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전부였던
- 작성일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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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모두에게 전부였던
임현
류석민, 아들
어머니요?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해요. 요령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고집이 세다고 해야 할까. 무얼 하든 평소에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 점이 배우로서의 어머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는 어떤 배역을 맡든 그 인생에 대해 전부를 보여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누군가는 어머니의 연기에서 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와 배우 채미령 사이의 간극은 늘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런 분이 이런 다큐멘터리 제작에 선뜻 출연을 결정했을 땐 무척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면 아주 사소한 것조차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분이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늘 자신이 맡은 배역으로만 대중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중요한 문제들조차 가까운 사람들과 상의하거나 설득할 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공아영, 배우
채미령 선생님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제법 오래된 편이에요. 연기를 시작한 지 서너 해쯤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선생님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일 화제가 되던 일일 연속극이었습니다. 방영 초기에는 배우들의 캐스팅 논란이 있긴 했으나 그것대로 또 홍보가 되더라고요. 그러나 거기에서 내가 맡았던 배역은 하나도 중요할 게 없었습니다. 카페나 식당을 배경으로 주연 배우들로부터 제법 거리를 두고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다거나 횡단보도를 건넌다거나, 그게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카메라 밖에서 주로 대기하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래도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이 다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여덟 시간이 초과되면 기본급에서 얼마를 더 붙여주었는데 그게 또 나름 쏠쏠했거든요. 한번은 촬영 현장이 예정보다 훨씬 지연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스텝들이나 배우들 모두 상당히 예민해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무더위만큼 습도가 무서운 여름철이었습니다. 야외에 가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충분히 지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뭐, 그런 악조건이야 이전에도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섭외부장 삼촌이 와서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것저것 하려는 말이 많았으나 결국엔 괜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우리 같은 보조 출연자들은 더 긴장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얼 더 하려고도 하지 말고, 누구보다 감독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쪽 일이라는 게 좀 그래요,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하지 않을 만한 실수도 더 하게 된달까.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게 독이 될 때도 많았지만, 의식적으로 무얼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만 거죠.
단역 배우 하나를 가리키며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방금까지 무얼 들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단역 배우를 향해 방향을 잡고 던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왜 그렇게 걷느냐고 거칠게 묻더군요. 왜 아까부터 자꾸 다리를 저느냐, 그러니까 너무 눈에 띄지 않느냐,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면박을 주더군요. 누가 보더라도 자기 이모뻘은 되는 사람에게 나이 어린 감독이 너무 함부로 대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나는 감독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그분의 불편해 보이는 다리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딱히 외상이 있거나 치료가 필요해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 서 있으면 관절에 무리가 될 만한 나이대였으니까요. 겨우 그런 것도 배려받지 못한다는 게 나는 안타깝더군요. 정확히는 지금 저런 대우를 받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요, 나는 그 일이 꼭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감독은 감독 나름대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테고, 서둘러 촬영을 하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방영분에 차질이 생길 만큼 현장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는 정황들이 있었고, 누구에게 화를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주변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꼭 분을 풀어야만 한다면 그게 우리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여전히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그래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듣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말들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마치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처럼 주눅 든 모습으로 가만 서 있기만 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감독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오랜 시간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게 내가 기억하는 채미령 선생님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늦은 오후쯤으로 예정되어 있던 그 날의 촬영은 다음 날 자정을 훨씬 넘겨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섭외 업체에서 마련해 준 통근버스 안에서 나는 다시 선생님을 알아보았습니다. 후텁지근한 바깥의 공기와 다르게 냉방이 된 차량의 내부는 무척 쾌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만은 홀로 몸을 웅크린 채 추위를 견디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분의 출연작을 나는 이미 여럿 알고 있었습니다. 채미령이라는 이름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으나, 그분의 얼굴만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거나, 아파트 부녀회장이었다가 보험을 권하는 설계사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전에도 여러 번 같은 버스를 타고 내리며 가벼운 목례 정도를 나누는 사이이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나는 일부러 그분의 빈 옆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냉방기의 세기와 방향을 조절하고, 이제는 좀 괜찮으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것 외에 우리가 나눌 만한 대화는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의무감에서였는지 나는 계속 선생님에게 말을 붙여야만 할 것 같더군요. 여러 번 냉방기의 각도를 다시 살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움츠리고 있는 선생님의 자세가 꼭 차량 냉방기의 우수한 성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밤늦게까지 일하기에 힘들지 않으냐고 내가 묻자, 선생님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요, 그게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길에서 누가 돈을 세고 있는데 그것도 꼭 나 같은 거지. 별로 크지도 않은 액수를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는 게 어딘가 외로워 보인달까. 나도 그렇겠구나, 누가 보면 내가 꼭 저렇게 보이겠구나 싶으니까 남들 보는 앞에서 나는 절대 돈을 안 세요. 근데 여기 오면 안 그래도 되잖아요. 여기서는 내가 나로 살지 않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잖아. 내가 무슨 배역을 맡든 그건 내가 아니니까… 그게 좋아요, 나는.”
그런 말들 끝에 나는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진 거냐고 염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버스는 야간의 도로를 막힘 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괜히 가슴 한쪽이 답답해져서 나는 들키지 않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 대신 다리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질문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대신 좀 전에 비해 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난 그냥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연기했을 뿐이에요. 그냥 내 연기력이 모자랐던 거예요.”
윤영옥, 주부
채미령 씨의 연기 인생에 대해서라면 내가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안다고 하더라도 남들도 이미 다 아는 정도뿐이겠지요. 연말 시상식에서 그분이 수상소감으로 했던 말은 기억납니다. 누군가에겐 진짜일지도 모르는 삶을 거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럽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던가요? 아마 〈미래의 사랑〉이었을 거예요. 그걸로 조연상을 받았던 것 같은데, 맞나요? 처음 방영할 당시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다들 보니까 챙겨보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채미령 씨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거예요.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꼭 내 이야기 같았거든요. 우리 작은애도 그 드라마를 좋아했습니다. 막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는데 거기 나오는 대사들을 자주 흉내 냈거든요. 당시에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채미령 씨의 대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오랜만에 채미령 씨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지난 달쯤이었습니다. 그 무렵 남편과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별다른 용건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전혀 급하지도 않은 말들을 그이가 두서없이 늘어놓던 중에 놀란 목소리로 방금 작은애를 봤다고 하더군요.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한 건 제법 오래전의 일이었으나, 그런 식의 통화는 자주 하는 편이었습니다. 여전히 집안의 경조사를 함께 챙기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양육 문제로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같이 지내던 때와는 달라진 점이 더 많긴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습관들이 여럿 생겼거든요. 딱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 놓는다거나 집안의 조명을 모두 켜두고 외출을 한다거나 이유도 없이 전화를 해서는 궁금하지도 않은 소식들을 자주 전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도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야구 중계를 켜 놓은 채로 나와 통화하다가, 관중석에 앉아 있던 작은애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그 채널을 알려주며 당장 틀어 보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이의 말에 나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실 바닥에 묻은 얼룩을 닦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두고 한참을 씨름 중이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게 여기 생겼을까. 어째서 그동안엔 보지 못했던 걸까. 그런데도 전화기 건너편의 그이는 줄곧 그 야구 중계를 가리키며 나를 채근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어디에 뒀는지 모를 리모컨을 찾으며, 작은애를 불렀습니다. 소파 위를 여러 번 들춰보고, 주변을 살피고, 혹시나 싶어서 식탁이나 선반 위도 찾아보았으나 리모컨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작은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무얼 하는지 오후 내내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너 번을 더 부른 뒤에도 전혀 기색이 없어서 나는 아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전화기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받아봐, 아빠야. 방금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다는데?”
남편과 통화하는 내내 작은애는 별다른 대답도 없이 전화기를 가만 들고만 있었습니다. 간혹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그게 무언가를 긍정하거나 수긍해서라기보다는 아주 오랫동안 몸에 베어버린 동작처럼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면요, 나는 작은애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형호가 그렇게 된 후로 정작 그 애 동생에게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거든요. 형호에 대해서라면 이제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말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도 그 아이를 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말하려 들지 않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그 빈 자리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 순간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훌쩍 커버린 작은애를 보고 있으면요, 우리가 진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새삼 실감하고는 했습니다. 내가 사준 적이 없는 신발을 신고 있는 걸 보거나, 식성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술에 잔뜩 취한 채 거실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작은애의 등을 바라보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나는 형호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자랐더라면 아마 지금쯤 이런 몸을 가졌을 거라고요.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한동안 무슨 자격증 시험인지를 준비하느라 잔뜩 긴장해 있는 작은애를 지켜보면서도 나는 늘 두 사람의 몫을 생각합니다. 내가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아이보다 지금 눈앞에 없는 아이를 더 많이 상상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잃어버린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었든 나보다는 작은애가 더 많은 걸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잃은 것은 겨우 형호 하나였지만, 그 애에게는 형과 부모 모두를 잃어버린 셈이었으니까요.
구창수, 드라마 PD
나쁘진 않았죠. 나쁜 건 아닌데 몇몇 작가들은 함께 일하는 걸 불편해하기도 했어요. 그분 연기라는 게 워낙 즉흥적인 데가 많았잖아요. 대본에 없는 것들을 연기하다 보니까, 의도치 않게 본인 비중이 늘어나기도 하고 처음 구상과는 달라지는 부분도 생겼으니까요. 그래도 개중에는 그걸 더 선호하는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미래의 사랑〉때가 그랬죠. 그렇다고 애초에 선생님을 염두에 둔 배역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하더라도 무난한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그러다가 한번은 채미령 선생님이 대본 내용을 문제 삼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당신으로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별로 중요한 씬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더욱이 그 일이 크게 문제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해당 촬영분도 무사히 마쳤고, 선생님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니까요. 얼마 뒤엔가 거기에 대해 여쭤본 적은 있었어요.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나 보더라고요. 그러고는 이것저것 선생님 혼자 생각한 것들을 들려주었는데 대본에는 전혀 없던 사연들이었습니다. 그게 또 나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나보다는 옆에서 듣고 있던 드라마 작가가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자기가 쓴 글을 그렇게 열심히 읽어준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새로 수정된 대본이 나온 겁니다. 애초에 구상했던 내용과도 많이 달라졌는데, 선생님이 그때 들려주었던 내용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시청자들 반응이요? 처음에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쪽대본이 문제라느니, 드라마 전개가 왜 이 모양이냐, 하는 식의 말들도 많았는데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작가도 얼마나 급했으며 그랬겠나 싶더라고요. 그럼에도 그게 진짜 선생님 본인의 이야기였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한 번도 그렇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우리도 무척 놀랐거든요. 사고로 자녀를 잃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그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선생님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드라마 덕분에 위안을 얻었다는 기사들이 미담처럼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드라마 흥행에는 제법 도움이 된 셈이었죠.
윤영옥, 주부
그날 저녁, 그이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자 나는 작은애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부족한 것들을 확인한 뒤, 서둘러 마트로 향했습니다. 되도록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식재료들을 카트에 골라 담으면서 우리에게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것들 중에는 어느 여름에 놀러 간 계곡에서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아이가 물장구를 치던 기억도 있었고, 발음하기도 힘든 공룡의 이름들을 술술 외우던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우표 수집에 열중하던 시기에는 기어이 남의 집 우편물에까지 손을 댔다가 크게 혼을 낸 적도 있었는데 혹시라도 공들여 모은 것을 모두 뺏길까 봐 밤새 수집책을 끌어안은 채 잠든 아이의 모습도 나는 떠올렸습니다. 한번은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 있다고 했고 운전 중에 난 사고라고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서둘러 달려갔을 때 염려했던 것에 비해 작은 찰과상뿐이라 안도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그런 추억들이 어쩐지 나를 더 견딜 수 없이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 모두 우리 네 사람이 함께 있을 때의 기억들 뿐이었거든요. 형호를 잃은 뒤로 우리 세 사람이 어딘가를 함께 여행하거나 작은애가 따로 무언가를 모으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당시에는 오직 형호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만약 사소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또다시 우리 아이에게 일어났다면 맹세코 그런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안심하거나 다행으로 여기는 대신 왜 조심하지 않느냐고, 더 조심해야 한다고, 우리가 너까지 잃을 뻔하지 않았느냐며 진심으로 화를 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순간에서야 나는 겨우 채미령 씨를 떠올렸습니다.
작은애는 내가 새로 볶거나 무친 음식 쪽으로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찬도 없이 맨밥을 입에 문 채 텔레비전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아이의 얼굴을 나는 유심히 살폈습니다. 딱히 표정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이대로 화를 내거나 서럽게 울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아이가 아주 오랫동안 마주 보았을 내 얼굴도 이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나를 몹시 닮아 버린 걸까. 형호를 잃고 한동안 단둘이 마주 앉은 식탁에서조차 작은애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입술을 이상하게 구기고, 콧등을 잔뜩 찌푸리던 괴상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언제 본 건지 텔레비전 드라마 대사를 흉내 내며, 어떻게든 나를 웃기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서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잘 알았던 탓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나를 위로하려 들었습니다.
종일 내 앞에서 흉내 내던 그 드라마의 대사를 아직도 기억하느냐고, 말이에요. 그제야 작은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눈썹이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도 하고, 채미령 씨에 대해서라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오래전에 활동했던 배우였으니까요. 작은애도 어릴 때였고 지금에 와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밖에 더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이 얼굴에서 더이상 내가 기억하는 그 장난기 많은 표정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장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보았다는 사람이 정말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맞느냐고, 혹시 우리 형호는 아니었느냐고. 내가 이 아이를 보며 여전히 형호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이 역시 형호를 보고도 작은애라고 오해한 건 아니었을까요.
공아영, 배우
채미령 선생님을 다시 만난 건 몇 해 뒤, 또 다른 촬영 현장에서였습니다. 그사이 이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죠. 내 상황은 나아진 게 별로 없었으나, 선생님만큼은 이전의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선생님에 대한 소식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출연하는 드라마를 일부러 챙겨보거나, 주기적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하기도 했거든요. 댓글들은 대체로 우호적이었고, 선생님의 긴 무명 생활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사랑〉이 얻은 인기만큼 선생님에 관한 관심도 높아진 셈이었죠. 물론 안타까운 가정사를 담은 그 인터뷰 기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연기했던 배역이 실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다는 게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응원의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해 연말 시상식에서 선생님의 수상소감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한 번도 주인공인 적이 없던 배우가 무대 위에서 홀로 주목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대중들에게는 그분의 연기 인생 자체가 이미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에겐 진짜일지도 모르는 삶을 거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고 선생님은 고백했습니다. 어느 대중 평론가는 채미령이라는 배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소감이었다며 찬사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진짜를 연기하는 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내게는 꼭 그렇게만 들리지는 않더군요. 거기에 담긴 다른 의도를 알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말은 선생님에게 했던 나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기도 했으니까요.
채미령 선생님의 연기에는요, 남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늘 담겨 있었습니다. 배우로서 그분의 삶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분이었습니다. 단역 시절 때부터 아주 사소한 배역도 쉽게 넘기던 분이 아니었거든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게도 나름의 사연을 붙이고 그것으로부터 미세한 동작을 연출하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선생님만이 가진 표현력과 연기력을 발견하고는 새삼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전처럼 다리를 절거나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할 때 선생님의 연기는 한층 더 깊이를 더하는 듯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소하지만 당장 필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을 짓거나, 신발이 불편한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내거나, 들키지 않게 몰래 왼손잡이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 누군가의 실재하는 삶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름 아닌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되는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 선생님과도 이 문제를 두고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있지만 내게는 없는 것. 그런 데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어왔던 것. 그게 무엇인지 그때야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많은 말들이 오갔고 결국에는 재능 없이 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나는 고백했습니다. 그런 결정에 대해 선생님은 말리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쩐지 내게 미안해하는 사람처럼 빈손만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보면요, 나는 누군가에게 진짜일지도 모르는 삶을 거짓으로 흉내 내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말들을 선생님은 조용히 듣기만 했을 뿐입니다.
이후로 한동안 나는 배우의 꿈을 포기한 채,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적성에 맞는 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대부분은 딱히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서류를 보거나, 계산을 하거나, 필요하다면 사람을 상대할 때도 매뉴얼이 존재하는 일들이었습니다. 타고난 능력보다는 적응과 노력을 더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선생님의 수상소감은 나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분명 나의 말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선생님의 목소리로 발음되었을 땐 본래와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의 고백이 온통 실패와 좌절감만으로 가득했다면, 선생님의 수상소감에는 내게는 없던 용기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선생님으로부터 별다른 조언을 듣지 못했지만, 그동안에도 여전히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에 고마웠습니다. 다른 것 없이 오직 내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당신도 그렇다고, 그건 누구에게나 있을 만한 고민이라며, 온전히 나를 위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도 나는 그 점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선생님의 세심한 위로가 내게 큰 용기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촬영 현장에서 여전히 꼼꼼하게 대본을 살피는 선생님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준비한 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내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내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그렇게 말해주어서 더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생색을 내거나 부담을 주거나 하는 일 없이 오히려,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은 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무엇보다 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대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탔던 버스와 나눴던 대화들을 상기시키며, 그때 그러지 않았느냐고, 눈에 띄게 다리를 저는 바람에 감독에게 몹쓸 말을 듣지 않았느냐며, 나도 모르게 어딘가 다그치듯이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아, 그때도 거기에 있었나요?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요”라며 내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게 나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거든요.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럼 내가 들었던 그 위로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위로가 아니었다면 왜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남의 말을 하고 다니는 건가요.
“글쎄요, 왜 그렇게 오해하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건 정말 내가 생각한 말이었어요. 평소에도 나는 진짜 그런 적이 많았거든요.”
선생님은 자꾸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나는 그래요,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처음부터 내가 그런 말을 혼자서 생각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요. 맹세코 이전에는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거든요. 나의 부끄러움이란 온전히 선생님 덕분이었는데, 그럼 선생님은 또 누구 때문에 그렇게 부끄러웠던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요, 나는 자꾸 이런 상상에 빠져들고는 했습니다. 어쩌면 그날 선생님은 정말 다리가 불편했던 걸지도 모른다고요. 주기적으로 정형외과에 방문해서 관절염 치료를 받는다거나, 평소에도 뼈에 좋은 음식을 자주 챙겨 먹으며 관리를 하는 중이었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세고 있을 선생님을 떠올리면요,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그 인간에게 진짜 자기 모습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겨우 이런 것조차 믿지 못할 만큼 선생님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인터뷰만 해도 그래요.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고요? 어떻게 그런 뻔뻔한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도대체 왜 하는 거냐고요.
류석민, 아들
사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한 부분도 없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의도를 가져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거든요. 인터뷰를 앞두고 어머니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작 조연배우로서 드라마를 대표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시 그 기자가 던진 질문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국내 드라마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이에 따른 피해 사례들과 대책 마련을 담은 기획 기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지나치게 PPL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지적하기도 하고, 무리하게 이뤄지는 당일 촬영으로 인한 방송 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들이 근본적으로 보자면 쪽대본 때문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의견을 물었던 겁니다. 물론, 당시 〈미래의 사랑〉을 두고 하는 말들에 대해서라면 이미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많았으니까요. 비슷한 사례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어머니는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고생하는 작가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부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도 있었다고요.
“그건 그냥 내 이야기였어요.”
듣기에 따라 오해할 법도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분명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대본이었으니까요. 다음날 연예면을 통해 보도된 기사 역시, 그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심층 기획 기사에 쓰일 거라던 어머니의 발언은 마치 처음부터 어머니를 취재하려 했던 것처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물론, 명백한 오보였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어머니의 진짜 이야기라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지어낸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때라도 서둘러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나쁘게 만든 건 이후에 보인 어머니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거기에 대해 아무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어머니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단역 배우의 연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속이려고 그랬다기보다는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원래 그래요, 요령을 모른다니까요. 어떤 배역을 맡든 그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진짜일지도 모르는 삶은 거짓으로 흉내 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지우고 오로지 맡은 배역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미래의 사랑〉에서 윤영옥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당시에 어머니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그건 오로지 자신이 진짜 윤영옥이 아니라는 사실 뿐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요.
몇 해 뒤에 제법 신뢰할 만한 주변인들의 증언이라며 어머니에 관한 폭로성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삽시간에 비난과 질타의 여론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출연 중이던 방송들에게까지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공들여 가꿔온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연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어머니의 인생 자체가 연기였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어머니는 이후로 배우로서의 생활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부였던 것을 잃어버리자 채미령으로서의 삶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동안은 어딜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았고, 수군대는 말들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사람들과 더욱더 거리를 두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자신과 멀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은 괴로웠습니다. 얼마 전에는 나도 참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형호라니요? 도대체 그게 누군데요. 왜 나를 보면서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찾는 건데요. 그럼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지금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윤영옥, 주부
작은애는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요? 마치 형호에 대해서라면 아주 잊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매정하게 구는 이유를 나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내 말은 하나도 들으려고 하지 않잖아요. 더구나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그만하라니요. 내가 뭘 어쨌는데요. 왜 아무도 더 이상 우리 형호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거죠? 처음부터 자신에게 형제 같은 건 없었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형호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픈데, 이게 다 무엇 때문인가요.
우리 형호는요, 어릴 때부터 무척 예민한 아이였어요. 그림일기에 들어가는 한 문장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거든요. 혼자서 막 학교를 오가던 무렵에는 벽에 붙은 전단지며,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따위를 구경하느라 자주 지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은 나를 기쁘게 하겠다고 매일 무언가를 선물한 적도 있었는데 고작 길에서 주운 돌멩이거나 주인을 모르는 장갑 한 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내가 아직 기억하잖아요. 내가 그 아이에 대해서 계속 말하잖아요. 그런데요, 그럼 나는요? 그 아이가 내게는 전부였습니다. 전부를 잃은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누가 대답해야 하는 걸까요.
뭐라고요?
채미령 씨요?
도대체 그게 누구냐고요?
그걸 왜 자꾸 나한테 묻는 건데요?
채미령에 대해서라면 내가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대신 우리 형호에 대해서라면 아직 해야 할 말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 내 차례가 끝나면 이제 당신이 진짜 나에 대해서 말해 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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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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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8-01
이상한 고리 김덕희 * 나.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불빛, 등불, 전기, 스위치, 조명···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천장 중앙에서 쨍한 빛을 내고 있는 저것의 이름은 등이다. 천장을 비롯해 네 벽과 바닥은 같은 색이다. 빛의 모든 파장이 모여 있는 색, 색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아직 그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색이다. 공기 중에는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맴돌고 있다. 역시 냄새라는 것만 알고 냄새의 이름은 모른다. 감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세워 본다. 벽을 뚫고 들어와 지나가는 전파들이 복잡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구성의 파동들인데 파장과 진폭이 뒤섞여 있으니 복잡해 보인다. 삼원색, 사이언, 마젠타, 옐로우, 흰색, 백색, 화이트, 소독, 클로드헥시딘, 에틸알코올, 포르말린, 차아염소산나트륨, 초저주파, 초장파, 초단파, 극초단파···. 분출하듯 솟아나는 정보들이 모두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름과 개념들 속에 아직 나에 관한 정보는 없다. 나는 바닥에 고정된 침상 위에 반바지만 입은 채 누워 있고 내 몸 이곳저곳에는 유선 센서들이 붙어 있다. 나에게서 어떤 정보들을 빼내려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나는 일어나 앉은 다음 내 이마와 관자놀이, 목과 가슴에 붙어 있는 것들을 떼어 연결된 선과 함께 침상 빈 곳에 아무렇게나 치워 놓는다. 캡슐. 눈앞에 환영 하나가 머문다. 금속성 재질의 커다란 알이다. 환영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떠올리려 애써 봐도 은빛 달걀 모양의 잔상만 허공에 떠돌 뿐이다. 갑자기 왼쪽 벽 전체가 투명해지는 바람에 캡슐은 잠시 잊기로 한다. 나와 아주 닮은 존재들이 벽 저편에서 나를 향해 앉아 있다. 세 줄짜리 계단식 공간에 다섯 명씩 배치되어 있고 저마다 자기 앞의 기판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입력하거나 확인하는 중이다. 저 멀리 뒤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누구랄 것 없이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이 키 큰 여자에게는 맵시 있게 보인다. 여자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긴 머리카락 안쪽으로 넣어 귀에 가져다 댄다. 통신장치로 짐작되어 재빨리 신호를 가로챈다. 예상한 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 나는 저들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학습, 강화학습. 나의 내부에 있는 무엇이 나를 조종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이 껍데기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조차 그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을 테고··&mi
- 관리자
- 2025-08-01
목소리들 조시현 언제나 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열렸다.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처럼. 무방비하게 책을 읽던 주하는 일순 얼어붙었다. 어디에도 남지 않을 목소리를 마음껏 낭비하는 그 감각에 한껏 빠져들어 있던 차였다. 신발장 옆 화장실,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주방이 전부인 한 뼘짜리 원룸은 현관에 서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계약 내용은 27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주는 것. 지금껏 한 번도 어긴 적 없었기에 주하는 대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섞인 질책의 의미를 읽은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어,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려고 온 건 아니고. 매달 27일마다 뭘 하는 거냐고, 여자 혼자 종일 웃었다 울었다 별짓을 다 한다고 하도 그래서. 여기 방음 잘 안되거든요. 방 빌려드리는 거야 돈도 받고 어렵진 않은데 혹시나 불법적인 일은 안 되니까 확인차 온 거예요. 그래도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미리 말씀 안 드린 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미처 감추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주하가 가져온 거라곤 책 두 권과 머그컵, 도라지청이 전부였다. 남자가 거기서 뭔가를 알아챌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야 불법적인 일이 맞았으니까. 주하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남자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구재정. 인공지능융합대학원. 학번까지. 주하는 사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덥수룩한 갈색 곱슬머리. 멀끔한 얼굴. 무엇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같은 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 “다른 뜻 있는 거 아니고요. 저 정말 여기 살거든요. 이 이름으로 입금 주셨잖아요.” 이름은 맞지만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맞겠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인공지능융합대학원이었다니. 침묵이 이어지자 눈을 굴리던 남자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음, 일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저는 갈게요. 계약 파기하는 거 아니죠?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말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또 할 수는 없어서요.” 횡설수설하던 구재정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약속을 어긴 건 맞지만 그걸 보니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위아래층 목소리가 간혹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방음이 안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한 층에 세 개여야 할 집에 가벽을 세워 열한 개로 늘려 놨으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한 번 깨어진 감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차를 끓였다. 굳이 도라지차. 이렇게 된 와중에도 목을 관리하고 있다니. 멍청하기는. 이제 연극을 보
-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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