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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과연 필사는 필요한가

  • 작성자 전성태
  • 작성일 2008-10-09
  • 조회수 1,033


'시를 밀봉하는 작업'
필사를 이르는 말 중 가장 멋진 표현 같아요. 혹시, 필사한 표현은 아니죠? 

많은 작가분들이 습작기 때 필사를 했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당장 김소진 소설가와 신경숙 소설가가 전하는 경험담을 지면에서 접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필사를 해보지 않아서 필사가 사고력과 문장력을 기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우선 작품을 깊이 읽는 데는 명백히 효과가 있을 것 같고, 문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개성과 스타일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일견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김소진 소설가와 신경숙 소설가의 개성은 또 독보적이지 않습니까?

 

습작기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창작이 행해진곤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고유한 색채를 가진 사람은 드물 거예요. 필사도 모방의 한 방식이 아닐까요. 어쨌든 제 생각에는 습작하는 데 어떤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수단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저는 메모를 해서 말을 밀봉합니다. 생활이 산만해지면서 메모지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뭐 작품에 대한 구상도 있고, 번뜩 떠오르는 문장도 있지만 대개는 우연히 듣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에요. 독특한 뉘앙스를 가진 말을 들었을 때 잊기 전에 적어 둡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흔히 '아궁이에 불을 때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아궁이에 불을 먹이다'라고 표현한 걸 들으면 가슴이 벌렁벌렁합니다. 알고 보면 이 말은 나이 드신 분들이 즐겨 쓰던 표현입니다. 요새는 잘 안 쓰지만. 어제 해거름 산책길에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별이 점점 또렷해지는 걸 보면서 '별이 여물다'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오늘은 귀갓길에 우체국 영수증 여백에다가 또 뭔가를 밀봉했군요.

'본문이 뭉텅이로 달아나버린 책', '캄캄한 곳' (그 옆에다가) '캄캄하고 서늘한 곳'(세상, 무덤), '망할 놈의 할망구' '곡식을 많이 만져 까슬까슬해진 할머니의 손이 떠오르는 날이다'... 등. 무슨 맥락의 말인지 도통 모르시겠죠? 영업 비밀이라 저도 가르쳐드릴 수 없네요.

 

 

그렇다고 메모해둔 말들이 다 제 말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 말들 중에 마음 속에서 충분히 숙성한 말이라야 글에 옮겨지더군요. 밀봉이 심해서 뒤에는 무슨 맥락에서 이 말을 주워담았는지 저도 기억 못할 때가 많아요. 어쨌든 저는 이도 세상의 말을 필사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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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학을 꿈꾸는 동생이나 친구들을 보면 필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색이 죽고 작가의 개성이나 스타일을 따라하게 된다라나,

저 같은 경우는 필사를 '내 속에 시(저같은 경우)를 밀봉하는 작업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역시 굳은 심지의 아이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필사에도 방법이 있다면

어느 방법들이 존재하고 기성 작가들은 필사를 하셨거나 하실때, 다른 점이 계신지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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