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준의 「팔각정」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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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수명
서호준┃「팔각정」을 배달하며
두 사람이 팔각정에 있다. 연인이었는지 사촌지간이었는지 모른다. 눈이 내리는데 가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없는 계절이다. 다른 사람은 없다. 알던 사람들을 “몽땅 태운 720번 버스가 언덕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존재들 같고, 팔각정은 마지막 현실적 장소처럼 고립돼 보인다. 팔각정에서 무엇을 할까. 가지 요리를 먹는다. 나는 내 존재를 표시라도 하듯, “맛을 느끼기 위해 꼭꼭 씹어야 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감각하게 된 것에 대해 “뜨거운 묘사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든 문장을 걸고 아무 내용도 남기지 않기로” 한다. 이 세계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세계가 내용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있어도 사라져 간다.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위태로운 팔각정을, 그리고 두 사람을 지워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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