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기린 큐레이션 - 프롤로그-
- 작성일 2020-10-01
- 댓글수 0
[느린 기린 큐레이션]
느린 기린 큐레이션
- 프롤로그-
조시현, 조온윤
‘문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가 있으신가요? 책을 읽고 싶긴 한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나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문학을 향유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요? 재밌어 보이는 게 이것저것 많은 것 같긴 한데, 뭐부터 봐야 할지 잘 모르겠나요?
팟캐스트와 유튜브부터 독립 출판물과 웹진, 메일링 서비스와 낭독회 등등 새롭고 친근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는 문학 관련 콘텐츠들이 눈에 띄는 요즘입니다. 평소에 문학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도, 매력적인 콘텐츠를 먼저 접하고 이제 막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분들도,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창작에 힘쓰고 계신 분들도, 아마 아직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학 콘텐츠들이 많을 거예요.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을 쓴 그 작가는 요즘 무얼 하며 지내는지, 시인들이 모여 만든 창작 동인에서는 무슨 활동을 하는지,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출간되는 문예지가 아니라 낯설고 개성 있는 문예지를 만나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할 테고요. 문학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많은데 소개되는 창구는 많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한눈에 보기가 어렵죠.
이런 분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문학 콘텐츠 큐레이션!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 인사를 건네는 두 친구는 앞으로 콘텐츠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 줄 ‘느리미’와 ‘기리니’입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거북이와 기린 같지만, 사실 이 둘은 요즘 세대에게는 화석 학번이라고 놀림 받는 공룡들이에요. 문학계의 최신 정보와 유행을 따라잡고자 현대의 동물들로 분장하고 있죠. ^^;
반가워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느리미와 기리니는 문학과 관련한 여러 콘텐츠와 다양한 시도들을 탐색하고 정리하여 독자 분들이 편안하게 접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을 제공할 거예요. 그동안 문학 안팎의 여러 정보와 소식을 접하는 데 한정적이었던 구조를 허물고, 독자 분들이 문학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매체들을 소개하는 것이 두 친구의 활동 목표 중 하나입니다. 독자 분들이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더욱 즐겁게 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창작자 분들의 다양하고 용기 있는 시도들을 소개할 수 있도록, 네 발로 뛸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느리미와 기리니의 또 다른 목표는 지금까지 다소 한정적이었던 문학 장르의 독자층을 넓혀서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에요. 책을 보면 하품부터 난다거나, 끝까지 읽지 못할까 두려워 선뜻 집어 들지 못한다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턱대고 책을 집어 드는 대신 내가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느리미와 기리니가 함께할 거예요! 아직 문학이 낯설거나 어려운 분들도 문학과 가까워질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줄 겁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무슨 주제를 다룰 예정인가요?
소개해 드리고 싶은 주제들이 많아요. 최근에 새로운 기획 방식과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립 문예지와 문학 웹진, 방방곡곡의 독립 서점과 문학 동인, 그리고 오랜 휴식 끝에 활동을 재개하신 작가님이나, 빛나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신 작가님, 앞으로 새로운 문학을 보여주실 신인 작가님들도 만나 볼 예정이에요. 마음먹은 만큼 전부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익하고 흥미로운 정보들을 열심히 전달해 보려고 해요.
귀띔을 살짝 해드리자면, 첫 번째 큐레이션으로 다룰 주제는 독립 문예지예요. 창작자들이 직접 지면을 만들고 작품을 발표하는 독립적인 문예지들이 최근 몇 해 동안 여럿 생겨나고 있어요. 등단과 비등단, 유명과 무명의 경계를 지우고 자생적인 방식으로 작품 발표를 위한 지면을 형성하고 있죠. 각양각색의 콘셉트에 참신한 기획들로 다소 제한적이었던 기존의 창작 환경을 직접 개선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문예지들이에요. 느리미와 기리니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흥미로워 보이는 문예지들에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읽은 독립 문예지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다고 해요.
느리미와 기리니의 본격적인 큐레이션 활동은 다음 호부터 시작될 거예요.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요!
|
|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추천 콘텐츠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응원의 방식 -염승숙, 「지도에 없는」 (《문장웹진》2007년 4월호) 조경란(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좋은 소설에 대한 사적인 기준 단편소설 「지도에 없는」을 지금까지 세 번 읽었다. 처음엔 2007년 4월에 《문장웹진》에 수록되었을 때, 두 번째는 이듬해 염승숙이라는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에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앞에 두 번을 읽었을 때는 나도 아직 중견작가라고는 불리지 않을 시기였고, ‘소설’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잘 알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바삐 뛰면서 소설을 쓰던 시기라면 지금은 느리게 걸으며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어느 면으로 소설에 대한 나의 견해나 취향, 좋은 소설에 대한 기준이 약간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눈으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거의 처음 읽는 소설처럼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나는 예전에는 이 단편을 나의 취향이 아니라고 쉽게 여겨 버렸을지 모른다. 이야기나 인물보다는 여러 가지 소설적 요소의 완결성과 미학적인 면에 더 집착하기도 했던 시기였으므로. 소설이 어떤 메스(mess), 즉 그것이 크기와 상관없이 ‘엉망인’ ‘헝클어진’ 상황에 인물이 놓이고 거기서 출발한다고는 여전히 여긴다. 그 메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히 파동하는 미니멀리즘 이야기에 가까우며 메스의 크기가 크면 큰 소동, 리얼리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말했지만, 지금의 나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란 어때야 할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몰두하면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단상을 메모해 두곤 한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조건들은 요즘은 이렇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어야 하며, 그 인물을 둘러싼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일 만큼 세심하게 구축해야 하고, 인물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결말에 그 과정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의미(meaning)가 작게라도 내포된 소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시대를 담고 있을 것. 그런 개인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읽게 된 셈이다. 그래서 놀랐다고 할까, 그리하여 놀랐다고 할까. 당시 첫 책도 내지 않았던 젊은 작가 염승숙은 혹시 십팔 년 후에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십 대 청년들의 삶이 미래에도 변하지
- 관리자
- 2025-07-01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 한창훈,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문장웹진》2007년 5월호) 서경석(문학평론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25년 3월에 2007년을 읽는다. 그 해 에 수록된 소설들. 작품을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김재영, 명지현, 한창훈이 눈에 띈다. 김재영의 소설은 중년 남성의 퇴직 후 삶을 그린 이야기였다. 「달을 향하여」는 『폭식』의 작가가 달나라 땅도 팔고 사는 세태를 작품의 마무리로 삼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돈에 포섭되는 폭식의 세상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읽으니 소설 속 주인공이 퇴직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회현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향처럼 아늑하고 친밀한 장소가 주는 위로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안식처에 대한 추억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하다. 명지현의 작품 「입안의 송곳」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앓던 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나 끊임없이 앓고 있고 세상 속 우리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충만한 삶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한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야생의 인간처럼 뭔가를 계속 씹으며 서먹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저항할 따름이다. 한창훈의 소설 「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진정한 고향 이야기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사람이 전하니 더욱 그러하다. 작가 한창훈은 거문도가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와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낚시를 했으며,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그는 먼 곳, 먼바다를 떠돌다 거문도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삼도는 남쪽 바다의 한 섬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오직 ‘늙은이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지킨다기보다는 떠날 수 없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노인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뿌리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설령 벗어난다 해도 그 몸에 새겨진 섬 생활의 그리움 때문에 곧 되돌아오고 마는 곳이다. ‘고단할지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것은 멀쩡한 배에 구멍을
- 관리자
- 2025-06-01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기원이 우리의 전부를 ― 조연호, 「저녁의 기원」, 《문장웹진》 2005년 08월호 신용목(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1.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도달할 수 없는 시작의 불가능한 기억으로 구성된 곳이라면 응당 과거의 한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힘의 발원을 일컫는 것이라면, 기원이 꼭 과거로 달려가 맞이하는 마지막 도착점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삶을 담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탱해 주는 것. 끝없이 현재를 보채는 것. 우리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바깥을 어둠으로 채워 놓은 것. 달려가면 달려가는 만큼 따라오는 해와 달 같은 것. 말하자면 기원은 내 몸의 외피에 꼭 맞는 공기이거나 내 기억을 감싼 테두리, 낭떠러지 허공이거나 캄캄한 망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경계의 여리고 연한 막으로 떨리며 우리를 있게 하는 것. 어쩌면 미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불편과 불쾌가 불시에 우리를 깨우며 우리에 대해 묻는 것.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달아나도 멀어질 수 없으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놓여날 수 없으므로. 아무리 깊은 슬픔과 절망 뒤에 숨어도 뚜벅뚜벅 적막한 밤길을 걸어와 끝내 우리를 찾아내므로. 그러나 한 번도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기원으로부터 추방된 채 과거의 바깥이자 미래의 바깥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의 바깥에, 나를 키워 준 고향과 친구들과 학교의 바깥에 있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는 감각. 떠돈다는 감각. 그것으로 우리의 현전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진실에 속해 있지 않고 진리에 속해 있지 않으며 더더욱 사실과 제도와 규칙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존재 자체로서 진실의 낙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진리의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며 사실과 제도와 법률의 울타리 바깥에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굶주린 들짐승일지도 모른다. 머물지 못한다는 것. 나의 바깥에서 나를 찾아서 나의 주변을 서성이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의 기원이자 그 모든 것으로서의 기원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다시 시작하는 일이 결코 시작되지 않는, 아무도 자신이지 못하고 누구도 타자이지 못하며 사랑과 미움이 혼동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며 너와 내가 갈리지 않는, 가장 어둡고 깊고 위험하며 오로지 상실만이 무성한 곳. 상실로서만 확인되고 결정되며 상실을 통해서만 접근되는 곳. 우리를 영원히 상실한 자로 만드는 것. 우리를 매 순간 상실된 자로 만드는 것. 그래서 기원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상실의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질문을 안고 침몰한 곳에 기원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