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궤도의 마지막 통신을 보태며

  • 작성자 이운
  • 작성일 2023-07-27
  • 조회수 489

유리, 오랜만이야. 너에게  연락을 남기겠다고 하고서는 잊어버릴 뻔했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사과해도 너한테  진심이 제대로 닿을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져. 나는 벌써 너와 함께했던  푸른 행성이 그리워지려고 해.  광활하고 넓은 검정의 우주는 정말 외롭거든. 정말  혼자 남겨진 기분이야. 수많은 항성과 행성을 눈에 담을 수는 있어도, 사람이 없다는   외로운 일인  같네. 그래서 너를 만나면 벌써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가지는 넘어. 하지만 슬프게도 나한테는 그런 여유가 없어. 길게 이야기할  없다는  정말 서럽네. 하지만  길의 끝에서 너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비록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두서없는 고해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혹시 그때 기억하니? 처음으로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났을 때, 그 지구에 살던 수많은 이들이 바라본 하늘과 바다를.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더라도 그 풍경만은 잊을 수가 없었어. 그 생생하게 빛나던 물결과 햇살이 나의 어두컴컴했던 나날을 꿰뚫었을 때, 나는 영문 모를 삶의 의지를 느꼈거든. 그건 내 안의 무언가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느낌이었어. 나를 간절히 살게 만드는 무언가가 심해에서 나를 건져서 들어 올리는 소리처럼 들렸어. 나에게는 이게 외로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어.

그때의 너는 덧없는 흉터가 된 풍경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쪽빛의 바다와 비취색 노을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너는 황폐해진 푸른 별의 잔상을 미워하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이 아름답다고 믿어. 이미 유한한 세상이었고, 언젠가 마지막을 드러낼 풍경이었어. 비록 나도 어두컴컴해진 지구를 보며 서러움과 슬픔을 느꼈지만, 그게 나는 사랑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그 행성은 가슴 깊이 품고 있었을 테니까. 지각부터 내핵까지. 그 중심에 뜨거운 의지를 품고 어떻게든 버티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행성이잖아. 나는 그걸 아름답다고 여기고 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거야.

유리, 나는 결코 너를 미워해서 떠난 것이 아니야. 너와 함께 금성을 관측하고 태양을 상상하던 시간은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이자 기쁨이었어. 그 행성의 이름과 수억이 넘는 항성의 이름을 읊는 그 순간은 알 수 없는 찬란함도 있었지. 네가 은하를 사랑한 건 정말 다행이야. 네 사랑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지만, 네 애정이 담긴 두 눈에 비친 스피카(Spica)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아름다웠어.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 단지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던 거야. 너는 네가 사랑하던 그 은하를 계속 사랑하면 되고, 나는 네가 이해하지 못한 지구를 사랑하면 되는 거였는데. 우리 모두 어려서 그것까지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했던 것 같아. 유감스럽고 슬픈 일이지.


하지만 네가 나에게 보여주던 맑은 눈빛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 너는 친절하게도 저 수많은 별을 직접 정리한 노트를 보여주면서, 미완성이라고는 하면서도 내심 뿌듯한 눈빛을 간직한 채로 나에게 복사본 하나를 선물해 줬잖아. 네 눈이 그날 은하수처럼 빛났다는 것은 나 말고도 모두가 기억하는 사실일 거야. 그때 네가 반짝이는 두 눈으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생각보다 은하는 넓어. 그렇다면 다른 은하에서는 또 다른 태양계가 있고, 또 다른 지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겠지?"


나는 그때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어. 어린아이의 공상일 수도 있긴 하지만, 달리 듣는다면 솔깃한 이야기였어. 그래서 나도 네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었지.


"우리가 사는 이 은하수도 결코 하나는 아닐 거야. 사람들이 말했어. 이 우주는 수많은 은하 속 수많은 별로 이루어진 다수의 공간이라고. 그러니까 분명 또 다른 은하에 또 다른 지구가 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해. 나는 지구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이 아름다운 풍경이 영원히 공기 중으로 떠도는 건 슬픈 일일 것 같아서 말이야."


그때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었어.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 유한함은 아름다운 추억의 상징이지만, 무한함은 영원한 슬픔의 상징이야. 나는 이 지구가 죽어 환생했으면 좋겠어. 찬란한 영혼이 공기 중 별이 되어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아름다울 것 같았어. 은하 속 거울을 빌려서 지구를 볼 때, 그 별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으면 좋겠어.

내가 이런 말을 너에게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지만, 내가 너에게 이런 의사를 어렴풋이 보여줬던 적은 많이 있었을 거야. 너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런 내 심사를 너무 잘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넌 그때 나에게 충고를 하나 했었어.


"이 지구는 곧 사라질 거야. 역사 속으로, 글자 속으로, 문명 속으로. 이곳이 무너지고 우리가 증발하면, 그곳에는 '지구'라는 이름을 기억한 이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행성은 없었던 행성이 되겠지. 그러면 역사 속으로 사라져도 아무도 알지 못하고, 글자 속으로 사라져도 누구도 읽지 못할 거야. 시든 문명이 될 것이고, 유령의 이름을 갖게 될 테니까."

"그러면 이 은하가 기억해주지 않을까?"

"우주에는 기억이 없어."

"하지만 추억이 있지. 그리고 슬픔이 있어. 우리는 끝없는 시간을 지내는 우주 속 아주 작은 삶을 살다 가는 조그마한 우주야. 하지만 저 별을 봐. 저 별의 시간은 우리보다 훨씬 더 길고, 지구보다 더 큰 시간을 가졌어. 만약 저 별이 이 지구를 기억한다면, 그만큼 지구의 삶은 역동적이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구는 결코 죽지 않아. 멸망하지 않을 거야. 육신은 부서져도 그 영혼은 영원히 우주에 남을 테니까."


그런 내 말을 들은 너의 표정은 아직도 나를 웃게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어. 그때는 우리 둘 다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해 커다란 상처만 짊어졌었지. 하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네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게 됐어.


"너는 그런 이유로 여길 떠나는 거야? 네 목숨을 걸고서?"

"세상에는 삶을 걸어서 지키고 싶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들이 많거든."

"그럼 네가 사랑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야?"

"나는 내가 죽더라도, 내가 준 사랑을 남기는 세계를 사랑해."

"하지만 이 지구는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네가 준 사랑을 기억하는 이들도, 그러지 않은 이들도 모두 죽게 될 거야. 네 사랑이 우주처럼 광활한 대지를 품는다고 한들, 우리는 죽어버리면 아무 존재도 사랑할 수 없게 돼."

"그게 두렵다면 나는 이곳에 이미 없었을 거야. 그리고 이 지구를 떠난 이들도 이미 없었을 테고. 사랑하기에 희생을 꿈꾸게 되는 순간도 오잖아."

"사랑하기에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도 오고."


그때 우리가 나눈 수많은 문장은 이제 내가 우주선을 가동하게 된 이유가 되었어. 참 놀라운 일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네 원망이 두렵기도 해. 그래서 내게 아무런 소식이 없어도 부디 네가 나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신에 이렇게 생각해 주길 바랄게. 운명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이 바다를 선물한 거야. 이 은하라는 바다를 너에게 내준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너와의 추억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그리고 너도 기억할 거야. 마지막으로 함께 걷던 그 푸른 바다와 하얀 해변을. 순간의 끝에 우리만 담겨 있던 그 하루를. 그러니 부디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랄게. 너는 함께 보던 검은 바다를 사랑해 주면 돼. 나는 그때 걷던 푸른 바다를 사랑할게.


그리고 어떤 말을 남겨야 좋을까. 글자를 찾을 수 없다면 이런 말이 좋으려나.

나는 그날의 너를 지키기 위해서 한계로 떠난 거야. 바다를 위해 여정을 나선 거야. 그 운명이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 바다로 떠난 거야.

훗날 내가 고래가 되어 돌아온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환히 웃어. 해국이 피는 바다에서 웃으면 돼. 그래, 그 순간 그때의 너는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이 파도를, 이 사랑을 이해하게 될 거야.


자, 사랑스러운 나의 이방인. 조용한 나의 친구. 이 넓은 우주보다 너라는 존재는 너무 큰 단어야. 빛이 따라갈 수 없는 하나의 속도야. 내가 이 우주에서 몇 광년을 유영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감히 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거야. 너는 이 은하보다 더 큰 빛으로 사랑을 감싸고, 나는 그런 네 주위를 슬픔으로 돌고 있을 거야.


그래, 우리 숨을 쉬며 살아가자.

푸른 하늘이, 노을빛 구름이 떠오르도록 웃으면서 살아가는 거야. 무수히 많은 별이 유영하는 하늘을 보며, 수많은 단어에 몸을 맡기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거야. 그날처럼 웃으면 되는 거고, 그때처럼 울면 되는 거야. 세계의 끝에 이 사랑이 눈물로 채워져도, 사실은 그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채 백색의 왜성이 되는 거니까. 우리도 그렇게 될 거야. 빛에서 태어나 빛에서 환생하는 거지. 그렇게 우린 순간의 호흡을 지닌 채 살아가면 되는 거야. 깊은 심해에서도 태양을 보며 살아가는 거야. 내가 떠나기 전 너에게 받은 라벤더의 의미처럼, 우린 고요한 호수를 동경하며 살아가면 돼. 침묵은 가장 찬란한 사랑이니까.


우리 그렇게 살아가보자. 나는 새로운 지구를 찾아 영혼이 될게. 너는 내가 간 그 뒤를 밟아서 또 다른 푸른 별을 안식처로 삼으면 돼.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구경하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또 다른 행성을 찾아보고. '언젠가는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즐거움 삼아서 같이 웃고. 지구의 중력이 써 내려간 그 아름다운 필력을 느끼며 그곳을 뛰어다니는 거지. 비록 그 순간이 언제 올 것인지, 나는 감히 예측할 수 없어. 언급할 수도 없고. 하지만 나는 장담하고 싶어. 너와 나,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영혼은 반드시 이 우주를 떠돌다가 정착할 거야. 생을 거듭하며 새로운 행성을 찾아다니고, 지금보다 더 많은 순간을 기적처럼 여기며 기억하게 될 거라는 걸.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에서 만나는 거야.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꿈꾸는 인간이니까. 그 아름다운 행성을 딛고 세상을 바라보는 거지. 아직 바라보지 못한, 삼키지 못한 별을 삼키면서. 그래서 우리는 지구에서 만나야 하지 않을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만나야만 하지 않을까.

그럼 이제 마지막이야. 내 두서없는 정리를 모두 담을 수 있는 한 문장. 그게 어떤 단어로 이루어지면 좋을까. 그게 어떤 말이어야 네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좀 해봤어. 그런 면에서 이 말은 너에게 꼭 해주고픈 이야기였어.

우리 훗날 바다에서 만나자.

우리 훗날 지구에서 만나자.


궤도에서 마지막 통신을 보태며, 여명이.

추천 콘텐츠

접목

B동네 골목길은 능소화가 많았다. 옆집 담장 능소화가 우리 집까지 넘어올 정도였다. 내가 그 길에 정을 붙이게 된 것도 주홍빛 꽃잎들이 이유였다. 해 질 녘의 고된 오후를 그들의 향기로움으로 다시금 충전한다는 사실이 아름다워서, 유독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덕분에 힘들었던 여름의 학교를 감성으로 달랠 수 있었다. 학교 수업 중 깨지거나, 야자를 마치고 와야 하는 고된 순간에도 능소화를 생각하면 심장이 뛰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 작은 소원은 이 능소화를 가꾼 사람을 아는 것이었다. 진심을 담아 말해주고 싶었다. 이름 모를 당신 덕분에 죽어가는 학생 한 명이 생기를 찾았다고. 파리하던 두 뺨이 모두 주황으로 물들 정도로. 그런 내 진심이 닿았던 것일까, 나는 이 모든 능소화를 가꾼 진짜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한여름의 절정이던 방학식 날에 말이다.주인공은 거동하기도 불편해 보이는 한 할머니셨다. 매번 일정한 시간에 일을 하시는 건지, 꽃과 매우 살가워 보이는 동작이었다. 무엇보다 그 나이에 보기 드문 열정이 타오르고 계셨다. 주름이 진 손으로 정성스레 이파리를 다듬고, 다 꺼져가는 눈에 소녀의 미소를 머금은 채. 하지만 그분의 집은 제일 허름하고 고독해 보였다. 꼭 할머니처럼 외로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께 손을 뻗었다. 좁고 쓸쓸한 등에 함께 머물러 드리고 싶었다. 나는 그 할머니를 제대로 뵙지 않았는데도.그 이상한 감정의 원인은 할머니 곁에서 수군거리던 아주머니들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아이고, 또 능소화 보고 계시네. 이제 온 동네가 능소화로 차고 넘쳐서 더 심지도 못하실 텐데.”“어쩌겠어. 이미 집 떠난 자식놈들이 방문은커녕 안부 한 번 안 한다잖아. 거의 반평생을 홀로 살고 계시는데, 자기 어머니 걱정도 안 되나. 어휴, 그런 놈들이 자식이랍시고 있는데, 외로움이 얼마나 크시겠어?”“자식 낳은 게 죄지, 자식 낳은 게 죄야. 집 사정이 저러신데 자식들한테 꼬박꼬박 돈 주시는 것도 정성이야.”그들의 아이고, 아이고는 몇 분 동안 계속되었다. 정작 당사자인 할머니께서는 어떤 한탄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조용히, 그리고 섬세한 손길로 능소화와 대화하고 계셨다.이후 아주머니들이 떠난 자리를 기회로, 나는 할머니 곁에 조심스레 다가갔다.“할머니.”할머니께서 나를 천천히 보시더니, 말없이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능소화를 보았다.“이거 전부 할머니께서 키우신 거죠?”“아무렴.”활주로가 된 바닥에, 꽃잎들이 부드러운 착륙을 이어갔다.“이 정도로 크니까 정말 예뻐요. 엄마가 꽃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데, 이렇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말을 붙이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었지만, 할머니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어렸다.“정성이 필요하지.”“잘 키우는 정성이요?”“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꽃을 생각하는 정성이야.”할머니의 시선이 주변의 꽃에 몇 초간 머물렀다.“나는 그 정성으로 요놈들을 키웠어. 이제 요놈들이야말로 내 자식이나 다름없지.”할머니께서는 자기 자식들을 하나씩, 돌에 새기듯 꾹 누른

  • 이운
  • 2024-05-16
온도

온도12월의 해는 너무 짧았다. 가을까지는 멀쩡했던 해가 오후 4시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지고는 했다. 특히 저녁만 되면 그나마 따뜻했던 날도 쌀쌀해졌다. 정확하게 저녁 7시부터다. 그때부터 다들 추위를 이겨보겠다고 겉옷을 몇 겹이나 두르며 나온다. 이후 거리에는 패딩과 코트로 무장한 사람만이 남는다.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무장을 한다. 그럼 거리에는 검정들만이 가득 차는 것이다.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내가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보통 지나가는 목소리를 들으면 아주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난 따뜻한 사람이 없다. 날이 추우니 시체가 쉽게 썩지 않겠지. 중얼거리다시피 작게 말하면서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내 전부다.그때 스치는 타인의 온기가 불쾌해지면,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구원을 주는 건 결국 내 일이다. 사람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주 당연한 숙명처럼, 그 불쾌한 일이 내 집처럼 다가왔다.친구가 나를 보며 혀를 차기도 했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됐냐면서. 나도 이유를 몰라 답해줄 수 없었다. 대신, 이 일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게 답변이 되었다. 그러면 친구가 물었다.“네 어머니를 네가 모시게 된다면 어떻게 하려고?”나도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내가 잘 모셔야지.”그게 반사처럼 돌아올 줄 몰랐지만.어머니의 사인은 사고였었다. 당시 경찰은 나에게 예의를 갖춘 묵념을 해 보이며, 이번 일에 대한 유감을 깊이 표한다는 인사를 건넸었다. 그 말에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발이 덜덜 떨렸었다. 동시에 범인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었다. 특히 어머니의 시신을 두 눈으로 본 이후부터 더 그랬었다.그 복잡한 일을 마무리한 건 내 손이었지만 말이다.명백한 뺑소니였기 때문에 범인의 일은 법대로 잘 처리하게 맡겼고, 나에게 주어진 중대한 업무는 오로지 ‘시신’이었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내 손으로 두 눈을 감겨도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았을 터였는데.결국 한동안 어머니의 차가운 몸을 만지지 못하고는, 한 시간을 꼬박 가만히 있었다. 화학약품의 향이 코를 찔러도 가만히 있었다. 어린 시절, 나약하고 어렸던 나를 포근히 안아주던 따스한 품의 냄새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절망. 그 사이에서 환청처럼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잘했어. 아주 잘했어. 무엇이 되었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멋 모르던 시절, 친구와 싸우고 들은 말. 하지만 이제 듣는 그 말에는 거대한 책임 비슷한 것이 앉아있었다. 그걸 듣고 떨리는 손을 어머니의 얼굴에 대었다. 내 결심의 매듭은 거기서부터였다.나는 마지막까지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노력했었다.어머니께서 여전히 내 선택을 지지할 수 있게. 장례식도 정확히 12월에 치러졌다. 당시에는 이마저도 유일한 따뜻함, 그런 무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를 이 추운 날에 묻은 것 같아 속이 좋

  • 이운
  • 2024-04-27
말하는 풍선

롤러코스터의 여파가 컸던 탓인지 시야가 어지러웠다. 빙글빙글 도는 구간부터 멀미가 났던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날도 유독 더웠다. 아침에 역대 최고 온도까지 올라간다고 소란을 피우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멀미에 더위까지 붙으니, 어질어질하던 시야에 열이 나는 머리가 합주를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토록 타고 싶었던 바이킹까지 포기해야만 했다.그래도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무사히 쉼터까지 올 수 있었다. 물론 앉는다고 나아지진 않았지만, 확실히 그늘진 곳에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거기다 사람도 아주 적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나와 어떤 초라한 행색의 사람이 전부였다.친구들은 그 사람이 있는 쪽을 곁눈질로 힐끗거리다가, 내 쪽에 가까이 붙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상한 냄새가 나서 그렇다고 이야기했다.“저 사람,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 거지인가?”“쉿, 들으면 어떡하려고 그래.”내가 조금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자, 친구는 오히려 더 내 귀에 바짝 붙었다.“왜,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저 사람, 우리 올 때는 입구에서 못 들어가고 있지 않았어? 어떻게 여기 온 거지?”“본래 저런 사람들 이런 곳에 몰래 잘 들어온대.”“그거 좀 무섭다. 무슨 시궁창에 사는 쥐 같아.”“그 쥐가 저것보다는 더 깨끗하겠다.”“그런 쥐는 생태계에 필요하기라도 하잖아. 그런데 저런 사람들은 하는 일도 없으면서 꼭 한 명씩 존재한다니까.”친구들이 작게 키득거렸고, 나도 똑같이 작게 웃었다. 그 사람은 전혀 듣지 못하는 듯 엎어져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곳을 우연히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서 가기도 했다. 뒤이어 바이킹을 타러 간다는 친구들 역시 마지막으로 흘깃거리다가 잽싸게 떠났다.확실히 그 사람에게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하수구에서 나오는 이상한 비린내보다 더 심한 냄새였다. 굳이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자리를 피해 멀찌감치 떨어진 구석에 앉았다. 그 사람과 단둘이 쉼터에 남아있다는 것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다행스러운 건, 쉼터가 상당히 편안하다는 점이었다. 의자가 푹신한 소재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곳의 공기가 상쾌해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내 시야가 순간 아득해졌단 거다.그러나 졸음도 잠시였다. 다시금 코를 찌르며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에, 눈이 자동으로 퍼뜩 열렸다. 아까까지 내 자리에서 맡지 못했던 그 쿰쿰하고 시큰한 냄새가 가까이서 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 아까 자리 그대로였다. 시간도 인제야 오 분이 채 지난 상태였다. 이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냄새가 날 리 없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다리가 심각하게 떨렸다. 마치 거대한 돌멩이를 발등에 올려둔 느낌이었다. 한 발짝을 떼는 것이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버거운 일이었던가.무엇보다 나를 보는 직원의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 이운
  • 2024-04-0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