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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0-12
  • 조회수 829

소설가 이승우
이경은의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를 배달하며

   어떤 기억은 너무 선명한데 어떤 기억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가까운데 어떤 기억은 아득하다. 그것이 기억에 붙은 그림자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림자가 카메라 렌즈가 되어 기억을 선명하게도 흐릿하게도,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지게 만든다고. 그림자가 너무 진해도 옅어도 문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너무 짙으면 기억이 가려지고, 너무 옅으면 기억에 혼돈이 온다고, 너무 짙으면 감정이 과도하게 들어가고, 너무 옅으면 상상이 덧붙여진다고. 

   과거의 경험이 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 된다. 우리는 기억이 편집된 과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작은 일은 커지고 어떤 큰 일은 작아진다. 어떤 일은 짙어지고 어떤 일은 흐려진다. 어떤 일은 눈앞에 종주먹을 들이대며 억압하고 어떤 일은 물속으로 숨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에 대해 우리는 주권이 없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은 실은 비문이다. 기억이 떠오르면 속수무책인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기억에게 당한다.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듯 기억을 조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기억은 가깝게, 선명하게, 어떤 기억은 멀리, 흐릿하게······.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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