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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향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30
  • 조회수 630

 여기는 코리안 에얼라인 코리안 항공 879 안이다. 기장 유난진은 김포가 아닌 다른 공항의 관제탑으로부터 이상하지만 다급한 비상착륙 명령을 받게 되었다. "코리안 에얼라인 코리안 항공 879입니다. 손님들께 뭐라 말하죠?" "지금 김포 공항 주변에서 아주 큰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양양으로 비상착륙 하겠습니다." 난진은 손님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양양 공항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무슨 사건으로 김포 공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는 승객들은 기장과 승무원들에게 따지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가는 길에 만진의 딸 아이 선녀가 막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야! 아이 좀 조용히 시켜봐요." 그러자  만진의 남편 영전은 승무원에게 영상 같은 것을 틀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선녀는 이 영상을 보고 다행히 진정이 되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는 비행과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여행이 시작 되었다.


 코리안 항공 879는 양양 공항에 도착했다.  양양 공항에 들어가자 한 셔틀 버스가 승객과 기장을 대리러 왔다. 그 때 난진 앞으로 뛰어든 남자가 있었으니 그 남자는 공경표였다.경표가 난진의 앞을 막은 이유는 무슨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 "저도 잘 모릅니다." 그 때 자원봉사자인 만덕 씨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휴대폰 봐요. 김포 공항 관제탑에 비행기 한 대가 부디쳤는데 그 비행기에서 독가스가 살포 되었어요." 그 말을 들은 약 600명의 승객은 소름이 돋았는지 모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김포가 고향인 사람들과 김포가 집인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가족과 김포를 걱정했다. 또한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다른 비행기를 예약했다면 사건의 피해자가 본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자원봉사자들은 양양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로 그들을 옮겼다. 그 이유는 아마 지금이 초등학교 여름 방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학교에 있는 TV와 인터넷으로 지금 김포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대통령 김만자가 뉴스에서 연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하루 빨리 집을 잃으시고 가족을 잃으신 분들께 보상을 해드리며 김포를 제외한 수도권 사람들을 지방으로 대피시켜 피해를 최소화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나니 사람들은 더 벌벌 떨었다.왜냐 김포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지역까지 독가스가 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보고 있는데 헤리라는 여성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시작으로 아이들 그리고 난진,영전,만진,경표 등 대부분의 코리안 항공 탑승객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는 이유는 살았다는 안심과 가족을 잃을 수 있는 슬픔 그리고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등이 그들의 생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 때 연선씨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 탑승객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 둘 모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코리안 항공 879의 기장인 난진이 시작했다. 난진은 어릴 때 부터 꿈이 캡틴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런 그녀의 꿈을 무시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공부하고 노력해서 결국 항공 기관사라는 꿈을 얻게 되었다. 첫 비행을 시작했을 때 기쁨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기쁨이 있기에 비행기는 그녀의 보물이고 전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도 비행기를 자식보다 더 많이 사랑한 그런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 사건을 듣고나서 그녀는 충격에 빠졌다. 그녀가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 결국 폭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니 충격이었다. 또한 서울에 있는 아들과 남편이 걱정 되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야기 한 사람은 헤리인데 이 여성은 집에 아픈 동생과 시터 사람 한 명만 두고 제주로 출장을 갔는데 오랜만에 제주에 와서 그랬는지 기분이 좋아했다.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고 자신이 지금 것 동생을 돌봐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 했고 매일 아픈 동생 헤나랑 연락을 했다. 비행기 타기 전 시터와 헤나랑 영상 통화를 했는데 그 때의 헤나의 말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다. "언니 참 행복해 보이는 것 같아. " 헤나의 한 마디가 그녀를 울렸었고 집에 가서 좋은 선물 하나 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시터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고 헤나 또한 전화를 받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마음을 알아 주었고 공감해 주었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금방 동내 아이들과 어울렸으며 어른들은 탑승객 한정으로 서로 유대감이 쌓인 느낌이었다. 그 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에게 파티를 열어주겠다 했다. 비행기 탑승객들은 기분이 꿀꿀하여 파티에 참석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계속되는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의 부탁 때문에 할 수 없이 어른들도 파티에 참석 하게 되었다.


 파티에는 그들을 환영하는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이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파티에 술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룰루랄라 철 없이 재미있게 놀았으며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본인들이 살아온 인생사와 아픔 그리고 사고로 인한 충격까지 이야기를 했다. 주민들과 탑승객들은 편하게 이야기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동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고생했던 그들의 인생을 달래 주었다. 김포의 쓰라린 상처와 아픔이 모두 씻겨 내려갔다.


 7일이 지나고 완전한 복구 작업이 끝났다. 비행기 탑승객들은 모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고 양양과  작별 인사를 구했다.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지만 따뜻한 자원봉사자와  양양 주민들의 손길이 그들을 따뜻함으로 물들게 했다. 그들의 마음의 제 2의 고향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 양양 주민들에게 그들은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연락한다. 따뜻한 마음의 제 2  고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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