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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스매싱의 완성」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0-26
  • 조회수 977

소설가 이승우
김은의 「스매싱의 완성」을 배달하며

   대구는 가까운가, 먼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준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는 서울에서는 멀지만 부산에서는 가깝다. 춘천과 비교하면 서울에서도 가깝다고 대답해야 한다.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대구는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멀고 가까움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것도 변수다. 30분 거리면 걷기 좋은 거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분 거리도 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대구가 가까운지 먼지는 말할 수 없다. 

   언덕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오르막길이라고 부르는 길을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내리막길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삼아 말하기 때문이다. 상대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는 객관적 기준을 잃었다. 그러나 타인의 자격을 따질 때 우리는 엄격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요구되는 조건과 능력이 자격이다. 테니스 모임의 회원 자격에 다른 것, 예컨대 ‘직업이나 집안, 출신 학교’ 같은 것이 끼어들면 세상은 험악해지고 시끄러워진다. 나와 ‘가까운가, 먼가’가 아니라 기준에 맞는가를 따져야 한다. 자기 자리를 기준 삼아 멀다고, 혹은 가깝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오르막길을 내리막길이라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왼쪽을 오른쪽이라고 고집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부터 먼저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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