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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

  • 작성자 찬수
  • 작성일 2023-12-17
  • 조회수 235

윤이는 누나가 너무나 좋았다. 누나가 가는 곳마다 따라가고 누나가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누나는 언제나 아름다웠고 반짝거렸다. 뭐든지 더 능숙하게 해냈고 유능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윤이는 항상 누나처럼 되고 싶었다.


누나는 아는 게 많았다. 설거지를 한 뒤에는 마른 수건으로 주변을 닦아야 하고 씻고 난 뒤에는 물청소를 해야 해. 윤이는 누나가 시키는 것들을 했다. 누나가 원하는 건 집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또 좋은 대학에 가면 좋겠어. 윤이는 딱히 대학에 가고픈 생각이 없었다. 너도 잘하고 싶지? 윤이는 월에 60만 원이 나가는 학원에 다녔다. 1년간 학원에 다녔지만 성적은 그대로였다. 누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불만이었다.


왜 학원에 다니는데도 성적이 안 올라?

내가 보기에는 너 열심히 안 해.

너는 열심히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윤이는 그 말에 동의했다. 윤이는 뭘 한 번도 죽기 살기로 해본 적이 없었다. 목표도 없었고 꿈도 없었다. 이런 내가 잘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윤이는 가족들에게, 특히 누나에게 혼이 날 때마다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잃었다. 내일 버스를 타고 한강에 가자, 밧줄을 사자, 수면제를 사자, 연탄을 사자, 사진을 불태우자, 손목을 긋고 욕조에 들어가자. 그래그래. 하지만 윤이가 죽는 일은 없었다. 그게 가장 윤이를 힘들게 했다.


윤이는 언제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이는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윤이는 할 수 없었다. 왜 할 수 없었는지 윤이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죽는 상상을 해봐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기계적으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교복을 입게 되어있었다. 윤이는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죽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같은 대화가 진전 없이 반복되었다. 윤이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밖으로 나돌았다. 밖에는 윤이를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윤이의 생각과 글과 노래를 사랑했다. 그럴수록 윤이는 가족들의 시선이 싫어졌다. 우리는 네가 별 볼일 없는 애라는 거 다 알아. 네가 아무리 멋진 척해도 우리는 네가 뭐 하나 특출난 거 없는 걸 다 알고 있어. 윤이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도망쳤다.


윤이가 도망친 곳은 더럽고 냄새났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도망친 사람들이 급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어떤 사람은 반사회적이었고 어떤 사람은 절대 자기 외모에 만족할 줄 몰랐고 어떤 사람은 언제나 슬프게 화가 나 있었다. 도망친 사람들은 모여서 친구가 되었다. 윤이는 결국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손을 잡았다. 윤이는 서 있는 바닥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야. 윤이의 살고 싶은 마음이 그곳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하나씩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다. 윤이는 나도 하나만, 하고 똑같이 담배를 물었다. 폐 속으로 들어차는 연기에 머리가 몽롱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윤이가 뱉는 연기 사이로 누나 얼굴이 떠올랐다.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는 미움을 받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와 누나의 고통은  아무 의미 없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이 새끼 취했네, 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윤이를 따라 웃었다. 윤이는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소주가 담긴 윤이의 잔에 친구가 콜라를 따르고 있었다.

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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