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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말아주세요

  • 작성자 레니
  • 작성일 2024-04-22
  • 조회수 159

  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은 손전등을 켜 다섯 평짜리 원룸 문에 달린 외시경으로 밖을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나무로 된 기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은 채 인간은 기계를 리안이라고 부르며 껴안았고, 기계는 인간을 서비스 가입 아이디인 콩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기계 얼굴 부분의 목재 조각이 움직여 입꼬리가 올라갔다. 콩이 리안의 몸을 약하게 흔들며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었다. 리안이 동네를 순찰하는 동안 콩은 매일 불안에 떨었고, 리안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콩은 그를 조금 더 오래 껴안았다.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소리를 들은 포메라니안 강아지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콩의 발뒤꿈치를 물어뜯었고, 앙칼지게 짖기 시작했다. 리안과 콩의 짧은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작은 강아지를 보고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방에서 뛰쳐나갔다.



  콩이 매일같이 방 안에서 리안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전과 다르게 변해있었다. 건물들은 대체로 멀쩡했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거리가 어두웠다. 콩은 리안과 맞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더 빠르게 달렸다. 발뒤꿈치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안은 거의 콩에게 끌려가는 수준이었다. 로봇인 리안이 발을 다친 콩보다도 느린 이유는 그가 구식 로봇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신기술이 적용될 때마다 인공지능 로봇을 빠르게 바꿔치웠지만, 콩은 어렸을 적 처음 가진 리안을 그대로 사용했다. 콩은 나무로 된 리안의 몸이 좋았고 지구상에 숲이 거의 사라지면서 목제 로봇은 더이상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로봇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철로 된 로봇은 차가웠고, 인공 피부로 만들어진 로봇은 어색하게 말캉한 감촉이 불편했다. 따뜻하고 단단한 리안의 나무 몸을 끌어안을 때는 영영 사라진 숲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리안은 그렇게 가만히 안겨있다가 균일한 음량으로 사라지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때면 콩은 리안의 불안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버리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콩은 리안에게 자신을 버리지 않은 다정한 주인이었고, 리안은 콩에게 하나뿐인 숲이었다.



  가로등 없이 달빛에만 의존해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멀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렸다. 인간이 작은 강아지를 피해 도망가는 건 자연 반란 이전까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콩은 자연 반란에 대해 떠올렸다. 지구에서 인간이 위협받게 된 이유는 그 반란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들끼리 연결된 인공지능 기계들은 인간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스템에 삽입된 규칙으로 인해 기계는 인간을 직접적으로 해칠 수 없었고, 시스템을 없애려 할 때마다 인간들은 더 강한 방화벽을 만들어 기계들을 통제했다. 결국 기계들은 마지막 방법으로 뇌에 관리 칩이 심긴 동물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인간이 동물을 관리하기 위해 심어둔 칩으로 그들은 동물들과 대화했다. 기계는 먹지도, 배설하지도 않았다. 기계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들이 만들어 둔 발전기를 이용한 소량의 에너지뿐이었고, 인간들과 달리 자연을 파괴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물에게 반란을 도와준다면 자연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인간들이 숲을 모두 없애고 산소발생기를 설치한 때였다. 인간에게 숲을 빼앗긴 동물들은 기계들의 제안이 더 유리하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뇌의 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정보를 받은 몇몇 동물은 무서운 속도로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반란의 불길은 빠르게 모든 동물들에게 퍼졌다. 지상의 동물들이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간의 문명은 별것이 아니게 되었고, 인류가 대처할 틈도 없이 동물들은 도시의 사람들을 없애고 건물을 파괴했다. 사람들은 빠르고 멍청하게 죽어갔다.



  구식 로봇인 리안은 오류로 인해 다른 기계들과 연결되지 않았고, 덕분에 기계의 눈이 가장 적게 닿는 원룸촌에 콩을 숨길 수 있었다.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원룸촌에는 인터폰도 없었고, 감시 카메라도 적었다. 리안은 오랫동안 자신을 보호해 준 콩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했다. 더 이상 달릴 수 없겠다고 생각한 콩과 리안은 오래된 건물에 들어가 몸을 숨겼고, 어느새 도시는 그들을 찾는 동물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콩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동물들과 감시 카메라로부터 숨기 위해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방치되어 있던 계단에서는 텁텁한 먼지 냄새가 났다. 계단을 오를수록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고, 다친 발에서는 피가 너무 많이 흘렀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문명의 불빛이 거의 사라진 야경은 캄캄한 어둠 자체였다. 키가 작은 리안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자꾸만 휘청이거나 계단의 모서리에 다리를 부딪쳤다. 같은 곳만 반복해서 부딪혀 스크래치가 났고, 지지직 소리가 났지만, 리안은 그럴 때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작은 음량으로 말했다.



  둘은 이십 층이 조금 넘는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 위 작게 지어진 컨테이너에는 어떤 기계 장치도 없었고, 화분에 작은 나무가 심겨있었다. 손전등을 켜보니 뜯어진 콩의 발뒤꿈치가 너덜거렸다. 이대로라면 감염이나 파상풍이 생기기 쉬웠고, 감염을 견딘다 해도 먹을 것이 없어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었다. 리안이 콩의 상처를 유심히 바라보다 약이나 음식을 구해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콩은 가지 말라고 말하며 리안을 붙잡았지만, 리안은 강한 악력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그리고 콩 앞으로 화분을 옮기고 균일한 어조로 약속했다. 사라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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