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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게

  • 작성일 2015-02-01
  • 조회수 1,912



새가게




이지민










이혼은 하되 규모 있게. 일단 포부는 단단했다. 이혼 후 딸을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 보내고 그곳에서 우아한 40대의 삶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딸이 다니는 영어학원 앞 카페에 앉아 엄마들에게서 정보를 모으며 홀가분한 새 생활을 꿈꾸었다. 그 꿈은 헛바람과 고급 정보가 더해지며 점점 예산이 늘어났다. 급기야 영국 상류층 교육을 시킨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립학교 기숙사 비용까지 환율로 계산하고 있을 무렵 나의 수고를 덜어 주려는지 현실을 일깨워 주는 일이 일어났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위자료는커녕 매달 주는 생활비도 싹둑 자르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노후자금을 털어 넣은 유통단지 분양이 막히는 바람에 돈줄이 끊겼다는 시어머니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정말 돈이 마른 것이다. 최근 들어 나에게 기특한 능력 하나가 생겼는데 진실로 돈이 궁한 사람의 음색을 구분해 내는 것이다. 남아공 사립학교는커녕 지금 다니는 영어학원도 다음 달부터는 관둬야 할 상황이었다. 꿈은 그렇게 희망봉 근처에도 못 가고 멀어졌지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노라는 결심은 확고해졌다. 내가 남아공에 꽂힌 이유는 단지 저 멀리 달아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집을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집. 이제는 누구의 명의인가만이 중요해진 집. 정남향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제는 어느 방향에서든 빛을 잃어버린 집. 결혼 액자를 떼어낸 자리에 새로운 먼지가 내려앉아 표도 나지 않는 집. 밤마다 남자가 욕설을 삼키는 소리와 수돗물을 따라 흐르는 여자의 울음소리마저 사라진 집. 그 집에는 지금 침묵이 무대의 드라이아이스처럼 무릎 아래 깔리고 셋뿐인 가족이 발목을 숨긴 채 스르르 스르르 소리 없이 걸어 다니고 있다. 어둡고 조용한, 볼륨을 내린 흑백텔레비전 같은 집. 어서 그 집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호시절의 부유함과 단란했던 시절의 추억이 ‘어쩌면 다시 또’ 미련을 부리며 발목을 잡지만 더 이상은 끌려 다닐 수 없었다. 오직 남편만 남긴 채 서둘러 나와야 했다.


남편의 불운은 뭐랄까. ‘그냥 좀 있는 집 자식’의 한계랄까. ‘아주 있는 집 자식’이거나 ‘아예 없는 집 자식’이었으면 사람이 안 변했거나 아예 변했거나 차라리 나았을 텐데. 열등감 따위 모르거나 열등감의 위력으로 사는 남자였으면 이런 지지부진한 방황도 없었을 것이다. 태평하고 순진하고 낙낙하게 살아오다 갑자기 나이 사십에 열등감을 업고 다니려니 온몸이 쑤실 수밖에. 원망하고 경멸하기도 지쳐 나는 아예 감정 자체를 가지지 않으려 부단히도 노력 중이었다. 한집에는 살지만 남편은 집에 붙은 유령처럼 방 안에 꼼짝없이 앉았고 나는 노련한 퇴마사처럼 그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기는 하되 섣불리 나서지는 않았다. 마지막 담판을 위해 실한 양기를 비축해 놓는다고 할까. 내가 이러든 말든 남편은 투항의 의지도 없이 나보다 더 차가운 무심함으로 이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우리 모녀가 아침 일찍 나가면 남편은 늦은 아침을 혼자 차려먹고 가게에 나갔다가 오후 네 시쯤 다시 돌아와 아홉 시까지 서재 방에 숨어 있다 다시 가게 문을 닫으러 나가고는 했다. 나는 남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오전 시간은 헬스클럽에서 낮 시간은 딸의 학원 앞 카페를 돌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무렵 우리 모녀가 들어오면 남편은 여전히 방 안에 꼼짝 않고 있다가 내가 딸을 재우러 방에 들어가면 그제야 슬그머니 빈 와인 병을 들고 서재에서 나왔다. 나와 부딪히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 갸륵하기도 하고, 딸에게 최악의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싶어 측은하기도 했다. 남편이 매일매일 비워낸 베란다에 주르르 줄 선 와인 병들이 마치 목이 잘린 새들처럼 보이기도 해 마음 한구석이 푹 꺼지기도 했다. 남편이 방에서 그런 엄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편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은 베란다 창문을 통해 훔쳐봐서 알고 있었다. 한창 주식에 빠졌을 때 산 대형 모니터로 밤새고 ‘미드’를 보는 일이 남편의 취미였기에 또 새로운 ‘미드’에 빠졌나 했다. 평소 귀찮아 안 쓰는 안경까지 쓰고 천천히 와인을 홀짝이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남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추리물인가, 법정드라마, 좀비물? 자막이 없나? 표정이 왜 저러지? 남편이 몰입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는 뜻밖에도 멜로드라마였다. 멜로이자 다큐멘터리이자 어찌 보면 스릴러. 남편이 잠깐 외출한 사이 몰래 들어가 모니터에 떠 있는 화면을 확인한 나는 이게 뭔가 싶어 벙벙했다. 모니터에는 남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설치되어 있는 CCTV 화면이 떠 있었다. 사각지대 없이 설치한 CCTV가 네 개의 분할된 화면에 카페의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카페에는 늘 그렇듯 손님이 없었다. 카페는 남편의 가장 최근의 따끈따끈한 실패작이었다. 근처 초등학교 엄마들을 고객층으로 어림잡고 개업한 소규모 프랜차이즈 카페는 초등학교 건너편에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는 바람에 망하는 수순으로 들어간 지 꽤 되었다. 카페는 ‘그냥 좀 있는 집’ 자식인 남편이 노부모의 재산을 최종적으로 말아먹기에 딱 적합했다. 물론 운이 따른 적도 있었다. 개그맨 친구와 유흥업을 벌였을 때가 남편의 전성기였다. 매일 양주와 향수 냄새에 절어 있던 남편의 이마에는 화류계에서 성공을 맛본 남자 특유의 매끈하고 역겨운 광채가 있었다. 가장 화려했던 그 시절 이미 우리 부부 관계는 고약하게 상해 있었다. 남편을 경멸하면서도 매일이 분주하고 기꺼웠던 이유는 딸과 쇼핑 덕분이었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서울의 한 동네에 연기입시학원을 차렸을 때도 남편에게는 빛이 났다. 그러나 그 후 벌인 사업들, 와인포차, 육회전문점, 빙수집 등은 생계와 상관없이 남편을 자연스런 퇴락으로 이끌었다. 새 명함을 파고 간판에 불을 밝히고 서류를 만들고 시든 개업식 화환을 버리는 그런 별스럽지 않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남편은 빛을 잃었다. 주저앉은 욕망을 내다버릴 때마다 남편은 한껏 평범해지고 조그마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매번 마지막이라며 뭉칫돈을 풀어 주던 부모님이 손을 들자 남편은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정확히 말했다. 절망이라고. 뭐 절망까지 들먹이느냐 할 테지만, 부모님의 돈이 바닥났다, 그건 절망이었다. 어쩜 이리 싹수없고 야박한 것들이 다 있냐고 그럼 부모님이 아직 줄 게 좀 남아 있으면 희망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런 족속들이다. 나올 돈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거다. 이런 우리를 보고 대뜸 손가락질부터 하는 사람은 아직 댁내 두루 희망이 남은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카페는 남편의 실패의 증거인 동시에 간신히 붙어 있는 희망의 부스러기였다. 그럼에도 하루라도 빨리 접는 게 그야말로 남는 장사일 텐데, 남편은 무슨 생각인지 가게를 내놓았다가 두어 달 전부터 다시 적자 상태인 채로 굴리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모니터에 뜬 카페를 다시 보았다.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애가 케이크 냉장고 뒤 회전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지나가다 문 밖에서 얼핏 두어 번 본 적이 있는데 늘씬한 몸매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상당한 미인이었다. 어느 가게든 면접 보자마자 바로 채용되는 스타일. 남편도 오늘부터 당장 일할 수 있냐고 물었을 것이다. 남편은 아직도 이런 여자애가 지나가면 턱을 들고 허리를 펴며 앞머리를 만진다. 그리고 눈을 흐릿하게 뜨며 감탄스런 표정으로 이런 복화술을 구사하다. 너 같은 애를 매일 보는 녀석은 얼마나 행복하겠니. 여자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의 제빙기 쪽으로 걸어간다. 허리를 숙이는데 윗옷이 쑥 올라가며 하트 모양 엉덩이가 쑥 나온다. 여자애는 얼음이 든 컵을 들고 입구 쪽 간이 테이블로 가서 물병에 얼음을 집어넣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낮은 스니커즈를 신고 살짝 팔자걸음으로 걷는 걸음걸이가 가뿐하다. 여자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시선을 입구 쪽으로 보낸다. 거울이라도 있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턱을 든다. 나의 시선이 여자애의 가슴에 머물렀다가 다시 복습이라도 하듯 목선으로 올라갔다 허리로 내려와 종아리까지 쭉 훑는다. 다른 각도에서는 여자애가 어찌 보일까 싶어 나머지 세 화면으로 시선을 분주히 돌려보는 순간 현명한 아내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바보 같은 직감이 튀어 올랐다. 이 인간 혹시 맨날 이거 보고 있었던 거 아냐. 책상 위 남편의 스마트폰이 보였다. 사진첩으로 들어가 보았다. 카페를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흔들려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 속에는 여자애의 뒷모습과 옆모습 등이 비스듬히 숨어 있었다. 얼른 대화방을 뒤졌다. ‘오후알바’란 대화명이 단번에 눈길을 잡았다. 남편과 둘이서 주고받은 문자 양이 꽤 됐다. 최근 것부터 거슬러 올라가던 내 집게손가락이 네모난 액정화면 위에서 무릎을 꿇듯 ‘뚝’ 하고 멈춰버렸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사장님~~ ^^ ~~ 힘들지는 않지? 내가 쪼금 늦을 거야. 배고프면 뭐라도 사갈까?? 뭐 좋아해?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아뇨. 천천히 일 보세요. ^^ 오늘 튼 음악 뭐지? 좋던데. 앗, 저 완전 좋아라하는 곡인데. 영화 비긴어게인 보셨어여? ^^ 영화 좋아하니? 언제 같이 함 극장 가자....... 피곤하지? 끝나고 한잔할까? 부담 갖지 마. ㅎㅎ 회식이야...... 어제 택시 잘 탔지? 내가 좀 마니 마셨네. 혹시 화났니..... 문제의 회식 날 이후로 ‘오후알바’의 ‘^^’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장님...... 사장님 이러시면 저 곤란해요...... 아니, 미안 술 먹구 그러는 거 내 스탈 아닌네. 난. 난 그런 사람은 아니구...... 내 맘이 진심이면 안 되겠니...... 저 관둘래요...... 미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ㅠㅠ 제발 관두지만 말아 줘. 제발 그 말만은...... 사장님 얼굴 보기 저 불편해염...... 알아써. 불편하게 안 하께. 당분간 일 있어서 가게 못 나가니까 잘 맡아 줘...... 진짜 약속...... 아. 아니 안 되겠어요...... 시급 올려 주께....... 아.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죰......


아, 씨발. 입에서 욕이 ‘툭’ 깨진 사탕처럼 떨어졌다. 욕이면서 감탄사이기도 했다. 어쩜 이리도 병신 짓이 다채로울 수 있을까. 가게 알바 여자애한테 찝쩍거리고 와서 와인이나 홀짝거리며 변태 놀이라니. 다시 남편의 스마트폰을 뒤졌다. 가게 CCTV를 볼 수 있는 앱도 깔려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남편의 안경을 껴보았다. 그렇지, 것도 눈깔이라고 크게 보고 싶었구나. 설마 자위를 한 건 아니겠지. 사춘기 아들을 둔 어머니의 바다 같은 이해심으로 킁킁거리며 책상 주위의 티슈와 쓰레기통을 살폈다. ‘픽’ 웃음이 삐져나왔다. 자, 인정. 오랜만에 한심한 짓으로 참신한 건 인정.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를 뻗고 다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여자애는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손님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백팩을 멘 남학생이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주문을 했다. 그 짧은 동안 남학생은 힐끗힐끗 여자애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커피를 만드는 여자애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나도 그 걸음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엽서만 한 화면 안에서 감질나게 움직이는 여자애를 시원스레 보기 위해서는 모니터를 번쩍 들어 흔들어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여자애가 모니터 안에서 ‘툭’ 하고 떨어지고, 그러면 주머니에 ‘쏙’ 하고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님. 저 이러다 진짜 마트에서 일해야 해요. 마트에서는 받아 준다니 너 같은 애를. 저 나가 살 돈은 주셔야죠. 내 아들 두고 나가는데 돈을 왜 주니 내가. 일부러 들으라고 또박또박 목소리를 높여 시어머니와 통화했다.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는 남편은 음악이라도 듣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손짓이고 걸음걸이고 죄 조용했다. 무음으로 주변을 채우는 그가 어쩐지 무섭게 느껴졌다. 며칠간 잔인하게 골려먹고 싶은 걸 겨우 참으며 남편을 지켜보던 나는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제일 가까이 살면서 제일 멀어진 사람 속이 늘 궁금했지만 이번처럼 조바심이 날 정도로 알고 싶은 적은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집 안에 머물며 세간살이를 정리하는 척하며 괜히 남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남편이 아침을 먹는 모습을 부엌 베란다에 숨어서 지켜보았는데, 몇 달째 나와 말도 섞지 않는 남편의 심중을 몇 가지 행동만으로 파악하려니 꽤 어려웠다. 사람이 숟가락을 들고, 컵을 만지고, 코를 긁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고뇌와 욕망을 읽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남편은 실낱같은 의지도 없는 흡사 눈을 오려낸 가면 같은 얼굴로 천천히 커피가 든 잔을 들어올렸다. 순간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 곡기를 끊듯 나와 대화를 먼저 끊은 이도 남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무엇을 물어도 답해 줄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직접 판을 흔드는 수밖에. 나는 카페로 갔다. ‘오후알바’가 있는 남편의 카페로.


긴 직사각형 구조의 카페는 대낮에도 햇빛이 귀했다. 문을 여는 순간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어제의 햇빛과 먼지, 커피찌꺼기 냄새가 오랜만에 손님을 맞은 천덕꾸러기 강아지처럼 마중 나왔다. 공간의 생명은 어차피 조명이라며 남편은 천장에 레일을 깔고 조명등을 매달아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그 인위적인 빛 웅덩이 아래 묵은 먼지 뭉텅이만 더욱 강조될 뿐이었다.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여지없이 텁텁한 공기가 목울대를 쳤다. 계산대와 주방이 있는 맞은편 벽 쪽으로 다가가는데 퍽 긴장이 됐다. 나도 모르게 걸음걸이를 의식하며 가슴을 폈다. 여자애가 회전의자에서 일어나며 작은 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말했다. 무뚝뚝하고 개성 없는 이십대 초반 여자애의 전형적인 어투였다. 실제로 보니 여자애는 보기보다 키가 컸다. 당연했다. 모니터 속에서 본 것보다 모든 것은 클 수밖에 없었다. 계산대 앞에 똑 떨어지는 조명을 받은 여자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둥글게 튀어나온 이마와 아이라인을 길게 뺀 시원한 눈가가 아름다웠다. 그런 얼굴이었다. 여자로서는 평생 손해 볼 일 없는 얼굴. 커피를 주문하는 내 목소리에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며 CCTV에 잘 잡히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계산대 앞 두 번째 테이블이었다. 남편이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의자를 앞으로 빼고 어깨를 비스듬히 세웠다. 첫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보이지 않는 시선에 맞서느라 온몸이 빳빳해졌다. 나는 목을 쭉 빼며 여자애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 사장님 어디 가셨나 봐요. 여자애는 자기한테 말을 거는 줄 모르고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재차 묻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이 시간에 안 나오세요. 여기 사장 요즘은 조용하나? 여자애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제야 나를 유심히 봤다. 우리 사장님 아세요? 네. 동네에서 장사 오래 했잖아요, 여기 사장. 워낙 시끌시끌해서. 내가 어투를 조금 누그러뜨리자 여자애가 얼굴을 내밀며 귀를 기울였다. 그래요? 여자애는 턱을 끄덕이더니 돌연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시끄러워요? 네. 손님하고도 툭하면 부딪히고. 알바들 돈 제때 안 주고. 순간 여자애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곧 거부의 의지가 고운 얼굴에 묘한 균열을 일으켰다. 돈은 잘 주는데. 딴 데보다 더 주는데. 사장님 그렇게 이상하지 않아요.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사람은 나였다. 여자애의 얼굴에 어쩌다가 인질범의 본성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 인질의 곤혹스런 심사가 스쳤다. 발끝으로 앞 의자를 툭툭 차며 시비를 걸었다. 여기 사장 예전에 여자 알바한테도 찝쩍대서 말 좀 있었는데. 초조하게 여자애의 뒷모습을 살폈다. 여자애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폴더를 끼우면서 담담히 대답했다. 그런 사장 많아요. 알바하다 보면. 그냥 참고 하는 거죠.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 또렷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크고 맑은 두 눈에 스민 하루하루의 피곤과 체념은 이미 굳은 지 오래돼 보였다. 여자애한테서 커피를 받는데 종이컵을 잡자마자 놓칠 뻔했다. 뜨거웠다. 너무나도 뜨거웠다. 놀라서 허둥대던 나는 천장 구석에 달린 CCTV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렌즈와 눈을 맞춘 순간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몇 살이에요? 여자애가 지겹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물한 살이요.


남편은 묻지 않았다. 내가 카페에 간 것을 빤히 봤을 텐데도 입을 다물었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갔다가 냉장고 앞에 서 있는 남편과 마주쳤다. 열린 냉장고 문틈으로 나오는 빛을 흡수하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 묘한 빛 무리가 돌았다. 끄그긍. 끄그긍. 침묵뿐인 공간을 가로지르는 그 소리가 냉장고 기계음인지 남편의 신음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남편의 눈빛은 희한하게도 찬찬하던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내를 향한 적대감으로 부글거리던 눈동자는 어디 가고 소년의 눈처럼 티 없이 반들거렸다. 남편은 무방비 상태로 말짱한 모습을 내게 들켰다. 그 얼굴을 보자 비위가 상해 참을 수 없었다. 좀 앉아 봐. 남편들이 아내로부터 듣는 첫 번째 선전포고. 좀 앉아 봐. 오랜만에 아내처럼 구는 내가 낯선지 남편은 앉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였다. 가게 말이야. 사람 하나도 없더라. 빨리 정리 안 하는 이유가 뭐야. 그 돈 안 뺏을 테니까 정리하지. 그걸 놔두는 이유가 뭔데? 남편이 무슨 대답을 할지 적잖이 기대가 됐다. 얕은 숨을 내쉬더니 남편이 대답했다. 좀, 좀 더…… 지켜보고…… 남편은 어두운 식탁에 나만 홀로 남겨 둔 채 들어가 버렸다. 오랜만에 듣는 남편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듣는 진실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남편이 그 여자애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더한 바보짓을 보탠데도 놀랄 일도 아니었다. 스물한 살의 여자애를 동경하는 마흔한 살의 남자가 새삼스러울 리도 없었다. 불 꺼진 식탁에 식은 주전자처럼 앉아 있으려니 추웠다. 좀 전에 보았던 남편을 감싸고 있던 낯설고 신비한 광채를 뭐라 부를까 그 이름을 골라 보았다. 그 빛에 조금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자면 ‘슬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남편은 슬픈 남자가 되었구나. 그 말은 마치 ‘남편은 먼 여행을 떠났구나.’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마흔한 살 남자의 ‘슬픔’ 따위야 세상의 술집과 노래방 등에 넘쳐나지만 거기에도 등급이 란 것이 존재한다. 가령 걸그룹 뺨치는 여자애를 알바로 두고서 두 번 다시 못 느낄 줄 알았던 설렘으로 두 뺨을 붉히는 자영업자의 애환은 상당히 급이 높은 편이다. 더 나아가 가질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그 마음이 진실로 순정이라면 그래서 부유하는 영혼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아득한 슬픔을 느낀다면 그건 거의 최고 레벨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나도 그런 남자를 알았기에 알고 떠드는 것이다. 내가 스물한 살이었을 때 지금의 남편이 ‘오후알바’를 보듯 먹먹한 눈길로 나를 보던 마흔한 살의 남자가 있었다. 이쪽을 봐요. 아가씨. 아가씨. 이쪽! 아, 그림 좋다. 정월 보름 즈음 차가운 햇살이 쏟아지던 덕수궁 분수대 앞에서 나는 그림 좋은 아가씨였다. 그림 좋은 아가씨는 대여섯 명의 노인들에 둘러싸인 채 하얀 입김을 꿀꺽꿀꺽 삼키며 싱긋싱긋 웃고 있었다. 친척 동생들에게 덕수궁을 구경시켜 주러 갔던 나는 저마다 목에 커다란 수동 니콘카메라를 메고 있던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로부터 즉석에서 모델 제안을 받았다. 대부분 노인이었던 동호회원들이 나의 미모를 어찌나 칭송하는지 실망시키기도 뭐 해서 카메라 앞에 섰는데 막상 시키는 대로 멍하니 이쪽저쪽 시선을 던지다 보니 꽤 재미있었다. 웅성거리며 모여든 시선 속에 둘러싸인 것도 짜릿했다.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유독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보던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참견하며 동호회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포즈가 완전히 선데이서울이구만. 피사체가 불편해하잖아. 자연스럽게 그게 안 되나. 결국 동호회원들한테 쫓겨난 그는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구경하다 촬영이 끝나자 졸졸 따라왔다. 그는 자신을 입시미술학원을 하는 원장님이라고 소개했다. 아하, 어쩐지 뭐 좀 아시는 분 같았어요. 나의 말에 그는 세상을 다 얻은 얼굴로 웃었다. 실은 나도 미대를 가고 싶었다고 하자 그는 수강료를 싸게 해주겠다며 꼭 놀러오라고 했다. 그의 미술학원은 국철이 지나는 서울 변두리 동네 역 앞 다 쓰러져 가는 2층 상가 건물에 있었다. 나는 술이나 얻어 마시려고 그 근처 사는 과 친구를 끌고서 종종 놀러갔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연신 슬픔을 토해 냈는데, 홍대 앞에 학원을 못 차려 슬프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슬프고, 중학생인 아들이 담배를 끊지 못해 슬펐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예술가라고 했다. 예술가는 모르겠으나 실패자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곰팡내와 물감 냄새가 어지럽게 섞인 화실에서 희망 없이 늙어 갈 거라고 했다.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화실은 3등 열차처럼 춥고 시끄러웠다. 그의 인생은 밤새도록 달려도 차창에 시커먼 암흑만 비치는 야간열차였다. 그를 통해 나는 인생이란 터무니없는 곳에서 뚜껑 잃어버린 물감처럼 서서히 말라 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그의 나이가 되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깨닫는다. 인생은 그렇게 소멸된다고 생각되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노화와 우울과 포기와 낙망의 새로운 시작. 원장님, 저 좀 그려 주세요. 그럴 때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소리를 빽 질렀다. 니가 그 정도로 예쁘지는 않아! 애타게 바라보다 별안간 낭패스런 표정으로 화를 내는 그는 변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슬픔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슬픔은 화실에 있는 아그리파, 아리아스, 줄리앙 같은 석고상들처럼 근사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케케묵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게 되었지만 어쩌다 팔에 토시를 낀 남자를 보면 불현듯 그가 생각났다. 열차 들어오는 시각표를 외우며 그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절망하던 그 남자는 노인이 돼 있겠지. 나는 그가 당연히 고집 세고 가난한 노인네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그때 화실에 같이 놀러 가곤 했던 친구한테 들은 바로는 아니었다. 당시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의 건물을 헐값에 인수한 원장은 극적인 알박기에 성공해 지금은 12층짜리 빌딩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술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노인의 꿈은 이루었다. 월세 받는 사장님이 된 것이다. 드물긴 하나 삶을 예술로 만드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영어학원 1층 소파에 앉은 여자들은 사립초등학교 추첨일에 빨간 내복을 입고 가야 재수가 좋다는 이야기를 흥분해서 떠들고 있다. 저런 자리에서 제일 큰 소리로 무용담을 늘어놓던 여자가 나였다. 그러나 그 해맑던 여자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중장년층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마지막 성냥까지 다 써버린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는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호기롭게 이혼을 외칠 때는 현실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이혼하면 나는…… 내가 동정하던 여자가 되겠구나. 아직 불운에 적응하지 못해 화가 치미는 여자들, 이제 불운에 적응해 표정을 잃은 여자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방황할 테지. 식당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하는 모습을 친구에게 들키는 상상만으로도 귀까지 시뻘게졌다. 맞아, 나 속물이야! 늘 스스로가 속물인 것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그도 자본이 받쳐 줄 때나 당돌하고 귀여운 맛이 따르는 거였다. 이제 되바라진 척도 흉내 내기 두려웠다. 내 상상력 밖의 삶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예술가만 못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생활인이 못 되는 거였다. ‘그냥 좀 있는 집’ 아들이랑 산다고 투정부려도 철철이 면세점 쇼핑을 빼먹은 적 없는 인생이었다. 살면서 자식이 공부를 못 할 수도, 암에 걸릴 수도,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는 상상했지만 돈이 없는 미래는 공상과학의 세계였다. 내가 지구에 머무는 동안 조우하지 못할 미지의 세계. 그러나 미래는 상상보다 먼저 와 있었다. 나를 지탱해 주던 너그러운 중력에서 벗어나 우주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생명체인 러시아 강아지 라이카도 이랬을까. 라이카는 우주에서 굶어죽지 않았다. 고독 속에서 지구를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그냥 타죽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타죽었다. 얘 얘. 엄살 좀 그만 떨어. 담판을 지으러 아니, 협박이라도 해볼까 아니, 구걸이면 통할까 싶어 시부모님을 찾아갔다. 일단 빚은 집 팔아서 갚을게요. 그 집이 니 집이니 우리가 사준 거지. 어머님 아들이 손만 대면 다 들어먹는 마이너스 손이잖아요. 남자가 돈 못 벌면 너라도 벌어야지. 어머님, 저 살림만 했어요. 살림은 파출부 아줌마가 했지. 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좀 더 극적으로 연기했다. 돈 떨어지니까 바람은 안 펴서 그건 좋네요. 어머님. 저 진짜 누구 믿고 사냐고요! 참, 니들 정신머리가 왜들 그러니. 우린 피난 가서도 살아남았다. 그때는 앞집 옆집 뒷집 다 피난 간 거구요. 지금은 저만 피난보따리 싸는 거잖아요. 시아버지가 눈을 질끈 감으며 부르르 성을 내셨다. 기어이 내가 리어카 끌고 박스 모으는 꼴을 봐야겠냐! 시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돌아앉았다. 며느리가 뒤에서 밀면 보기는 좋겠네요. 제발 철 좀 들어라. 네. 그래야죠. 철들자마자 죽을까 겁나긴 하지만 철들어야죠. 시댁을 나서기 전 장식장에 있는 작은 액자들을 보았다. 풍광이 저마다 다른 관광지에서 남편은 입 꼬리를 시원스레 올리며 웃고 있었다. 관광객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웃음이었다. 남편은 일상에서도 저런 천진한 웃음만 짓는 남자였다. 애초부터 현지인의 삶은 불가능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깃발을 따라다니며 웃고 노는 구경꾼의 삶이 편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만 한다. 뚝뚝. 스마트폰 액정화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주방 이모님 구함’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화가 나서인지 서러워서인지, 나 때문인지 그 때문인지 어쨌거나 눈물은 떨어졌다.


드디어 부동산으로부터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낮에 집 구경한 사람이 사겠대요. 그런데 남편 분이 집 내놓은 것도 모르시던데. 공동명의 아니죠? 최후의 보루인 집을 팔고 생활비로 쓴 대출금을 갚고 서울 외곽 동네 빌라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면 생활은 훨씬 단출해지고, 마음은 가벼워지고…… 남편은 혼자가 되겠구나. 남편도 이 숨 막히는 불화와 긴장이 어떻게든 끝나기를 기다렸을 테지만 설마 내가 집을 팔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간신히 가족임을 연기하던 세트가 사라지면 남편도 새로운 배역을 찾아야만 한다. 늘 냉정한 척했지만 최종적으로 선고를 내리려니 가슴에 찌이익 실금이 그어졌다. 길게 갈라진 금 사이로 물기가 스몄다. 차라리 남편이 바락바락 분노와 적의를 쏟아내며 그 금 간 담벼락을 부수어버리면 다행일 텐데. 그러나 이별의 말을 듣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면 그걸로 우리는 끝이다. 아마도, 크지도 작지도 않을 그 문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현관문을 열자 센서 등이 눈부시게 켜졌다. 남편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와 조금 다른 무게의 침묵이 집 안을 누르고 있었다. 서재 문을 열자 와인 냄새가 덮쳤다. 책상 위에 와인 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빈병이고 하나는 두어 모금 정도 남아 있었다. 마우스를 건드리자 모니터가 밝아졌다. 네 개의 분할된 화면에 카페의 현재가 떠올랐다. 그 안에 남편이 들어 있었다.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군가를 부르는 사람처럼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서 있었다. 계산대에는 ‘오후알바’ 여자애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서 등을 들리고 있었다. 여자애는 신경질적으로 긴 머리를 휙휙 넘기며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편은 걸음을 옮기려다 휘청거리며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여자애가 뛰어 나와 남편의 어깨를 부축하려는데 남편이 여자애의 어깨를 더듬더니 와락 안았다. 여자애가 거세게 남편을 벽 쪽으로 밀쳤다. 총이라도 맞은 듯 벽에 등을 튕기며 남편은 주저앉았다. 여자애는 다시 계산대 뒤로 뛰어가서 가방을 챙겼다. 도망치는 여자애를 남편이 일어나며 다시 잡았다. 남편은 심판의 판결에 항의하는 축구선수처럼 여자애 앞을 이리저리 막으며 제발 다시 봐달라고 자기 가슴을 치며 호소했다. 여자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남편을 뿌리치며 문 쪽으로 달아났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인근 대학의 미식축구 점퍼를 입은 남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잠깐 멈칫하던 남학생들은 곧 남편에게 달려들었다. 남학생 한 명이 남편을 밀어서 여자애로부터 떨어뜨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남편은 다시 벌떡 일어나 여자애의 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학생 한 명이 남편을 확 밀었다. 케이크 냉장고와 벽 사이로 날아간 남편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저기였구나. 사각지대가.


‘오후알바’ 여자애에게 그간의 임금과 꽤 두둑한 위로금을 전달하러 카페로 갔다. 여자애는 내 얼굴을 보더니 치를 떨며 성을 냈다. 저번에 뭔 짓 하신 거예요? 정말 부부가 왜 그래요? 둘이 변태예요? 적절한 질문이었다. 아마 그럴지도. 벌게진 얼굴을 떨군 채 여자애의 비난을 가만히 들었다. 정말 그렇게들 살지 마세요. 카페 알바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사이코인 데는 처음이거든요! 제가 그냥 넘어간 거 운 좋은 줄 아세요! 여자애는 봉투를 챙기더니 주저 없이 나가버렸다. 카페는 조용해졌다. 음악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침묵에 동조하듯 꼼짝도 하지 있었다. 내 미세한 동작이 공간에 지저분한 파동을 일으킬까 조심했다. 가만가만 어제의 햇살과 먼지와 커피 냄새가 발끝으로 모여들었다. 주인의 그림자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제부터 전화가 안 됐다.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남편은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로 아픈지 남편 입에서 지독히도 앓는 소리가 삐져나왔다. 듣고 있노라니 부아가 치밀었다. 이사 날짜를 통보하며 그 전에 빨리 시댁으로 가든지 고시원을 알아보든지 결정하라고 했다. 침이 손톱 아래를 찌르기라도 하는지 남편은 끔찍한 신음을 흘렸다. 어디가 아픈 거냐고,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 어디가 아픈 거냐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회색 바닥 위에 부주의하게 엎지른 물처럼 번지고 있었다. 햇빛은 내 발끝에 닿지 못하고 멈추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다시 보았다. 어디선가 쿵쿵한 냄새가 났다. 킁킁거리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공간은 내가 짐작치 못한 뜻밖의 명도와 채도로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계산대에 서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저 문이 열리기를 이렇게 바라보던 시간이 남편에게도 있었겠지. 나는 축 처진 채로 마냥 문 쪽을 바라보다 문득 어깨에 내려앉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천장에 달린 CCTV와 눈이 마주쳤다. 기다림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혹은 훔친 것처럼 부끄러웠다.


팔이 저릿해 눈을 떴다. 내 머리 무게에 눌려 아릿하게 굳어버린 오른팔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 머리맡에 있을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았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급히 오른팔을 왼팔로 부축해서 밖으로 나갔다. 거실은 싸늘했다. 서재로 갔다. 문손잡이가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저린 오른손을 대신해서 왼손으로 문을 열었다. 한바탕 쏟아내려 눈을 부릅떴는데 남편이 안보였다. 오늘밤에는 당연히 오겠지 싶어 초저녁에 잠깐 잠을 청했던 건데 낭패이지 싶었다. 갑자기 발목까지 시근거렸다. 여전히 핸드폰도 받지 않았다. 바닥에 치워 놓은 와인 병 두 개가 범죄현장의 단서처럼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책상으로 갔다. 컴퓨터는 켜져 있었다. 모니터의 전원을 눌렀다. 카페의 CCTV 화면이 떠올랐다. 카페 밖의 노란 가로등 불빛이 가게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어스름한 공간에 무언가 있었다. 두 눈동자가 재빨리 네 개의 다른 화면들을 훑었다. 검은 나방 한 마리가 눈앞에서 ‘휙’ 날아가는 듯 보였지만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다. 모니터에 코를 붙이고 숨을 죽였다. 모니터가 밝아졌다. 계산대 쪽에 불이 들어왔다. 남편이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문 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배웅하거나 마중하는 모습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 쪽으로 나갔다. 술에 취했는지 잠깐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가게 한가운데에 다리를 벌리고서 우뚝 섰다. 비구름을 살피는 사람처럼 턱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뒷모습이 수상했다. 어깨와 등과 다리가 유난히 다부지고 꿋꿋했다. 남편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왔다. 남편이 의자 위로 올라갔다. 검은 머리가 어둑한 공간을 뚫으며 불쑥 솟아올랐다. 의자 다리가 보이지 않아 남편은 흡사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야! 나는 작은 상자 안에 갇힌 남편을 흔들었다. 야! 너 뭐야! 나는 모니터를 주먹으로 때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핸드폰을 다시 들어 통화를 눌렀다. 남편은 의자에 올라서서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야! 야 이 새끼야! 눈물이 터져 앞이 안 보였다. 다시 허겁지겁 핸드폰 안의 연락처를 뒤졌다. 손가락이 떨려서 자꾸 액정화면 위에서 미끄러졌다. 집게손가락 끝으로 피가 몰려 터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천장의 조명등이 달린 레일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내려와 입구 쪽 간이 테이블로 갔다. 숨이 막히고 눈물이 솟구쳐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잡지 몇 권을 안고서 다시 의자로 돌아왔다. 집게손가락이 전화번호들 위에서 허둥댔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떤 이름으로 저장해 뒀는지. 남편은 가져온 잡지를 의자 위에 차근차근 쌓아올렸다. 마지막 한 권을 맨 위에 올려놓고서 남편은 멈추었다. 순간 CCTV가 고장 난 줄 알았다. 나는 소리소리 지르며 모니터를 두드렸다. 화면 오른쪽 위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는 살아 있었다. 그 시간이 남편을 붙들어 주길 바랐다. 이 안의 모든 것들이 멈추지 않고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야, 이 바보야! 모니터를 박살낼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남편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들어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허리를 숙이더니 잡지들을 밀어내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꾸부정히 앉은 채 남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그라든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 작은 진동이 그 공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던 남편은 그제야 생각났는지 바닥에 떨어진 잡지를 주워들었다.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무심한 손길로 한 장 두 장 넘기며 들여다보았다. 은행 대기실에 앉은 사람처럼 그냥저냥 잡지를 훑어보았다. 그 실없는 모습이 기가 차고 미어지게 가여워 웃음이 삐져나왔다. 눈물이 액정화면 위로 투두둑 떨어졌다. 전화번호들 위에서 헤매던 집게손가락이 그 눈물방울에 걸려 멈추었다. ‘새가게’ 개업 첫날 남편이 직접 나의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카페 전화번호가 거기 있었다. 화환 향기가 가득하던 가게에서 남편은 ‘새가게라고 해놓을게.’ 말했었는데. 그때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던가. 나는 흩뿌려진 눈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통화를 눌렀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감싸며 가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소리가 닿기를. 소리가 울리기를. 소리가 돌아오기를.




작가소개 / 이지민(소설가)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모던보이 :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 쓴 책으로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나와 마릴린』, 『청춘극한기』 등이 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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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4-01
성한 입

성한 입 이현석 아기 앓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박명이었고 아직 분유 먹일 시간은 아니었다. 어두운 잠귀를 이유로 밤 당번을 자처한 것은 나였으나 의지와 달리 본성은 강했다. 아내가 자리끼 컵을 산산조각 냈을 때도 세상모르고 코만 곯았다는데 율이와 둘이 잔 뒤로는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금방 뜨였다. 바닥에 깔아 둔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아기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율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오물거렸다. ‘아빠가 또 속았네.’ 잠은 설쳤어도 흐뭇했다. 이 작은 목숨이 간밤을 또 무사히 넘겼구나. 그 마음을 얹고 도로 몸을 뉘었는데 다시 잠에 들지는 못했다. 아기방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거슬렸다. 창문은 밤새 돌린 가열식 가습기 탓에 부러 흩뿌린 것처럼 흥건했다. 문득 재건축 조합 단톡방에서 보았던 잡담이 떠올랐다. 유명 로펌을 다니느라 바쁜 딸과 얼마 전 개원한 의사 사위를 대신해 손주 둘을 보느라 겨우내 가습기를 틀었더니 옷장 안에서부터 피어난 검은 곰팡이가 벽면 한쪽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시황 따라 일이 억은 우습게 에누리하는 아파트에서 곰팡이 걱정이라니. 직면한 현실과 지난봄 우리 부부가 치른 비현실적인 가격 사이의 뚜렷한 차이에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현실만 따지면 놀랍지 않았다. 아파트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삼화토건 회장 도예종, 매일신문 기자 서도원,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여정남 등 여덟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으로 사형을 선고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을 집행했던 바로 그해에, 여의도의 다른 구축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명령으로 완공됐다. 반세기가 넘은 건물이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곰팡이는 당연했다.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아도 놀랄 것이 없었고, 개수대에서 썩은 내가 올라와도 그러려니 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여름밤에는 통통하니 살이 오른 쥐가 아파트 복도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기함할 듯 놀란 나와 달리 아내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빠, 견뎌. 이게 실거주 투자의 현실이야.” 아내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나는 그 말을 묵직이 받아들였는데 싱글일 때부터 정석대로 자산을 늘려 온 아내의 투자 이력을 알아서였다. 현관문을 잽싸게 닫은 나는 만삭이 된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충성충성”이라고 촐싹댔다. 사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 벌레나 쥐가 부르는 본능적인 혐오도 자산 증식이라는 대명제 앞에선 한낱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곰팡이조차 농담일 수 없었다. 집에는 율이가 있었다. 가습기를 끈 나는 전날 벗어 둔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율이가 깨지 않게 까치발로 창문에 다가갔다. 물기를 닦고서 창문을 미세하게 열었다. 서늘한 외풍이 실낱처럼 들어왔다. 재건축 단톡방에 상주하는 어르신들은 아침에 잠깐씩 이렇게 해 두면 곰팡이도 예방하고 아이

  • 관리자
  • 2025-04-01
흰옷 빨래의 날

흰옷 빨래의 날 안담 오늘은 마지의 기일이니까 흰옷을 모아 빨래를 한다. 마지가 유니폼처럼 자주 입던 크림색 티셔츠도 잊지 않고 꺼내서 빤다. 아마도 처음 살 때는 흰옷이었을 거다. 내가 애용하는 독일 브랜드의 캡슐 세제는 성능이 뛰어나다. 이 티셔츠에서는 마지의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나도 마지의 냄새를 잘 떠올릴 수가 없다. 꽤 강한 냄새였는데, 그런 냄새가 잊히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가끔 그 냄새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4년 전 마지와 내가 처음 만났던 장소인 모둠 전집에 간다. 전을 굽는 작업대가 가게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서 포장 손님도 많은, 반은 노점인 그런 가게. 튀는 기름을 막기 위해 조리대 틈새와 철판 모서리에 은색 호일이 덧대어져 있고, 그럼에도 철판 가장자리나 작업대 위 처마에 쌓이는 기름때를 막을 수는 없다. 조용히 질색하며 지나치는 행인들, 저 시커먼 데서 맛이 나오는가 보다고 농담하는 손님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를 맡는다. 이 냄새와 비슷했던 것 같아. 열과 기름과 사람이 합쳐서 내는 냄새. 전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냄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내 동거인의 냄새, 홍제천 스리룸의 주방 맞은 편 작은 방의 냄새, 마지의 냄새. 앞으로는 누구와 같이 살 생각이 없다. * 윤석열 나이로 스물아홉이 되던 2021년 겨울, 나는 당근마켓을 통해 홍제역 인근 스리룸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마지는 그 글을 보고 연락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좋은 집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련산과 홍제천이 코앞이고 인왕산이나 북한산도 비교적 멀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프라랄 게 없는 집. 인적 드문 가파른 언덕에 있고 북향이라 볕이 잘 들지는 않으며 어떤 역에서든 멀었다. 낡은 건물인데 월세는 70만 원으로 센 편이었다. 월세를 제외하면 그 집의 여러 요소는 내게는 장점이었다. 크고 힘 좋은 내 개와 오를 산이 있고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는 게. 스리룸에 방들이 크고, 연식이 오래된 집의 컨디션을 의식한 집주인이 못 박기를 포함해 여러 변화를 허용해 준다는 점도 좋았다. 나부터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흡연자도 좋았다. 내가 대형견과 산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장점이고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단점이었을 테다. 내 개는 순하다 못해 맹한 편이었지만, 글에는 남자나 키 큰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보인다고 적었다. SNS로 하메를 구하는 여자에게 피곤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는 줄 아냐고 으름장을 놓은 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인 소개가 낫지 않냐는 조언도 숱하게 들었지만, 지인의 지인이 길거리에 다니는 아무개보다 더 좋은 사람일 거라는 전제에 동의가 잘 안되었거니와, 하우스메이트가 맘에 안 들었을 때 소개해 준 지인의 체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의 구인 글은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이런 형태가 되었다. ‘홍제역 인근 스리룸 하메 구합니

  • 관리자
  •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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