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우리
- 작성일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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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우리
서윤후
“겨울의 연인에겐 간단한 언어가 있다.”
― 베이다오, 「겨우 한 순간」
그렇다고 빈 괄호는 아닙니다
우리는 겨울에 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침묵은 빈손이면서 언제나 즐거워
폭설입니다
흰 광목천을 두른 울창한 숲속에서
우리는 빛이 다 청산하지 못한 어둠
아마도 밤새 다 태우지 못해 젖은 장작들
다시 태어나는 꿈을 반으로 접고
적설량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실컷 서로에게 쏟아지다가
기꺼이 무너져 버리다가
더는 우리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봅니다
나른하고 편안한 갈등 속에서
다친 적도 없이 아프게 되었으니
우리는 서로의 줄거리를 간호했습니다
더는 간략해지지 않도록
머물던 대피소엔 외풍이 있었는데
열려 있는 곳 하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뒷면의 안간힘일까
인적 드문 풍경이 되어 가는 것 나쁘지 않아요
겨울 화가가 난로 옆에서 잠깐 졸다가
그려 넣지 않은 아궁이 불이 있었는데
우리는 벼랑에서 서로의 어디를 붙잡을지 생각하다가
종일 매달려 있기도 했었는데
침묵이 간지러운 숨바꼭질 중이었는데
빈 괄호 안에 누워 눈을 맞다가 동시에 빠져나올 때
자국과 실존을 동시에 떠올릴 때
잠든 채로 서로를 잃어버릴 때
겨울에 대해 정의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 괄호 하나씩 나눠 갖고
간밤의 기도를 냉동실에 넣어 두고는
침묵을 파괴하며 사는 것입니다
겨울을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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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u][tsu] 서윤후 츠— 라고 발음해도 쯔— 라고 발음해도 쓰— 라고 발음해도 모두 맞지 않는 그런 이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무를 돌보고 있는데요 저는 그 나무의 이름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많아 여기는 가파른 언덕입니다 그는 헛도는 나사를 조이고 있습니다 스툴은 완성되어 가고 있지만 망가져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풍경의 경첩이 열렸다 닫힙니다 누구든 기다리는 쪽이 될 수 있습니다 스툴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앉은 사람을 자주 돌려 세워 앉히곤 합니다 이야기가 다시 시작할 때의 회전은 우리 간격의 허점을 만들었지요 나사 조이는 할일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헛돌기에 좋은 계절이니까요 츠나 쯔, 쓰가 아니라 입천장에 혀를 살포시 갖다 대는 연습으로 투명한 사탕을 입에 물듯이 그의 이름을 최선을 다해 부르는 쪽은 접니다 우리는 양보하기에 좋은 장소를 만들었군요 그는 나무 앞에 서면 용서받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합니다 그의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 같지만요 한 번도 제대로 불러 본 적 없지만 아는 이름이 있습니다 츠나 쯔, 쓰를 모두 더해도 부를 수 없는 발음의 이름은 그의 것입니다 이름 모를 나무는 그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이 스툴에 앉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주소로 남는 순간도 있습니다 바람 많고 강아지풀 성가시던 그 언덕을 츠나 쯔, 쓰를 번갈아 부르던 그의 이름으로 대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코트 안쪽에 달라붙은 도깨비바늘의 기억력으로 허물어지던 스툴 나사를 찾으러 떠난 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저는 츠나 쯔, 쓰를 입안에 넣고 휘파람처럼 멀어져 갑니다 이 이야기가 그와 함께 나무를 바라보고 스툴을 나눠 앉았어도 제대로 이름은 불러 본 적 없는 줄거리라면 우리는 안녕을 나누었습니까
- 서윤후
-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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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윤후
-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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