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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의 「새로운 기쁨」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08-24
  • 조회수 1,437

새로운 기쁨


그런 나라에는 가본 적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본 적 있어요

나의 경험은 아침잠이 많고 새벽에 귀가합니다 잎사귀를 다 뜯어먹힌 채 돌아옵니다

안다고 말하고 싶어서 차바퀴꿈은 많이 꿉니다 황봉투에 담긴 얇고 가벼운 꿈인데


낮에는 구청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감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까치가 까치밥을 쪼는 것을 보고

밤에는 하염없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트빌리시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그런 도시에는 가본 적이 없고


까치가 나뭇가지를 툭 차면서 날아가는 것은 낮에 본 것

미치지 않고서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는 것같이

팔이 떨어져라 흔들리는 잎사귀들이라면 밤에 본 것


나의 경험은 내내 잠들어 있습니다 다시는 일어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죽어서도 보고 있다면 죽은 것이 아닌데 자꾸 보고 있습니다


유계영,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아침달, 2021


시인 이수명
유계영┃「새로운 기쁨」을 배달하며

   경험이란 무엇일까. 경험은 현실과의 만남이다. 현실 세계로 발을 딛고 들어서는 것이다. 들어서서 현실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은 그냥 보는 것과는 다르다. 존재를 새롭게 빚어 놓는 경험과 달리, 보는 것은 존재가 움직이지 않고도 가능하다. 

   시에서 나는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경험의 세계로 들어서지 않고 그저 세계를 본다. “낮에는 구청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까치가 까치밥을 쪼는 것”이나 “나뭇가지를 툭 차면서 날아가는 것”을 본다. 밤에는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보거나 영화를 본다. “얇고 가벼운 꿈”을 꾼다. “그런 나라에는 가본 적 없”고“그런 도시에는 가본 적이 없”는 나는 경험이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경험으로부터 멀어져간 내면의 삶, 이만큼 떨어져 바라보고만 있는 삶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새로운 기쁨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험을 깨우는 순간을 나는 그리고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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