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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창원」

  • 작성일 2024-10-11
  • 조회수 389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시인 김언
조성래의 「창원」을 배달하며

   아마도 화자는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절 내내 방황하고 방랑하면서 어지간히 모친의 속을 썩였을 것 같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시의 앞쪽부터 볼까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그곳과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화자가 못 견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딘가와 혹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일 겁니다. 가까워지는 걸 못 견뎌 하는 이가 그럼 먼 곳을 좋아하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먼 곳을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곧바로 먼 곳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성격이 아니고서는 저런 발언이 나올 수 없지요.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기질이 방황을 만들고 방랑을 만들고 그러면서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했을 시절이 훤히 내다보이는데,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 누구보다 힘들었을 사람은 어쩌면 화자 자신이었을 겁니다. 목숨이 다해가는 어머니 앞에서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어지간히도 어머니 속을 썩였던 자신의 못난 과거를 탓하는 마음이 읽힙니다. 곧이어 “당신도 당해 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렇게 못난 시절을 지나온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지옥 같은 마음이었음을 고백하는 마음이 또 읽힙니다. 그렇습니다.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한 사람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힘들 겁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요. 누구보다 자신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 자신을 못 견뎌서 나오는 말, 그게 누군가에겐 또 시의 말일 겁니다. 이 시처럼 뒤늦은 후회와 탄식과 울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지옥처럼 따라붙는 것이 자기 자신이고, 그걸 어쩌지 못해 어쩌지 못하는 말로 풀어내는 것이 또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시는 아무리 잘나봐야 “혼자서 듣는 소리”에 불과하고 혼자서 들어야 하는 소리에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도 죽고 나도 죽고 모두 죽고 죽어서 아무도 남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 혼잣말 같은 소리는 방황하듯이 방랑하듯이 돌아다닐 겁니다.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잘도 걸어 다닐 겁니다. “마치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또 이렇게 읊조릴 겁니다. 후회로도 탄식으로도 다 덮을 수 없는 지난날을 곱씹으며, 곱씹으며 나오는 말. 그게 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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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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