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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밖으로 배달된 편지 -몸 밖의 안부를 묻다- 를 읽고

  • 작성자 김날해
  • 작성일 2023-12-31
  • 조회수 338

몸 밖으로 배달된 편지

몸 밖의 안부를 묻다-를 읽고

 

 

 

언제부턴가 나는 시인을 꿈꾸며 살고 있다.

 

게임과 웹툰에 미쳐있던 중학교 때 시인인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심장은 터질 것 같고 이명을 앓는 것처럼 잉잉거리는 벌떼 소리에 미칠 것 같던 시절이었다나는 짧은 문장들로 이어지는 맹렬한 녹음 속에 파묻혔다박성우나태주정호승안도현박준안희연김현우신용목 등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하루하루가 찬란함의 연속이었다그때 시를 좀 더 잘 읽고 싶었다시가 물 흐르듯이 내게 스며드는 것도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교과서 속 시를 전략적으로 읽었던 것처럼 정형화된 틀에 의해 시를 읽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한편 인체 해부도처럼 시를 완벽하게 해석해내고 싶었다그것이 시와 내 영혼이 교류하고 한층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했다.

 

기명숙 시인의몸 밖의 안부를 묻다담임 선생님이 선물해주신 이 시집을 받아들고 제목에 이끌렸다그때 나는 내 존재의 구성요소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정신이 지치면 몸이 아프고 몸이 아프면 정신에 탈수 현상이 생기던 때였다정신과 육체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입장 심신일원론으로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던 때였다.

 

나란 누구이며 내 몸은 어디서 왔는가광활한 우주에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었다. ‘몸 밖의 안부를 묻다란 시집은 6개월 정도 생각을 수납하는 책상 서랍에온갖 고민과 무거움을 담은 책가방에 들려 나와 밀착되어 있었다. ‘별이 스쳐가는 것과 죽어가는 모든 것초차 사랑했던 윤동주처럼삶의 슬픔과 고통아름다움과 추함을 기록하는 예기치 못한 시인으로서의 내 미래가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몸 안과 몸 밖을 구분 짓는 경계가 무엇이며 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나의 본질을 깨닫게 해 줄 것만 같은 흥분을 대동하면서 시험공부 대신 이 시집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현대인은 외로움에 시달린다외로움은 때때로 오기를 부린다누군가 외롭다는 처절한 외침을 받아주면 좋으련만 외로움은 몸 한구석에 웅덩이를 만들거나 음침한 서식지를 만들어 손목을 긋거나 살인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E아파트 들뜬 벽지 뒷면이 적막의 서식지가 된 지 오래다몇 겹 단층을 이룬 전화기 위 먼지는 화려한 언술의 대화가 끊긴 이전을 기록 중이고 지금 삼중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패트롤카의 능수능란한 저 굉음은 손목을 긋고 15층에서 몸을 날린우울증 환자의 스토리를 호송중인 게다집안 풍경의 비밀이란 서로의 외로움을 발설하지 않는 것(중략외로움이 창궐할 때 (중략차라리 칼부림 사건 현장이거나 방화를 도모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딩딩뱃가죽 늘어난 벽시계 녹슨 관절로 외로움을 타종하지만 견디고 있다는 사실은 베란다의 식물들처럼 잎맥이 변색 됐을 때야 눈치채는 것 띠리링배달을 묻는 세탁소 전화벨 소리에 후다닥 달려들어 귀를 쫑긋거릴 때 대낮 풍경이 제법 생기가 돌았던가!

-대낮풍경중 부분

 

화자는 적막하고 외로운 아파트 풍경 내부를 묘사한다시에서 등장하는 사물들 즉 베란다 식물찻잔괘종전화기 등은 어쩌면 화자가 바라보는 아파트 내부의 객관적 대상이거나 혹은 화자 자신의 외로움을 감정 이입한 결과물들이다화자 자신의 몸과 시적 대상의 몸은 이질적으로 보이나 동일체일지도 모른다죽을 만큼 외롭다는 시그널인 동시에 그것은 적막하게 고요하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어쩌면 이 시는 화자와 시적 대상 간의 몸 안팎을 오가며 주고받는 편지다.

 

이 편지를 읽다 보면 지구상의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안부를 묻는 시인의 고해 같다시인은 외로움에 묻혀 살아간다화려한 언술의 대화는 겹겹 쌓인 먼지에 의해 막혀버린 목구멍을 원망한다순찰차의 굉음을 선사하는 삼중창 밖으로 손목을 그은 우울증 환자가 실려 가고 접시의 꽃무늬는 시들어가고 있으며 방문들은 이를 악물고 있다모두 임계점을 넘은 고독 때문이다이 모든 일이 대낮에 일어난 일이다물리적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창밖의 사람도 내부의 사람도 고독과의 전쟁에서 패잔병이 되었다.

이렇듯 기명숙 시인의 몸 밖 안부의 대상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존재가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다시인의 외로움’ 또한 격앙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검은귤에서의 안부는 더욱 처절하다.

 

쪼그쪼글 말라가는 귤이 나를 본다/줄어든 부피표정을 되돌리려고 애쓴다/(중략)문병객들이 중구난방과 슬픔마저 살균해버리는(중략)귤은 점점 질감으로부터 해방을 원한다(중략)기어이 몸을 잃은 귤을 본다/배회하는 감정들 몸 밖에 있지 않고 애간장을 녹이고 달인 누런 담즙만 비닐 팩에 가득/비로소 슬픔을 망각한 귤 검은 흙이 되었다.

-검은 귤부분

 

우리에게 고독은 원인일 수도 결과일 수도 있다병실에 고립된 아버지화자는 쪼글쪼글 말라가는 귤을 보고 있으나 무서운 고독과 고립의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검은 귤은 죽어가는 아버지며 화자는 자식이다병실 안의 풍경과 아버지의 몸이 해체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안부를 묻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고통스럽다호스피스 병동의 포르말린을 분사해도 귤은 살균되지 못하고 몸이 썩어간다이제 썩은 귤마저 병동의 일부가 되었다귤 표면 구멍으로 가까스로 내쉬는 숨은 회한과 그리움으로 가득찼다버팀목이였으며삶의 지혜였던 아버지병동의 혼란했던 온도가 정상치를 회복하고 나면시인은 비로소 아버지를 여윈 슬픔에 못 견딜 것이다나는 그 슬픔을 알 것 같다얼마 전 나를 사랑해주셨던 할아버지가 내게 대학 등록금을 남기시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몸의 살이라고는 없는 채로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내 유년의 슬픔과 외로움이 컸지만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패잔병으로 남아버린 때 나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싸워 줄 수도 병을 고쳐줄 수도 없음을 알고 오열했다돌아가신 후 영정사진을 들고 장지로 가는 내내 나는 할아버지와 몸 밖(저승)의 안부를 물었다그리고 할아버지와 쌓았던 추억을 되새겨 보았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통과 손자인 나의 고통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할아버지는 저승으로나는 이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결코 몸 밖의 안부를 묻는 행위가 해피앤딩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의 근원적 한계와 어떤 누구도 죽음을 회피할 수도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이런 점에서 검은 귤은 대낮 풍경의 연장선에 있다.

 

삶과 삶 사이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시인의 안부를 묻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다여기서 다시 시인의 몸에 대한 집념과 제목인 몸 밖에 안부를 묻다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과연 시인에게 몸이란 무엇인가안과 밖을 구별해줄 명확한 기준은 무엇인지단순히 물체적으로 존재하는 몸인지 시인의 상상에서 비롯된 몸인지 시를 읽는 내내 궁금했다.

한편 몸 밖의 안부를 묻는데 실패한 경우도 드러내는 시도 있다.

 

살점이 뭉텅 빠진 들쑥날쑥한 몸 하나 허공에 걸려있다(중략)/스물다섯 해 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있다 상한 지느러미 곧추세워 풍향계처럼 헤엄치려하는데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우리 큰오빠...../떠나야 한다떠나야 한다 입술을 달싹이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북어일부

이 시에서 화자는 살점이 뭉텅 빠진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외면한다북어는 큰오빠이며 화자는 여동생이다현대사의 비극중 하나인 5.18 광주항쟁 때 치명상을 입은 큰오빠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것 같다여동생인 화자에게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화자는 외면했다즉 몸 밖의 안부를 시도했던 시인에게 뼈저린 후회를 남겼을 것 같다어쩌면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시인은 몸 밖 존재들의 안부를 줄기차게 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작품천변 산책에서 시인은 시인에게만 국한되는 독백(대화)을 나눈다현재 작가로서시인으로서의 안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붓을 보았다/족제비도 산토끼도 아닌 물가 움막에 사는 갈대의 머리털로 만든 거였다/물이랑 사이 난독의 문장이 올라오곤 했다/연도가 불분명한 묵은 서체였다(중략).목책 바깥 시큰둥하니 내가 있는 쪽으로 긴 모가지를 뻗어 조탁의 언어들 넘실댔다/바람이 책장을 넘기며 빠르게 읽어갔다/먹이 마르기 전 필법을 훔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변산책일부

 

도심 한가운데넘실대는 필체에 시인은 자연스럽게 이끌렸다난독의 계절작가로서의 자기의 위치나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현실적인 문제들이 난독의 문장처럼 시인을 괴롭히고 있는 중인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대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필법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너무나 공감 가는 작품이었다지금 천변에는 갈색으로 물든 갈대()가 훌륭한 작품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고 언젠가 한 번 꼭 만나고 싶은 기명숙 시인 또한 아름다운 문장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이런 점에서 몸 밖의 안부는 몸 안의 안부와도 연결된다시인의 내부에서 자라는 욕망이 갈대라는 외부의 몸과 교섭했을 때 자신의 욕망을 쟁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따라서 여기서 몸은 이질적이고 위계적이고 수직적이지 않다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보이는 것이다이를 증명하는 또 다른 작품을 보자.

 

빗소리보다 한 옥타브 낮고 눈발보다 고음/물음표보다 공손하고 느낌표보다 솔직한/아토피처럼 습관적인 비와 눈발 사이 오래된 습속/수면제 녹는 소리/눈꺼풀이 닫히며 헤어진 애인의 발자국 소리/슬픔 툭툭 털어 우산을 접고 비와 눈발 사이를 떠도는 터무니 없이 당신을 용서하고픈 화해의 감정/투명한 물방울로 다녀간 그사이

-비와 눈발중 부분

 

화자는 실연한 사람이다떠나간 애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크다그런데 화자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수면제를 먹는 모양이다수면제 녹는 소리가 빗소리보다 높고 눈발보다 낮으며 이는 습관처럼 연속된다그런데 화자는 여기서 내부에서의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며 안부를 묻는다지독히 밉고 원망스럽지만애인을 사랑함으로써 행복했던 날들과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애인을 사랑한다는 점을 깨닫는다그리고 서러움과 한을 승화한다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이고 꽃(자신)을 즈려밟고 가라는 것 못지않다.

 

따라서 몸 밖의 안부는 몸 안의 안부와 다를 바 없고 안부를 묻는 행위는 연민과 사랑 고통을 같이 이겨내자는 연대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어려워하는 묘사와 감각적인 문장을 연마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시가 구체적인 진술이 아님에도 적나라하게 연상된다는 점이다그것이 독자인 나에게 고통을 준 것도 있지만 한 수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시란 무엇인가나는 또 질문을 한다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인이 되겠다는 행위가 납득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단순히 문학상을 좀 타고 내가 시를 쓰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논리는 왠지 허약하다이러한 비평문(감상문)을 처음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학교에서 배운작품을 해석하는데 기준이 되는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과 같은 방법론으로 써야 하는 건지 철학 용어가 밑바탕이 되는 또 다른 문학 이론에 의해 써야 하는지 무지함만 드러났다여러 날 고민 끝에 내가 현재 시인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나의 몸은 시인으로서의 몸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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