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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바이올리니스트와 문어 인형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3-08-11
  • 조회수 482

문어 인형은 자신의 큰 머리가 싫었다.


큰 머리가 달려 있어

모든 사람이 피하고

선반 밑에만 앉아있는 자신이 싫었다.


어느 날, 한 소녀로 인해

문어 인형은 먼지 구덩이에서 벗어나

조그만한 의자에 앉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슬슬 문어 인형이 지겹다고

느낄 때 즈음

소녀는 낡은 바이올린을 쥔 채로 나타났다.


소녀는 짧고도 작은 손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문어를 찾아와 연주했다.

문어 인형의 색이 바래질 때까지.

소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문어 인형은 행복했다.


그 커다란 머리로 소녀의 목소리를, 소녀의 연주를. 


기억할 수 있어서

문어 인형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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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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