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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몽 그 이후에

  • 작성자 쿼크
  • 작성일 2024-05-04
  • 조회수 174

시인이 사랑하지 않으면 쓰겠냐고 했던 나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상을 꿈꾸는 걸 만끽했던 나는

이를 망상이라 칭하게 됐고


너 덕분에 밥 먹는다고 했던 나는

입에 물만 축이고 살고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다고 했던 나는

고기만 건져 먹고 버렸고


잠은 많이 잤지만 얕고도 쪼개진 후에는

꿈을 더 이상 꾸지 못했다


펜은 더 이상 문장을 이루지 않고

문자와 숫자의 배열 만이 나란히 했다


필명을 지우고 이름 칸에는 다시 내 이름 석 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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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파편

청춘을 새겨 넣은 자수 같던 낮이 침전하고아무 이유 없이 무너져 내리는 밤이 둥실 떠오른다유리조각 마냥 떨어지는 밤의 파편은하염없이 걷는 내 발을 자꾸만 찌르고평생 끌어안아야만 할 것 같은 어둠이우울이 내게 스며든다부어오르는 발을 잡고내일이 자박자박 차오르는 땅에서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그렇게 이름 모를 너머에게 외치고 나면밤이 가라앉는다나의 낮은 언제쯤 내 뺨을 다시 스밀까감싸 안는 밤에 구속되어밤이 긴 겨울에서낮이 길던 여름을 회상한다

  • 쿼크
  • 2023-08-08
있잖아, 언니

언니, 그때 기억나? 엄마랑 아빠랑 싸웠을 때, 언니랑 나랑 동네에 있던 산에 같이 드라이브했던 거 말이야. 그때도 오늘같이 어두운 여름밤이었잖아. 그땐 언니한테 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은 언니가 있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때 언니가 없었더라면 그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휘말리고 있었어야 했을지도 모르잖아. 더운 여름밤, 매서운 언행의 오한에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 했을지도 모르잖아. 그때 언니가 없었더라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을 거야, 지금처럼. 언니, 언니. 아빠는 왜 바뀌질 않는 걸까. 아빠는 왜 바뀌려는 노력조차도 않는 걸까. 아빠는 일편단심인가 봐. 취향이 참 한결같지 않아? 7년이 지났는데, 그때 그 여자래. 언니가 아빠랑 그 여자가 스피커폰으로 전화하는 거 들었다던, 그 여자 말이야. 언니, 엄마 아빠의 거칠고 뾰족한 말소리가 매일 방문을 넘어와, 밤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덮을 만큼 말이야. 이젠 고요한 침묵의 밤이 어색해. 아빠는 자꾸 옷에 얼굴은 모르고 이름은 익숙한 낯선 여자의 향을 묻혀오고 도꼬마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그 향을 결국엔 엄마한테 들켜 버리지. 그리고 그 악을 뿌리째 도려내지 못해 계속 자라게 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어. 언니도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알잖아,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못 하는 거. 나는 그때도, 지금도 어리니까. 그렇게 또 문밖이 시끄러워질 즈음, 이어폰의 한계에 맞닥뜨렸어. 매미처럼 나도 청각을 조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 회피하는 것조차 실패한 나는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잠겨 4차원에서 3차원으로 차원을 이동해. 나는 차원의 감각에 무뎌졌고 경계가 흐릿해져만 가. 너무 들락거려서 차원의 문지방이 닳았나봐. 내 팔이 비단 같다며 쓸어내렸던 날 기억해? 이제 언니의 오돌토돌했던 팔이 이제야 이해가 됐어. 그땐 언니한테 언니 팔은 도마뱀 피부 같다고, 딸기 표면 같다고, 나무껍질 같다고 했던 팔이 이제야 이해가 됐어. 언니도 무뎌진 거구나. 나만은 지켜주려고 그랬던 거구나. 그런 팔을 감싸고서야 알게 됐어. 그때의 언니 심정을. 있잖아, 언니. 아빠가 또 그 여자를 묻혀왔나 봐. 수화기에서 옷에 그 여자의 목소리를 묻혀왔대, 주머니 속 남은 동전에도 말이야. 아빠도 참 한결같이 멍청하지 않아? 만날거면 증거를 남기지 말았어야지, 라고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엄마 아빠의 관계보다 내 귀에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싫었던 건가봐. 또 문지방이 닳았나 보네. 나는 또 차원을 이동할 거야. 언니, 언니, 언니. 언니는 어른이라서 좋겠다. 나는 3년 뒤에도, 아직도 어린데.흐려지는 4차원 속의 언니에게.

  • 쿼크
  • 2023-07-20
바다, 시계, 그리고 침묵

바다의 시계 바늘은 솨- 솨- 멈추질 않고그 시간을 막으려는 듯 방파제가 가로섰다그럼에도 자꾸만 시간은 흘렀고바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나는 방파제에 앉아 오지 않을 그를 망상했고바다의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시간의 침묵이 오면 영원히 그가 오지 않을테고그리 바람에도 나는 파도 방울을 맞았다바깥은 추웠으니바다는 따뜻했을까오지 않을그러니 끝나지 않을죄책감을 몽땅 끌어안은 채또다시 도착한 곳또다시방파제에 무게를 가한다

  • 쿼크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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