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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인문학 ― Mr. 2 봉쿠레, 이반코프와 ‘뉴하프’

  • 작성일 2019-01-01
  • 조회수 2,267

[기획-원피스인문학]

 

 

"다른 이들을 구분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

― Mr.2 봉쿠레, 이반코프와 '뉴 하프'

 

 

권혁웅

 

 

 

    1
    이번이 마지막 회다. 밀짚모자 해적단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이들의 이상에 공감하는 몇몇 동료 얘기로 끝을 맺도록 하자. 무력에 따른 철저한 위계(位階) 조직을 추구하는 다른 해적단과 달리, 밀짚모자 해적단은 우정에 기초한 평등한 조직을 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평등이란 '구별'하되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가 둘로, 둘이 (최초의 둘을 매개하는) 셋으로 나뉘면서 이 셋이 큰 하나가 되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 ― 이런 운동을 변증법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앞에서 말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가위바위보가 서로 맞물리는 두 개의 대립물을 세 번 중첩함으로써 이루어져 있는 것, 신호등이 대립물(빨간색과 파란색)로 넘어갈 때 매개물(노란색)을 갖는 것, 주역의 논리가 하나(태극)에서 둘(음양)로 나뉜 후에 넷이 아니라 여덟(8=23)로 가는 것, 신화가 하늘과 땅만이 아니라 둘을 매개하는 제3의 영역(바다, 세계수, 동굴······)을 갖는 것, 상징과 실재가 상상의 영역을 통해서 매개되는 것, 관념철학에서 이성과 감성이 상상력에 의해 매개되는 것, 기독교에서 성부와 성자의 분열이 성령으로 인해 통합되는 것······ 이 모두가 변증법의 논리다.
    밀짚모자 해적단의 구성원들 역시 변증법에서 말하는 셋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① 해적단의 주요 전투원인 루피, 상디, 조로는 몸과 몸의 일부와 몸의 연장(무기)으로 싸운다. 몸의 3분할이다. ② 싸움은 당연히 해적단원 전체로 확산되는데, 이들은 악마의 열매 능력으로 싸우는 능력자(루피, 로빈), 타고난 신체적 능력으로 싸우는 비능력자(조로, 상디), 무력한 신체를 가졌으나 머리로 싸우는 비능력자(우솝, 나미)로 나뉜다. ③ 이들이 가진 지식도 세 종류다. 현실적인 지식에 해박한 선원(나미, 쵸파, 우솝)이 있고 현실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선원(루피, 조로)이 있으며, 비현실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선원(로빈)이 있다. ④ 구성원들은 사람과 동물(쵸파)과 그 중간(어인인 징베)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아가 이들은 ⑤ 산 자와 죽은 자(브룩)와 (처음부터 생명이 없는) 사물과 결합한 자(프랑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삼두인간 '바스카빌' 편에서 말했듯이 변증법은 분열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것은 하나 안에 내재한 둘을 읽는 논리이므로, 필연적으로 갈등과 투쟁을 낳는다. 가위바위보는 서로를 쳐부수며, 파란색은 빨간색에 의해 금지되고, 여덟은 예순넷으로 쪼개지며, 바다와 세계수와 동굴은 하늘과 땅을 영원히 갈라놓는다. 상상은 실재도 상징도 포괄하지 못하며, 상상력은 이성과 감성을 통합하지 못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성모의 자리를 추방해 버린다. 변증법은 분열과 감산(減算)의 논리이기도 한 것이다. 이 반대의 논리, 채움과 가산(加算)의 논리가 가능할까?

 

    2     가능하다. 변증법의 운동순서를 바꾸면 된다. 『향연』이 전하는 유명한 이야기로 가보자. 인간의 기원, 더 정확히는 기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전 우리들의 본성은 바로 지금의 이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유의 것이었네. 우선 인간들의 성(性)이 셋이었네. 지금처럼 둘만, 즉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둘을 함께 가진 셋째 성이 더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의 이름만 남아 있고 그것 자체는 사라져 버렸지. 그때는 남녀추니가 이름만이 아니라 형태상으로도 남성과 여성 둘 다를 함께 가진 하나의 성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의 이름이 비난하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빼고는 남아 있지 않네.
    그다음으로 각 인간의 형태는 등과 옆구리가 원형을 이룬 둥근 전체였네. 네 개의 팔, 그리고 팔과 같은 수의 다리, 그리고 원통형의 목 위에 모든 면에서 비슷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네.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있는 두 얼굴 위에 한 개의 머리, 그리고 네 개의 귀, 두 개의 치부(恥部), 그리고 다른 것들도 전부 이것들로부터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만한 방식으로 가지고 있었네. 지금처럼 곧추서서 두 방향 중 어느 쪽으로든 원하는 대로 걸어 다녔고, 빨리 달리기 시작할 때는 마치 공중제비 하는 사람들이 다리를 곧게 뻗은 채 빙글빙글 돌아가며 재주를 넘는 것처럼 그때는 여덟 개였던 팔다리로 바닥을 디뎌 가면서 재빨리 빙글빙글 굴러다녔네.1)

  1)  플라톤, 『향연』,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 2010, 93-94쪽.

 

    이 최초의 인간들은 "힘이나 활력이 엄청났고 자신들에 대해 대단한 생각(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들을 공격"하곤 했다. 이 때문에 신들의 고민이 깊었다.

 

    제우스와 다른 신들은 그들에 대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숙의하면서 어쩔 줄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네. 그들을 죽이거나 거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벼락을 쳐서 그 족속을 싹 없애버릴 수도 없었고(그렇게 되면 인간들에게서 그들이 받는 숭배와 제사가 싹 없어져 버리게 될 테니까 말일세), 또 그렇다고 제멋대로 구는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거든. 그래서 제우스가 간신히 생각을 짜내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네. '어떻게 하면 인간들이 계속 살아 있으면서도 힘이 약해져서 방종을 멈추게 될 수 있을지 그 방도를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들 각각을 둘로 자르겠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그들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수가 더 많아지게 되어 우리에게 더 쓸모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두 다리로 곧추서서 걸어 다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이 제멋대로 구는 걸로 보이고 얌전히 있으려 하지 않을 때는 다시 한 번 더 둘로 자르겠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외다리로 서서 겅중거리며 걸어 다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인간들 각각을 둘로 자르는데, 그건 마치 마가목 열매들을 말려 저장하려고 자르는 자들이 하듯 흑은 마치 터럭으로 계란을 자르는 자들이 하듯 했네. 각 인간을 자를 때마다 그는 아폴론에게 (그 인간이 자신의 잘린 곳을 바라보면서 더 질서 있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 얼굴과 반쪽 목을 잘린 곳 쪽으로 비틀어 돌려놓으라고 명했고, 또 다른 것들을 치료해 주라고 명했네. 그러자 아폴론은 얼굴을 비틀어 돌려놓았고, 마치 끈으로 돈주머니를 졸라매듯 몸의 모든 곳으로부터 살가죽을 지금 배라고 불리는 것 쪽으로 끌어 모아서는 배 한가운데에 꽉 묶어 주둥이 하나를 만들어 놓았는데, 바로 그걸 사람들은 배꼽이라 부르지.
그런데 이제 그들의 본성이 둘로 잘렸기 때문에 반쪽 각각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면서 줄곧 만나려 들었네. 서로 팔을 얼싸안고 한데 뒤엉켜 한 몸으로 자라기를 욕망하다가 결국에는 상대방과 떨어진 채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굶어서 혹은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죽어갔네.2)

  2)  같은 책, 95-96쪽.

 

    이것을 타락의 신화로 읽으면 최초의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 되는 데에 변증법에서 말하는 분열이 있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태초의 하나가 둘로 나뉘었으며, 이로써 남녀, 남남, 여여가 생겨났다. 그래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자식을 낳거나(남녀의 경우), 같이 있을 때 생기는 만족감을 느끼거나(남남의 경우) 한다.3) 그런데 실제로 이 신화는 거꾸로 읽어야 한다. 최초의 인간은 처음부터 복수(複數)로, 이를테면 세 개의 성(性) ― 남남, 여여, 남녀 ― 으로 존재했다(셋의 출현). 지금의 인간은 최초인의 절반이며(남녀, 둘의 출현), 그래서 최초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하나로의 회귀) 그게 사랑이다. 이것은 변증법의 반대 순서를 따른다. 게다가 지금의 인간은 분리되기 이전의 하나가 되려고 하고(둘을 하나로 세기), 그 자신을 반쪽이라 여기며(2분의 1이 되기), 그것도 아니면 반의 반쪽이 될 뻔했다(제우스가 지금의 인간도 둘로 나누어 4분의 1로 만들려고 했다). 배꼽도 그런 증거다. 본래 배꼽은 탯줄을 자른 자리다. 곧 배꼽은 원초부터 어떤 단절과 분리가 있었다는 변증법적인 표식이다. 그런데 이 신화에서의 배꼽은 주변의 살가죽을 그러모아 만든, 그래서 지금의 인간이 반쪽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 하는 봉합의 표식이다.
    변증법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하나가 분열하여 그 자신의 대립물인 둘이 되고, 둘이 매개물이자 화해물인 또 다른 하나를 통해서 큰 하나가 되기. 하나가 둘로, 둘에서 다시 셋으로. 비유컨대 하나의 인간이 남녀로 분열되고, 이 둘이 다시 결합하여 분열/화해의 상징인 제3의 인간(자식)을 낳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의 증거(화해물)이지만, 둘이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증거(분열의 확증)이기도 하다.4) 그런데 저 신화의 논리는 다르다. 본래부터 남녀양성(혹은 남남, 여여)인 세 인간이 있었고, 이들이 쪼개져 둘(남과 여)이 되었으며, 그래서 최초의 하나가 되려고 한다. 셋이 둘로, 다시 하나로. 『향연』의 신화는 바로 이것이 사랑의 논리라고 말한다.

  3)  이 신화를 전하는 아리스토파네스는 여여의 경우는 여성 '동성애'이고, 남남의 경우는 '사내다움'이라고 설명한다. 시대가 사유에 그어놓은 한계선이다.
  4)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것의 신화적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어미이자 어머니인 대지모신/ 자식이자 지아비인 하늘신/ 아버지에게 잡아먹히는 운명을 겨우 모면한 후에 아버지를 거세함으로써 권력을 쥔 아들신, 이 셋의 구도가 바로 변증법의 구도이다.

 

    3
    최초 인간의 후예라도 되는 듯이 자신을 '절반'이라고 소개하는 인물이 있으니, Mr. 2 봉쿠레(Bon Kurei)가 이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벤담(Bentham)이며 바로크 워크스의 조직원으로 처음 등장했다. 바로크 워크스는 칠무해의 한 사람인 크로커다일이 지배하는 비밀스러운 회사로 암살, 절도, 첩보, 현상수배범 추적 등의 범죄 임무를 수행한다.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간부들에게는 코드명이 부여되어 있다. 남자 간부들에게는 Mr. 0에서 Mr. 12까지의 번호가 부여되어 있고, 여자 간부들에게는 Ms. 더블 핑거(1월 1일), 골든 위크(황금 연휴), 메리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 마더즈 데이, 파더즈 데이, 먼데이~새터데이라는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남녀 사원들은 짝을 이루고 있는데, Mr. 2 봉쿠레만 짝이 없다. 그는 남자이자 여자인 뉴하프(New-half)이기 때문이다. 뉴하프는 한국어 번역본의 용어이며, 일본에서는 오카마(여장 남자)라고 소개되었다(실제로 그는 여장 남자다). 뉴하프는 트랜스젠더를 이르는 이름이므로 잘못된 번역어이지만, 글자 그대로 읽으면 '새로운 절반'을 뜻하므로 창조적인 오역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복사복사 열매 능력자로 오른손으로 자기 얼굴을 만지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왼손으로 만지면 본래의 자기 얼굴로 돌아오는 능력을 가졌다. 양손을 번갈아 쓰면서 타인과 자신을 왕복하는 2분의 1 인간인 셈이다. 처음에는 이 능력으로 바로크 워크스에서 부여된 악한 임무들을 수행하지만, 바로크 워크스가 해체되고 난 후에는 루피의 가장 충실한 친구가 되어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과업을 실천한다. 알라바스타에서는 해군의 추격을 받은 루피를 탈출시키고 대신 체포되어 임펠다운에 수감되고, 형을 탈옥시키러 임펠다운에 잠입한 루피를 거듭 탈출시키고 또다시 해군에게 잡힌다. 코믹한 비호감 캐릭터에서 원피스 사상 가장 멋진 대사를 날려대는 숭고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밀짚을 구출해야 해!"
    "구출하다니, 너! 그 녀석은 마젤란의 독에 당해 Level 5에 처박혔다고 병사가 그랬잖아. 밀짚모자의 목숨 자체가 희망도 없고, 우리까지 개죽음이야."
    "개죽음이건 소죽음이건 상관없어. 난 마젤란과 밀짚에게 등을 돌렸을 때 이미, 목숨을 그곳에 두고 왔으니. 그 자리에서 같이 쓰러져 잡히는 것보다 내가 도망치고, 밀짚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 준다면, 내가 죽어도 널 구하러 돌아오겠다고! 난 맹세를 하며 달렸어."
    "야, 맹세를 한 건 좋지만 애써 도망쳐 목숨을 구했는데, 왜 다시 그 녀석을 위해 죽을 곳으로 돌아가는 짓을 해야 하냐고!"
    "친구니까! 이유 따위, 더는 필요 없어!"(봉쿠레와 광대 버기의 대화, 55권 535화)

 

    "친구니까!" ― 선장 루피가 늘 자신의 선원들에게 하는 이 말을 한때는 적이었던, 그리고 딱히 동료가 될 까닭도 계기도 없었던 봉쿠레가 말할 때, 독자는 반신반의하다가 깨닫는다. 루피의 입으로 듣는 말보다 봉쿠레의 이 말이 훨씬 더 숭고하다는 사실을, 루피가 말하는 친구나 동료는 평등한 구성원끼리의 연대(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이지만, 봉쿠레가 말하는 친구는 자신의 절반(2분의 1 더하기 2분의 1)에 대한 호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정'과 '사랑'의 차이일 것이다.
    봉쿠레는 임펠다운의 감옥서장인 마젤란의 독에 당한 루피를 목숨을 걸고 구해 내고, 고통스러운 해독 치료를 받느라 사경을 헤매는 루피의 방을 지키며 하루 종일 그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으며, 마침내 마젤란으로 변신해서 정의의 문을 열어 루피 일행을 탈출시키고는 그 자리에서 붙잡힌다.

 

   “너, 왜 또 이런 짓을 하는 건데! 그때처럼 말이야! 함께 탈옥하는 게 아니었냐구! 나, 계속 도움만 받고 있잖아! (중략) 그랬구나······ 뉴하프 자식, 우리를 위해 혼자 남아서······ 봉! 문이 곧 닫혀! 우리······ 갈게. 고마워!”(루피가 봉쿠레에게, 56권 548화)/span>

 

    이 숭고한 실천을 어찌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섯 개의 레벨에 따라 중죄인들을 가두고 있는 임펠다운은 해저 감옥으로 '지옥'을 형상화하고 있다. 봉쿠레는 다시 열리지 않을 임펠다운에 영원히 갇히는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2분의 1인 루피를 내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4
    마젤란의 독에 당해서 죽어가던 루피는 봉쿠레의 조력으로 뉴하프만 왕국의 여왕 엠포리오 이반코프와 그 일당에게 구원을 받는다. 뉴커머는 신인류를 뜻하며, 이반코프는 호르호르 열매 능력자로 호르몬 주사를 통해 죽어가는 이를 살리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바꾸기도 한다.

 

    "15년 전 일국의 왕이었던 내 아버지가 뉴하프만 왕국에 발을 들여놓은 후 뉴하프가 되어 돌아왔어. 나라도 가정도 붕괴! 왕족인 난 해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구! 여기에 적이 있었다니! 이 전락 인생의 대가, 지금 여기서 받아내겠다."(무명의 해적)
“눼 아버지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걸로 족하잖니. 엄마 둘, 딸 하나. 아무렴 어떠니. 사이좋게 지내렴! (중략) 남자든 여자든 뉴하프든 원하는 인간이 되면 되잖니! 그깟 성별 따위의 경계, 놘 아니······ 워리들은 이미 초월했어! 그것이 새로운 인류, 뉴커머! 이곳은 자유의 동산, 뉴커머 랜드!”(이반코프, 55권 538화)

 

    (너는 나와) '다르다'에 가치판단이 개입하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로 변하고 만다. 저 무명의 해적은 자신의 전락을 뉴하프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것이 어찌 뉴하프 탓이겠는가. 뉴하프를 차별하는 불평등한 사회의 탓이다. 이반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든 여자든 뉴하프든 원하는 인간이 되면 되잖니! 그깟 성별 따위의 경계, 놘 아니······ 워리들은 이미 초월했어!" 인간이란 남자든 여자든 뉴하프든 차별되지 않는 하나였으며, 지금 2분의 1이 되었다고 해도 그 경계들을 '초월'해야, 다시 말해서 차별하지 않고 타인을 자신의 다른 2분의 1이라고 인정해야 진정한 신인류가 된다. 이반코프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사랑이고 자유라는 사실을 설파하고 있다. 사랑이란 내 자신이 하나가 아니라 2분의 1임을 아는 일, 그래서 다른 이와 만나서 하나로 세어지는 일이며, 자유란 나와 네가 아무런 차별 없이 서로를 넘나드는, 하나가 되는 일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이미 싸움과 사랑은 한 가지 일의 두 가지 표현이 된다. 봉쿠레가 구사하는 뉴하프 권법은 발레 동작을 본뜬 것으로 ‘만취의 백조 무도회’ ‘백조 아라베스크’ ‘그 여름날의 회상록’, ‘그 겨울 하늘의 회상록’과 같은 서정적이고 정감어린 이름들을 갖고 있다. 이반코프의 ‘데스 윙크(죽음의 윙크)’는 큰 얼굴로 날리는 윙크로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는 기술이며, ‘헬 윙크(지옥의 윙크)’는 안면성장 호르몬으로 얼굴을 거대화한 다음에 날리는 윙크로 충격파를 내는 기술이며, ‘갤럭시 윙크’는 안면 스펙트럼이란 기술로 여러 개의 얼굴을 만들어(실제로는 얼굴을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잔상을 불러내는 것이다) 사방에 윙크를 날리는 기술이다. 이들에게는 전투와 사랑의 현장이 둘이 아닌 것이다.

 

    5
    뉴하프가 여전히 논쟁이 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같은 인간 사이에도 분열이 있고, 그 분열된 둘에 속하지 않는 제3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다른 모든 차원에서도 동일한 차별을 저지른다. 성 차별, 지역 차별, 외국인 차별, 계급 차별······ 분리는 점점 불가역적인 것이 되고, 이 분열을 매개하거나 통합하는 제3의 자리는 추방된다. 우리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생각도 이데올로기다.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여럿인 하나였다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하나가 아니라 2분의 1이거나 8분의 1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어인은 좀 달라. 어인은 어인의, 인어는 인어의 먼 옛날 기억을 유전자에 품고 있거든. 문어 인어의 부모한테서 상어 인어가 태어난다면, 그거, 그 부모의 먼 조상 중 누군가가 상어 인어였다는 거지. 어인섬에선 누가 어떤 자식을 낳든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그러니까 너희 인간들이 다른 형상의 이들을 구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애당초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어."(조선공 겸 바다의숲 연구자 덴이 프랑키에게, 63권 616화)

 

    원피스 세계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동물들(밍크족)이 있는가 하면, 물고기와 인간의 중간형들도 있다. 중간형에도 또 다른 '구별'이 있다. 상반신이 인간, 하반신이 물고기인 인어가 있는가 하면, 인간과 물고기의 합체형인 어인도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덴은 늑대고기 인어인데, 덴의 형인 톰은 복어 인어다. 둘이 서로 닮지 않았음을 의아해하는 프랑키에게 덴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인어와 어인의 유전자에는 서로 다른 물고기의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 기억이 발현되면 문어 인어에게서 상어 인어가 태어나기도 하고, 늑대고기 인어와 복어 인어가 한 배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기억'이라고 표현하고 '유전정보'라고 읽지만, 이것은 앞에서 읽은 최초 인간의 신화에 나오는 기원(맨 처음 2분의 1이 된 인간의 조상)의 기원(그전의, 머리 둘에 팔다리가 여덟인 원형 인간)과도 통하는 얘기다. 그 기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후의 파생형을 통해서만 짐작되는 그런 기원, 자손의 표현형을 통해서 그 자신이 복수(複數)인 하나임을 증언하는 그런 기원 말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다른 형상의 이들을 구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애당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다. 나는 이것이 원피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전언이라고 믿는다.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작가소개 / 권혁웅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마징가 계보학』,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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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1
신년 기획좌담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차별 구성 -1차: 책장 업고 튀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일 시: 2024년 12월 7일(토) 17:30~19:30 ㅇ 장 소: 온라인 zoom ㅇ 참여자 -사회자: 김준현(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참여자: 이지용(단국대학교 HUSS사업단 연구교수), 이명현(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염승숙(소설가, 문학평론가), 이어진(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웹문예학과 객원교수, 웹소설 작가 레고 밟았어) 〈개회〉 김준현: 반갑습니다. 사회를 맡은 국립목포대학교 김준현입니다. 먼저 이번 좌담의 기획 의도를 다시 짚어 보는 것을 통해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제도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다양한 ‘콘텐츠’, ‘웹’, ‘크리에이티브’ 관련 전공들이 두 학과 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문학 산실’인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는 점점 다른 교육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대, 교육 현장에서 교강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이러한 체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기획 의도는 이러하고, 이러한 의도를 참가자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맥락에서 제 소개를 드리면, 올해 4월부터 국립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 전 직장은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였고요. 이 기획 의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야말로 학과의 이름에 ‘웹’이 들어가는 학과였습니다. 제가 올해 4월부터 일하게 된 국립목포대학교도 아마 국립대 최초로 문예창작에 웹소설, 웹문예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여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 3년 정도 있었고요.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이지만, 웹소설 특화를 표방한 학과에서 두 학기 정도 일한 셈입니다. 4년 정도를 소위 말해 ‘전통적인 문예 창작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웹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데뷔는 2012년에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사회를 맡게 됐고, 패널로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떠 있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화면이 다를 텐데, 제 화면으로 보기에 제일 위에 떠 계신 분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명현 선생님이십니다. 이명현 선생님 자기소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이명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가르치고 있는 이명현입니다.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016년부터 근무했고,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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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1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행복한 문학여행을 떠나요 - 노벨문학상과 한강 그리고 ‘문장의소리’ 최창근 지난해 12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렸던 ‘2024 광주에서 온 편지’ 행사에 다녀왔다. 한국 시간으로 그날 자정 스웨덴에서 시작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생중계로 보면서 광주시민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자리였다. 작가가 부른 노래도 흘러나왔고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시극도 공연되었다. 작품과 연계된 문학 강연도 풍성하게 열려서 시국은 비록 어수선했지만 그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유일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제였다. 운명의 날이었던 10월 10일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안무가가 연출한 춤 공연을 보러 청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작가의 여고 동창이기도 한 극작가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노벨상!!”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마치 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참 뿌듯했다. 작년 가을은 그 일로 내내 가슴이 설렜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이기도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세계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실감이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작가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한강 작가가 가장 가까울 거라는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먼 훗날의 일이었고 이렇게 일찍 갑자기 받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와는 작은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에서 그 당시에도 요즘과 마찬가지로 얘기되던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는 방안의 하나로 사이버공간에 문학 종합 포털사이트인 ‘문장’을 창안했다. 문장 안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터넷 문학라디오였고 나는 훗날 ‘문장의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문학라디오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작가를 겸한 피디였다. 한강 작가는 ‘문장의소리’ 첫 방송의 초대 손님이었고 그 후로 진행까지 맡아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9개월을 서울 합정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한 작가가 진행을 맡았을 때 프로그램 기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을 돌아가며 소개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포함해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낭독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강 작가와 떠나는 세계문학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 협업해서 이미 노벨 문학 방송을 제작했던 건 아닐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그 문학 방송의 진행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천지의 기운이 도운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 관리자
  •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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