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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 작성자 이운
  • 작성일 2024-04-27
  • 조회수 163

온도


12월의 해는 너무 짧았다가을까지는 멀쩡했던 해가 오후 4시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지고는 했다특히 저녁만 되면 그나마 따뜻했던 날도 쌀쌀해졌다정확하게 저녁 7시부터다그때부터 다들 추위를 이겨보겠다고 겉옷을 몇 겹이나 두르며 나온다이후 거리에는 패딩과 코트로 무장한 사람만이 남는다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무장을 한다그럼 거리에는 검정들만이 가득 차는 것이다.

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내가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보통 지나가는 목소리를 들으면 아주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난 따뜻한 사람이 없다날이 추우니 시체가 쉽게 썩지 않겠지중얼거리다시피 작게 말하면서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내 전부다.

그때 스치는 타인의 온기가 불쾌해지면한 가지 사실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나에게 구원을 주는 건 결국 내 일이다사람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하지만 내게는 아주 당연한 숙명처럼그 불쾌한 일이 내 집처럼 다가왔다.

친구가 나를 보며 혀를 차기도 했었다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됐냐면서나도 이유를 몰라 답해줄 수 없었다대신이 일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게 답변이 되었다그러면 친구가 물었다.

네 어머니를 네가 모시게 된다면 어떻게 하려고?”

나도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내가 잘 모셔야지.”

그게 반사처럼 돌아올 줄 몰랐지만.


어머니의 사인은 사고였었다당시 경찰은 나에게 예의를 갖춘 묵념을 해 보이며이번 일에 대한 유감을 깊이 표한다는 인사를 건넸었다그 말에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었다머리가 어지러웠고발이 덜덜 떨렸었다동시에 범인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었다특히 어머니의 시신을 두 눈으로 본 이후부터 더 그랬었다.

그 복잡한 일을 마무리한 건 내 손이었지만 말이다.

명백한 뺑소니였기 때문에 범인의 일은 법대로 잘 처리하게 맡겼고나에게 주어진 중대한 업무는 오로지 시신이었다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럼 내 손으로 두 눈을 감겨도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았을 터였는데.

결국 한동안 어머니의 차가운 몸을 만지지 못하고는한 시간을 꼬박 가만히 있었다화학약품의 향이 코를 찔러도 가만히 있었다어린 시절나약하고 어렸던 나를 포근히 안아주던 따스한 품의 냄새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절망그 사이에서 환청처럼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잘했어아주 잘했어무엇이 되었든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멋 모르던 시절친구와 싸우고 들은 말하지만 이제 듣는 그 말에는 거대한 책임 비슷한 것이 앉아있었다그걸 듣고 떨리는 손을 어머니의 얼굴에 대었다내 결심의 매듭은 거기서부터였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노력했었다.

어머니께서 여전히 내 선택을 지지할 수 있게.

 

장례식도 정확히 12월에 치러졌다당시에는 이마저도 유일한 따뜻함그런 무덤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지금 생각하면어머니를 이 추운 날에 묻은 것 같아 속이 좋진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그때는 너무 횡설수설 경황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일을 처리했지만아마 나는 어머니의 과거 위로가 큰 무언가로 느껴졌었던 것 같다.

지금도 거리를 걸으면서 아는 얼굴을 만날까 눈치를 본다애써 반대 방향을 선택한 것도 거기에 있다이 일을 시작한 뒤로 바람 잘 날이 없어서 말이다.

때문에 나는 내 일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때로는 남들처럼 오싹하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날어머니의 시체를 내 손으로 만진 후부터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깨달았다그 깨달음을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이것은 온전히 촉각의 진리다이 차갑고 뜨거운 감각을 직접 경험하는 깨달음인 것이다시신의 차가운 온도조차 따스하다고 느낄 정도의 깨달음인 셈이다.

그러면 이 추운 한파는어디선가 불어오는 어머니의 품으로 기꺼이 나를 받아주었다.

이 온도조차 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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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운
  • 2024-04-04
궤도의 마지막 통신을 보태며

유리, 오랜만이야. 너에게 꼭 연락을 남기겠다고 하고서는 잊어버릴 뻔했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사과해도 너한테 그 진심이 제대로 닿을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져. 나는 벌써 너와 함께했던 그 푸른 행성이 그리워지려고 해. 이 광활하고 넓은 검정의 우주는 정말 외롭거든. 정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야. 수많은 항성과 행성을 눈에 담을 수는 있어도, 사람이 없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인 것 같네. 그래서 너를 만나면 벌써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백 가지는 넘어. 하지만 슬프게도 나한테는 그런 여유가 없어. 길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서럽네. 하지만 이 길의 끝에서 너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비록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 두서없는 고해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혹시 그때 기억하니? 처음으로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났을 때, 그 지구에 살던 수많은 이들이 바라본 하늘과 바다를.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더라도 그 풍경만은 잊을 수가 없었어. 그 생생하게 빛나던 물결과 햇살이 나의 어두컴컴했던 나날을 꿰뚫었을 때, 나는 영문 모를 삶의 의지를 느꼈거든. 그건 내 안의 무언가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느낌이었어. 나를 간절히 살게 만드는 무언가가 심해에서 나를 건져서 들어 올리는 소리처럼 들렸어. 나에게는 이게 외로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어.그때의 너는 덧없는 흉터가 된 풍경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쪽빛의 바다와 비취색 노을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너는 황폐해진 푸른 별의 잔상을 미워하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이 아름답다고 믿어. 이미 유한한 세상이었고, 언젠가 마지막을 드러낼 풍경이었어. 비록 나도 어두컴컴해진 지구를 보며 서러움과 슬픔을 느꼈지만, 그게 나는 사랑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그 행성은 가슴 깊이 품고 있었을 테니까. 지각부터 내핵까지. 그 중심에 뜨거운 의지를 품고 어떻게든 버티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행성이잖아. 나는 그걸 아름답다고 여기고 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거야.유리, 나는 결코 너를 미워해서 떠난 것이 아니야. 너와 함께 금성을 관측하고 태양을 상상하던 시간은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이자 기쁨이었어. 그 행성의 이름과 수억이 넘는 항성의 이름을 읊는 그 순간은 알 수 없는 찬란함도 있었지. 네가 은하를 사랑한 건 정말 다행이야. 네 사랑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지만, 네 애정이 담긴 두 눈에 비친 스피카(Spica)의 모습은 내가 보아도 아름다웠어.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 단지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던 거야. 너는 네가 사랑하던 그 은하를 계속 사랑하면 되고, 나는 네가 이해하지 못한 지구를 사랑하면 되는 거였는데. 우리 모두 어려서 그것까지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했던 것 같아. 유감스럽고 슬픈 일이지.하지만 네가 나에게 보여주던 맑은 눈빛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 너는 친절하게도 저 수많은 별을 직접 정리한 노트를 보여주면서, 미완성이라고는 하면서도 내심 뿌듯

  • 이운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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