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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은 영원하지 않다 (영화 <다음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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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4-03-11
  • 조회수 200

영화는 생동하는 숨소리로 시작한다. 적막 속에서 들리는 숨찬 호흡 소리. 우리는 듣지 못하는 음악을 들으며 소희는 몇 번이고 춤을 춘다. 똑같은 구간에서 재차 넘어질 때에도 금세 털고 일어선다. 세상이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찰 때, 우리에게 그 속에서의 실패는 달가운 것이 된다. 아프겠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일어서 보라는 충고가 나를 견고하게 만드는 기운이 된다. 그렇지만. 

꿈을 꾸고, 혹은 꿈은 거창하니까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잊고 있던 것 같다. 마음에 피어오르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접는 지난하고 아픈 과정을 내색 없이, 어색함 없이 견뎌내는 것이 삶은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내 주변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나의 일이었던 적이 없어서 나는 기어코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어설픈 자세로 엉엉 울게 되었다. 

소희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울기보다도 화를 냈을 것 같다. 어쩌면 허무했을 지도 모르겠다. 종종 소희의 시선으로 장면들이 전환될 때면 애틋한 나의 지난 날이 그리워져 울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이런 추측 마저도 오만한 것이 된다. 나의 사사로운 슬픔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이면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크게 들었던 마음은 슬픔과 허무함이었다.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진행된다. 소희가 죽기 전과 소희가 죽은 후가 그 경계이다. 관객인 나와 함께 생동하던 인물이 죽고 나서도 여전히 영화가 진행된다는 것이 우리의 삶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영화가 한 발짝 내 앞으로 더 다가왔다. 

소희의 살아감을 볼 때 커다란 슬픔과 희미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슬픔, 모든 것을 어림짐작으로 넘겨 버리고 안전한 나의 삶에만 몰두했다는 슬픔, 말간 소희의 웃음에 배인 아름다움, 술 한 잔에 그날의 엿 같음을 일축시켜버릴 수 있다고 믿던 젊음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말이다. 소희가 손목을 그었을 때 새하얀 눈에 빠르게 퍼지는 선혈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도 안심했다.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삶은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이면서도 그 사실을 명징하게 짚어준다. 

소희가 죽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나는 머리를 크게 맞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새차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런 것이었다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소희가 죽고 나서 영화의 화자는 유진에게로 넘어간다. 그녀는 형사과의 팀장. 유진이 사건을 파고들면서 서서히 예민해지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배두나 배우의 얼굴에는 세상을 무미건조한 무언가로 압축시켜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의 시간이, 그럼에도 모든 것을 지사적으로 바라보며 쉽게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완고함이 있다. 그런 그녀가 숨어있던 진실들을 들춰내도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것은 없으리라는 사실이 아주 큰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폭력이 시작점이 조그맣지 않다는 것, 소희와 준희, 은아, 동호와 태준.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커다랗고 높은 울타리가 마치 사슬처럼 얽혀 있다는 것. 우리가 미처 손을 뻗을 수도 없는 곳까지 견고한 폭력이, 때 되면 나타나는 일몰처럼 처음에는 황홀하다가도 결국은 캄캄하게 그들과 뒤엉켜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허무했다. 영화조차 명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의 이전과 나의 앞으로를 돌아보고 생각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나, 내가 힘낼 수 있는 게 있나. 떠오르는 것이 없어 두려워졌다.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유진은 소희가 학교에 다녀온 이후로 죽을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시간이나 정황 상 그러하다고 이야기한다. 선생은 별 말 없었다고 정말이라고 피력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선생은 소희에게 너를 믿는다, 고 이야기했다. 그것만큼 무겁고 복잡하고 슬픈 말이 없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일 때, 내가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직면하고 있을 때 믿음은 감당 불가한 추처럼 우리를 누른다. 

유진과 소희는 같은 자리에 앉아 카스 두 병을 마신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 다른 순간에 문큼 새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을 응시한다. 그 찰나의 그들이 궁금했다. 곁에 소리 없이 앉고 싶었다. 

소희가 어디서나 요란하고 당돌하지만, 그럼에도 소리 없이 자리를 뜨는 사람이라는 것이 영화의 전반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소희의 이야기였지만, 준희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동호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리고 전 팀장과 본사 직원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장학사의 이야기이기도 특성화고 담당 선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목이 이야기 하듯이 여전히 남은 ‘다음 소희’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호소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어쩔 줄 몰랐다. 다음 소희를 만나지 않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소희 옆에 나란히 앉을 수 있기를. 다음 소희들을 위해 호소할 또 다르 목소리가 계속 편이 되어주기를. 

춤을 추고 웃는, 땀을 흘리고 생동하는 소희. 그런 소희를 보면서 마침내 눈물을 흘리던 유진의 마음을 생각하며 엔딩 크레딧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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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

요즘은 어떤 사랑이 마음 안에서 찰랑거린다고 느낀다. 꿈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오고서는 더 수많은 우회로들을 찾았다. 영화하고 싶다는 말은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당혹으로 물들이는데 너무 충분한 일이었다. 학교 특성상 그랬다. 내가 외고에 진학하게 된 것은 하나의 발악 같은 것이었다. 나의 꿈이 의무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고, 십대의 마지막 해를 시작하고부터는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다. 일월의 시작부터 일기를 쓰면서, 나의 꿈을 계속 소환해냈다. 꿈을 인지하게 되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억지로 그랬다. 어차피 늘 잔존하고 있던 것, 늘 나를 늦봄의 버드나무처럼 흔들리게 하던 것이 꿈이라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포부가 진짜 꿈을 말할 수 없어서 건져낸 다듬어진 직업일 뿐이었다는 것을 나는 쭉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인식하던 그 순간 즈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나를 독대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 에서 셀린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연기자를 말하면, 부모님은 뉴스 앵커를 말하는 식으로. 나의 꿈을 돈벌이 가능한 직업으로 바꿔 버린다’고. 나는 셀린을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일 앞에서 어쩌다가 무정한 사람이 되었는지, 꿈 꾸는 나를 왜 부정하고 싶어했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산다는 것, 내가 나로 존재하기보다도 그들에게 귀속된 존재로서 올바르게 기능한다는 것이 너무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지리멸렬한 글쓰기를 매일 두 시간씩 억지로 반복하면서 나는 처음 나를 마주하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미성숙을 다시 끌어올려 두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견딜 수 없어 하던 열넷 즈음으로. 언어화되는 치기들이 부끄러워 참을 수 없던 때로. 나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자부하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어리숙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어 하는 나만 있었다. 나의 진심을 자꾸 의심하고, 왜를 묻는 과정은 두 번째라고 해서 무뎌지지 않았다.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에 대한 혼란을 느끼는 일은 마음을 하루종일 가라앉게 하는 일이었다. 최은영은 소설 에서 성숙은 그저 우리 환경에 익숙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여행자의 마음을 떠올리게 됐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 앞에서 나의 미성숙한 부분을 기꺼이 마주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지 짐작해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지난 두 달은 조그만 방 안에서 아무도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이름 없는 여행지와 벌이는 다정하고 날카로운 밀회였다. 내가 가진 미성숙과 독대하는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꿈을 꿈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꿈이라는 것은 하는 수 없이 양가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질투하면서도 동경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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