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원
- 작성일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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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원
조온윤
우리가 한몸이었던 때를 기억해?
우리가 한몸이었던 때를 기억해
하나의 운명체로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공평하게
동전 던지기로 정하면서
어디가 앞면이고 뒷면인지를 두고 다투곤 했지
이인삼각 달리길 하듯 뒤뚱대면서
비탈을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등가죽에 달라붙은 서로를 등지고
처음과 끝 일출과 일몰
동쪽 바다의 파도소리와 서쪽 하늘의 갈매기 떼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던 우리는 이제
탁상에 마주 앉아
닮은 듯 닮지 않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네
팔과 다리를 공평하게 나눠 갖고서
눈코입을 나눠 갖고서
너는 아직도 궁금해?
나는 아직도 궁금해
그는 왜 우리 몸을 갈가리 찢지 않고
반쪽으로만 갈라놓았지?
한 사람의 발걸음 뒤로 따라오는 두 개의 발자국처럼
우리 마음은 처음부터 둘이었잖아
진정으로 우리가 약해지길 원했다면
반을 가르고 또 반을 갈랐어야 했잖아
혼자서 달리는 해변은 더 멀리까지 반짝이고
더 잘게 부서지지 아름답게
내가 노을을 향해 몸을 돌릴 때 등 뒤의 네가
그늘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지
이제 우린 물결이 갈라놓은 다른 세상의 언저리에서
타오르는 일몰의 순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네
앞면 뒷면을 공평하게 나눠 갖고서
그림자를 나눠 갖고서
우리가 한몸이었던 때를 기억해
나는 내가 앞면이었다고 생각해
너는 네가 앞면이었다고 생각해?
뒷모습이 없었던 때를 기억해
사랑하기 위해 그가 높이 동전을 튕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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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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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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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6-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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