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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아이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3-22
  • 조회수 342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 난 소금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형식이가 진로 발표 수업 시간에 말한 내용이다. 선생님은 이 말을 듣고 형식이에게 "직업을 말하렴."이라고 말을 했다. 그 때 형식은 한숨을 푹 쉬었다. 깊고 진한 그런 소리가 교실 내부에 스며들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귀도, 코도, 눈도 모두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른 친구 말 할 때까지 생가하렴." 이라 말을 했다. 그러더니 형식은 무거운 발을 들어서 자리로 앉아 얼굴을 숙였다. 아무도 얼굴을 숙인 형식을 보지 않았다. 그저 발표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의 꿈에 집중을 했다. 그러나 형식을 집중해서 보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 꿈은 상담가 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라고 나는 발표했다. 나름 좋은 발표인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난 후 선생님은 아무 피드백도 하지 않고 나를 자리로 보냈다.  나는 모든 것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선생님들 눈에는 내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중간한 재능에서 어중간한 노력을 하는 그런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 형식에게 작게 "얼굴들어. 그래야 친구들이랑 친해지지."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형식은 무표정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며 그저 숙인 고개를 더 땅 바닥으로 떨굴 뿐이었다. 나는 이런 형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새학기라면 누구나 말을 많이 하고 친구를 사귀고 싶을탠데 형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발표들이 끝났다. 다시 형식의 차례가 돌아왔다. "형식, 네 꿈을 말하렴." 선생님이 형식을 불렀다. 그러나 형식은 어느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형식에게 "어서 답을 해."라고 말을 했지만  형식은 침묵을 지향했다. 선생님이 할 수 없이 그에게 "그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물었다. "소금, 소금, 소금" 소금 삼창을 작은 소리로 형식이 외쳤다. "뭐라고? 크게 말하렴." 선생님이 짜증이 약간 뒤흔든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소금이란 말만 대풀이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소금이라 말해요.""알겠어. 복례는 고마워." 선생님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때 종이쳤다. 어색한 침묵의 흐름이 약간 금이 가는 듯했다. 선생님은 책을 살짝 치며 큰 목소리로 "앞으로 진로 시간에는 발표 위주의 수업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발표 하는 연습을 함께 해요." 라고 말을 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쉬는 시간에 모든 아이의 시선은 형식에게 쏠렸다. 물론 나도 형식에게 관심을 가졌다. "우리 친구 하는 것 어때?"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냈다. 그러자 형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말을 무시하는 그를 보며 화를 느꼈지만 새학기 새학년이라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때 나의 친구인 경술이 교실에 찾아왔다. "복례야 우리 교정 둘러보자."라는 소리가 크게 교실을 울렸다. 나는 교실에서 친구를 더 사귀고 싶었지만 기존 친구와의 우정도 지키고 싶어서 교실 밖 교정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교정은 지난 겨울의 교정보다 더 아름다웠다. 마음의 여유는 없어졌는데 세상은 치장을 했다. 오랜만에 경술과 대화를 하여서 그런지 나의 불타는 마음이 약간 가라 앉았다. 그런데 경술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야. 너 김형식 짝이야? 그 놈 이상해. 막 소금이 되고 싶다 말하고  이상한 것 같아." 나는 경술의 이런 말에 형식에 대하여 궁금증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아이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었다. "사실 그 아이 선생님들도 포기한 음침귀야. 어떤 이유로 우울한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소금만 찾는 그런 아이야" 라고 답이 돌아왔다. 나는 무슨 이유인지 궁금은 하지만 그저 한 달만 지나면 이제 멀어질 사이라 생각하고 더 궁금증을 죽였다.

 시간이 지나서 새학기의 설램의 향기가 슬슬 져버리는 4월의 첫째 주다. 4월 둘째 주에는 국어 모둠 프리젠테이션 수행이 기다렸다.  모둠의 구성은 번호 순으로 나와 형식 이렇게 둘이 모둠이 되었다. 나는 순간 이번 수행도 망했다고 직감했다. 그 이유는 형식에게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본 형식은 아무 말이 없고 어둡고 우울한 기운을 퍼트리는 흑 소금과 같은 역할이었다. 나는 경술에게 이 사실을 말을하고 함께 울었다. 운 이유 역시도 형식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시험 점수를 잘 보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서 선생님들께 내 이름 석 자를 인식을 주고 싶었는데 그가 되지 못할 것 같아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많이 떨어졌다.

 수업이 끝난 어느 4월 첫째 주 나는 형식에게  달려가 "우리 오늘 모둠 발표 자료 만들기 우리 집 가서 하자."라고 말했다. 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경술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 복례 우리 떡볶이 먹자."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경술이 나와 형식 이렇게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보며 조용히 빠져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형식과 어색해서 그런지 하굣길에는 차갑고 무거운 바람만 불었다. 걸어가는 길은 오늘따라 더 멀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를 쩔뚝이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때 형식이 고양이에게 달려갔다. "어디가?" 나는 말을했다.  그러나 형식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고양이는 경계 자세를 하며 형식에게 본인의 맹수의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형식의 다정한 눈빛으로 고양이는 자신의 아픈 발을 보여줬다.  나는 그런 형식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사실 자상한 아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난 새학기 진로 시간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바로 세상의 소금이 되고 싶다고 말한 그의 음침한 얼굴이.  그러면서 조용히 물었다. "형식아, 너 혹시 무슨 일이 있어?"라고 나는 물었다. 형식은 잠시 침묵의 시간을 지내고 나에게 답을 하려고 했지만 그저 돌아섰다. 그러고는 "고양이가 나 같아서 도와줬어. 홀로 외롭게 아픈데도 참는게 나같아."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잠시 머리가 흰색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다시 적극적으로 "나, 네집 가도 될까?"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형식이 얼굴을 들며 "놀라지마. 그리고 아무 것도 믿지마."라고 말을했다. 그리고 나와 형식은 고개를 틀어서 반대편의 형식의 집으로 갔다.

 형식의 집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형식은 나에게 "아무것도 믿지마."라고 말하며 소금으로 온 방이 덮어져버린 안방에 갔다. 그곳에는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무엇인가 상했을까?라는 생각을 나는 어렴풋이 했다. 그러나 내 앞에 보인 것은 백골이랑 형식의 부모 사이 어중간한 소금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쳤다. 그 때 형식이 그들 사이에 가서 소금을 뿌렸다. 그리고 몸에서 피를 뱉었다. 그리고 형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형식은 "난 소금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며 쓸어졌다. 나는 재빨리 119를 불렀다.

 119 오기 전 난 소금이 되고 싶다던 형식이의 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부모님과 좀 더 있고 싶었고 자신의 악한 기운을 치료할 수 있는 조미료인 소금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저절로 남의 이야기를 즐길거리로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가 너무 미웠다. 그러면서 멍 때리며 119를 기다렸다.

 119가 왔지만 그의 집안 어른들은 오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이런 형식이 사연이 안타깝다고만 말을하지 아무 표현도 하지 않고 정적을 흘렸다. 형식이가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조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수화기 넘어에서는 "고객님께서 전화를 끄셔서:::"라는 맨트가 날라왔다. 나는 지금의 이 상황에서 몇 주간 함께 교실생활하며 이를 모른 내 자신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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