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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이 아저씨

  • 작성자 금안백
  • 작성일 2024-02-26
  • 조회수 312

나는 임용고시에 도전한 첫해에선 낙방했다대학을 좋은 데에 나오고 하여 공부에는 썩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예상외로 난관이었다절치부심한 나는 집을 나와 고시원으로 향했다아예 시내가 먼 서울 변두리 지역의 고시원을 골랐고스마트폰도 없앴다.

 내가 이사한 고시원은 건물이 낡고 방도 좁았지만방값은 다른 데보다 반이나 저렴했다애초에 그쪽 지역은 개발이 덜 된 곳이었다.

 이사하고 첫날나는 하루치 공부를 다 하고 쉬고 있었다무엇이든 과하면 못쓴다고 공부 역시 하루 분량을 정해 그것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게끔만 했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는데 갑자기 방 밖이 소란해지는 듯했다뭔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살펴보니 건설직 노동자 여럿이 퇴근한 모양이었다.

 ‘자기들이 이곳 전세라도 냈나딴 사람들도 있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가서 따지려고 했지만 이내 참았다서울 변방의 작은 고시원에서 굳이 몇 안 되는 이웃들과 안 좋게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보아하니 다들 이곳의 주민들인 것 같았다회식을 하고 싶었으면 고깃집에 가지 고시원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곧 있으면 잠잠해지겠거니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그러나 잠잠해지기는커녕 소란했던 소리가 아예 요란해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다시 살펴보려 문을 반쯤 열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 소주병을 여러 개 들고 공용 주방으로 가는 장면이었다아무래도 이분들은 회식을 고깃집이 아닌 고시원에서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편하게 침대서 쉬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차라리 그들과 친해지진 못해도 낯이라도 익힐 겸 나가서 인사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나는 이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섣부른 결정을 후회했다.

 잠깐만 나가서 인사만 하고 가려 했지만 그만 그들이 날 멋대로 앉혀 버리고 술까지 권하는 탓에 십 분이십 분으로 늘어져 버렸다앞선 십 분 동안은 괜찮았지만 내가 고시에서 떨어진 것을 말하니 인생 충고랍시고 자기들만의 철학과 경험을 마구 설파하는데 차라리 질 낮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나온 게 후회스럽고 지루해 죽을 판이던 중에 그들 중 최연장자였던 남자가 난데없이 내게

 “널 보니까 꼭 아들 생각이 나네

했는데 나는 그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은 일절 나지 않았다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진 점잖은 분이셨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으니그들은 노름할 채비를 했다식탁이 비워지고 유난히 얼굴이 눌린 듯한 남자가 부직포를 꺼내왔다.

 “잠깐만땡이는 오고 시작해야지.”

 판은 다 깔렸는데 갑자기 최연장자인 남자가 말했다그런데 다들 그 말에

 “땡이는 와야지.”

하며 순순히 기다리는 것이었다나는 그 땡이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물었다그들이 대답하길 그 땡이란 작자는 자기들과 같은 노가다패는 아니지만 어쨌건 이 고시원에 묵는 이웃인데 섰다를 칠 때 유독 땡이 기막히게 잘 나와서 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십 분이 더 지난 후 그 땡이란 사람이 왔다.

 “땡이 아저씨 흥 다 식겄어요.”

 그에게 농담조의 야유가 보내지는데한 사람 말고는 다들 그를 땡이 아저씨라고 불렀으니 자연스레 나는 그가 그네들 사이에서 두 번째로 연장자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땡이 아저씨는 곧 1월임에도 후줄근한 얇은 외투를 걸치고 들어왔다차분한 인상을 지닌 얼굴은 수척하고 어두운 것이 고생 꽤 한 듯했다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는 들어오고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때에도 전혀 웃지를 않고

 “죄송해요뒷정리하는 게 좀 늦어졌네요.”

하는데 어째 그네들과 친한 것 같지 않았다.

 땡이 아저씨가 앉고서 노름은 시작됐다나는 규칙을 모른다는 핑계로 구경만 했다그들은 역시나 섰다를 했는데 복잡한 고스톱과는 달리 단순한 규칙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그마저도 규칙을 더 간단하게 변형시켰다참가자들은 마음대로가 아닌 일정량 정해진 만큼의 판돈을 놓았고 쿼터나 하프 따위는 없었다또한 오직 단판제에 다이도 없어서 말 그대로 처음 패를 받고 베팅을 한 후 모두의 패를 한꺼번에 공개해 가장 좋은 조합을 가진 사람이 이기는 심리 싸움이랄 것도 없는 실로 저급한 규칙이었다.

 어쨌건 노름판을 구경하는데 정말 땡이 아저씨한테 땡이 잘 나오긴 했다광땡도 한번 나왔었다규칙도 규칙이고 여기선 구사도 땡잡이도 없어 땡만 나오면 거의 무조건 이길 수 있었다그래서 땡이 아저씨는 벌써 여섯 판 중 세 판을 이겼다.

 나는 혹시 수작이라도 부리나 하고 땡이 아저씨를 유심히 살폈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첨 보는 얼굴인데누구 친척이야?”

 아저씨의 물음에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이 알아서 날 소개해 주었다.

 “오늘 이사 온 얜데임용고시 준비한다고 했나?”

 “암튼 선생 되고 싶으시대.”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런데 내 소개를 듣자 갑자기 날 보는 그의 눈이 달라진 듯했다그의 눈은 아까까지와는 다르게 빛이 나는 듯했다.

 

 이튿날 저녁 나는 할 일을 다 끝내고 쉬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귀찮아서 나가는 걸 좀 지체했더니 그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지고 다급해지는 듯했다.

 “나가요.”

 퉁명스레 외치고 문을 여니 난데없이 땡이 아저씨가 있었다그는 잠깐 뭣 좀 얘기해도 되냐고 물었다나는

 “지금은 공부하느라 바빠서요죄송해요.”

하고는 문을 닫았다하지만 땡이 아저씨는 계속 찾아왔다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다음 날도그렇게 나흘을 찾아왔으니 난 내심 미안한 맘이 들기도 해서 얘기는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고시원 방은 침대와 책상을 놓으면 한 사람 바닥에 앉기가 버거워 나는 의자에 앉고 아저씨는 침대에 앉게 했다나는 할 얘기가 뭐냐고 작게 물었다고시원은 방음이 전혀 안 되었다.

 “그게이 나이 먹고 부끄럽긴 한데.”

 그도 작게 머뭇거리었다내가 편하게 말씀하시라고 하니 그가 조심스럽게 한마디씩 말을 이었다.

 “전에 네가 선생이 되고 싶다고 했지?”

 그의 눈은 날 바라보지 못했다.

 “맞아요.”

 “그러니깐 나한테 공부 좀 가르켜 줬으면 해서

 나는 그 천만뜻밖의 말에 뭔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내가 계속 벙찌어 있어 그는 무안했는지

 “아유내가 바쁜 애한테 무슨 말을

 그리고는

 “신경 쓰지 마라

하고는 자리를 피하려는데 나는 그렇게 그를 보내기가 몹시 미안스러웠다나는 일단 그를 도로 앉히고는 갑자기 과외를 부탁한 이유를 물어봤다그는

 “좀 지루할 텐데

하고는 얘기하는데 들어보니 고등학교 졸업을 못 해 검정고시를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나는 왜 고등학교를 졸업 못 했는지 물었다이놈의 입이 방정이었다아저씨는 그것을 설명하려 자신의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어머니가 어쩌구차남이라 저쩌구자기도 진학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형만을 고등학교에 보냈다는 말을 두어 번 하더니 감정이 복받쳤는지 급기야

 “아이고어머니

하며 통곡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난감했다하지만 이 상황에서 거절하는 것도 여간 어렵지 않았고배우고 싶다는 애절한 부탁에 매몰차게 구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다주위에 학원이나 지원 기관도 없던 터라 거절하면 그의 꿈은 이뤄지기 어려울 성싶었다그리고 들어보니 중학교까진 나온 듯하니나는 마지못해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미리 수업 연습하는 걸로 치지 뭐어차피 여섯 시 이후론 할 것도 없으니.’

 

 땡이 아저씨를 가르치는 일은 의외로 순탄했다특히 국어사회국사는 한 번만 가르쳐도 암기와 이해가 빨랐다그 밖에 수학이 제일로 걱정이었는데 예상외로 잘 따라와 주어 놀랐다그래서 내가 한번은 이렇게 물었다.

 “혹시 따로 배우신 적 있으세요인수분해도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시고.”

 내 물음에 그는 뿌듯하면서도 쑥스러운 듯 웃으며

 “옛날에 형님 방에 들어가서 몰래몰래 교과서를 훔쳐본 것이 도움 될 날도 오는구먼.”

 다만 영어는 문법을 처음 5형식부터 익히게 해야 하는지라 조금 애먹을 것 같았다그러나 영어에서도 놀랄만한 점이 있다면 적어도 기본적인 어휘만큼은 나름 돼 있었다는 것이었다이것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그가 대답하기를 간혹 새로운 영어 단어를 알게 되면 노트에 적어 외웠다는 것이다그는 내게 그 노트를 보여주기도 했다여러 단어가 정리 없이 뜻과 발음이 나열되어 있었다나는 그 노력에 감탄했다이런 간단한 단어마저도 외우지 않는 사람을 이제껏 여럿 보았는데.

 땡이 아저씨는 말하자면 일용직 근로자라 그는 쉬는 날이나 퇴근한 후에야 공부할 수 있었다그마저도 그는 퇴근한 후에도 자주 회식과 노름에 참여하는 터라 공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공부 시간 때엔 정말 열심히 했지만 검정고시 준비가 1년이면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인지라 나는 어느 봄날에 영어 문법을 가르치고 쉬던 와중 아저씨께 더 이상 저분들과 술 먹고 화투 치는 것은 줄이시라고 간곡히 권하였건만 그는

 “나도 줄이고는 싶지그런데 조 씨네 라인이 아니면 일을 못 배우니 원.”

하는데 그 최연장자를 조 씨라고 부르는가 보았다아무튼 나는 그 대답이 이해가 안 가서

 “일 배우는 거랑 술 먹고 화투 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러자 땡이 아저씨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양반과 섰다 쳐주는 대신에 일 배우는 걸로 얘기했거든노가다꾼들은 일 같은 거 잘 안 가르켜 줘이 정도면 감지덕지하지.”

 그래도 나는 도저히 그 속뜻이 이해가 안 되어

 “아아니더욱 이해가 안 되잖아요그분은 무슨 이득으로 그런 거래를 한 거래요?”

라고 물었다그런데 그 대답은 몹시 조심스러운 것이었던지라 그는 문을 열고 혹여 엿듣는 이가 없나 살피고는 평시보다도 더 작은 소리로

 “절대 딴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

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넌 내가 그네들과 치는 걸 봤으니깐 내가 유난하게 땡이 잘 나온다는 걸 알고 있지?”

 “알고 있죠.”

 “그게 실은 내가 운수가 타고나서 잘 나오는 게 아니고 다 수작질을 한 거거든너는 룰을 모르니 알지 못하겠지만 섰다는 수작질하기가 딱 좋아.”

 그 말에 나는 전에 한번 섰다를 치는 그의 손을 유심히 봤던 적이 있었으니 자연스레 의아심이 들었다그때 그에게선 수작은커녕 그런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두 번이면 몰라도 계속하다 보면 그런 건 들키기 시간문제일 텐데.”

 내가 말을 은근하게 흘리니 그는

 “내가 직접 하진 않아손은 조 씨가 놀리지

하였다그리고 이어 말하길 이건 그 조 씨 생각으로 그가 말하기를 수작질로 한 사람이 너무 자주 이기면 쉽게 걸리기 십상인데그 이유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 한 사람을 예의주시하게 돼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날 노름판에 끌어들인 거지자기는 밑장이라도 빼서 땡을 숨겨두고 패를 나눌 때 내게 주는 방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거야.”

 물론 노골적이지 않게 열 판 중 네 판에서 다섯 판 정도만을 이기게 했다설령 의심받을지라도 수작을 부린 사람과 이기는 사람이 다르니 사실을 모르면 잡기가 어려웠다잡히더라도 조 씨 쪽에서 꼬리를 자를 수도 있었다그리고 그런 식으로 아저씨가 따낸 돈은 얼마 안 가 조 씨한테 가져다 바쳐진다는 것이었다.

 땡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얻는데 도무지 수작을 부린다는 정황도 없으니 모르는 이는 그저 운이라고 여길 수밖에그렇게 땡이 아저씨란 별명이 생긴 것이었다.

 실토를 끝낸 그의 낯빛은 어두운 눈치였다나는 노름판으로 가지 말라고 더 권할 수 없었다더 이상 그러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거리도 조 씨가 주선해 주는데 혹시나 그만뒀다가 현장에 조 씨가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내면.”

 아저씨가 덧붙인 말이 내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나는 아저씨의 부탁으로 그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단 사실을 굳이 떠벌리진 않았다중졸인 게 퍼져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였다그래서 나는 방에서 과외를 해줄 때도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하지만 그렇게 조심해도 고시원 건물에 방음 시공이 전혀 안 되어 있어 아래층 소리도 타고 올라올 정도라 결국 여름에 이르러선 땡이 아저씨가 검정고시를 본다는 소문이 고시원에 퍼져 버렸다그리고 그걸 내가 돕더란 말도 같이 퍼졌다.

 얼마 안 가서 조 씨가 날 따로 자기 방으로 불렀다그리고 그가 내게 말하기를

 “땡이가 고등학교에 미련이 많아서 괜히 그러는 거다너도 솔직히 귀찮을 텐데 나랑 같이 잘 타일러서 정신 차리게 하자.”

 그 말에 나는 땡이 아저씨를 변호할 생각으로

 “아뇨귀찮긴요의외로 기본도 출중하시고 진도도 잘 따라와 주셔서 오히려 가르치는 제가 뿌듯하기도 한데요.”

 “아이고그러면 뭐 해잘해서 붙어봤자 고작 중졸에서 고졸 되는 건데요즘은 고졸이나 중졸이나 대학 안 나왔으면 거기서 거기잖어.”

 나는 그 미련한 얘기에 괜스레 감정이 욱하였다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땡이 아저씨가 돈 때문에 고시를 보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땡이 아저씨는.”

하고 내가 열변을 토하려던 참이었다갑자기 조 씨가 에헤이하고 소리를 내었다나는 그것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이윽고 전에 들었던 조 씨와 아저씨의 관계가 떠올랐다내가 여기서 조 씨 기분을 상하게 하면 땡이 아저씨가 무슨 화라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나는 열변하려는 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대신 다른 묘책을 썼다.

 “그래도 이미 원서는 냈고 이제까지 공부한 것도 있으니시험 한번은 치르도록 해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조 씨는 그것마저 반대할 수는 없어 혀를 한 번 차고는 날 물러가게 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혹여 조 씨가 아저씨한테도 비슷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됐다시험을 앞두고 정신이 어지러우면 결코 좋지는 못하다그러나 일은 내 걱정대로 흘러갔다.

 

 칠월 초 고시가 한 달 남았을 때였다이번엔 땡이 아저씨가 밖에서 보자고 불러내었다우리는 고시원 근처 만둣집으로 향했다.

 우린 물만두와 소주를 시켰다소주 두 병이 먼저 나왔다그런데 아직 물만두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는 밑반찬으로 나온 단무지를 안주 삼아 연신 술잔을 들이키는 것이었다나는 뭔 일이 있었구나 싶어 불안한 마음이었다결국 물만두가 나왔을 때 아저씨의 코는 이미 빨개진 후였다.

 나도 제정신이긴 하지만 기분은 알딸딸해지고 아저씨는 이미 만취하셨을 때 나는 조심스레 뭔 일 있으셨냐고 물었다아저씨는 눈과 혀가 꼬인 채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냐어떻게 하면 좋겠냐?”

하며 묻는데 나도 발음이 뭉개질 듯 말 듯 하며

 “아이고우리 땡이 아저씨 조 씨한테 한 소리 들으셨구나.”

 나는 그나마 남은 정신으로 땡이 아저씨를 등에 업고 고시원으로 걸음을 옮겼다아저씨의 몸은 깃털같이 가벼웠다.

 “그거 뭐 붙어도 달라질 거 없다아들뻘한테 더는 귀찮게 굴지 마라.”

 그는 걸음은 못 걸어도 입은 살아있었다. 그가 오늘 조 씨한테서 들은 말인 것 같다.

 “내가 너 귀찮게 했던 거냐?”

 “아유아니에요귀찮긴 무슨

 “그놈 말대로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아이고그런 말 마세요이제껏 가르친 저는 뭐가 돼요.”

 그날 밤은 어두웠다달도 구름에 가려졌었다그런데 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나와 있었다그래서 그날 밤하늘에는 그 별만이 홀로 빛났다나는 가로등에 의지한 채 고시원으로 걸었다.

 

 그 후 한 달 동안은 수학만 진도를 나가고 남는 시간엔 한국사를 위주로 복습을 시켰다그런 동안에도 방음이 안 되는 방에서

 “땡이가 그 테레비에 나오는 검정고시 보시는 할머니들 있잖어그런 거 보고 눈이 아주 돌아버린 것 같어.”

하는 조 씨네 얘기를 들으며 어찌나 울분이 쌓이던지

 대망의 시험일이 오고 아저씨는 일까지 하루 쉬며 시험을 치르셨다아저씨 정도면 거뜬히 합격할 것이라 믿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도저히 지울 수 있었으랴.

 그리고 합격자 발표날 교육청에서 아저씨 이름으로 우편물이 왔다아저씨는 결과를 보지 않으려 했다그럴 만도 한 게 그는 긴장해서 엉망으로 보고 말았다고 시험을 본 날부터 줄곧 말해왔다.

 “그래도 결과는 보셔야죠.”

 봉투를 뜯고 속에 들었던 종이를 꺼냈다신상과 성적이 적힌 곳을 지나 아래로 쭉 훑었다합격 여부가 적혀 있어야 할 곳엔 검정 합격이란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합격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며 아저씨를 바라봤다원체 차분한 성격이었던 그는 기쁨을 참으려 했음에도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런데 나중엔 그간의 미련과 설움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조 씨가 근무 중 사고로 입원했다심각한 사건은 아니라 일주일 후면 퇴원한다고 땡이 아저씨가 전해줬다나는

 ‘고놈 참 쌤통이다.’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보다 나는 조 씨가 입원한 틈이 아저씨가 합격한 사실을 자랑하기 딱 알맞은 시기라고 생각이 들었다아저씨 성격으로 보아 굳이 자기가 자랑할 것 같진 않을 것 같았다.

 “우리 땡이 아저씨 기 좀 살려 줘야지.”

하며 나는 아저씨와 함께 조 씨가 없는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그리곤 아저씨의 검정 합격 사실을 알렸다.

 “여러분우리의 이 땡이 아저씨가 검정고시에 붙었답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오히려 안 좋다고도 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그네들은 심드렁한 듯 고개만 끄덕이거나 심지어는

 “붙으면 뭐 해고작 검정고시 가지고.”

 “맞어굳이 그런 걸로 유난 떨지 말자고.”

하는데 나는 그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 봤자 중졸에서 고졸 된 거야이제 대졸 아니면 돈 못 버는 건 매한가지인데.”

 조 씨에게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성이 잔뜩 난 채 아저씨와 방으로 들어왔다그리고 그에게 나는 이참에 대학도 노려보자고 권했다.

 “저렇게 대학 대학 하는데 까짓거 해봅시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건 안 되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혹시 너무 어려울 것 같아 그러시는 거면 걱정 붙들어 매라고 수시도 있고 정시라도 아저씨는 워낙 머리와 이해력이 좋으시니까 1년만 더 공부해도 광역시 4년제 대학은 갈 수 있을 거라고 했으나 아저씨는

 “그것 때문이 아니야.”

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 씨 때문에 그래검정고시도 그렇게 뭐라 했는데 수능을 본다고 하면 어떻게 나오겠어일 배우는 건 고사하고 내게 일거리 하나 안 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넌 임용고시만 붙으면 여기서 나가잖아솔직히 너 없이 수능을 준비하는 건 힘들어학원에 갈 돈도 없고 그 문제집도 못 구할 텐데 말이야.”

 또 가장 현실적이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설령 대학에 가더라도 등록금 내기도 벅차겠지나이도 이러니 학자금 명목인들 대출이야 되겠어?”

 그 현실적인 말들이 이상만 쫓던 나를 일깨웠다나는 아저씨가 처한 현실에 슬퍼했다다만 나보다도 아저씨가 훨씬 더 슬픈 감정이었을 것이다그는 내가 암말도 하지 못하자 참았던 눈물이 흘러 그것을 훔치더니 그 자리를 도망치듯 나왔다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그는 대학에 가고픈 맘이 클 것이었다. 아저씨도 계속 수능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결국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될 것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권해봤지만도저히 그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묘책이 없었기에 그를 설득하긴 힘들었다.

 

 나는 임용고시에 합격하자 고시원을 나왔다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나 연수를 가기 전에 그래도 발령 전 한 번은 찾아뵙고자 하여 다시금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고시원 안을 돌아다녀도 아저씨의 그림자 한번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이 층 저 층 복도를 서성이는데 때마침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그 김에 물었다.

 “땡이그게 이름은 아니지누군지 모르겠는데한 달 전에 누가 이사 갔긴 했는데 그 사람인가?”

 그곳에 살았던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앴기에 아저씨의 번호도 알지 못했다통신할 방법도 없으니 난감했다.

 창문으로 노을이 지기도 하여 이만 가봐야 했다.

 그렇게 일 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그때 갑자기 바로 밑층서 익숙한 목소리가 건물을 타고 올라왔다조 씨의 걸걸하고 가래 낀 목소리였다역시 또 이곳에서 회식하는 모양이었다그네들에게 아저씨의 행적이라도 물을까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때 그와 그네들이 하는 대화를 무심코 듣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판 깔까요?”

 “그려이제야 공평한 게임 좀 해볼 수 있겠구먼.”

 “그러게요땡이 아저씨는 차분하니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뒤에서는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난 또 운이 억시로 좋은 건 줄 알았지.”

 “그놈이 자기 검정고시 보겠다고 젊은 놈 귀찮게 한 거 생각나?”

 “그 고시생만 불쌍하지.”

 “자자그 재수 없는 놈 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판이나 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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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안백

    월장원에 선정된 김에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왜 저렇게 썼지? 싶은 문장이 너무 많네요. 이런 부족한 실력에도 월장원에 선정해 주셨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니 무척 황홀한 기분이에요. 이번 월장원 선정을 격려로 여겨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걸 경험하면서 어엿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024-02-28 21:27:36
    금안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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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소설 게시판 장원 축하드려요^^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도 그렇고 비평 게시판에서 자주 금안백님의 글을 읽어서 그런지 축하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다시 한번 더 축하드려요^^~

    • 2024-02-26 16:01:34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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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