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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구지가를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03-07
  • 조회수 289







개를 복날에 먹으리

눈이 눈을 가리던 겨울에 주어,

암캐 냄새를 벚꽃이 가려,

봄날에 사랑하고,

아스팔트를 녹이는 불지옥

여름에 잡아먹자


그 개는 태초에 들개였으나

내가 너무나 사랑해서

낡은 가죽끈으로 정성스레

묶은 들개


개는 나를 보면 혓바닥을 빼놓고 꼬리를 흔들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

내 한숨까지 잡아먹을 여름날 

들개는 나의 목을 물것이다 


오늘은 봄

청춘과 봄과 벚꽃은 눈과 코를 가리고

호시탐탐 내 목을 노리는 개의 눈을 무시하게 하는구나 

그러니 언젠가의 여름날 

개의 누런 이빨을 보기 전에 

너를 잡아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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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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