새가 시장통에 목을 매고 사는 삶들을 둥실한 온기로 채우고 있다. 여기쯤일까? 아들 혼사 때 입을 한복을 맞추러 나선 길에는 가을을 먹는 사람들, 가을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무릎에 염증을 달고 사는 남편이 시장 어귀 가로수 아래서 숨을 고른다. 힘차게 헤엄치던 푸른 바다의 시절을 저만치 밀어 놓고 누런 잎사귀들, 후두두 떨어지는 길에 우리 같이 서 있다. 노량으로 걸었어도 이만큼 오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발밑에서 낙엽들이 부스럭 몸을 일으킨다. 작은 새 떼들이 가랑잎 파들거리며 떠는 나뭇가지 안에서 소란스럽다. 나란히 걷던 남편이 나를 앞세운다. 와그작대는 시장통에서 행여 다른 이의 통로를 막을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걸 알기에 잰걸음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복집으로 올라가는 상가 계단 아래 생선 좌판이 보인다. 생뚱맞기도 하다. 그나마 자반고등어, 갈치, 반건조 가자미 등속으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좌판을 펼친 할머니는 단단한 앉음매가 세월을 부려 깔고 있는성싶게 강단져 보인다. “사 가소. 제자리 간이라 맛있네.” 내 시선을 느꼈을까. 할머니가 자반고등어를 가리키며 말한다. 잡은 자리에서 바로 소금으로 간을 치는 고등어를 제자리 간이라고 한단다. 하늘색 납작 바구니에 큰 고등어와 작은 고등어가 한 손이 되어 얌전하게 포개져 있다. 바다의 기억을 잃은 고등어 눈이 인공눈물을 달고 사는 남편의 눈과 닮아 있다. 볼일 보고 오는 길에 사겠다고 하자 할머니의 굵은 주름살이 웃음살로 바뀐다.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 위로 햇살 한 줌이 반짝거린다. 자반고등어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상가 계단을 오르는 나는 바닷물에 발을 내딛는 듯 기우뚱거린다. 남편이 재바르게 잡아 주면서 안과 좀 제때 가라고 구시렁거린다. 바다와 산간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나, 세상살이 짜고 쓴 소금을 만나 깃들고 길들이면서 이제는 말간 웃음으로 서로를 품어 줄 만큼 이력을 쌓았을까. 고등어잡이 배들이 바다를 가른다. 때를 가늠해 재빨리 둘러친 그물을 끌어 올려 벼리를 당기면 한바탕 와르르 쏟아지는 고등어들,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펄떡거린다. 함께 태평양 바다를 누볐던 눈부신 생들은 곧장 얼음창고로 던져졌다가 항구에 닿으면 등급이 매겨지고 흩어져 소금에 재워지거나 생물로 떠난다. 한 시절, 고등어는 바다를 본 적도 없고 바다로 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를 보여 주느라 떼 지어 산등성이를 넘기도 했다. 동해를 떠난 고등어 떼는 소달구지나 등짐에 실려 험준 산길, 구불구불한 수렛길을 넘어 뜸 마을 어디쯤에서 한밤을 지새웠다. 바다 떠난 서러운 달빛이 꾸덕꾸덕 마를 때쯤 간잽이들은 칼을 들어 고등어 배를 가르고 붉은 속살에 왕소금을 쳐서 빳빳하던 결기를 가라앉히고 꿈을 잠재웠다. 분기탱천한 푸름을 내려놓고 조금씩 바래는 법을 배웠다.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조현숙 - 포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포란 조현숙 병실의 밤은 누군가 불을 끄는 순간, 시작된다. 오늘을 파장하는 하늘에서 노을을 쓸어 담은 어둠이 물체와 공간을 한 보자기에 싸안는다. 복도를 구르던 불빛이 문틈 사이로 실뱀처럼 기어들어 온다. 빛을 따라 병상의 모서리들이 각을 풀고 보자기 밖으로 제 몸을 드러낸다. 엄마는 등에 꽂힌 관 때문에 뒤척이지도 못하고 불편한 채 잠들었다. 그래도 얕은 숨을 푸푸, 뱉어 내는 걸 보면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노령의 얇은 몸피로 힘든 수술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모두의 난제였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그 어깨는 기울어지고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고, 어둠이 세상을 덮어도 새날은 밝아 온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언제까지나?’라는 물음 앞에 두렵지 않을 자 있을까. 보호자 간이침대에 몸을 눕힌다. 여섯 개의 병상 아래로 여섯 개의 간이침대가 있다. 이 입원실에서 그걸 사용하는 보호자는 한 명을 빼고는 다 딸들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엄마를 모시고, 또 병을 알고 나서도 각종 검사를 하느라 수없이 병원을 드나드는 동안 알게 됐다.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딸이라는 걸. 어쩌면 지금 우리는 포란 중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건 내 몸 위에서 엄마의 숨소리가 새근거리기 때문이다. 병상 다리 아래 죽, 누워 있는 우리. 탯줄의 근원들을 이렇게 든든하게 품고 있지 않은가. 생명줄로 이어진 이들이 무사히 알을 깨고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어둠의 보자기에 단단하게 그리는 중이다. 갓난아기인 나를 품었을 젊은 엄마를 상상해 본다. 그때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빛나고 고왔을까. 아이는 걸어갈 길을 바라보고 노인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아기를 품을 때는 새 생명의 보드랍고 싱그러운 환희와 기대가 있지만 늙은 엄마를 보듬는 일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애잔함을 담고 있다. ‘얼마나 많은!’ 가능성에서‘얼마나 더?’라는 한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무엇을 모르고 사는 일이 더 많다면 그건 아직도 내 앞에 남은 시간이 많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병상 커튼 아래로 누워 있는 남자가 보인다. 대장암으로 입원한 옆자리 환자의 남편이다. 남자의 어두운 실루엣이 무섭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와 남자가 지척에서 바닥에 나란히 누운 이 상황이 웃기고 이상하다. 혹시 남자와 눈이 마주칠까 봐,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좁은 침상에서 모로 눕느라 깔린 어깨가 저릿하다. 밤이 되면 빛을 감지하는 눈은 흔들리지만 굴절된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법. 남자의 숨소리가 차가운 물방울이 되어 내 몸에 똑똑 떨어진다. 남자는 얼마나 더 이 시간을 수행할까. 나는 얼마나 더 이 아득한 시간을 또렷하게 느껴야 할까. 딸이 아니라서, 유일한 남자 보호자라서 그랬을까. 입원실에서 그의 행동거지는 도드라졌다. 아내를 고수련하는 양이 워낙 극진하고 떠들썩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섯 명의 딸들은 남자에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남상숙 - 「라오콘 군상」 외 1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라오콘 군상 『라오콘』-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남상숙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진실을 고백한다. 글로 쓰지 못할 이야기가 없듯 그림으로 그리거나 형태로 만들지 못할 대상도 없다. 자연물이나 상상의 산물이나 시공간에서는 모두 조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삶의 방식이며 유희라고 할 수 있으니 피조물은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공존한다. 욕구에서 비롯한 표현의 흔적은 문화를 이루면서 문명이 발달하였으니 인간사 사유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라오콘』 첫 페이지를 펼치자 라오콘과 두 아들이 팔뚝만 한, 두 마리 바다뱀에 칭칭 감긴 채 괴로워하는 ‘라오콘 군상’ 조각 사진이 나왔다. 트로이 왕자이며 아폴론 신관인 라오콘이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이 남긴 목마가 간계였음을 알아내어 신의 노여움을 사서 뱀의 공격을 받는 모습이다. 일그러진 표정과 온몸에 불끈 솟은 근육의 생동감을 점토로 만든다 해도 이렇게 섬세한 조형은 어려울 듯싶다. 이 책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의 예술이론서이며 문학비평서이다. 독일의 문학평론가인 그는 라오콘 조각 군상을 보고 『라오콘』을 저술했다. 부제가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인 이 책은 문헌에서 찾은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며 문학(시)과 미술(조각), 두 예술의 경계와 차이점을 근본적으로 규명했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에는 고대미술사에 권위 있는 빙켈만이 「회화와 조각에서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한 생각」에서 라오콘 군상 조각품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예술에서는 어느 분야보다 조각작품이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레싱은 그의 주장에 의구심이 들어 관련 서적을 탐구하면서 반박했으니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 견해를 주장하려면 그 분야에 관해 학문과 식견이 합당해야 한다. 나는 두 예술 분야의 논거에 관심이 가서 이 책이 흥미로웠다. 레싱은 미술이나 조각작품이 사물의 서사를 한순간만 표현한 것이므로 전체의 내용은 별도로 설명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했다. 문학은 글을 읽으면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만, 라오콘이 뱀에 감겨 온몸의 근육에 불거지도록 괴로워하기까지의 과정을 조각작품의 일별만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연합군과 벌인 십 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을 문학은 상세히 서술하고 느낌과 감정까지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술보다 문학이 위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공고히 하려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라오콘’ 시를 인용했다. “… 뱀들은 곧장 라오콘을 공격한다/먼저 가냘픈 그의 두 아들을 하나씩 칭칭 감고/이빨로 불행한 자들의 몸을 갈기갈기 물어뜯는다/아들을 돕기 위해 창을 들고 허겁지겁 달려오는/라오콘을 붙잡아서 거대한 똬리를 틀어 칭칭 감는다 …” 시 앞부분의 트로이 전쟁 서막도 실감 나고 바다뱀의 공격을 일부분만 서술해도 자연히 눈을 감게 된다.
작성일 2023-03-24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김순이 - 누수
누수 김순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집을 옮기고 두 해쯤 지났을 때였다. 언제부턴가 작은방 벽면과 천장 곳곳에 얼룩이 생기고 곰팡이가 자리 잡더니 퀴퀴한 냄새가 집안 전체를 사로잡았다. 관리소에 알아봤더니 아파트가 오래되어 외부 벽 이음새에 문제가 생겼거나 누수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윗집에 알렸더니 할머니는 자기 집은 이상이 없다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관리소에 외벽 수리를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수리 기간이 도래하지 않아 예산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불러 우리 집과 위층의 외벽을 수리하고 도배까지 마쳤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장마철이라 그런가 싶어 옥상 아래 두 개 층의 외벽 공사를 추가로 했다. 벽에 딸린 붙박이장과 벽을 세제로 청소하고 한 달 동안 말려서 다시 도배했지만, 곰팡이는 새로 피어올랐고 붙박이장에 가득 채워둔 옷마저 얼룩져서 다 버려야 했다. 관리소 직원은 천장으로 지나가는 수도 배관에서 냉온수가 지나갈 때 온도 차이로 생기는 결로라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수도 업체 사람을 불러와도 윗집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중 허리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집에서 요양할 때 곰팡이 냄새는 참기 힘든 적이었다. 안방 화장실 천장 안을 수도 없이 들여다보다가 윗집에 올라가 비용을 댈 테니 수리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안방 화장실은 사용한 적조차 없다며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이후엔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답답한 날들이 해를 넘겨 지나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누수 전문가를 불러와 안방 화장실과 작은방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마침내 화장실 천장과 맞닿은 벽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그래도 위층에서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할머니는 자리를 피하거나 안면을 바꾼 지 오래였다.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로 내용증명을 만들어 보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와 한바탕 큰소리가 났다. 소득 없이 또 몇 달이 지나고 두 번의 내용증명을 보낸 후에야 할아버지가 남편을 만나 집을 수리해 주기로 약속했다. 할머니가 완강히 반대해서 몰래 해 주는 것이라 했단다. 긴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건강을 추슬러야 했고, 내가 의지하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투병하다 혼수상태로 접어든 시기였다. 90년대 말, 어머니의 치매와 IMF 경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동생의 가정은 깨졌었다. 이후 십여 년을 혼자 살던 동생은 새 올케와 뒤늦게 인연을 맺었지만, 두 해도 살지 못하고 병원에서 두 달의 여명(餘命)을 선고받았다. 조카들을 위해서 동생은 내게 재산상속 일을 맡긴다는 사실을 유서로 남겼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중에 쓸 학비를 따로 준비한 통장과 인감도장 등을 큰조카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새 올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펄펄 뛰며 생사람 잡는다고 날을 세웠다. 몸도 불편한데 또 넘어야 할 산이었다. 두 조카가 살아갈 일이 걱정되었다. 어쩌지도 못하고 매일 불면의 밤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적적(寂寂)아, 꽃구경이나 하자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적적(寂寂)아, 꽃구경이나 하자 조여선 아랫집 1층에는 할머니가 혼자 세를 사신다. 나는 이사한 다음 날 떡 한 접시 들고 가서 첫 번째 이사 신고를 했다. 그 후로 오가며 잠깐씩 안부를 여쭈었더니 나를 보면 반가워하신다. 귀가 어두워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도 연세가 많아서 그러려니 한다. 구십이 넘은 친정어머니와도 통화할 때는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여름에는 땀이 나서 보청기를 빼 놓을 때가 많아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다. 집에서 통화하는 날은 앞집에 들릴까 봐 창문을 닫고 시작한다. 한참 동문서답하고 나면 목이 칼칼하다. 적당한 방법을 찾던 중 약수터나 시장 갈 때 산길 또는 들판에서 전화를 건다. 크게 불러 보고 싶던 차에 목청을 높여 ‘엄마?’ 하며 어리광을 부린다. 칠십 대 딸이 구십 대 엄마를 앞으로 몇 번이나 불러 볼까 싶어서이다. 단번에 알아듣고 ‘큰딸이야?’ 하는 그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다. 살아 계신다는 증명이기에 안심이 된다. 여기는 경기 북부라 봄이 늦게 도착했다. 앞집 할머니도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문을 반쯤 열어 놓았다. 아직은 바람이 찬데 벌써 열어 놨느냐고 하니까 인기척이라도 들으려고 그러셨단다. 겨우내 답답하고 적막하셨다는 뜻이다.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고령이라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기껏해야 현관 밖에 화단이 유일한 외출 장소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꽃구경하면서 지나가는 사람 보는 게 낙이라고 한다. 다행히 꽃밭에는 집주인이 심어 놓은 장미와 블루베리, 앵두나무가 있고 도라지, 팬지, 꽈리 등이 가을까지 연달아 피고 열매 맺어 할머니의 눈 벗이 되어 준다. 시간이 나서 놀러 갔다. 2층에 사는 주인아주머니도 와 있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얼 하느라고 얼굴 보기가 어렵냐고 하신다. 컴퓨터로 하는 게 있다고 하자 잘됐다는 표정으로 그거 내 방에 가지고 와서 같이 하자는 게 아닌가. 부업 한다는 거로 들으신 것 같다. 글도 쓰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카페에 올린다는 걸 설명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황하여 ‘예, 예, 알았어요.’ 얼버무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컴퓨터는 함부로 들고 다니면 안 되고 할머니는 모르는 기계라고 해 주어서 난처함을 면했다. 하지만 얼마나 심심하면 친구도 아닌 나에게 그러셨을까 싶어 노인들에게도 취미생활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같은 시간을 가지고도 한 분은 무료하게 보내고 친정어머니는 일거리를 찾아서 하는 편이다. 시할머니의 치매 바라지를 한 경험 때문에 몹쓸 망령과는 담을 쌓겠다는 결심이 대단하다. 모든 게 힘에 부친다고 하면서도 몸을 자주 움직여 부실한 건강을 유지한다. 게으름피우다가는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낮에도 누웠다가 금방 일어난다고 하신다. 친정 바깥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여름 한 철에는 갑자기 손님이 와도 해결할 정도로 파부터 풋고추, 상추, 아욱 등 골고루 있다. 그곳은 식구 중 어머니와 가장 잘 통하는 채
작성일 2022-10-14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유서연 - 「영생의 꿈: 길가메시 서사시」 외 1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영생의 꿈: 길가메시 서사시 유서연 ㅇ 1999년. 어린 시절 이 숫자는 언제 보아도 내게 서늘한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몇백 년 전 프랑스에서 살았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이름의 유명한 예언자는 1999년이 지구 종말의 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나 소년 잡지를 통해 접한 1999년 지구 멸망의 해는 그 종말에 알맞은, 9가 세 개나 겹쳐 있는 숫자만큼 내게 너무 아득하고 멀면서도 너무 가까워서 섬뜩했다. 그때까지 나는 살아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연애나 결혼은 해 보고 죽는 걸까? 아마도 가족, 친척을 포함해 인류 모두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니 혼자서 죽는 것보단 좀 덜 무서울 수도 있겠지. 한편으로는 나와 가족,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인 지구가 모두 날아가거나 폭파돼버리는 상상은 혼자 죽는 상상보다 더욱 끔찍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1999라는 년도를 생각할 때마다 그 무서운 숫자가 임박하지 않도록 시간이 거꾸로 흐르거나 아주 천천히 흐르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시간은 결코 역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늘 앞으로 앞으로 1999라는 숫자에 가깝게 전진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1999라는 숫자는 애써 억누른 무의식 속에서 항상 의식 안으로 솟구쳐 오를 수밖에 없던 중, 1999년은 오고야 말았다. 그해 여름 나는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파리의 한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이자 자칭 예언자인 파코 라반이 1999년 8월의 어느 날 미르 위성 정거장이 추락해 파리가 화염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이미 일가친척과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파리에서 철수시켜 지방으로 안전하게 피신한 후였다. 나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태생이 겁보였던 탓에, 파코 라반이 지정한 그 날짜에 어학원을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어학원 선생님도 8월 어느 날 오후에 파코 라반이 파리가 화염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언했다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그날 수업시간에 우리 교실도 화염에 휩싸일 텐데? 하며 지나가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언급을 했던 차였다. 나는 고민했다기보다는 공포에 질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위성이 떨어지건 말건, 파리가 화염에 휩싸이건 말건 간에, 시험 준비를 위해 어학원을 나가야 했으므로, 나는 바로 그 정해진 날 오후에 강의실에 새파랗게 질린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안심을 하긴 했지만 일말의 실망감도 있었던 것 같다. 파코 라반이고 노스트라다무스고 예언가들의 말은 믿을 수 없는 헛소리인가?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파리의 전철에서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고를 목격했다. 바로 1999년 지구 멸망을 예언해서 나와 여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초상화 이마에 변기 뚫기가 박혀 있는 사진이었다. 불경스럽고 질 낮은 유머. 어이, 노스트라다무스 선생.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 했는데, 지금 2000년이 됐어. 이거나 먹어, 라는 오만하고 조롱스러운 서구인의 어
작성일 2022-09-23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김순이 - 「그림자 소리」 외 1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그림자 소리 김순이 안개가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밤이다. 숲속을 잠식한 어둠이 창문 틈으로 쑥쑥 밀고 들어와 어느새 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는데 발밑으로 뭔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커다란 바퀴벌레다. 산 중턱의 도서관, 이 층에 있는 자료실은 삼백 평은 족히 넘어 보인다. 지금은 밤 아홉 시, 사람들은 여섯 시에 다 나갔다. 건너편 사무실도 오래전 불이 꺼져 캄캄한 복도엔 내 발소리만 건물을 울린다. 지난주에 미뤄둔 업무를 오늘은 모두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삐거덕 삐거덕….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반복되니 신경에 거슬린다. 분명 이용자들이 모두 나간 걸 확인했었다. 이 시간이면 건물 양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도 이 층에선 멈추지 않는다. 비상구 철문도 단단히 잠갔는데 누굴까? 자료실 전등을 구역마다 켜고 한 바퀴 돌았다. 아무도 없다. 지난번엔 누군가 숲 쪽으로 난 창문을 자꾸만 두들겼다. 무서워서 그냥 퇴근했는데 다음 날 보니 산비둘기가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어쩌다 야근하는 날이면 책이 빼곡히 실린 서가가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답답하다고 몸을 비트는지 탁, 탁, 널빤지 갈라지는 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오늘도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 귀 기울여 듣는 걸 알아챘나? 잠시 조용해졌다. 자판을 두드리며 컴퓨터 화면에 몰두하는 사이 잊었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삐거덕 삐거덕…. 나 말고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집에서 출퇴근하는데 그는 아예 상주하는가 보다. 조용할 때면 그는 불쑥불쑥 소리로 다가온다. 가끔은 붕- 하고 도서 검색용 컴퓨터가 절로 부팅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한낮에도 식별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로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나서 발원지를 찾아다녔다. 폭이 크지 않은 길고 가느다란 신호음이었다. 한참 만에 찾고 보니, 뜻밖에도 독서 중인 할아버지의 보청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늘은 그 소리가 아니다. 집에는 구매한 지 십 년 넘은 의자가 있다. 널찍하고 편해서 세 개나 샀는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통에 두 개는 일찌감치 갖다 버리고 한 개만 컴퓨터 앞에 두었다. 그런데 나사가 달아났는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의자는 집에 있는데 소리만 도서관에 왔을까? 혹시 대만 여행에서 본 유택(幽宅)에서 혼이 따라온 걸까. 스마트폰에 줄줄이 담아 온 무덤 사진 속에 끼어 왔다가 이곳에 자리를 틀었는지도 몰라. 이 생각을 하는 중에도 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희미하게 들릴 듯 말 듯 삐거덕 삐거덕…. 이곳에서 주말 근무하던 직원이 말했었다. 퇴근 시간 후 남아 일하다 이상한 느낌에 서둘러 집에 갔다고. 갑자기 덜컹, 하더니 바람이 쏴-하고 들어온다. 머리털이 곤두선다. 돌아보니 숲 쪽으로 난 창문이 열려 있다. 살금살금 다가가 쾅, 하고 닫았다. 강심장이라고 자부했는데 오늘은 왠지 불안하
작성일 2023-04-07 댓글수 1상세보기 -
수필 민혜 - 「그날이 오면」 외 1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그날이 오면 민혜 난만한 봄 햇살 속에서 한 유명 연예인의 기사를 읽는다. 계절과 대척되는 죽음에 대한 사연이다. 그는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뒤 스위스에서 지내며 안락사로 마감하길 바라고 있다. 세기의 여심을 흔들었던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 얘기다. 알랭은 평소 안락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특정 나이나 시점부터는 인간이 생명 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마음 정한 그날이 오면 그는 소망대로 스위스에서 생을 마치게 될 것 같다. 내가 안락사란 말을 처음 꺼낸 건 생명이 짙푸르던 시절이었다. 의대생인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죽음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날 나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가 고통이 극심하여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때, 그리고 자신이 가족들의 짐이 되어 삶을 지탱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안락사를 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친구는 대번에 내 말을 잘랐다. 독실한 크리스천인지라 인간이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의 모든 고통 역시 신의 뜻이므로 감내해야 한다는 거였다. 더 이상 논쟁을 하기가 싫어 그 정도로 일단락을 지었다. 앞일은 알 수 없어도 우린 청춘이었고 죽음이란 저 멀리 있는 추상적 느낌이 더 지배적인 때였다. 죽음 문제에 대해 나는 조숙했던 편이었다. 중학생 시절, 의대생이던 이종사촌 오빠 방에서 봤던 해골의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오빠가 자기 방에 가보라기에 무심히 창호 미닫이를 열었더니 해골이 나를 보고 웃고(해골은 간혹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있었다. 살점이 사라지고 안구가 빠져 버린 섬뜩한 흉상 앞에서 처음엔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이내 말랑거리는 내 살 속에 저런 해골이 내장되어 있음을, 저 형상이 내 미래의 모습임을 깊게 새겼다. 때문인가 삼십 대 이후부턴 여행을 떠날 때면 혹시 모를 유고를 대비해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언장을 써 놓기도 했었다. 세월은 흐르고 황혼기에 이르러 남편의 죽음을 맞았다. 남편은 말기 위암으로 사망하기 전 20여 일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지냈다. 입원 당시 의사는 남은 생존을 3개월로 예단했다. 하지만 입원 20일 만에 심정지가 발생했고 수순대로 심폐소생술을 마친 후 인공호흡기를 장착시켜 놓았다. 이런 의식불명이 몇 달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몰라 나는 몹시 애를 태웠다. 퇴원하여 가족 품에서 임종을 맞게 해 주고 싶었으나 그게 불가능했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자 남편의 몸에선 욕창의 증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눴던 옛이야기가 절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생명 유지를 하는 게 과연 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생각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저 입장이 된다면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겠다고. 미리 그런 조치를 해 두겠다고. 그건 자살이 아닌 최소한의 품격 있는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데 알아보니 그것도 불법이라는 거였다. 그래도 천동설의 철벽을 지동설이 깨뜨린 것처럼 언
작성일 2022-09-09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홍정미 - 볕뉘볕뉘 홍정미 모다기로 쏟아졌다. 여우비가 드날던 팔월 한 날이다. 편백 숲 산책길에서 빛의 무늬를 마주쳤다. 엿가락처럼 길게 뻗은 노송 우듬지, 그 틈새로 내리치는 햇살은 하늘과 땅을 잇는 빛기둥을 만들었다. 생생히 눈에 들어오는 빛 입자는 먼지, 수증기와 버무려져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이내 빛의 산란은 숲 탄생 비밀을 들킨 양, 주섬주섬 꼬리를 거뒀다. ‘볕뉘’는 작은 틈새로 잠시 비치는 햇볕을 말한다. 벌어진 공간을 통해 어둠을 삼키는 빛이다.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대상을 통해서만 보인다. 그늘 속에 있으나 빛을 증거하는 한 현상이며, 빛을 품은 모든 존재가 건너오는 길이다. 볕뉘는 늘 있지만 갑자기 온다. 삶이 그렇듯, 경계 없이 느슨한 일상에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눈을 붙든다. 다람쥐 노는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다닥다닥 맞닿은 지붕 사이에서, 지하 단칸방 작은 창틈에서 만난다. 민들레 움트는 깨진 보도블록과, 길 잃은 누군가를 향한 손길에서. 어둡고 좁아도 기어이 도착하는 관심이다. 어린 날 고향집 마을 복판에는 방앗간이 있었다. 가을볕이 기우는 날에는 종일 탈곡 소리가 요란했다. 철커덕거리며 우악스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는, 마을 조무래기들에게 무서우면서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용기를 내어 탈곡하는 아빠를 따라갔다. 방앗간에 들어섰다. 바닥이 흔들릴 듯 쿵쾅대는 기계 소리는 열 살 먹은 시골뜨기를 압도했다. 나는 소마소마하며 주춤했다. 까딱하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가분가분 걷는 참새는 낟알 고르느라 경쾌했다. 벨트로 연결된 기계는 뱅글뱅글 돌고, 실내는 왕겨 먼지로 가득했다. 낮은 조도의 전구는 먼지를 쓴 채 맥을 못 추고 졸았다. 허술한 양철지붕 틈 사이로 새어 드는 햇빛이 더 환했다. 빛기둥은 어둠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점점 하얘지는 나락을 따라서, 바삐 움직이는 아빠와 정미소집 아저씨가 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쌀이 나온단 말인가?’ 비현실적인 공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흐릿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무틀로 엮인 높다란 천장 쪽에서, 희번덕이며 미끄럼 타듯 쏟아지는 쌀이 보였다. 그 기계 끝 지점에서는, 먼지 덮인 모자를 쓴 아빠가 쌀알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바람 같은 영혼이었던 내 할아버지, 그 자유로움에 치어 홀로 서야 했던 아빠는, 자신을 담금질하는 일만이 살 길이라 믿었다. 서너 살에 친어머니를 잃고 여러 새어머니를 전전하느라, 모태의 평안을 모르고 컸다. 물 찬 배를 쓰다듬으며 치열한 생활력으로 둥지를 보듬었다.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는 일이 자신에게는 자유지만, 식솔을 책임지는 이에게는 직무 유기임을, 어린 나이에 이미 알아서였을까. 믿는 건 땅에 뿌린 씨앗뿐이라고 되새김하였으리라. 그렇게 부엉이 곳간 부리듯 곡식을 거뒀다. 체화돼버린 완고함은 아빠에게는 수문장이었지만, 내 엄마에게는 벽이었다. 생존 때문에 쌓았던 아빠의 성벽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요새가 되었다. 그 성
작성일 2024-08-19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낙원구 행복동」외 1편
낙원구 행복동 권민정 조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에 걸린 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가 꿈꾸던 세상.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고,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고, 사랑으로 일하는,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세상을 그리며 눈을 감았을 것 같다. 그가 쓴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00쇄를 찍었던 해, 그는 “한 작품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기쁨이지만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320쇄를 돌파하고 누적 발행부수가 150만 부에 이르는 현재의 사태를 본다면 그는 뭐라고 말을 할까? 나는 2008년에 발행된 106쇄 소설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작소설 12편 중 네 번째 발표된 작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처음 읽은 것은 1976년 겨울이다. 한 문예지에 발표된 그 소설을 읽으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는 일 년 전에 내가 직접 겪고 경험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난쏘공’ 이야기 속, 바로 그때 현장에 있었다. 그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던 어린이집 교사를 했었고, 철거가 시작된 후에는 지역조사 담당직원으로 일했다. 청계천 판자촌은 하천을 따라 수만 채의 판잣집들이 들어서 있던 동네였는데 한양대학교 뒤편, 송정동 지역 판자촌이 1975년 6월부터 먼저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주민들은 정말 갈 곳이 없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난장이네 집이 있는 곳은 낙원구 행복동이다. 그 집은 방죽가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이지만 좁은 마당도 있고, 그 마당에는 팬지꽃이 핀 꽃밭도 있다. 집을 지을 때 난장이와 그의 아내는 도랑에서 돌을 져 와서 그것으로 계단을 만들고 벽에는 시멘트를 쳤다. 세 명의 아이들이 그 집에서 자라났고, 방 한 칸은 세를 주었다. 선거 때가 되면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떼를 지어 동네를 돌며 동네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개천에는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동네 집들은 양성화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동네에 무허가 건물 철거 명령이 떨어졌다. 아파트 입주 권리가 주어졌다. 분양아파트는 50만 원, 임대아파트는 30만 원만 내면 된다. 시에서 주는 이주 보조금은 15만 원이다. 임대아파트의 경우 15만 원만 더 있으면 아파트 주인이 된다. 그러나 난장이네는 이주 보조금 15만 원을 받으면 세든 사람에게 그 돈을 내주어야 한다. 15만 원에 세를 놨으니까. 오롯이 30만 원이 있어야 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갈 수 있다.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주민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난장이네 가족 5명도 모두 열심히 일을 하
작성일 2023-10-06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류예지 - 「우아하지는 않아도 비굴하지는 않게_언덕배기 신혼집」외 1편
우아하지는 않아도 비굴하지는 않게_언덕배기 신혼집 류예지 부모님이 결혼식을 앞두고 살림살이가 들어간 서울 신혼집에 처음으로 다녀간 날이었다. 빠듯한 예산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장만한 육인용 원목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남자친구와 나 그리고 부모님은 진짜 ‘가족’처럼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 분은 신혼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당시 신혼집에는 밥다운 밥을 해먹을 만큼 세간이 넉넉히 구비되지 않았기에, 결혼 전 한 끼라도 손수 해먹이겠다며 부득불 나를 데리고 남동생 집으로 건너온 터였다. 육인용 테이블에 앉아 수납공간이 넉넉한 양문형 냉장고와 50인치가 넘는 텔레비전에 대해 곧잘 떠들던 엄마는 남동생 집에 오자마자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신혼집에서조차 꽁꽁 둘러맸던 머플러를 그제야 끄르던 엄마의 얼굴이 시꺼먼 바윗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제멋대로 살던 딸이 결혼하는 마당에 속 시원하다고 만세 삼창 불러도 모자랄 판에.” 별 뜻 없이 던진 농담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심상한 마음인 건 매한가지였으므로, 평소 하던 대로 농담 몇 번 주고받고 해묵은 감정을 희석시킬 요량이었다. “거기서 우찌 살래?” ‘너’라는 주어와 ‘삶’이라는 목적어가 뭉텅 생략된 질문, 수신인이 누구였더라도 흘려듣기 어려운 묵직한 문장이었다. 지렛대도 없이 커다란 바위를 제 가슴 속에서 끌어내 딸 앞에 냅다 던져버린 엄마를 원망할 틈도 없었다. 엄마의 눈은 정처 없는 짐승 마냥 붉었고, 금세라도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굴 것 같았기에. 문득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수없이 엄마를 납득시켜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PT 준비하기만도 빡빡하고 벅찬데, 내부에서 가장 깐깐하기로 소문난 상사가 시시때때로 수정사항을 들이밀고 결제 받으라는 기분이었다. ‘알아서 할게’라는 기관 단총의 총알은 진작 떨어진 지 오래였다. 총알이 남아 그 남은 총알로 우다다다 쏘아댄들 쏘는 자의 마음도, 쏜 총에 맞는 자의 가슴도 편할 리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턱 하니 말문을 막은 감정이 엄마를 향한 까마득한 서운함이 아닌 선명한 이해임을 깨달았을 때의 난감함이란···, 그러고 보니 평수는 작지만 신혼집의 방이 무려 세 개나 된다는 사실을 신나게 떠들어댔을 때, 돌연 안방 침대 커버의 색깔이 너무 어둡지 않느냐고 되묻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남자친구가 이 집은 바닥 장판이 갈색 계통이라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고 했을 때 아빠는 ‘그런 것 같다’며 되받았지만 엄마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거실 창 밖, 전신주에서 삐져나온 전깃줄과 통신선이 허공에 너저분하게 드리워진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을 따름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작은 방 창가로 데려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우리가 이 언덕배기 빌라를 첫 번째 집으로 선택하게 된, 탁 트인 동네 전경을 남김없이 자랑하고 싶어
작성일 2023-09-06 댓글수 3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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