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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를 향한 무지한 비난에 대한 무의미한 재비판

  • 작성자 당근매니아
  • 작성일 2007-11-22
  • 조회수 611

*주의 : 공각기동대  네타가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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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디선가 한 번 씩은 들어봤음직한 문장 중에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봐라' 라는 말이 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설명할 가치도 없는 멍청한 행위를 타박하는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깊이 생각할 필요도, 설명할 가치도 없는 멍청한 행위를 하는 자들이 요 몇 달간 빈번히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내가 가진 시각이 편협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다분히 정치적이며 흑백논리에 물든 시각을 가지고 있고, 그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물론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러나 그걸 내가 떨쳐버리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 글에서는 오히려 그 버릇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이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한 탓이다. 잡설을 집어치우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까 인용했던 구절을 벌써 잊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쯤 되어서 다시 한 번 끌어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봐라'. 이 글에서 손가락은 작품의 세계관이며, 달은 작품의 주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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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라는 최초로 창조된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며,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과 카미야마 켄지의 TV 시리즈, OVA를 그 하위군으로 거느리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상업적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공각기동대라는 사이버펑크가 던진 화두. 즉, 작품 내에서 끝없이 변주되는 고스트와 육체의 문제는 미래철학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국내 대학의 입시문제에서 인용될 정도로 그 나름대로의 성찰을 인정받았다. 인형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상기의 문제를 보여주려 했던 첫 번째 극장판과, 고스트 더빙을 이용한 두 번째 극장판 이노센스, 그리고 평행세계라 할 수 있는 TV 시리즈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타치코마의 이야기에서 변주되는 것은 결국 고스트라는 것이 무엇이며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 인공지능과 고스트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만화가는 가벼운 톤으로 질문을 던졌고, 두 감독은 그 질문에 화답하는 듯 각자의 색으로 질문의 어미를 윤창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이 이야기가 아니다.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가진 매력과 그 에피소드들에 대한 성찰 또한 의미 있는 행위가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시급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지체할 시간은 없다.
집중해야할 것은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이다.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국내 네티즌들에게 수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 원인은 바로 이 세계관에서 비롯되며,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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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 작품에 대해 하는 비판은 단순하고 명확하지 않다. 명확히 단순할 뿐이다.

 

http://blog.naver.com/majestie?Redirect=Log&logNo=30014130645

 

우선 이 글의 평을 토대로 글을 풀어 가보도록 하자. 글쓴이가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는 것은 일본 중심적인 세계관이다. 동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핵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졌고, 그 사이 일본은 방사능 물질을 분해하는 마이크로 머신, 일명 ‘일본의 기적’을 이용해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꽤나 많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이런 내용은 극장판이나 코믹스에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으며, TV시리즈에서도 주로 2기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내용이다. 1기가 일본 내부의 부패를 소재로 삼았다면 2기는 국제 정세 설정에 대한 이해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탓이다. 쿠제의 과거 행적들을 통해 보여지는 극중 한국의 상황은 전쟁 난민으로 가득한 모습이며 이는 그 땅에서 현재 숨 쉬고 있는 사람들로서 ‘불편한’ 설정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위에 링크한 글에서 글쓴이가 보이는 반응은 내가 볼 때 과민반응에 가깝다. 1~4의 경우 극중 세계관을 무리하게 현재에 대입함으로써 논리를 완성하고 있고, 5의 경우에는 극중 전개를 위한 설정과, 현재의 정치 상황을 혼동하고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반응은 다른 글에서도 반복된다.

 

http://www.fancug.net/bbs/view.php?id=thoughs&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82

 

단편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 글의 내용은 맞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 ‘불편함’과 ‘잘못됨’을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시각에서 본 이런 반응을 대략적으로 비유하자면, 우주세기 건담 세계관 속 브리티시 작전의 결과 소멸한 시드니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퍼스트 건담을 보면서 분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지난 세기에 벌어진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과거사로 인해, 우리와 그들의 관계가 그들과 호주의 관계와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런 무리한 논리 전개가 힘을 얻을 수는 없다. 디워 내에서 LA가 박살난다고 해서 LA에 사는 사람들이 화를 내지도(영화 값이 아까워 화를 낼 진 모르겠다), 심형래가 반미주의자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공각기동대와 디워를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공각의 세계관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과거와 떼어놓고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렇다 하여 예술 작품 속의 모든 것이 현실과 작자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설정이 현실을 비판하는데 쓰인 것인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어설픈 자위를 위해 사용된 것인지는, 위와 같은 논리로 인해 작자의 이전 행보를 되짚어볼 이유를 부여하며, 그 작업은 잠시 뒤에 이루어질 것이다.
3으로 넘어가기 전에 명시할 것 중 이 글이 타겟으로 삼은 작품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듯하다. 글의 도입부에서 나는 극장판과 TV판, OVA, 코믹스를 공각기동대를 이루는 작품군으로 규정하였으나 뒤에서 말할 내용은 거의 대부분 TV판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과 일련의 작품군을 감상한 이라면 알겠지만 TV판과 두 개의 극장판은 원작의 에피소드들과 이벤트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새로운 스토리를 짜올린 작품들이다. 원작 코믹스에는 현재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문제 삼는 두 번째 TV판의 국제 관계 설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첫 번째 TV판이나 극장판과 달리 두 번째 TV 시리즈에는 원작의 이벤트를 사용한 에피소드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결론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TV 시리즈의 감독인 카미야마 켄지가 독자적으로, 혹은 그의 주도로 인하여 만들어진 확장된 세계관이며 때문에 이 글은 카미야마 켄지라는 인간과 두 번째 TV판에서 그 배경이 등장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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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불문하고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써 작품을 창조한다. 그건 소설가, 시인, 화가, 무용수, 음악가, 미술가 등 모든 예술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작품은,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라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 주제의식이 현실에 뿌리박은 것인가 아니면 공상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인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것인가 그저 즐기기 위한 것인가 정도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때문에 예술 작품을 전방위에서 분석할 때에는 작가의 생애나 이전 행보가 대단히 큰 정보가 된다. 자신의 신념과 정반대되는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TV 시리즈의 감독인 카미야마 켄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오토모 카츠히로의 1988년 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AKIRA에서 배경을 맡으며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9년 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의 배경에 참여했다. 미술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는 돌연 Production I.G에 입사하며 Blood Last Vampire의 각본을 쓰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웬만해서는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작품을 맡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가, 오키우라 토시유키에게 감독을 맡긴 작품 인랑에서 카미야마 켄지는 연출로 참여하며 비로소 공각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시작한다.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이 이력에서 주목하는 것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그가 참여했던 작품들의 성향이다. 아무리 사회가 돈으로 움직인다 하여도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과 일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일을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다른 선택지가 존재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가 특정 성향을 가진 이들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어울리는 이들과 대략적인 생각과 사상을 공유한다는 의미로도 간주할 수 잇을 것이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765359

 

백과사전의 위와 같은 평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아키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며, 동시에 아나키즘을 향한 열망을 드러낸다. 나는 글의 서두에서 내가 가진 이분법적 사고를 떨쳐버리지 않고 이 글을 작성하겠다고 말했으며 그런 단순한 수식에 아나키즘이라는 것을 대입했을 때 이는 분명 우파적 성향보다는 좌파적 요소로 분류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최신작이 무시시(충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성향을 더욱 뚜렷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따로 그 필모그래피를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하며, 그의 방향성 또한 다들 잘 인지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가 직접 감독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미야자키가 큰 영향을 미치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환경주의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가족애 등을 주제로 하며 그 사이에 우익이라는 말이 들어갈 공간은 없어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의 장으로서 일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미야자키는 좌파적 성향을 그 내부에 짙게 깔고 있으며 그런 성향이 작품에 진하게 묻어난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만들어내던 군수품이 비행기였던 탓에 그가 마녀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에서 비행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 또한 널리 알려진 설이다.
인랑을 통해 카미야마와 인연을 맺은 오시이 마모루는 이 논쟁에 두 개의 공각기동대 극장판을 감독한 사람으로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인 동시에 카미야마 켄지라는 이의 성향을 가늠하는 역할 또한 수행하는 사람이다.

 

http://superdry.egloos.com/1120824
http://blog.naver.com/raccodn119?Redirect=Log&logNo=90022068815

 

위 링크들에서 언급되듯이 그는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즉 한때 일본 내에서 가장 붉은 색을 띄었던 집단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물론 전공투에 참여했었다는 경력이 그가 왼쪽 인간이라는 증명서가 되지는 않는다. 자토이치와 코미디언 경력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또한 전공투에 참여했던 인물이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우익 성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시이 마모루가 만든 Blood: The Last Vampire, 야수들의 밤, 인랑 등에 공통적으로 내려지는 평가는 ‘전공투 세대의 좌절과 현실회귀를 그린 전공투 세대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전공투에 대한 회한과 향수를 아직도 그의 작품 저변에 깔고 있으며 이는 그가 아직도 그때의 행동을 긍정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오시이 마모루가 원작을 만든 인랑의 경우 극중의 섹트의 모습은 전공투의 그것을 닮아있고, 그 또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전공투 세대의 회고적인 생산물로 봐달라 이야기했다. 단순하게 선악을 나누었을 때 섹트는 인랑 극중에서 선에 가깝다. 과연 이런 성향을 가진 원작자와, 그 원작자 밑에서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메카닉 디자인을 맡았던 감독을 도와 연출을 맡았던 카미야마 켄지가 극우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그 반대의 결론은 나올 수 있을지라도 많은 이들이 비난하는 성향을 그의 이력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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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디스토피아물의 공통점이라면 극중에서 제시되는 음울한 사회의 모습이 안티테제로서 제시된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부터 아일랜드, 위에서 지나친 AKIRA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따라서 주인공의 사회 탈출 혹은 변혁 성공 여부에 차이가 있을 뿐 디스토피아 물들의 사회는 깨부숴야 할 대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공각기동대는 그 연장선상에 서있다. 첫 번째 TV 시리즈인 S.A.C에서 보여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개인의 사욕과 질투에 의해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잔인한 세계이며, 두 번째 시리즈인 GIG에서 제시되는 것은 고다 카즌도로 상징되는 비인간적 정치 논리다. 두 시리즈 모두에서 공안 9과는 해결사 역할을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S.A.C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해체된 9과는 공을 검찰에 넘기는 대가로 살아남고 GIG에서 또한 그들은 그야말로 음지에서 일한다. 중요한 건 공각기동대 내에서 9과가 바로 정의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묘사되는 것이 불만스러울지 모르나 감독은 끊임없이 극중 일본 사회의 썩어문드러진 속내를 드러내고 9과라는 대리인을 통해 그것을 박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GIG에 등장한 국제 정세 또한 ‘박살’을 위한 전제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의 처음에서 제시한 무라사메 님의 블로그 링크에서는 이러한 정세 설정이 극우적 유치함의 표출이라 규정했으나 GIG 내에서 주동인물은 분명 9과와 쿠제이지 고다와 미국 정부가 아니다. 난민의 자기희생과 고다의 타인희생은 서로 대비되어 보여지며 결국 감독은 쿠제라는 인간과 난민들을 옹호하는 편에 서지 결코 그들을 폄하하는 쪽을 지지하지 않는다. 쿠제가 결국 흑막에 의해 제거되는 라스트신은 무대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 인간들이 고다, 또는 미국 정부의 또다른 상징물이라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GIG에서 제시되는 국제적 상황은 그 자체를 우익적 욕망의 표출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인 것이다. 잔혹한 살인마를 정의의 사도가 처단하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살인마 캐릭터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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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와 비슷한 논란에 휘말렸던 애니메이션 중 코드기어스가 있다. 코드기어스의 설정은 보는 입장에 따라서 일본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혹은 일본을 한 세기 전 한국의 입장으로 만듦으로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본인들이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럴 때에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 이의 성향이다. 코드기어스의 이념적 방향에 관여한 것은 방관자적 성격의 감독인 타니구치 고로라기보다 PD인 다케다 세이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는 조총련과 일련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우익적인 인물이며 그런 맥락에서 볼 때에 위에 제시한 두 가지 해석 방법 중 두 번째 것이 비교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뜬금없이 코드기어스를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긴 탓이 아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9351&yy=2007

 

내가 언급한 타니구치 고로와 다케다 세이지의 정보는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몇 번만 타자를 두드려 보면 나오는 이야기이고, 그 정보가 제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나보다 더 편협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았을 때의 결과물을 저 기사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생각한다. 기사가 기자의 글을 충분히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데스크의 입맛에 따라 각색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그들이 정보를 되새김질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며, 고찰도 없이 단정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침략 전쟁을 온 주제에 침략에는 관심이 없고 건프라 만드는데 정신이 팔린 개구리들을 그린 만화가 군국주의의 산물로 취급받고, 극우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사의 생산물이 혐한류나 지팡구와 같은 선상에 놓여 평가받는 모습은,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을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간주해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기 있는 달을 보라, 손가락 대신에.

 

-본문 중에 제시되지 않은 참고 웹사이트들

 

http://blog.naver.com/danielsohn?Redirect=Log&logNo=120002777245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한 푸른우물 님의 포스팅.

http://anizone.net/bbs/zboard.php?id=ani_preview&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3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 ‘우리나라에는 국수주의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균형을 위해서 필요는 하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은 그렇게 망언까지 해가는 국수들이 바글바글하는데......’ 이 글귀를 지인인 시노 님은 ‘우리나라에는 개인이 소지한 총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균형을 위해서 필요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그렇게 집안에도 총기가 바글바글하는데...’ 라고 멋지게 패러디했다.

 

http://burial666.egloos.com/370589 카미야마 켄지라는 인물에 대한 부산싸나이 님의 포스팅. 카미야마 켄지의 이력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해 주셔서 작업이 훨씬 간단해졌다.

 

http://superdry.egloos.com/1120824 오시이 마모루 작품 기저의 사상에 관한 JOSH 님의 포스팅.

 

http://cafe.naver.com/2004khusssjapa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9 인랑이라는 작품을 통해 오시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가. 재석 님의 글이나 네이버 카페글의 변칙적 검색에 걸린 텍스트인 탓에 링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듯하다.

 

http://blog.naver.com/eagle5341?Redirect=Log&logNo=140041428929 코드기어스에 대해 쓰는 데 도움이 된 광휘 님의 포스팅.

 

http://papk01.egloos.com/1072722 본인과 시각은 정반대이나 타케다 PD라는 이에 대한 반대쪽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Delta38 님의 포스팅

 

 

 

 

 

 

ps. 냅 저 씹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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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익명

    길다..... 읽기 귀찮의즘 활도 시작!

    • 2007-11-23 13:17:3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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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번 캠프 오세요?

    • 2007-11-23 10:05:2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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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오오...그러면 오시이 마모루가 우익이란 이야기는 근거없는 이야기였군요. 우파성향 인물로 알고있었는데...

    • 2007-11-22 12:27:0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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