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웅덩이
- 작성일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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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의 웅덩이
김정남
1
방문이 벌컥 열리는 서슬에 놀라 눈을 뜬다. 선잠이 들었기에 그 거친 손길까지도 오롯이 전해진다. 창문이 푸르게 변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기에 눈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뻑뻑하고 쓰리다.
“아이랑 밥 좀 먹어 줘!”
바짝 독이 오른 아내의 말투가 뾰족하게 신경을 건드리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른팔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는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뒤미처 깨닫는다. 장애를 수시로 무시하는 오래된 습관이 밉다. 무려 5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이 네 손가락은 그저 매달려 있을 뿐 움직일 수 없고, 주먹을 쥐었다 펴는 간단한 동작을 해보려고 해도, 그런 나를 조소하듯, 엄지손가락만 간신히 까딱거린다. 이제 손을 쓸 수 없단 말이다. 이렇게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시켜도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나는 왼손으로 안경을 집어 얼굴에 걸친다. 아내는 쿵쿵거리며 빠른 발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식탁으로 가보니 아들이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있다. 구운 햄을 케첩에 듬뿍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열두 살 남자아이. 한창 먹고 클 나이지만 그 왕성한 식욕이 맹목적인 생의 본능인 양 싫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아내는, 아이 혼자 밥을 먹으니 그 앞에 앉아 있어 주라고 매일 아침 나를 깨운다. 그렇다고 내 밥과 숟가락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밥통에 매달린 주걱으로 퍼 먹으면 되지만, 자발적으로 밥 한 공기 퍼 담기가 귀찮다. 아이에게서는 아빠도 먹어, 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자기도 밥 먹고 학교 가기 바쁜 몸이라는 뜻인지는 몰라도, 야릇한 배신감 같은 게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만 먹지 말고 김치도 하나 먹자.”
햄만 허겁지겁 먹는 아이에게, 왼손으로 겨우 김치 조각 하나를 집어 밥 위에 올려 주려는 찰나, 아이가 눈을 치뜬다. 안 먹겠다는 뜻이다. 아침 식탁에서도 나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바라본다. 저 방이 아내와 아들의 침실이 된 것은 아이의 나이만큼 오래된 일이다. 다 큰 아이가 엄마랑 잔다고 나무라는 말을 해보아도, 아이는 절대 혼자 잠을 자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이 방 침대는 내 잠자리가 되어버렸다. 서재라고 거창하게 부를 수는 없어도 대학 시절부터 지고 나른 책들이 꽂혀 있는 내 방은, 이 집에서 나의 미미한 존재감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공간이다. 결국 아이 방과 내 방 모두를 쓰게 된 나에게 아내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듯, 독점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나를 힐난했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식탁에서 일어나자 나는 주섬주섬 반찬 뚜껑을 닫고 빈 그릇들을 치운다. 옷을 차려 입고 현관으로 향하는 아내의 손에는 자동차 키가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다. 아이도 제 엄마를 따라 나간다. 아무도 다녀오겠다는, 인사 따위는 건네지 않는다. 대신 현관 도어 록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이제 집에는 아침 햇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 소리도 들릴 만큼 적요만이 자리한다. 아내는 몇 달 전 문을 연 퀼트 공방으로, 아이는 학교로 가서 서로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내는 이제 더 이상 당신만 쳐다볼 수는 없다며,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작업실을 열었다. 퀼트는 아내가 아이 옷을 만들어 입히기 시작하면서 취미를 붙인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는 대로 학원을 돌다가 제 엄마의 가게에 들러 저녁을 시켜먹고, 그 둘은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나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단지 오른손의 네 손가락을 쓰지 못할 뿐이다. 이 따위 위로에 각성될 생이라면 세상의 어떤 불행도 원망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 불행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아니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기간제 교사로 나가던 학교에서 병가 60일에 연가 3일을 포함하여 모두 63일을 쉬고, 두 달을 겨우 때우고 나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1년이라는 계약 기간만이라도 보장해 준 것에 오히려 감사하라는 분위기였다. 칠판에 판서를 하는 것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심지어 간단한 메모를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허방다리 같았던 생의 길은 거대한 싱크홀처럼 내려앉았다. 드디어 아이들의 입에서 ‘국애자’라는 말이 나왔다. 국어 선생님은 장애자, 라는 친절한 뜻풀이는 필요 없었다.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우울과 짜증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이렇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길게 들어온 아침 햇살이 어느덧 창문에 걸릴 만큼 짧아져 있다. 그만큼 태양은 하늘 높이 떠오르고 좁은 거실에는 오래도록 그늘이 자리할 것이다.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빼 마시고 뒤편 베란다로 나간다. 끊었던 담배가 다시 생각나지만 그보다 먼저 봄의 기운을 가득 빨아올린 연둣빛 나뭇잎사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키 큰 나무들은 지금 내가 서 있는 3층 높이 이상으로 뻗어 올라가 있다. 중력의 힘을 거스르고 위로 위로 치닫는 나무의 에너지. 헌 가지가 부러져도 무럭무럭 새 가지를 밀어내는 나무의 생장. 그들이 내 앞에서 자기들끼리 수런거리며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을 비웃는 듯하다.
무엇을 할까. 텅 빈 백지 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장애 등급이라도 받아서, 장애인 특별전형이라도 보든지.”
얼마 전 아내가 거실 바닥에 통장을 내팽개치며 말했다.
그래, 나도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임용시험을 치른 것은 네 번이 전부지만, 시험을 보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이다. 그간 소설가라는 자의식에 시달리며 2권의 소설집과 1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1권의 산문집을 냈다. 그게 임용시험 장수생의 최대 핑계거리다. 그 사이 아이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났고, 경제사정은 현상유지와 마이너스 사이를 반복했고, 아내는 시들어 갔고, 나는 그보다 더 빨리 지쳐 갔다. 사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몇 년간 임용시험 준비만 집중해서 했다면 2차까지 갔다가 떨어지는 불운쯤이야 막을 수 있었겠지만, 작가라는 알량한 자존심은 오히려 노량진식의 시험 준비를 거부하는 심리적 기저로 작용했다.
계속 쓰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매일 글을 쓸 때만 작가다. 이런 식의 모토는 오히려 나를 더욱 빠르게 지치게 했다. 작품집을 냈을 때도 평단은 침묵했고, 장편을 내면 달라질까 했지만 더욱 완강하게 눈길을 돌렸으며, 작가가 산문집 한 권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에 잡문들을 모아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기억해 주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이 자위행위처럼 느껴졌을 때, 작가라는 이름은 던적스러운 인생의 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0대 중반 늦깎이로 데뷔한 탓에 동년배 작가들과의 교류나 연대는 힘이 들었고, 오로지 ‘독고다이’로 버텨 온 문력이었다.
누구나 다 무명 시절이 있었다는 말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과 다름없는 무의미한 진리였다. 비루한 생을 짜내고 때로는 비틀어서 겨우겨우 써내려간 작품들이었다. 경쾌한 감각, 날카로운 통찰, 번뜩이는 위트와는 거리가 멀지라도.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는 내 운명의 잠정적 결론이다. 나에겐 내가 소설가였을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계약직 교사, 아내에게는 무능한 남편, 아들에게는 아빠라고 불리는 무정명사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장애인에다 실업자라는 이름도 덧붙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일까. 정오의 햇살이 부서지는 거리에서 엷은 현기증에 잠시 비틀거린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 마들역을 지나 중계동 방향으로 걷는다. 이 인생은 어디서부터 틀어져 버린 것일까. 지금쯤 아이는 급식소에서 밥을 타 먹고 있을 것이고, 아내는 공릉동 ‘Mommy 퀼트’에서 헝겊을 재단하며 미싱을 박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가게에 들렀을 때,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노루발 아래로 꾸역꾸역 헝겊을 밀어 넣고 있었다. 소음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내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뭉치면 한줌은 될 법한 실 먼지를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화가 날 것 같기도,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뒤돌아 나오려는데 아내가 희뜩 문가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진작부터 아내는 내 기척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만들어 팔아서 가게세라도 벌고 있는지, 바느질 교실이라도 열고 수강료라도 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가 하는 모든 것에는 맹목적인 것이 들어 있다. 그저 한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몰입하고, 무엇을 위해서 하나 싶어 보면 뚜렷한 방향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묵묵히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일종의 망아(忘我)를 위한 기도나 수행 같은 것이기도 했다.
2
“이제 자기가 아니면 못 할 거 같아.”
소정이 내 밑에서 신음처럼 낮게 읊조렸다.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끌어안고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가 이상하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내게 그녀는 길들여짐에 대한 책임을 넌지시 내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와, 질끈 묶은 콘돔을 휴지통에 넣은 다음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있는 욕실은 물이끼 한 점 없이 희고 환했다. 칫솔 건조대에는 그녀와 나의 칫솔이 나란히 걸려 있고, 세면대 한쪽엔 포장을 뜯지도 않은 면도기가 놓여 있었다. 수건걸이에 걸려 있는 젖은 살구색 팬티는 아랫부분이 보풀이 일어나 색이 조금 바래 있었는데, 팬티를 벗어 들고 세면대에 서서 애벌빨래를 하는 그녀를 상상하자, 그 모습이 희극적이면서도 조금은 애처롭게 느껴졌다.
다시 어둑신한 방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바람벽을 향해 몸을 웅크린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중에서 바지를 찾아 다리를 꿰고 있을 때, 이불 틈에서 엷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바지를 채 추키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다가가 이불을 들추려 했지만 그녀는 이불자락을 말아 쥐고 놓지 않았다.
“언제나 자긴 자기 욕심만 채우고는 가지.”
그녀의 말에는 울음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어렵사리 이불을 걷어내자 눈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미안해.”
말을 내뱉자마자 실수를 직감했다.
“또 그 소리.”
그녀의 어깨가 어두운 바닷물 속의 해초처럼 흔들렸다.
아침을 함께 맞고 싶다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번번이 좌절시킬 수밖에 없었다. 보내기 싫겠지. 그럼 나라고 가고 싶겠는가. 이렇게 따질 수는 없었다. 다 알면서도 투정하고 보채고 상처 주고 아파하는 거니까. 언제까지 이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서로를 떠나보낼 수 없어 애면글면하던 시간.
기간제 교사라도 담임 반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실습생을 지도해야 했다. 소정은 2년 전, 그렇게 나와 처음 만났다. 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교직을 이수해서 교육실습을 나오게 된 것이었다. 국어 교생은 모두 네 명 나왔는데, 모두 모교 졸업생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대학 졸업반이라고는 해도 나에겐 아직은 앳된 여학생으로 보일 뿐이었다.
실습 첫 주가 막 끝난, 금요일 오후였다. 수업실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잠시 교생실에 들렀을 때, 그녀는 실습일지를 쓰고 있었다.
“안 한 것도 한 것처럼 지어내는 거 아녜요? 너무 소설 쓰지 말고요, 쌤.”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툭 치고 나오려는 찰나였다.
“아, 선생님. 소설가시죠?”
그녀가 벼르던 얘기라는 듯이 불쑥 말을 던졌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래요?”
내가 어눌한 말투로 우물쭈물 말했다.
“선생님 작품은 문창과 다니면서 본 적이 있어요. 「모래무지」나 「환상일기」 등등.”
그녀가 고운 치열을 내비치며 웃었다. 나는 그러냐면서 무심한 듯 말했지만, 큰 주목을 얻지 못한 나 같은 글쟁이의 작품을 읽어보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실제 이유는 곧 밝혀졌다. 문단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그녀가 다니는 대학에 소설창작 강의를 나갔고, 그때 내 단편을 텍스트로 삼아 강의를 한 것이었다. 그저 알음이 있을 뿐이지 절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그가 내 작품을 강의에 올리기까지 했다니 어리둥절했다. 그런 연유가 있다고 해도 작가로서 불특정 독자 중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신기한 일에 속했다.
“뭐랄까요? 선생님 작품은 모두, 나 외로운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을 인상비평이라고 하지요.”
내가 부러 건조함을 과장해서 말했다.
“그런 말씀은 잘난 척이라고 하지 않나요?”
그녀가 스물세 살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과감하게 말을 던졌다. 나는 움찔했으나 요즘 학생들을 다 그러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남자 주인공들이 다 절망적이고 또 잘 울고 그렇죠? 단단하지 못한 감성의 소유자들.”
내가 맥 빠진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하튼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선생님 단편집 두 권을 이미 다 읽었거든요. 사실 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안 계셨잖아요. 교생 나오기 전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고 처음엔 동명이인인가 했지만, 선생님이 맞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교과지도 선생님으로 이렇게 계시니…….”
그녀는 조금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가 언젠가 소설 속에서 썼던 문장. 이제 슬슬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군,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후, 교생들과 전체 회식 자리가 있었고, 교과지도 교사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그녀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렇게 잇닿은 눈길이 서로의 마음을 덥히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렸다. 꿈틀거리는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미열처럼 달뜬 감정에 엷은 현기증이 일었다. 결국 자리는 여럿이 아니라 둘이 되었고, 영화를 봤고, 입을 맞췄고, 술을 마셨고……. 서로의 마음속에 서로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5월의 어느 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실습 기간은 금세 끝나버렸지만 우리의 만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있을 때, 나는 계약직 교사도 무능한 남편도 무책임한 아빠도 아닌, 한 사람의 작가였고 무엇보다 그녀의 오빠였다. 그래, 23살의 그녀는 17살 위인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지하의 술집에서 여자들이 부르는 교태를 가장한 오빠가 아니라, 손아래 여자가 손위 남자를 지칭하는, 우리 모국어의 살가움을 그대로 간직한 오빠라는 단어로. 술을 마시고, 방을 잡고, 그녀의 몸을 더듬다 마침내 깊숙한 곳에 손길이 닿았을 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오빠. 그 봄날 같은 단어. 늦봄의 훈풍 같은 달착지근한 그 말.
그녀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부모가 갑작스레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람에, 그녀는 1학년 때부터 줄곧 자취를 해왔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더 이상 지독한 방향제 냄새로 가득한 모텔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퇴근 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녀를 만났고, 그녀의 원룸에 들렀고, 텅 빈 냉장고뿐인 그녀를 위해 음식을 사다 날랐다. 매번 핑계를 대고 나갈 수 없는 주말을 저주했고, 그럴수록 그녀는 고독해 했다. 결국 나는 월요일을 기다리는 이상한 남자가 되었다.
갈게. 이불 속에 있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날따라 멀고도 지루했다. 그녀가 사는 태릉역 부근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11월 중순의 바람은 이제부터 겨울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듯, 최선을 다해 날을 세웠다. 아내의 퀼트방이 있는 공릉동을 지나, 언젠가 고열에 시달리는 소정을 업고 갔었던 백병원을 지나, 그녀와 처음 영화를 보았던 노원역 롯데시네마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노래방 입구에서는 과장된 음성의 트로트 가락이 새어 나왔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웃고 있는 마사지 전단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한 취객이 전봇대를 붙잡고 괴로운 듯 토사물을 게워내고 자리를 뜨자, 밤을 잊은 비둘기들이 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꼬치집 간판에 매달린 전구가 추위에 떨며 점멸하고 있었고, 발길은 홀린 듯 그 집으로 향했다. 문을 곧 닫아야 한다는 주인에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한 것이 결국 두 병으로 늘어났다. 굳었던 몸이 풀려서인지 취기가 맹렬하게 타올랐다. 혼자 방에 누워 있을 그녀가 이제 울음을 그쳤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다시금 연민이 고여 들었고 그것은 마음의 반대방향에 서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은 나를 늘 사이에서 서성이게 했고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했고 결국 전부를 아프게 했다. 소주 한 병을 더 시킬까 망설이다가 나는 주인의 눈총이 불편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바람은 재주도 좋게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거리에 이리저리 날리는 전단지처럼 다리는 힘없이 휘청거렸다. 소주 냄새 밴 매운 콧바람이 허옇게 뿜어져 나왔다. 오로지 그것만이 내가 숨 쉬고 있음을 감득케 했다.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날 때 거리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약간은 으슥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기우라고 생각하고 바쁠 것도 없는 길을 재촉했다. 그때였을 것이다.
퍽! 쇠파이프, 돌멩이, 각목, 망치, 뭐 이런 것들 중 하나였을까. 뒤통수를 뭔가에 맞은 것 같았다. 눈앞으로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곧바로 오른손이 뒤로 꺾였고, 손등이 무엇인가에 짓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암전. 정신은 더 이상 나를 돌보지 못했다. 불의의 일격이란 곧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눈을 뜨자 시야가 부옇게 열렸다. 한참 후에야 동그라미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천장 패널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동그라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뒷목을 당기며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머리에 가져가려 했지만,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죽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만 희미하게 느껴졌다.
“정신이 좀 들어?”
흐릿한 눈앞에 무언가 유령처럼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눈이 초점을 맞추기 전에 그 목소리가 소정의 것임을 알았다. 그 목소리로 인해 몽롱한 의식은 점점 내 것으로 돌아왔다. 내가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자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많이 아프지? 눈 감고 있어.”
그녀는 내가 의식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지, 한참 동안 곁에 없다가 한 무리의 의사들을 몰고 왔다.
다행히도 엑스레이나 CT상으로 출혈은 보이지 않아요. 두개골에 타박상이 조금 있을 뿐이지요. 팔목 인대가 조금 늘어난 상태고……. 그런데 문제는 오른손의 손등 뼈가 모두 부러졌다는 거예요. 아예 뼈가 으스러졌어요. 수술을 한다고 해도,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거예요.
“이재준 씨! 정신이 좀 들어요?”
의사가 내 얼굴을 손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걸 탓할 때가 아니었다. 손은 붕대에 단단히 감겨 있는 듯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환자하고 어떻게 되세요? 가족 분들하고 상의해서 수술 날짜부터 잡아야 해요.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면 내일이나 모레쯤 입원실로 옮기도록 하지요.
의사들은 소정에게 하나하나 빠짐없이 그러나 건성건성 기울임체로 말하고 사라졌고, 간호사는 팔에 꽂혀 있는 주사바늘에 새 링거 줄을 연결하면서 그녀에게 면회 시간이 끝났으니 나가야 한다고 궁서체로 말했고, 기분이 더러워질수록 나는 의식이 점점 또렷하게 돌아왔고, 손과 팔의 통증이 고딕체로 잡히기 시작했다.
“오빠, 지금 갈게요. 오빠 집에는 어떻게 할까요? 또 학교는요?”
소정이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 그렇게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텐데도 말이다. 나는 억지로 입을 떼었다.
“어, 어떻게…… 되, 된 건지 마, 마, 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지만,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퍽치기를 당한 거 같아요. 다행히 핸드폰 긴급연락처에 내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어서 바로 전화가. 한 새벽 4시쯤인가?”
“그럼 해, 핸드포, 폰은 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있어요.”
그녀가 단답형으로 말할수록 난 더 갑갑증이 일었다.
“그럼, 그, 그걸로, 우, 리, 집이라고 거, 검, 색해서…….”
“알았어요. 핸드폰 충전해서 간호사한테 알려줄게요.”
그녀는 몸조리 잘하라는 말도, 힘내라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없이 곁을 떠났다. 그녀도 이 순간이 난감할 것이었다. 집과 연락이 된 다음부터는 나를 찾아오는 일도 눈치를 봐야 할 테니까. 이런 일에서 아내라는 이름의 어떤 여자에게 나에 대한 책임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싫었을 것이다. 내 상황에 대해 가족이나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 줄 수 없는 자신이 비참했을 것이다. 이러한 피동적 각성이 비합법적인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불러왔을 것이다.
3
무작정 걷는다. 오후 2시가 가까워온다. 노원역 부근을 지날 때,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자 모골이 송연해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난다. 장소는 아마 길 건너 어딘가일 것이다. 범인들은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므로 경찰은 그들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가로등도 드물었고 CCTV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퍽치기는 늘 있는 것이고, 경찰에게도 그것은 범상한 일에 속할 것이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억울하지 않다. 이 공화국에서 치안은 제도일 뿐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인데, 그로 인해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어렵다고 해도,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속했다. 가르치고 싶다면 아내의 말대로 장애등급을 받아 임용시험에 응시하면 되는 것이고, 글을 쓰겠다면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연습을 맹렬히 하면 될 일이다. 내가 퍽치기를 당하고 오른손을 못 쓰게 된 것은, 죽고 싶은 이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거와 같다고 할까.
자조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백병원 사거리 맥도날드 앞을 지난다. 튀김 냄새가 코끝에 전해진다. 그제야 아침부터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다. 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지만, 허기 탓인지 발걸음이 멈춰진다.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유리문 너머 계산대는 한산하다. 자동문 버튼을 누르자 컹, 하고 문이 열린다. 동시에 빅맥이, 후렌치후라이가, 맥너겟이 마구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 언제 이런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던가. 아무래도 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 와 이런저런 메뉴를 시켜 본 경험이 되살아난 것이다. 런치세트를 시키고 싶었지만, 이미 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서 선택할 수가 없다. 언제나 인생에 지각을 하는 나는 패스트푸드점 런치타임 할인도 소용에 닿지 않는다. 케이준버거 하나와 콜라를 주문한다. 창가에 앉아 콜라 한 모금을 마신다. 달리는 자동차와 인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5월의 부신 햇살 아래 고즈넉하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하루는 저물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돌아갈 것이다. 지금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저 중년의 아줌마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할 것이다. 세상은 평화로운데, 그 안식 속에 나는 없다. 종이 포장을 펼쳐 버거를 한 입 베어 문다. 그저 퍽퍽하기만 할 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조악한 음식이나마 사료처럼 공급해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니. 먹는 일, 돈을 버는 일, 다시 먹는 일, 이 모든 것이 악순환의 고리처럼 느껴진다. 버거는 반도 먹지 못하고 김이 새어버린 콜라를 들어 목을 축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한 여인이 계산대 앞에 선다. 유모차 아래에 찔러 넣은 장바구니에서 대파 한 단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는 듯하더니, 유모차를 끌고 내가 앉은 자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창가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흰 야구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제법 귀엽게 느껴진다. 어디 가나 젊고 아리따운 아낙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이도 다리를 버둥거리며 열심히 옹알이 중이다. 어미는 푸르게 피어나고, 아이는 그녀가 만든 열매처럼 노랗게 영글어 간다.
나의 아내도 저렇게 환한 모습일 때가 있었다. 내 아이도 내 안에서 방싯방싯 웃고 있을 때가 있었다. 왜 그 시점으로부터 멀어져 버렸을까. 아내는 왜 시들어 갔으며, 아이는 왜 이식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것일까. 결혼 후, 나는 글을 쓰고 기간제 교사일망정 아이들을 가르쳤다. 먹고사는 일을 생각하면 내가 벌어들이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투잡, 쓰리잡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벌어야 했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고 내 능력과 한계를 명확히 했다. 어쨌든 아침이면 나갔고, 저녁이면 들어왔고, 쉴 새 없이 생각했고, 틈틈이 글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속에서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적어도 아내의 입장에서나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지만, 써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나는 능력 있는 남편도, 친근한 아빠도 되지 못했다.
젊은 아낙이 버거를 새처럼 조금씩 베어 먹더니, 아이와 함께 다시 거리로 나간다. 세상엔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오브제가 널리고 널렸다. 거기서 느껴지는 기미 같은 것이 늘 나를 글쓰기로 이끌지 않았는가. 귀하고 아름답고 푸르고 환한 타자들의 영역과 구획되는 나의 비루하고 추하고 낡고 어두운 세계. 이제 그 병원(病原) 없는 환부의 세계에서 나는 손가락을 잃음으로써 구체적인 상실의 즉물적 실체를 얻었다.
살그머니 열리는 자동문 사이로 빠져나간 그녀는 어디론가 길을 재촉한다. 싱그러운 가로수 잎사귀가 그녀와 아이의 차양이 되어 준다. 컴퓨터를 복원하듯 생이 틀어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핸드폰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린다. 강순호 작가다. 문자는 순호에게 왔지만 내 귓가엔 “선생님 작품은 모두, 나 외로운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던 소정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린다. 언젠가 소정과의 술자리에 순호를 불러내 그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나를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문자는 오늘 있을 소설집 『그림자, 독백』 출판기념 소설 낭송회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다. 애초에 문단 모임에 잘 나가지 않았지만, 오른손을 잃은 다음부터는 두문불출하며 지내 왔던 터다. 하지만 순호는 소정에게 나의 소식을 듣고 내가 손가락을 수술하던 날, 병문안을 와주었다. 그가 지금 보낸 문자도 단체문자라기보다는, 고민 끝에 보낸 개인적인 문자인 것 같다. 가보아야겠다는 결정을 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맥도날드를 나와 다시 거리를 걷는다. 아직 6시 반까지는 여유가 있다.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축 처져 있던 마음이 조금은 살아나는 것 같다. 회비 3만 원. 이게 문제이긴 하지만, 아직 돈을 뽑아낼 신용카드는 있다. 갑자기 맹렬하게 소정이 보고 싶어진다. 순호의 문자는 소정이라는 내 기억의 작약에 불을 지핀다. 타오르고 타올라, 머릿속이 재가 되어버릴 것 같다. 병가 기간과 남은 계약 기간을 합쳐 넉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소정과 인연을 끊기 위해 모진 애를 썼다. 문자가 와도 답장을 피했고, 그녀가 보고 싶어 가슴이 뭉개질 것 같은 밤이면, 태릉까지 걸어가 불 켜진 그녀의 원룸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창문에 그녀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면, 소정아, 소정아, 숨 죽여 부르며 꺽꺽 눈물을 흘렸다. 병신 같은 몸으로 그녀 앞에 설 수가 없었다. 성한 몸이었을 때도 온전하지 못했던 사랑이었으니, 이 모습으로는 불구일 수밖에 없는 내 사랑을 재확인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여겼다.
소정은 거의 매일 나에게 문자를 남겼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대학 동창들과의 소소한 사연을 깨알같이 털어놓기도 했고, 임용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을 얘기하며 자신도 올해는 꼭 합격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무수한 말줄임표라든가, 침묵이라든가, 아니면 오빠 뭐 해요, 같은 문자들이었다. 보고 싶은데 왜 만나 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오빠가 더 큰 불구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내용의 문자도 수없이 날아왔다. 내가 답장이 없자, 자기가 교사가 되면 오빠 하나쯤은 편하게 글만 쓰게 해주겠다는 요구하지 않은 다짐도 해왔다.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곧고 환할수록, 내 마음은 뒤틀리고 어두워져만 갔다. 그녀를 내 품에 온전히 안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 사이, 아내는 얼마나 내게서 사나워져 갔는가. 아침마다 거칠게 열리는 방문. 그리고 썩은 냄새 좀 풍기지 말고 자라는 듯, 네가 남긴 숨결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아느냐는 듯, 거칠게 창문을 열었지. 일어나면 제발 환기 좀 시켜라, 이 말을 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내가 얼마나 싫으면 그럴까. 소정은 나를 안을 때마다 이렇게 얘기했다. 아, 오빠 냄새 너무 좋아. 어떻게 같은 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누구 한 사람의 후각이 잘못된 것은 확실한테, 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누구는 극단적으로 싫고, 또 누구는 극단적으로 좋은 게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어쨌든 아내는 아침부터 나에 대한 경멸을 그렇게 표현했다. 매일 아침, 아이랑 밥 좀 먹어 줘, 라는 말을 레코드처럼 반복하며, 부스스한 아빠의 몰골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는 비루한 인간이고 무능한 남편이고 하찮은 남편이라는 것을 날마다 확인시켜 주는 낙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뭔가 바꾸어 보라는 채근이었을까.
태릉역 부근까지 다 왔을 때, 시간은 4시 반을 지나고 있다. 이제 슬슬 지하철을 타야 여유 있게 출판기념회 장소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3번 출구 앞에서 걸음이 우뚝 멈춰 선다. 회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소정과 3호선을 타고 집으로 올 때, 그녀를 이 앞에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교육실습이 다음날이면 끝나기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도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다 올라섰을 때,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품속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때 나는 소정 샘,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라고 말했고, 그녀는 아녜요, 많이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포옹을 한 채로 그런 썰렁한 말을 주고받았지만, 우린 서로의 온기를 이미 느끼고 있었고, 앞으로도 이 관계가 오래가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로 돌아간 소정이 종강을 앞두고 있을 무렵, 중계동 어느 모텔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안았다.
4
주말이 아닌데도 홍대 부근은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휘황한 네온사인과 빠른 비트의 음악소리가 일시에 감각을 마비시킬 듯 거리에 쏟아진다. 홍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올라간다. 걷는 것인지 사람들에게 떠밀려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갑자기 답답증이 인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프리마켓이 늘어서 있는 놀이터까지 걸어간다. 이런저런 장신구와 소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놀이터는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로 분주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모여들지는 않는다. 공터 한구석에 놓여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살찐 비둘기 몇 마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비듬처럼 흩어진 도시의 부스러기를 게으르게 쪼아 먹는다.
며칠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 비 때문인지, 방부목으로 둘러쳐진 화단 안에 작은 물웅덩이가 보인다. 파이고 기울어진 곳에 빗물이 고인 것이다. 웅덩이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석양에 비낀 불그스름한 구름이 수면 위에 비치고 그 위를 소금쟁이 한 마리가 긴 다리로 미끄러지듯 기어간다. 바람이 불 때면 살랑살랑 물이랑 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 가장자리에는 풀씨가 싹을 틔웠는지, 서너 개의 작고 여린 풀이 돋아 있다. 나는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이를 바라본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이 작은 웅덩이는 아주 우연히 생겨났지만, 모든 것을 품고 혼자서 그 시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 이때쯤이면 흔적도 없이 말라버릴, 흙 몇 삽으로도 쉬이 메워질, 아니 비질 몇 번이면 쓸려 나갈 웅덩이. 거무스름하게 비친 내 그림자도 하오(下午)의 웅덩이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밤이 오면 도심의 소음과 어지러운 조명 속에서도, 희미한 별은 몇 점 돋을 것이다. 그럼 이 웅덩이는 캄캄한 우주의 아련한 별빛을 담을 수 있을까. 다시 아침이 오면 메마른 밤을 지새운 비둘기가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이 웅덩이를 찾아 목을 축일 것이다. 나라는 비루한 웅덩이에도 생의 무엇인가가 깃들어 있지 않은가. 내 것일 수 없는 소정이, 환멸의 자화상을 일깨우는 아내, 별과 별 사이의 거리만큼 멀어진 아들,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언어라는 이름의 감옥. 그것들을 담은 채 앓고 있는 나라는 작은 웅덩이. 쓸어내 버리고 싶어도, 묻어버리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내 생의 웅덩이.
출간기념 낭송회가 열리는 상상마당까지 걷는다. 글쟁이들은 서로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악수를 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주고받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안면근육이 굳는 것 같다. 순호는 또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할 것인가. 헐렁한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댄디하고 멋진 그가 아니던가. 그는 모교 문창과에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지 않은가. 그의 페이스북에는 늘 복에 겨운 글쟁이의 행복한 일상들이 도배되어 있다. 절망이나 우울 같은 단어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항상 젠틀하고 명랑했다. 그것이 서로 간의 관계를 구접스럽지 않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고, 문우 관계를 지금껏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일부러 조금 늦게 들어간 상상마당엔 이미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식전에 언더그라운드 여가수 한 사람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언더 특유의 식상한 보이스 컬러로 나른한 일상을 유치하게 속삭이고 있다. 노래가 끝나자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사회자의 소개로 한 사람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그다. 그는 자신의 작품집 『그림자, 독백』 중 한 대목을 읽기 시작한다. 그가 내게 왔어요.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를 맞춰 그가 내게 왔어요. 그때 나는 사랑 따윈 이미 우리 집 해피에게 집어 던진 후였죠. 그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비루해 보였어요. 그런 그에게 나는 이상한 살해 욕망이 꿈틀거렸어요. 이 병신 같은 자식아, 라며 식칼로 그의 배를 난자하고 싶은 충동에 몸서리를 쳤다니까요. 그는 나를 우격다짐으로 안으려 했어요. 안 보던 사이에 참 촌스러워졌군. 비웃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풀썩 새어 나왔어요. 러닝 바람으로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동네아저씨가 다 되어버린 거죠.
듣기가 거북하다. 단문형의 고민 없는 문장들. 얄팍한 위악으로 멋을 낸 문장들. 그 문장들 위에 상찬을 늘어놓는 입만 살아 있는 평론가들. 그의 낭독을 듣고 있자니 나야말로 이상한 살해 욕망이 끓어오른다.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라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는데, 그런 행동은 깽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에 꾹 참고 있을 뿐이다. 오른손이 불구가 되더니 결국 친구 잔칫날에 재 뿌리더라, 라는 말이 회자되도록 할 수는 없다.
낭독이 끝나자 오프닝에서 노래를 했던 여가수가 다시 나와, 축하 인사와 함께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역시 몽환을 가장한 나른한 음색이 몹시 귀에 거슬린다. 겨우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행사에 참여해 준 몇몇 글쟁이들을 소개한다. 누구나 다 알 만한 교수와 문인들이 소개되고, 행사의 품격은 그들로 인해 한층 높아진다. 곧 평론가 한 사람과 강 작가와의 대담 순서가 이어진다. 평론가는 대중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언변으로 좌중을 대변해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지만,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때때로 터져 흥을 돋운다. 객석의 독자들의 질문도 이어진다. 결론은 잘 썼다, 멋지다, 한국 소설이 거둔 또 하나의 성취다, 라는 상찬을 위한 애드리브일 뿐이다.
그가 여가수의 기타 반주에 맞춰 소설의 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낭송하고 행사는 끝이 난다. 로비에서는 곧바로 저자 사인회가 열린다. 그 사이 몇몇 글쟁이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알은체를 해온다. 그들이 건네는 인사는 서로 달라도 결론은 하나다. 걱정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힘내세요, 이 셋으로 이루어진 대화의 토막들. 도망치듯 빠져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힘겹게 참아내고 있다.
사인을 받아든 독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그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비싼 대관료까지 치르면서 낭독회를 열어 책과 작가를 홍보할 수 있는 출판사는 몇 되지 않는다. 그 진골의 자리에 서 있는 그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 노른자위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자리가 아니다. 그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출신이거나 그중에서도 대중적인 인기에 부합하는 소수의 작가에 한정된 성역이다. 여기에 온 글쟁이들도 미래의 어느 날에 이 무대를 꿈꾸는 이들이 있어, 출판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마침내 행사가 어느덧 마무리가 되고, 그가 한구석에 어정거리며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 그가 나를 보아 줄 수 있는 곳에서 어슬렁거렸다는 말이 맞는 표현일 거다.
“언제 왔어? 반갑다.”
그가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나는 아픈 손을 숨기고 왼손으로 그의 손등을 붙잡는다.
“아, 참. 수술 경과는 괜찮아?”
그가 애써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떡이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던진다.
“글, 좋더군. 축하해.”
그는 겸손을 가장하지만, 속으로는 당연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얼른 다른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는 나 하나만을 상대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뒤돌아 나가려는 나를 멈춰 세운다.
“재준아. 뒤풀이 갈 거지? 비어가든이야. 거기 가 있어.”
그는 문우 잘 챙기는 사람으로 인증을 받으려는 듯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자 구면인 한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동행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야, 뭔가 자극을 받는 게 있을지 몰라, 이렇게 생각하며 그를 따라 걷는다. 이런 자리에 따라다닐 처지가 아닌데, 하는 생각도 비등하게 부풀어 올라 발걸음이 무겁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는 글쟁이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빈 의자 하나에 엉덩이를 붙인다. 이미 테이블엔 서로를 잘 아는 남녀 작가들이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치고 있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이 자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들은 순호의 작품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얘기하지는 않고, 이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몇 명이나 대기하고 있는지, 일반투고를 하면 검토를 받을 수 있는지, 이런 말만 늘어놓는다. 낭독회 뒤풀이는 이런 탐색전 혹은 영업전의 순간이다. 글은 서로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서로의 브랜드에만 집중하는, 텅 빈 만남이 바로 이런 자리이기도 하다.
“하오의 웅덩이도 모르는 새끼들이.”
나는 무심결에 혼잣말을 내뱉는다.
“네? 뭐라고요?”
옆에 앉은 한 여성 작가가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하오의 웅덩이.”
내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한다.
“그게 뭐죠? 소설 제목인가요?”
그녀가 의식적인 관심을 보이며 재우쳐 묻는다.
“네. 제가 이번에 쓸 소설 제목이죠. 온 우주를 담고 있는 웅덩이. 방금 전에 놀이터에서 봤어요. 하하하.”
생맥주 몇 모금에 취했는지, 말이 술술 풀려 나온다. 여자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얼른 시선을 거두고, 좀 전에 나누던 출판에 관련된 이야기에 다시 끼어든다.
“나도 이 출판사에서 내고 싶어요. 순호 씨한테 물어보려고요.”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나도, 나도, 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적이 속이 뒤틀린다. 순호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 기분이 나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는 양,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입구 쪽으로 발을 옮긴다.
바로 그때였다. 소정이 문을 밀고 들어온 것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안경을 벗어 눈을 부비고 다시 그쪽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잘못 본 것인가? 아니면 어디로 순간이동이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호프집 바닥에 나타난 바퀴벌레처럼 허둥댄다. 아닐 테지. 그렇고말고. 여기에 왔을 리가 없지. 나는 허탈한 마음에 온몸의 맥이 풀린다. 나가자, 일단.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거리에 다시 토해지자, 행인들이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거칠게 밀치고 지나간다. 뒤를 흘낏 돌아보며 보행의 흐름을 방해하는 나를 경멸적으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다시 집에? 소정이에게? 아니면 다시 호프집에? 소정을 향한 그리움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그녀는 원룸에 있을까. 불구가 된 내 오른손을 보고 그녀가 울어버린다면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렇게 의기소침해진 마음으로 어떻게 그녀를 대한단 말인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또 한 번 퍽치기를 당하고 싶다. 이제는 손가락이 아니라 아예 나라는 인간을 짓이겨 주길. 그리하여 하오의 웅덩이처럼 사라지길, 아침이 오기 전에 서둘러. 담을 수 없는 것들만 가득한 내 생의 웅덩이를 저주하는 순간이다. 그 카르마에 누군가의 숨이 베어져 나간다 해도, 이 세상엔 수많은 웅덩이가 생기고 또 마르고 할 것이다. 용맹스러운 이 도시의 퍽치기들이여. 그대들의 날랜 기술, 오늘 다시 빛을 발할 절호의 기회다.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는 수많은 당신들 중에, 오늘은 내가 바로 타깃이다. 쇠구슬 신공이라면 웅덩이 하나쯤이야 쉬이 증발시켜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백귀야행하는 그대들에게 미리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발 환기 좀 시켜라. (이 세상은)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니까.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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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뫼의 방 김병운 1. 준일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산호에게서 지난주 이사를 마친 한뫼 어머니 얘기를 듣는다. 삼십삼 년 가까이 한집에서 꾸려 온 살림을 옮기는 것이라 짐이 어마무시했다고, 웬만큼 추리고 나누고 버렸는데도 많아서 결국 1.5톤 트럭 다섯 대가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잘은 몰라도 보통 일은 아니었겠구나 싶다. 산호에 따르면 이사 당일은 순조로웠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으나 날씨는 줄곧 흐리기만 했고, 이주 일자 막바지까지 버티느라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도 어머니는 의외로 담담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이사비에 용돈까지 얹어 주며 고맙다던 어머니에게서 분실 신고가 잇따랐으니까. 어머니는 찾는 게 안 보인다 싶으면 곧장 산호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하는 모양이었다. 포장 이사이긴 했으나 애초에 남이 정리해 줄 수 있는 성격의 살림이 아니어서 일단 되는 대로 욱여넣게 됐는데, 어머니 입장에서는 뭐가 어디에 어떻게 들어 있는지를 몰라 애먹는 상황이었다. 어제는 슈퍼집 여자가 선물해 주었다는 산토리니 마그넷, 그제는 십수 년 전 외상 대신 받았다는 시바스 리갈 양주 세 병, 엊그제는 당장 입으려고 보자기에 따로 싸 둔 여름 옷가지. 산호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분실 품목을 열거하더니, 지난 엿새 동안 단 하루도 그냥 넘어간 날이 없다며 질린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고는 다행히 오늘 신고 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찾았다며 안도한다. 오늘은 뭔데? 신발. 신발? 어, 어머니 운동화. 한뫼가 사 준 거라 아낀다고 몇 번 신지도 않은 건데 아무래도 그 집에 두고 온 것 같다고. 혹시 모르니 시간 날 때 가서 확인해 줄 수 있느냐고. 너무하시네. 그지, 너무하시지. 산호는 두 해 전 애인인 영근 씨와 함께 이사 일을 시작했는데, 주로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같은 소형 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이나 요즘에는 팀을 짜 큰 이사도 척척 해내는 중이다. 단골도 적지 않고 주력 플랫폼 평점 또한 5점 만점에 4.98점을 기록하고 있어 이제는 웬만큼 자리를 잡은 것 같다는 게 산호의 자평이다. 최근 한 달간은 한뫼네 집뿐만 아니라 그 동네의 여러 집 이사를 도맡아 진행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바쁜지 지난주에는 산호답지 않게 만나기로 한 당일 점심에 약속을 파투 내기도 했다. 혹시 다른 집 이사도 이렇게까지 AS가 되느냐는 내 물음에 살포시 웃어 보이던 산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아, 어머님이 말이야, 하면서 말머리를 돌린다. 한번 놀러 오라고 하시네. 나? 다 같이. 준일이도 지금 들어와 있다 말씀드렸더니 집들이 겸 보면 좋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준일이 오면 시간을 맞춰 보자고 대답한다. 준일이 일러 준 출국 일자가 당장 다음 주이기도 하거니와 준일이 한뫼 어머니를 뵙는 건 내켜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건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일단 준일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준일은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는다. 카페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돌아보나 준일이 아니고,
- 관리자
- 2025-10-01
누군가 윤단 복합 상업 시설과 연결된 M역은 도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날씨는 덥고, 광장은 소란스럽다. 이보는 보도를 건너 역 앞 광장에 들어선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캐리어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이보 앞에서 걷던 여자아이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본다. 엄마, 하늘이 너무 가까워.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끈다. 하늘에는 낮게 깔린 잿빛 구름이 무거운 이불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보는 그러게, 하고 속으로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보다 가까워진 것도 같다. 최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 목이 뻐근하다. 뒤에 있던 누군가가 짜증을 내며, 잠시 멈춰 선 이보의 등을 밀치고 지나간다. 아이와 아이의 엄마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광장을 가로지르던 즈음 주미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열차를 탔느냐는 물음이다. 이보는 나중에 답장하기로 한다. 예매한 열차는 놓쳐 버렸다. 도로가 군데군데 통제되어 여기까지 걸어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제 주미는 가족과 함께 열차를 타고 친척이 사는 지역으로 갔다. 그리고 이보는 주미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보에게 친구는 주미뿐이다.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보는 이따금 주미를 찾는다. 전화를 걸고, 만나자고 하고,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같이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스무 살에 만나 십오 년을 알고 지냈다. 나이가 들며 달라진 점도 있지만 어쨌든 만나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보와 달리 주미는 다른 친구들이 있다. 무엇보다 가족과 무척 끈끈하다. 그것이 이보는 언제나 신기하고, 부럽다. 잠시 후, 하늘에서 붉은 방울이 두둥실 날아오듯 떨어진다. 자두 크기의 붉은 방울은 비눗방울 모양으로 둥글고 윤이 난다. 곧 광장에 있는 모두가 어수선하게 흩어진다. 이보도 사람들이 달아나는 방향을 따라 뛴다. 캐리어 바퀴가 덜커덩거리며 어긋난다. 얼마 안 가 이보는 뒤를 돌아본다.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붉은 방울이 한 남자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방울이 터지고, 이보는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을 본다. 가벼운 폭음이 지나간 뒤 잠시간 고요가 흐른다. 사람들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흘끗거리며. 이보도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끌며 M역으로 향한다. 가슴이 울렁이지만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는 알지 못한다. 두려움도, 불안도, 슬픔도 아닌 기묘한 감정이다. 어쩌면, 그새 조금 익숙해진 걸지도. 붉은 방울은 우연히 떨어지는 우박처럼, 예고 없이, 간혹가다 내려온다. 인파를 비집고 매표창구에 다가가자 대기 줄이 지그재그로 길게 늘어서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보의 차례가 온다. 그녀는 목적지를 말하고, 가장 가까운 시간대 열차를 묻는다. 역무원은 지친 어조로 저녁 출발 열차를 알려 준다. 그게 제일 빠른가요? 네. 다른 건 입석도 전부 매진이에요. 이보는 여섯 시간 뒤 출발하는 열차의 입석 표를 구매한다. 전광판에는 여러 행선지의 출발 시간과 번호가 떠 있다
- 관리자
- 2025-10-01
썬더스트럭 이유리 일 톤 트럭의 조수석에 올라타며, 장석원 씨는 이 모든 것이 몽골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는 장석원 씨의 환갑이었으나 그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의견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이 먹은 게 뭐 자랑이라고 호들갑을 떠나 싶은 쪽이었고, 때문에 아들 내외가 선물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저 심상하게 글쎄다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오히려 신이 난 건 장석원 씨 아내였다. 더 늙기 전에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우기며 패키지여행을 보내 주기로 확답을 받아 낸 것도, 밤낮으로 홈쇼핑 채널을 시청한 끝에 최저가라는 삼박 사일짜리 몽골 여행 패키지를 찾아낸 것도 아내였으니까. 그리하여 여행 날짜가 착착 다가왔으나 장석원 씨는 여권 갱신이며 짐 챙기기 등의 잡다한 여행 준비를 아내에게 내맡겨 버렸다. 심드렁히, 지난 육십 년간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성실하게 살았고 결혼이며 육아며 내 집 마련과 부모 봉양, 아무튼 남들이 하는 건 다 했지만 그중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주선한 선 자리에 나온 비슷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했고 장인어른이 철학관에서 받아다 준 이름으로 첫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가진 돈으로 넘볼 수 있을 만한 동네에 집을 샀고 거기서 십오 년을 살다가 아내의 불평에 리모델링해 십오 년을 더 살았다. 몽골 여행도 그에겐 마찬가지였다. 썩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았다. 여행 전날, 기대와 설렘으로 전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던 아내와 달리 장석원 씨는 평소처럼 눕자마자 잠들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도, 몽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는 잠만 잤다. 눈을 뜨고 있었던 건 오직 기내식을 나눠 줄 때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그가 받은 비프 도시락이 너무 달아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깨닫자마자 뚜껑을 덮고 도로 잠들었으므로 오 분도 안 됐을 거였다. 칭기즈칸 국제공항 입국장에는 몽골인 가이드가 여행사 로고가 쓰인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내외는 함께 여행을 할 사람들과 안면을 텄다. 총 여덟 명의 한국인들은 모두가 쌍쌍이 부부인 데다 나이도 전부 비슷한 듯했다. 가이드는 양 떼 몰듯 그들을 공항 밖으로 데리고 나가 미니버스에 태웠고 출발한 버스 안에서 여행 일정을 간략하게 읊어 주기 시작했다.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몽골 대자연 관광, 무슨 사원과 무슨 박물관, 고비 사막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멋진 무슨 사막‧‧‧ 그리고 게르에서 자고 허르헉을 먹으며 유목민 생활 체험‧‧‧ 및 기타 등등. 장석원 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심상하게 생각했다. 저 아가씬 생긴 건 토종 몽골인인데 한국말을 참 잘하는구먼. 첫날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배정받은 게르에 짐을 풀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많은 일들을 했으나 크게 즐거운 건 없었다. 커피는 쓰디썼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으며 물건들은 죄다 너무
- 관리자
- 2025-10-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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