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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연재] 외계인①

  • 작성일 2016-01-04
  • 조회수 1,348


[중편연재]



외계인 (제1회)




박상우



pho-0104쓰촨성 광원 천불애(四川省 光元 千佛崖) Photo by 박상우


아랫배에다 가로로 빗금을 긋는 듯한 통증이 시작된 건 밤 아홉 시경부터였다. 처음엔 서늘한 광선이 지나가는 것처럼 한 줄기 냉기가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위가 뚜렷해지고 통증의 심도가 확연하게 깊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원룸의 일인용 소파에 몸을 묻고 반쯤 감긴 눈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몽롱한 의식 상태에서 리모컨을 눌러 계속해서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정신이 흐리마리한 상태였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과 보기 싫은 것, 봐줄 수 있는 것과 봐줄 수 없는 것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마땅히 뭔가를 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러고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중국에서 돌아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터라 심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거의 강시 수준.
중국에서 뭘 했냐고?
밤마다 53도짜리 고량주를 퍼마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고량주를 퍼마시고 세상만사를 잊으려고 기를 썼다. 술이 없었다면 쓰촨성(四川省)의 어느 계곡에선가 몸을 날려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서른다섯, 장가도 가지 못한 사진작가 하나 죽는다고 누가 눈이나 깜짝하겠는가. 이 나라에서 하루에, 한 달에, 일 년에 자발적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누군가 페이스북이나 트윗에 개탄하는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 같은가.
븅신, 죽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넌 왜 아직 살아 있니?
서늘한 광선처럼 감각적으로 느껴지던 아랫배의 통증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철 로프처럼 굵고 강렬한 통증으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거라 믿었던 게 엘리베이터를 매달고 오르내리는 강철 로프의 강도로까지 심해지니 흐리마리하던 의식에 갑작스럽게 또렷한 초점이 생겨났다. 긴장과 공포, 그리고 통증에 대한 두려움.
통증이 심해지는 와중에 나의 뇌리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쾌재의 소음을 만들어낸 건 중국에서 겪은 일들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보다 더 강렬하고 끔찍스럽게 각인된 건 동행했던 두 명의 한국인, 술탄과 야마였다. 술탄과 야마는 그 인간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이름보다 더 적절한, 그러니까 그네들의 인간성을 반영하는 닉네임.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악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거나 악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는데 그것의 완결판을 쓰촨에서 단 두 명의 인간을 통해 경험했다. 오죽하니 휴대폰 메모장에 ‘내 마음의 아우슈비츠’라는 메모를 남겼겠는가.
통증이 깊어지는 동안 술탄과 야마의 환영이 의식의 중심에 거대한 용광로처럼 자리 잡았다. 술탄을 모욕하면 참수형이라는 거 몰라? 내가 개좆같이 보이냐? 야, 술 따라라, 개새끼야! 아, 씨발, 야마 돈다, 야마 돌아! 술탄과 야마의 말과 행동과 표정과 기운이 기억에서 일제히 방출되어 무한 화염으로 피어올랐다. 백광에 가까운 빛을 발하는 용광로의 중심에서 나의 심신은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이것은 단지 통증이다, 하고 나는 상체를 앞으로 접으며 안간힘을 다해 중얼거렸다.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는 본능적 위기감,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실낱같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소파에서 벗어나 무릎을 꿇고 상체를 45도로 굽힌 채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완전한 붕괴.


병원 응급실에 당도했을 때 나의 통증은 집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격심해지고 있었다. 아랫배에서 가로로 느껴지던 통증이 어느새 상체 전반, 그러니까 갈비뼈를 양쪽에서 짓누르는 듯한 격통으로 심해진 것이었다. 콜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계속 진통제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커지고 있었다. 통증의 반대말을 나는 진통제라고 믿고 살았다. 물론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통증의 경험 때문에 생겨난 의식의 고집일 터였다. 십 년 넘게 치통에 시달리면서 ‘인생은 통증이고 통증은 인생이다’라는 극단적 문장을 만들어 본 적도 있었다. 통증은 육체-신경-감각을 통해 느껴지지만 어느 곳에서도 실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통증이 시작되면 나쁜 기억들이 일제히 눈을 뜨고 기다렸다는 듯 죄의식이 나타난다.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통증의 당위성으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어떤 인과로 인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 다시 말해 누군가 나에게 벌을 내리고 있다는 끔찍한 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다.
바로 그럴 때, 그러니까 고통이 극에 달할 때 구세주처럼 진통제가 떠오른다. 극한상황에 맞닥뜨릴 때 자신도 모르게 “오, 하느님!” 하고 소리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진통제는 통증을 거짓말처럼 스러지게 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게 진통제의 한계다. 그래서 진통제를 맞을 때마다 나는 ‘완전한 진통제는 죽음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죽으면 더 이상 어떤 통증에도 시달리지 않게 될 테니까.
진통제가 투입되면 통증은 눈치 빠르고 간교한 생명체처럼 작동을 멈추고 소멸을 가장한다. 그럼 병인이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게 말짱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어? 한바탕 몸 개그를 하고 난 것처럼 육체에서 허탈한 공허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는 한 통증은 반드시 되살아난다. 그것이 문제다. 의식은 무시하고 싶어 하지만 몸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진통제를 투여할 때마다 통증은 육체에게 터미네이터처럼 말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오마! (I’ll be back!)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응급실은 아픈 사람을 곧바로 처치해 주는 곳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온 환자를 의사와 간호사들이 인간애 가득한 표정으로 침대에 옮기고 정신없이 달리는 장면 숱하게 봤을 것이다. 다 뻥이다. 그런 건 심장이 멎거나 머리통이 깨지거나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그야말로 ‘이머전시(emergency)’한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경우일 뿐이다. 그러니까 응급실에 제 발로 걸어가서는 절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라 태양에 피부를 그을린 사람들이 여럿 응급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장의자에 십여 명 정도의 남녀가 앉아 있었지만 개중에 나처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소간 긴장하거나 피로와 짜증이 밴 얼굴로 앉아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접수를 하면서 나는 담당자에게 ‘배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고 간곡한 표정으로 사정을 말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이 언제 어디서 나에게 주입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극한의 복통을 호소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말이라 배를 움켜잡고 다급하게 질러 본 것이다. 배가 끊어질 듯이? 아마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는 의미의 ‘단장(斷腸)’이 잘못 변형돼서 생긴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접수대의 여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이렇게 한 마디 했을 뿐이다. 증상은 진료실에 가서 말하세요.
출입문이 활짝 열린 진료실에는 30대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네댓 살 정도의 여자 아이를 앞에 앉혀 두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짓이라는 게 반드시 그런 짓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응급진료실에서 할 수 있는 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짓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니 괴이쩍은 상상력을 부풀릴 필요는 없다. 의사가 아이에게 자신의 열 손가락을 펴 보이고 그걸 따라하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행동이 너무 어처구니없게 보여서 뭐야, 응급진료실에서 지금 어린애 데리고 쎄쎄쎄 하자는 거야? 하고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격통은 육신을 가누고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져 양손으로 양쪽 옆구리를 누른 채 선 자리에 고스란히 쪼그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무릎을 꿇었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그 상태로 응급진료실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 제발, 나 좀, 나 좀 살려 줘, 하고 안간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의사가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한 마디 했다.
“이것 보세요. 응급실에 온 사람 중에 당신만큼 안 아픈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밖에 나가서 기다려요.”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나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 순간,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격통 때문인지 뇌에서 가공할 만한 회오리가 일면서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고개를 들고 의사에게 신음처럼 한 마디 뱉었다.
“…… 니가 의사냐?”
몇 초나 몇 분, 아마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의식이 끊어진 게 아닌데 비현실적인 감각이 두드러져서 상황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누군가 나를 양쪽에서 부축해 질질 끌 듯 어딘가로 데려가는 게 느껴졌다. 물론 통증은 여전했고 온몸은 힘을 잃고 늘어질 대로 늘어져 있었다. 버려진 쓰레기나 죽은 개의 이미지가 나의 육신에 겹쳐졌다. 나의 의식이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허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눕혀졌지만 그 즉시 발악적인 비명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건 신음이 아니라 악, 악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악, 아아, 악! 나 좀 살려 줘! 제발, 누가 나 좀 살려 줘!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나를 위해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떤 자식인가 가까운 곳에서 에이, 시끄러워, 하고 짜증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개자식, 너도 언젠가 이렇게 통증에 시달릴 때가 있겠지. 나의 의식은 그렇게 응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슬퍼서 모든 것을, 너무 아파서 모든 것을, 아,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 그런 염원을 나의 의식은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스스로도 자못 놀라고 있었다. 아, 이 가련한 중생이 드디어 생명줄을 놓고 싶어 하는구나!
죽고 싶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옷처럼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나도 또렷하게 한 것이다. 무거운 철갑, 남루한 누더기 같은 생명의 옷을 벗어던지면 금방이라도 깃털처럼 가벼운 의식 상태가 되어 훨훨 허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경계 지점에서 뇌의 우측 부위가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흰 빛이 밀려들며 시야 전체가 환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통증이 희미해지고 의식이 부력을 받으며 허공으로 가볍게 비상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기습처럼 내 살갗을 뚫고 들어온 주사바늘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내버렸다. 누군가 기습적으로 날 찌른 것이다.
희미한 의식 속으로 밀려드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여러 개가 떼를 지어 함께 움직이는 소리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탈진 상태에서 진통제를 맞다가 현실의 끈을 놓쳐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고, 눈을 떠보라고 했고, 일방적으로 검사를 시작한다며 팔에 다시 주사바늘을 찔러 넣고 피를 뽑았다. 그 순간, 나는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오, 믿어지지 않는 현실!
나는 상체를 반쯤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가 즐비한 응급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와 의사가 보였다. 응급실에서 어린애와 이상한 짓을 하던 바로 그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뭔가 여전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좀 전에 간호사가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통증이 가라앉았으니 이제부터 전반적인 검사를 시작할 겁니다. 혈액, 엑스레이, 시티 촬영까지 해야 하니 기다리세요.”
“아뇨, 이젠 하나도 안 아픈데요.”
나는 의사를 쳐다보며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것은 아프지 않다는 단순한 의사표현이 아니라 이제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왔고, 통증이 사라졌으니 집으로 가는 게 마땅한 것 아닌가. 아프지도 않은데 이렇게 비인격적인 대접을 하는 공간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뭔가.
“그런 격통은 단순하게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진통제 효과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끝날 통증이 아니라는 거죠. 근본 원인을 찾지 않으면 몇 시간 뒤에 다시 실려 올지도 몰라요. 그러니 지금부터 조용히 검사 받으세요.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곧바로 나갈 수 있게 조치할 겁니다.”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의사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어이없게도 새벽 두 시 사십 분에 나는 일방적으로 입원 조치되었다. 혈액, X-Ray, CT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입원 조치된 것이다. 응급실 의사는 아무래도 담도가 의심스러우니 일단 입원하고 내일부터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말했다. 무슨 해괴한 역설인지 모르겠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은 게 더 걱정스럽다는 것이 입원의 당위였다. 담도가 왜 의심스럽냐고 내가 묻자 흉곽 통증으로 미루어 담도가 미세한 담석 입자로 막혀 있을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담도 MRI나 내시경 초음파로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에서 분비되는 담즙이 쓸개라고 불리는 담낭 안에서 돌처럼 굳어진 걸 담석이라고 하는데 콜레스테롤 담석 같은 건 흰색이라 CT상으로 나타나지만 검거나 갈색인 색소성 담석들은 촬영을 해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응급실 간호사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서 내리자 희붐한 형광불빛이 무겁게 드리워진 입원병동의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에는 환자도 간병인도 간호사도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괴괴한 공간을 앞서가는 간호사를 따라가자 복도 중간에 너스 스테이션이 나타났다. 두 명의 당직 간호사 중 한 명에게 나를 인계해 주고 응급실 간호사는 곧바로 돌아갔다. 당직 간호사는 준비해 둔 서류를 꺼내 몇 가지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묻고 기록했다. 그런 뒤에 혈압, 맥박, 체온을 측정하고 너스 스테이션 옆에 준비된 체중계와 신장계로 나를 안내해 몸무게와 키를 쟀다. 그런 뒤에 입원복을 지급하고 복도 끝에 있는 1161호실로 나를 데려갔다.
좌우에 여섯 개의 침대가 놓인 입원실은 완전 소등되어 있었다. 우측의 침대 세 개에는 커튼이 둘려 있어 안에 누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좌측의 양옆 침대에도 커튼이 둘려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쳐지지 않은 좌측 가운데 침대가 내 자리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간호사는 아무런 주사제도 지정되지 않았으니 그냥 자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괴괴하던 실내에서 온갖 소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소리가 갑작스럽게 되살아나는 것도 기이했지만 그 모든 소리가 하나같이 속이 텅 빈 소리, 다시 말해 숨소리라는 것도 신기했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지는 시각, 사박사박 갈대숲을 헤치고 저승사자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
침대로 올라가 벽에 부착된 베드콘솔을 눌러 작은 형광등을 켰다. 커튼을 치고 환자복을 갈아입은 뒤 잠시 멍하니 침대 위에 서 있었다. 그러자 바로 옆의 커튼 안에서 도대체 지금이 몇 신데 불을 켜고 지랄이야, 하고 가래가 끓는 듯한 나이 든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껐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앉았다. 베개를 뒤에 괴고 비스듬히 몸을 눕힐 때 맞은편의 어느 커튼 속에선가 허헉, 컥!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터져 올랐다. 몇 초간의 정적에 이어 갑작스럽게 크흐허억, 하고 막혔던 숨이 터지는 소리. 또 다른 커튼 속에서 쩝쩝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내 우측의 커튼 속에서 끄으잉, 하고 개소리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명료하게 압축하는 듯한 문장 하나가 뇌리로 다운로드 되었다.
여기가 나락(奈落)이다!
드디어 지옥에 당도했구나, 하는 자각이 사방의 어둠을 더욱 깊고 무겁게 강조했다. 여섯 개의 관이 놓인 공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생명의 증거가 아니라 주검에서 밀려 나오는 죽음의 증거처럼 한없이 공허하고 기괴하게 들렸다. 눈을 감자 병실보다 더 깊은 어둠, 더 깊은 공동이 덮쳐왔다. 모든 것이 스러지고 어둠 물질과 어둠 에너지가 가득 들어찬 무한 우주가 펼쳐졌다. 그 중심에서 하나의 점이 위태롭게 점멸하고 있었다.
점(點).
쓰촨에서 나락으로 이어진 시공간 점프가 내 자신을 하나의 점으로 환원시켰다. 드디어 극점이 되어 극점에 도달한 것이다. 원래 그런 존재가 원래 그런 존재로 귀환한 것이다. 이상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여기가 원래 내 자리, 여기가 본래 그 자리인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과 지구인이라는 행성족의 모든 속성이 내 안에 불협화음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에 존재하는 나락, 그것이 곧 나라는 존재였다. 지구는 나의 지옥별, 지구인은 소통하기 힘든 행성족, 나는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천형의 외계인이었다.
아, 쓰촨!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나는 온갖 나락에 관한 공상과 망상에 시달렸다. 쓰촨의 악몽이 압도적이라 내가 아직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여기보다 그곳이, 지금보다 그때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어둠 속에서도 무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그것이 누구의 기획이었건 세 명의 악연이 함께 쓰촨으로 간 건 지상 최대의 실수였다. 그것을 거부할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지만 모질지 못한 나의 거부권을 단번에 짓이길 수 있는 야만성은 술탄과 야마의 몫이었다. 도리 없는 일, 나는 그런 걸 운명적인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였다.


【 시(時) / 공(空) / 불(佛)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나의 세 번째 사진전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의 차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명성을 얻게 한 전시회였지만 옥에 티가 끼고 좋은 일에 마가 끼듯 그것을 노골적으로 고깝게 생각하는 존재들이 나타난 게 화근이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 저녁 무렵에 나는 술탄과 야마의 요구로 낮부터 술에 취한 그들을 만났다. 갤러리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술탄이 이기죽거리듯 물었다.
“이번에 전시한 스물두 점에 모두 빨간 딱지가 붙었더라. 큐레이터한테 물었더니 대부분 대형 사찰 주지들이 사갔다며? 젠장, 도대체 한 점에 얼마씩 팔아 처먹은 거야?”
나는 그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의자에 길게 늘어진 자세로 앉아 있던 야마가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너, 그거 어디서 찍은 거야? 솔직히 말해!”
“도록에 나와 있잖아요. 쓰촨, 광원 천불애.”
그들은 ‘쓰촨, 광원 천불애’라는 나의 대답을 거짓말로 받아들였다. 무식하게 술탄은 그게 뭐 하는 거냐고 물었고, 야마는 어디에 있는 사찰이냐고 물었다. 사진 대부분을 크고 작은 석굴에서 촬영한 터라 그들은 전반적인 촬영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쓰촨성에 대해서도 모르고 광원(光元)이나 천불애(千佛崖)에 대해서도 알 턱이 없으니 뒤틀린 심사로 나의 말을 믿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야마가 레이밴 선글라스를 벗고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보아하니 ‘쓰촨 광원 천불애’를 입력하는 눈치였다.
“나왔어?”
술탄이 실핏줄이 퍼진 눈으로 야마에게 물었다.
“나왔긴 한데…….”
“뭐야, 이리 줘봐!”
술탄이 야마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일이 분 정도 폰을 들여다보다가 불현 듯 고개를 들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씨발, 이게 무슨 개좆같은 소리냐.”
나도 그곳에 대해 인터넷 검색은 해본 적이 없어 어떤 내용이 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술탄에게 폰을 건네받아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대사전 용어 편에 ‘광원 천불애’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었다.


소재지 : 중국 쓰촨성
중국 쓰촨성 동북부의 감숙 · 섬서 두 성의 경계 근처 광원현 현성의 북쪽 5km, 가릉강(嘉陵江) 동안에 있다. 800여의 석굴 · 소불감(小佛龕)으로 이루어져 있고, 쓰촨성 최대의 석굴군으로 조상명(造像銘)도 많다. 대불동 등의 석굴에는 용문 석굴의 북위(北魏)굴이나 맥적산(麥積山) 석굴에 상통하는 양식이 보이며, 북위 후기의 개착(開鑿)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최고의 조상명은 천불애 남단 중앙의 대운동 외벽에 있는 개원 3년(715)의 『위갱공덕기(韋坑功德記)』이며, 그 외 대부분은 당성기의 것이다. 또 현성 서쪽의 가릉강 서안에는 황택사(皇澤寺) 석애(石崖)가 있다. 목조건축은 이미 없고 석굴 6, 마애불 28이 남아 있다. 석굴은 지제당(支提堂)굴, 반원형 반로천굴, 방형굴로 분류된다. 마애불은 3존상 · 5존상 · 7존상을 새긴 방형소감과 불보살상 · 불교고사를 부조한 장방형소감으로 나눠진다. 창건 연대는 불명이나 조상은 당대의 것이다.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폰을 야마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3일 동안 사진 촬영을 했기 때문에 지식백과의 내용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그들에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예상대로 술탄은 못 참겠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러니까 거기에 800개의 석굴이 있다는 거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자 야마가 물었다.
“넌 거길 어떻게 알고 갔어?”
“……우연한 기회에.”
내가 그곳에 가게 된 정황을 그들에게 사실대로 말해 줄 필요가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물론 그냥 지나칠 위인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해 주면 더 피곤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야마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좋아! 우리도 너처럼 우연한 기회를 만들고 싶으니 네가 앞장 서. 전시회도 끝났고 대박 성공했으니 한 턱 쏘는 셈치고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하라구. 석굴이 800개면, 아직도 찍을거리가 많이 남았다는 얘기 아냐? 야비하게 혼자 독식하지 말고 이 형님들하고 나눠먹자 이거야. 알겠냐?”
“거긴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어요.”
짧지만 사실대로 나는 말했다. 중국의 많은 문화 중에서도 석굴 문화는 으뜸으로 꼽히는지라 관리 보존을 위해 일반 관람을 제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광원 천불애도 보존과 보수를 위해 일반 공개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제한이 아니라 내가 그곳으로 가서 사진 촬영을 하게 된 특수한 경위를 그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이 년 전, 내가 쓰촨으로 가게 된 건 전적으로 알고 지내던 소설가 덕분이었다. 소설가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걸 싫어하고,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설가 시늉만 하면서 그림자처럼 살고 싶다’는 그를 내가 알게 된 건 몇 해 전 전집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프로필 사진 의뢰를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세상을 살 만큼 산 50대의 작가는 사진 찍히는 걸 지독히 싫어해서 그동안 출간한 모든 책에 캐리커처를 사용했는데 전집 때문에 리얼한 근황 사진을 찍게 되자 그걸 몹시 불편해했다. 그때 그는 농담처럼 나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이보게, 혹시 내 그림자를 찍어서 그걸 쓰면 안 될까?”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자신을 노출하는 걸 힘들어하는지 넉넉히 알 수 있었다. ‘소설가 시늉만 하면서 그림자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작가적 명성이나 명예욕과 거리가 먼 삶의 갈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이 갈고닦아 온 문학적 재능이 아까워 글을 쓰기는 하지만 글에 대해서도 욕망을 앞세우지 않고 자기 인생의 내적 필연성을 위한 창작만 하고 싶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림자 작가로 살면서 글로써 자기 이름이 앞세워지는 걸 그는 한껏 경계하는 것 같았다. 무식한 나는 작가면 작가라는 직함을 얻고 그것을 발판 삼아 활동하게 되는데 어떻게 그림자 같은 삶이 가능하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면 되겠지.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처럼 ‘연(然)하는 삶’, ‘체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글을 쓰는 최초, 최종 목표는 단지 공유에 있다네. 인생 경험을 통해 결실로 얻은 것들, 다시 말해 나 혼자 간직하기 아까운 것들을 나누고자 함이지.”
“그럼 선생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리석은 나는 다시 물었다. 그의 말에 내가 비치고, 그의 말에 내가 용해되고 있다는 걸 그때 이미 나는 완전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관에 나의 인생관을 이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자유지. 주어진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 세상 사람들은 자유의 의미를 구속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실은 그게 아닐세. 자유의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 보면 알 걸세. 자유란 의미 그대로 스스로[自] 말미암[由]는 것이라네. 스스로 말미암았으니 모든 것의 근원성이 자기 안에 있다는 의미일세. 자신이 자신을 낳고 자신이 자신을 유지하는 것, 그렇게 존재하는 게 진정한 자유라네. 성서의 창세기에 하느님이 자신에 대해 단 한 번 표현하는 문장이 있다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니라’, 영어로는 ‘I am that I am’…… 그게 진정한 자유라네.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누구나 하느님의 품성을 지닌 셈이지.”
그림자 작가에게서 나는 나의 삶을 보고 있었다. 이미 실현된 나의 삶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요컨대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을 보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시작한 것도 나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니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내 의견을 펼쳤더니 작가가 이렇게 일갈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네. 자네는 자네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전방의 피사체를 찍어도 자네는 여지없이 드러나는 법일세. 자네는 찍지만 기실 찍히는 건 자네라는 말일세.”
거기서 나는 사부님, 하고 그림자 작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그를 사적으로도 가끔 찾아가고 어떤 때는 그가 나의 오지 촬영에 동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그가 유독 좋다고 생각한 곳이 있으면 나에게 가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그의 추천으로 촬영 여행을 떠났던 곳이 중국 칭장 고원(靑藏高原)이었다. 남북으로 1,000km, 동서로 2,500km, 평균 해발고도 4,500m인 세계의 지붕을 나는 그림자 작가의 추천으로 가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고 넓은 그 고원지대에서 나는 한 달 이상을 머물다 왔다. 넓고 넓은 중국 영토의 23%를 차지한다는 그곳은 히말라야 산맥, 곤륜 산맥, 쿤룬 산맥, 횡단 산맥에 에워싸여 있는데 놀랍게도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소금 호수가 얹혀 있었다. 설산과 아름다운 유채꽃과 소박한 티베트족[藏族, 장족]의 문화를 구경하며 그곳에 당도했을 때 나는 선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바다빛과 하늘빛이 그토록 무구하고 청정하고 선정적인 곳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카메라, 어떤 센서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사진이고 뭐고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림자 작가가 왜 그곳으로 가라고 했는지 백 번 천 번 이해할 것 같았다. 그 순간 그림자 작가가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던 한 마디가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네. 사람들은 그게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도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경지를 일컫는 말이라네. 영어의 beyond deion과 흡사한 의미라네. 거기, 구름이 이마에 걸리고 하늘에 호수가 얹혀 있는 칭장 고원에 가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절로 생각날 걸세.”
아무튼 그림자 작가와의 쓰촨성 동행은 그런 인연을 바탕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온 그가 안부를 묻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혹시 쓰촨성에 가본 적 있는가? 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쓰촨과 사천이 같은 말이라는 것, 그리고 매운 요리의 본고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중국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그가 추천해서 다녀온 칭장 고원이 유일무이했다. 광화문을 오가는 버스 옆면에 부착된 쓰촨성 여행 광고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판다와 삼국지의 고향, 하늘이 내린 땅 쓰촨! 측천무후, 이태백, 등소평을 낳은 천부지국(天府之國) 쓰촨!
“혹시 나하고 같이 쓰촨성에 가지 않겠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의 박동이 갑작스럽게 빨라지는 걸 느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어느덧 나의 다리까지 후들거리고 있었다. 국제 낭송회에서 만난 쓰촨성의 작가 주석이 그림자 작가를 초청했는데 혼자 오지 말고 둘이 오라고 했다는 것. 독신남인 그림자 작가가 역시 독신남인 나를 떠올린 게 당연한 일인지 이상한 일인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나는 엉뚱한 농담을 건넸다.
“선생님, 그런 기회라면 좋아하는 여성분하고 같이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 여자라니, 무슨 허세인가?”
“그래도…….”
“좋은가 싫은가, 간단히 답하게. 그쪽에서 보내온 일정표를 보니 좋은 곳을 많이 볼 수 있겠더군. 나보다 사진을 찍는 자네에게 좋은 기회겠다 싶어서 하는 제안이라네.”
그날 밤 그림자 작가가 메일로 보내온 일정표에는 광원 천불애가 들어 있지 않았다. 박물관, 고성, 사찰, 계곡, 종유석 동굴, 삼국지 유적 같은 곳들이 일정으로 잡혀 있었다. 나는 카메라 장비를 모두 챙겼지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겠다는 사전 계획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인연이 닿은 장면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찍으리라, 평상시처럼 생각하고 그림자 선생을 따라나섰던 것이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에 당도한 첫날 밤, 작가 주석이 베푸는 만찬이 있었다. 작가협회 관계자 십여 명과 공산당 서기가 참석한 자리였다. 한국에서 온 두 명의 손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석하고 그렇게 규모가 큰 만찬 자리를 마련한 걸 보고 나는 은근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의 규모를 보고 쓰촨성의 작가 주석이 한국의 그림자 작가를 사적으로 초청한 것이 아니라 쓰촨성의 작가협회 명의로 정식 초청한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쓰촨성의 작가 주석은 키가 작지만 당차 보이는 티베트족 출신이었는데 눈매가 몹시 날카롭고 매서워 보였다. 온갖 시련을 겪은 티베트족의 역사를 대변하는 소설가다운 눈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공산당 서기는 의외로 밝고 경쾌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중국에서는 어디서나 공산당 서기가 모든 실권을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그림자 작가가 귀띔해 줘서 알았지만 작가 주석과 공산당 서기는 상당히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사진작가라는 소개를 받은 서기가 나와 악수를 나눈 뒤 작가 주석에게 뭐라고 중국말로 손짓을 섞어 가며 의사 표현을 했다. 그러자 작가 주석이 음, 음, 하는 입소리를 내며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으로 나온 젊은 조선족 여성이 곧바로 작가 주석의 말을 나에게 전했다.
“한국에서 오신 사진작가님께 서기님께서 특별한 제안을 하나 하시겠다는데요. 내일부터 쓰촨성의 중요한 문화유적 중 하나인 광원 천불애에서 중국 사진작가들의 천불중광(千佛重光) 사진대회가 열리는데 거기 참석하실 의향이 없으신지 알고 싶답니다. 중국 사진작가 중에서도 유명한 사진작가들에게만 참가 자격을 부여하는데 원하신다면 서기님께서 특별한 자격증을 만들어주시겠답니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경로를 거쳐 다음날 나와 그림자 작가는 정해진 일정을 바꿔 광원 천불애로 가게 되었다. 일반인 관람을 금하는 유적지라 사진대회 참가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카메라를 멘 상당수의 사람들이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며 나와 그림자 작가는 공산당 서기가 만들어준 특별 허가증을 지참하고 청두시에서 나온 공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천불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1,500년이 넘는 세월의 풍상을 견뎌낸 화공과 석공들의 눈물겨운 작품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사진대회가 진행되는 삼일 내내 나는 그곳으로 갔고 그림자 작가는 애초에 정해진 일정을 별도로 소화했다. 그 삼일 동안 내가 찍은 것, 그것이 【 시(時) / 공(空) / 불(佛) 】사진전의 요체였다.



작가소개 / 박상우 (소설가)

-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사랑보다 낯선』『인형의 마을』『호텔 캘리포니아』『내 마음의 옥탑방』『가시면류관 초상』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작가』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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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은명기

    천불애와 외계인, 통증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매우 궁금하네요.

    • 2016-03-29 17:14:40
    은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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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음

    가독성이 대단합니다. 화자가 외계인으로 판명날지, 아님 진짜 외계인을 만날지 얼른 다음 편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아래에서 세 번째 문단 첫 문장에 오타가 있습니다. '쓰촨성의 작가 주석은 키자 작지만'에서 '키자'가 '키가'의 오타인 듯합니다.)

    • 2016-02-11 21:49:51
    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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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jyyone

    오랜만에 묵직한 글을 읽게되어 기쁘네요. 서두부분에 흡입력이 대단해서 주욱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목이 외계인인데,, 중간에 외계인이라고 자조적으로 쓰인 말이 있어 글의 향방이 어찌될지 기대되네요.. sf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연재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2016-01-06 23:52:10
    jy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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