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2023년 돌아보며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31
  • 조회수 373

 찬 바람이 불고 눈이랑 비가 트위스트를 추고 크리스마스 케럴이 들리다 멈춘 하루가 찾아오니 나는 2023의 마지막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지난 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올해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다.


{의미 없이 흘러보낸 겨울방학1-2월}

2022학년도가 끝나고 겨울 방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현재 기침 틱으로 의심되는 그런 기침으로 학원이 올 스탑이 되어 있었다. 일단 몸이 낫는데 집중을 하기로 결심하여 집에서 매일 매일 푹 쉬고 있었다.  그 것도 반려 동물 토리와 함께. 이렇게 의미 없이 쉬기만 했던 날의 연속이 방학을 금방 잡아먹었다. 2월 말이 다가오니 엄마와 나 불안에 잠겨 있었다. "기침이 괜찮아 지지 않으면 학교랑 상의해서 최소 수업 일수만 맞추거나 잠시 휴학 하자." 나는 이런 엄마의 말에 많이 불안했다. 불안에 떨던 중 반 배정이 나오는 날이 다가왔고 엄마는 할 수 없이 학교 교무부장 선생님이신 기술가정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엄마가 교무 부장 선생님과 통화하고 난 후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희찬이 기침 저도 수업시간에 들었어요.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 아니면 나와도 되요.저도 수업 때 희찬이 기침에 주의깊게 살펴볼게요. " 난 이 말에 감동을 받고 불안을 잠시 잠재울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불안했던 3월}

 첫 등교날 나의 마음은 불안했다. 아마 기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같은 반 친구인 00이와 간단한 근황을 물어보았다. "아직도 하는구나. 괜찮아?" 이 말에 나는 웃음으로 답을 했다. 새학기의 첫 조회 종이 울리고 난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는 선생님이 담임이 되셨으면:::"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1학년 때 과학을 가르쳐주신 과학 선생님이셨다. 나는 속으로 친했던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셔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은 내 기침에 관련된 엄마의 편지와 내 상태를 보고 상담 때  성적보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1학년 때는 건강했는데 어쩌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니?" 이후 선생님은 내 기침에 많은 신경을 써 주셨고 나의 자리를 창가 자리로 해 주셔서 먼지 알러지로 인한 기침을 최소화 시켜 주셨다. 또한 체육 선생님께 말씀을 해 주셔서 한 해 동안 수행을 제외한 나머지 체육 시간에 교실에 있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난 먼지와 관련된 기침이 학교에서 줄어들고 숨이 차서 기침이 많이 나와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었다.


 3월달에 있던 또 하나의 큰 일은 바로 병원을 옮긴 것이다. 성 빈센트에서 아주대로 이동할 때 나는 반려 동물인 토리와 작별인사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대에서는 내 기침을 자연적인 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같이 작용할 것 같다 판단하여 코데인정을 처방해 주셨다.


{내가 정신과를?4월}

 4월 담임선생님이 내게 다가오셔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기침에도 심리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어." 이 말에 나는 동의 했다. 그래서 정신과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고 수원시에서 하는 상담 비용 지원과 관련 되어 상담 선생님과 다양한 검사를 했다.검사 결과를 보고 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기침에 고마워 해야해, 우울 수치, 불안 수치도 높고 공격성도 지금 높게 나왔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다행히라는 표정으로 정신과를 갔다. 우리 집 주변에 정신과가 없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정자동 학원가 까지 버스를 터고 다녔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매섭고 따갑게 느껴진다.


{엽서시 공모전과의 만남 5월-6월}

 정신과를 다니며 나의 우울함과 불안감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버스를 타고 다닐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외하면 정신과 다니는 것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옛날의 활기를 찾게 되었고 글 쓰기 공모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러브 콘테스트라는 어플을 만났고 그 중 엽서시 공모전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문학 공모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김유정 문학상, 만해 백일장,둔촌 백일장, 대교제단 청소년 문학 공모전등 많은 공모전과 백일장에 나갔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해 보지 못한 것을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매달을 즐겼다.


{점점 밝아지는 나의 모습 글틴과의 만남 7-8월}

 그렇게 엽서시 공모전에서 글을 공모를 하고나니 다가오는 3학년 1학기 기말고사. 나는 이 시험에서 과학,수학을 완전 망쳐버렸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 있었고 정신과를 오가며 느끼는 일반 사람들의 시선{버스안, 정신과 건물 안}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우울해 졌는데 그 때 만난 것이 바로 글틴이었다.


 글틴을 하면서 나의 문학작품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느꼈다. 7월 처음으로 시 디바의 삶이 좋아요를 받아 기분이 좋았으며 시 안녕에 김선오 멘토님이 달아주신 조언에따라 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7월달은 멘토들의 조언으로 시와 소설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생각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8월달에 올린 내 이야기를 담은 작은 아이라는 시가 월장원에 올랐다. 또한 까마귀 백조 사이라는 시에서 김선오 멘토님께서 시가 성장했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또한 8월에는 나의 소설 빨래를 통해 일상생활에 지친자들을 위로해 주려고 했었다.  이  글틴 활동들을 하면서 난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으며 밝아진 것 또한 느꼈다

{글의 정체기 9월-10월}

 이 때부터 난 내 글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난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내 글이 약간 이상해졌다. 특히 소설이 그랬다. 대사가 확 많아졌다.특히 빨래2가 매우 심했으며 우물안에 핀 작은 불꽃에서 난 보지 못했던 빌리엘리엇이랑 내용이 비슷하다고 김병운 멘토님께서 그러셨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절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난 잠시 슬럼프가 온 것 같았다. 대사와 관련되서는 그나마 10월부터 좋아지고 있지만 비슷한 결의 내용과 관련되서는 12월이 된 아직까지도 고민이 많아 잠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반면 시는 멘토님께서 좋은 평들을 남겨주셨다. 개인적으로 H 시리즈에 좋은 평들을 남겨 주셔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9월-10월은 내 글에 집중했던 시기인 것 같았다.


{슬픔이 오고 기쁨이 찾아오고 글에 죽고 글에 살고 다사다난한 11월}

 11월달은 내가 글틴 활동을 적극적이게 하지 못한 유일한 달이다. 그 이유는 내가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이다. 11월 초반 10월달에 수원시에서 개최했던 시 쓰기 대회의 장려상의 결과를 받고 매우 즐거워했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슬픔이 찾아왔다. 바로 시험에서 수학을 절반도 못 받았고 역대 받았던 점수중 최하점을 받았으며 수능 문제 풀 때 한 두개 틀렸던 역사에서도 하나 틀렸다. 사회는 1점차로 B가 되는등 시험을 너무 많이 망쳤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이 나를 죽였다.  틱을 조롱하고 정신질환을 공격하는 그런 영상과 댓글이 내 맘을 죽였다. 이 죽은 마음을 다시 퇴고하기 위해 쓴 작품이 내 거울 세상에더 아침이 오겠지다. 하지만 이 시 역시 내 맘을 도와주지는 못했다.그렇게 글과 담을 쌓아가던 중 드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를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대사들 덕분에 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글로 죽은 마음 글로 다시 살아났다.


{글로 죽은 마음을 다시 풀고 다시 사랑하는 글쓰기 그리고 그 옆에 친구를 만난 12월}

 12월달은 다시 내 아픔을 써내려갔다. 소설로는 마음의 성장과 정신병동에 핀 민들레를 시로는 새벽에 서 아침을 기다리고,알약을 목에 넘길 때,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아이, 괴물이 된 H로 내 아픔을 다시 글로 승화시켰다.그러면서 내 아픔을 썼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관련 비평문이 글틴에 장원이 되어 무척 기뻤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아픔을 글로 승화해서 대견해."라는 식의 말을 해 주셨다. 나는 다시 글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소설에서 마음의 성장이 나도 모르게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비슷하다는 00의 평을 받아 또 비슷한 것을 창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좀 더 신중하게 쓰다보니 소설에 자신과 확신이 없어졌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글티너 ---와---의 조언으로 다시 소설에 대한 용기를 얻었으면 김병운 멘토님께서 또 다른 고향에 써주신 대댓글을 읽고 다시 힘이 생겼다.  


 또한 12월달은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관련해서 많아져서 기침 틱 때문에 있을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잡생각이 많이 들어 잠을 편히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여러번 잠에거 깬다. 하지만 여러 글티너들의 조언으로 최대한 잡생각이 들지 않게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다. 또한 요즘은 글친구가 생겨 나의 고민을 말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2023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글로 2023을 써 보니 참 많은 일이 글과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힘든일이 있으면 글과 문우들과 함께 시련을 이겨내어 보겠다. 




 

추천 콘텐츠

개학 첫 주

2024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이다. 이 날 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마인드로 생활을 했다. 수필도 한 편, 소설도 한 편, 비평도 한 편 그리고 시는 타 공모전 것 까지 5편 이상 쓸 계획이었다. 왜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글을 쓸 여유가 적어지고 남들 다 공부하는데 홀로 글을 쓰며 공부를 느슨하게 하면 않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욕심에는 그 것을 막는 초기 단계들이 있다. 신은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탑을 부스고 탐욕의 악마 바알제붑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 나도 이 막음 단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고등학교 입학의 불안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왜 시가 써지지 않아!"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럴 때는 쓰지 않는거야." 라고 답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말에도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손과 몸이 떨리고 이상했다. 이를 엄마도 느꼈을까? "쓰지말고 어서 자. 너무 떨지마."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학교에 대한 불안이 많이 커져갔기 때문이다.2024년 3월 4일 입학이다. 하늘은 무거운 것만 같았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지고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나 소화는 평소와 달리 쉽게 되지 않았다. 아마 긴장이라는 아이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계속 "떨지마 그리고 눈치 보지 마. 어깨 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엄마에게 보내고 집을 나가 버스에 발을 옮겼다. 버스에는 옛날 학원 친구였던 K가 있었다. K와 나는 가벼운 손 인사를 주고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 지금 내가 죽을 것처럼 많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에 홀린듯 심장은 계속 지진을 만들고 숨은 계속 과호흡 상태가 되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숨을 크게 셔보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작은 눈물이 흘러나올 때 쯤 학교 앞 버스 문이 열렸고 나는 발을 땅에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떨지 마. 괜찮아. 이 것을 이겨내야 해."라고 말을 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싶다. 내가 무작정 학교와 친구들을 피하면 은둔형 외토리 즉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가 되기 싫었고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키기로 했다. 해결 방안은 바로 독서다. 나는 책가방에서 은유의 이라는 책을 피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시선과 내 기침{틱 성 기침+감기 기침}이 어울려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2024년 3월 5일 긴장의 하루가 또 지난 새로운 불안의 날이다. 이 날은 7교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 정신과에서 어제 받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내 불안도는 감소되지 않고 일정했다.7교시 영어 독서 수업 OT까지 끝

  • 송희찬
  • 2024-03-09
시인의 눈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가 될 수 있다." 내 문학 선생님인 김명희 소설가겸 시인이 본인 유튜브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음악, 미술, 생명 공학, 물리학 기타등등 세상의 모든 것은 시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작품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난 해석을했다. 지난 반년간 글틴에 들어가 보면 미술, 음악 ,역사와 물리학,심지어 문인 선배들의 작품까지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시 계시판과 소설 계시판에 있었다. 이는 신기했고 참신했다. 또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 정보 전달의 원리까지 나타났다. 이를 보고 결코 글틴에 있는 청소년 문인들의 실력이 떨어진다 볼 수 없다. 창의력과 같은 부분에서 역으로 기성 문인들 보다 좋을 수 있다. 특히 몇몇 시를 보면 다양한 시어들이 등장하고 사물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 사물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지녀야할 시인의 눈이다. 이는 "사차원 아니야?" 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만난 문우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대다수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심지어 내 가족들까지도 그렇다.그만큼 시인의 눈은 특별하면서 이상하다. 내가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시 공모전들은 다여섯까지 정도 된다. 그 중 시제가 바다인 공모전이 있다. 보통 일반 사람들은 바다라고 물으면 "추억,해변,수평선,파도,그리움,여행" 이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생각 대신 다른 생각들을 해야한다. 예를들어 재난,인재,연인,유년시절처럼 직접 연관 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해야한다. 내가 이 대회에 제출할 작품도 재난,인재,편지등을 바다로부터 생각을 했다. 시 한 편은 세월호 사건을 그렸고 다른 편은 동일본 대지진의 해일 상황 마지막은 떠난 이에게 전해지지 않는 바다의 편지를 주제로 썼다. 이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바다라고 하면 즐겁고 신난 이미지인데 너는 왜 이런 시만 써?" 내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 "원하는 바다가 뭐야?"라고 물었다. 부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수산시장에 나와 있는 신선한 회들,바다를 뛰놀고 있는 생선들을 말했다. 나는 너무 식상한 시가 될 것 같아 이에대한 시를 쓰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신선한 수산시장의 회로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제 빨리 컴퓨터 앞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가 바로 글틴에 올린 이라는 시였다. 위 시는 아동이 수산시장에서 회를 뜨고 있는 사장과 죽어가는 생선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내용의 시다. 이를 보고나서야 부모님은 웃었다. 저번에 보여준 시들보다 순수하고 일반적이라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이후 시를 내가 부모님께 잘 읽어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최근 멘토링을 받은 이라는 시를 읽고 놀랐다가 해석을 말을 해주니 한 숨을 쉬었다. 위 시는 샤브사브 뷔폐 셀러드 바에 나온 타코야끼를 보고 아동 암 환자가 생각이나서 쓴 시다. 문어의 별명은 가쓰어브시 없는 타코야끼 이 둘의 공통점은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보고 항암치료로 의하여 머리가 빠진 환자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리고

  • 송희찬
  • 2024-02-28
내 삶의 작은 기억 속에 S를 주머니에 넣으며

{위 노래를 들으며 읽기를 바란다.https://www.youtube.com/watch?v=fsMzaOtaLtQ}현존하는 엘레지의 여왕이라 평가되는 가수 이미자의 에서 이미자는 본인의 인생에 언제나 노래가 있었음을 밝혔다. 누군가 내게 "위 노래를 부른 이미자처럼 너도 힘들고 기쁠 때 늘 함께 해준 것이 있니?"라고 물으면 나는 당당하게 "글 쓰기."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바꿔 "함께 해준 사람이 있니?"라고 물으면 "친구 S"라고 답할 수 있을 것같다. S와 나의 만남은 중2 때부터 이어졌다. 나는 중학교 3년동안 서기로 출석부를 관리했다. 그래서 난 맨 앞 중앙자리가 편했었다. 그 이유는 선생님들이 출석부를 쓰는지 않쓰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부담스럽게 만들어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 출석부는 매일 깨끗했다. 이를 20대 담임 선생님께서 아셔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교육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년 내내 원하는 자리에 앉게 만드셨다. 그 덕분에 나는 맨 앞 중앙자리에 계속 앉을 수 있었다. 많은 친구들은 맨 앞자리를 피하고 계속 다른 자리에 앉았지만 나와 옆에 앉은 S는 1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았다.나는 이에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S에게 질문을 했다. "S야 너는 왜 계속 이 자리에 앉아?"라고 물으니 그의 답은 "옮기기 귀찮아서 옮기지 않았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S가 내게 역으로 물었다."희찬아, 너는 왜 맨 앞 중앙에 앉는거야?" 나는 출석부 때문에 앉는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약간 어색한 대화가 오갔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 둘 모두 MBTI I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서먹 서먹했던 우리의 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한 둘이 잘하는 과목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보안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고민상담 등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중2의 어느 시절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정확히는 나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그 고난의 이름은 기침으로 학교에서 지속 되는 기침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다.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도 멀어지고 반 친구들과 나쁜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는 나의 잡생각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럼 나는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답을 했다. S 또한 내게 먼저 괜찮냐 묻고 걱정을 해줬다. 또한 중2 시험들이 끝나고 집에 갈 때마다 "몸은 좀 어때?" 라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시험점수도 나쁘지 않게 나와서 너무 좋아." 라고 말을했다. {그 당시 수학, 영어, 가정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이 올 100이었다.}그러면서 웃으며 지난 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즐겼다. 기침으로 힘들었던 내 정신 세계의 일종의 빛이 되어줬다. 하지만 우리는 중3이 되면서 반이 달라지며 떨어지게 되었다.

  • 송희찬
  • 2024-02-1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송희찬

    요즘 계속 글을 쓸 때 흥분이 되요. 그래서 글이 잘 써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 해 동안 좋은 말씀 남겨주신 멘토님 감사드리고 신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저는 신년에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 2023-12-31 14:02:31
    송희찬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