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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사러 간 사람들

  • 작성일 2022-03-01

[단편소설]



베개를 사러 간 사람들



한유주





삽화들. 갓 자른 손톱 조각들. 예리한 초승달. 그들. ㅋ들. 남겨진 웃음들. 누가 들을, 들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그들은 아니다. 그들은 영등포역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봐, 이제는 역전 앞이라는 말을 아무도 쓰지 않나 봐. 터뜨리다를 터트리다로,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역전 앞은 여전히 역전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영등포역 앞에서 마지막으로 영등포역에 내렸던 때를 생각한다. 대략 스무 해 전이다. 고등학생이었지, 어느 대학에서 논술 대회가 있었고 그는 국어 교사와 다른 학생들 네 명과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내리고 올랐다. 그는 그날 입었던 바지를 기억한다. 감색 면바지였다. 그 바지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을까? 그가 면바지의 능직 무늬를 생각하는 동안, 그의 동행이 말한다. “올겨울에는 유독 눈이 많이 오네.” 겨울 특유의 투명하고 차가운 햇빛이 5층짜리 벽돌 건물 뒤편 후미진 곳에 쌓여 미처 녹지 않은 더러운 눈 더미를 비춘다. 하얀 것이 저렇게 더러울 수 있다니. 그는 대답한다. “봄이 오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나?” 그의 동행은 두터운 점퍼 오른쪽 소매 언저리에 숨겨진 주머니 지퍼를 열고 장갑을 꺼낸다. 장갑들. 손들. 트럭들과 택시들,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보행자를 위한 녹색 불이 켜진다. 그들은 흰색 선을 밟으려고 노력하며 도로를 건너고, 그들이 앞으로, 그러니까 그들이 목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노랫소리가 조금씩 커져 간다. 누구지? 수요일 오후 두 시, 해가 지려면 서너 시간이 남아 있고 평범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대부분 식곤증에 시달리고 역시 평범하지만 숙취에 시달리는 누군가들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시각, 동행이 노랫소리의 출처를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는 동안, 그는 자신이 지난 스무 해 동안 입었던, 능직 직물로 만들어진 모든 옷들을 떠올리고,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밑단 뒤쪽이 닳아서 버렸던 바지 하나, 체중이 줄어 새로 샀던 바지 하나, 체중이 늘어 새로 사야 했던 바지 둘, 바지들, 그는 바지선이 실은 barge라는 걸 알고 놀랐던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바지선이 barge라면, r은 어디로 갔을까? e는 왜 ㅣ가 된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서, 혀끝에서 모음들과 자음들이 엉클어진다. 그는 문득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느 건물 4층에 위치한 피부과 간판에 부착된 디지털시계를 본다. 02:02. “2와 2가 대결하고 있어.” 그가 문득 말하고, 동행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노랫소리와 가까워질수록 노랫말과 선율과 리듬이 보다 명확히 들려오는데, 노랫말은 거의 정확하고, 선율과 리듬은 엉망이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누군가가 오른손으로 무선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수는 왼손을 왼쪽으로 한껏 펼치고 있다. 그가 노래에 집중하려는데, 가수는 노래를 끊고 말하기 시작한다. “할렐루야.” “뭐라고 했어?” 동행이 묻는다.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십시오. 할렐루야.” 아버지들. 행인들. 얼어붙은 입매들. 햇빛들. 내일 눈 예보가 있다. 그는 이 말을 보다 듣기 좋게, 달콤하게, 상냥하게 바꿔 말한다. “내일 폭설이 내린대.” 그들은 노래를 뚫고 앞으로 걷는다. 노랫소리가 다시 멀어진다. 괴로움이 잊혀지고, 진자리가 마르는 동안, 그들은 어느 건널목에서 활짝 웃으며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고, 한 사람은 신세계백화점으로, 다른 사람은 영등포구청역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들이 멀어지는 형태. x축과 y축. 그들은 2차원 그래프 안에서 잠시, 그러나 영원히 멀어진다. 그들이 멀어지는 모양은 직각이다가, 마름모꼴이다가, 가까스로 기이한 사각형을 유지하다가, 비뚜름한 원이다가, 곧 아무런 의미 없는 점들과 짧은 곡선들의 집합이 된다. 그들은 한 시간 뒤 다시 만날 것이다. 지금은 그들을 그대로 두자. 한 사람은 베개를 살 것이고, 다른 사람은 커피를 마실 것이다.


국비 지원 컴퓨터학원에서 자바스크립트 기초반 다섯 번째 수업을 수강하고 계단을 내려오던 이가 건물 현관 유리문에 나붙은 전단지들을 잠시 바라본다. 출장, 인력, 부도 따위의 단어들이 눈에 띈다. 그는 점퍼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쥔다. 건물을 나서자 눈이 부시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직 의미를 찾지 못한 단어들이 뒤섞이고 있다. if… i가 0보다 크다면… alert(). 그는 건물 옆 햇빛 들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가 먼지와 일회용 커피 컵들이 쌓인 에어컨 실외기들 사이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실바람들. 그의 머릿속에서 팝업 창들이 여러 개 나타났다가 하나씩 사라진다. 건물들 틈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모자를 썼거나 쓰지 않은 사람들. 입김들. 봄이 오려면 한 달 정도 남았다는 말들. 그는 정확히 언제부터 봄이 봄인 것인지 궁금하다. 건물을 덮은 타일들 틈새에 눈이 묻어 있다. 그는 가느다란 띠처럼 내려앉아 녹지 않은 회색 눈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고, 눈은 미동하지 않는다. 눈들. 그는 조금 전까지 듣고 있던 내용을 복기해본다. 0부터 입력받은 숫자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소수를 얼럿 창에 띄우고 싶다면… 그는 단순하지만 난해한 암호처럼 보이는 용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let i = 0; 어째서인지 코드를 한 줄 한 줄 입력할 때마다 엔터를 누르기 전에 반드시 세미콜론을 넣어야 했고, 그는 땀을 흘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저마다 형형하거나 흐리거나 덤덤한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마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그는 가능하다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세미콜론만 입력하고 싶었다. 그러나.
구름이 이동하고, 건물 틈으로 잠시 햇빛이 비친다. 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2시 5분. 순간 그는 강렬한 기억에 사로잡힌다. 강렬한… 이런 형용사를 써도 될까? 그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건 우리 몫이다. 생각을 하고, 다시 써보자면, 그는 임파선이 부어오를 정도로 강렬한 기억에 사로잡힌다. 그는 어깨와 흉곽 사이에 통증을 느끼는 채로 기억을 구성하는 장면들을 순차적으로 배열한다. 통증은 어떻게 복수가 될까? 분포로? 발현하는 간격으로? 그가 말해지지 않는 기억 속에 빠져든 동안, “할렐루야”, 노래와 외침이 가까워진다. 무선 마이크를 들고 전도하는 이가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그가 있는 쪽으로. 행인들은 길 위의 전도사를 무심히, 흘겨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무표정으로,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다음 가사를 궁금해하면서 지나친다. 그중에는 가이없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하는 이가 있다. 가이가 없다, 가이가 없다라… 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전이라도 찾아보고 싶지만, 겨울, 그의 오른손은 주머니에 처박혀 있기를 택한다. 전도사는 백화점 앞 횡단보도에 자리를 잡고, 도로 위의 차들이 형태나 색깔과 무관하게 햇빛을 반사하고, 눈이 녹고, 눈이 부시고, 전도사가 노래를 끝마치고,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여전히 북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1시에 시작된 자바스크립트 기초반 다섯 번째 수업을 듣고 나와 대략 6분간 담배를 피운 뒤 건물 틈을 빠져나온 그가 전도사에게로 다가간다. 아니, 아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것이다. 그가 아무렇게나 내던진 담배꽁초는 꽁초들이 되었다. 복수의 세계. 그는 눈이 부시고, 손차양을 만들어 잠시 햇빛을 막고, 전도사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스승의 은혜”다. 그는 입속으로 웅얼웅얼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은혜, 은혜들. 그가 아는 이름은 아니다. 한길의 광인을 마주칠 때마다 조용히 요동치는 두려움. 두려움들. 그는 갓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아프다는 말이 없다면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미심쩍은 수수께끼 같은 말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4년간 아프다는 말이 없다면 아플 수 없다는 문제에 느슨히 매달렸고, 그 결과는 대체로 형편없었고, 하나의 결론, 추상명사들은 대부분 가산명사들이었다.


우리는 그를 사로잡았던 기억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다. 기억은 내면에 위치하므로. 우리는 외부자에서 내부자가 된다. 그의 강렬한 기억은 이런 것이다. /* 그는 일주일에 두어 번 인문대학 지하에 있던 매점에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대략 이십여 년 전의 일로,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허겁지겁 이루어졌던 그의 식사가 강렬한 기억의 주된 내용은 아니다. 그보다는 하찮은, 그러나 그가 떠올리므로 필수적인 구성 요소에 가깝다. 오후 서너 시쯤 허연 쟁반을 들고 허옇고 작은 테이블에 앉아 부실한 김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 그의 눈에 으레 백발의 노인이 포착되고는 했다. 노인에 대한 첫 기억은 유실되고 없다. 노인을 두 번, 세 번, 여러 번 목격하는 일이 반복되자 노인은 그에게 각인되었다. 흰 머리를 엉성하게 틀어 올린 노인은 낡은 자주색 누비 헝겊 필통을 허연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식론 수업을 듣고 있던 그는 비기초적 믿음의 정당화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했다. 어느 날, 그러니까 그 무수히 많은 어느 날들 중 그날. 노인을 다섯 번째로 보았던 날. 그는 저도 모르게 노인을, 상체를 옹송그린 자그만 몸집의 노인이 열렬히 들여다보고 있던 책을 관찰했다. 거리가 있어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책이 외국어 교재라는 것을, ^와 등이 보였던 데다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까지 더해져, 노인이 중급 프랑스어 회화 교재를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공교육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에게나 선생들에게나 만연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진작부터 우리 삶에서 딱히 필요하지 않은 언어로 여겨지고 있었던 프랑스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억 속 삽화가 있다. 그가 잊었기에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학생이, 억센 곱슬머리에 손가락이 길었던 그 애가 한탄하듯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영어 단어는 익숙한 느낌대로 가면 맞을 때가 있는데, 불어 단어는 추리가 안 돼.” 그는 이 말이 어쩐지 귀엽다고 생각했다. 2년간 어설프게 배웠던 프랑스어는 그에게 ‘부정의 de’와 ‘C’est qui?’를 남겼다. 후자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귀여우니까. 열의 없는 학생들에게 지친 교사는 겨울방학을 앞둔 마지막 수업에서 철 지난 프랑스 영화를 틀었다. 편부와 좀도둑, 세파에 시달린 여자들과 그들 중 누군가가 증조부로부터 상속받았다는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등장하는 그 영화에서 면도 중이던 편부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초인종이 울리고, 편부는 허연 면도 거품이 절반쯤 남아 있는 얼굴로 묻는다. ‘C’est qui?’ 누구냐고 묻는 평이한 질문에 반쯤 잠들어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사였던 데다 그 발음이 그들이 자주 내뱉는 어떤 난폭한 어휘와 상당히 유사하게 들렸던 것이다. 삽화는 여기서 끝난다. 그는 문득 노인에게 말을 붙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늘색 손뜨개 카디건을 걸치고 왼손에 묵주 팔찌를 찬 노인의 모습이 언젠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노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말시험의 두 번째 문제, ‘A는 채송화를 보았다. A가 본 것이 채송화라는 믿음은 A에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두 페이지에 걸친 장문의 답변을 썼고, 제출했고, B0를 학점으로 받았다. 지금 노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기억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략 스무 해 전이니 노인은 대단한 노인이 되었을 수도, 사망했을 수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 노인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판본으로 제작된다. 그중 한 이야기에서 노인은 모로코에 있다. 마라케시 시장에서 계핏가루와 후추를 두고 흥정하는 중이다. 뻔한 장면이지만 이것이 가장 낫다. 다른 이야기에서 노인은… 그는 상상을 거둔다. */ 우리는 강렬한 기억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그는 베개를 사러 가야 한다. 이유 없이, 맥락 없이. 그러나 잠은 중요하고, 우리의 목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 베개에 의지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베개가 있어야 한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용 신장 약을 사서 나오던 사람 앞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과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지나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사람. 사람들. 시옷들. 이응들. 누군가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동물병원에서 막 나온 사람은 녹색불이 켜졌는데도 도로경계석 위에 망연히 서 있다. 그의 시야에 야광조끼를 입은 교통경찰의 등이 포착되지만, 그는 주목하지 않는다. 녹색불이 점멸한다. 길을 건너려던 사람들은 모두 길을 건넜고, 그의 양옆에는 한동안 아무도 없다. 그의 점퍼 주머니 안에서 약 봉투가 버석거린다. 그의 고양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모른다. 우리의 시야에는 그의 고양이가 포착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탄 사람이 그를 지나친다.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은 아니다. 한 폭의 길 위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니, 그러나 우리는 마음만 먹는다면 천 명쯤 비좁은 도로를 지나다니게 할 수 있다. 개들을 포함해서. 그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1층에 위치한 동물병원 출입구로 이어지는 네 칸의 계단과 유리로 된 안전문이 보인다. 그는 그대로 위를 올려다본다. 컴컴한 창문들. 허름한 고시원 간판이 보인다. 그는 어째서인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동물병원과 횡단보도 사이, 낡아서 군데군데 모서리가 깨진 다섯 칸의 엷은 자주색 보도블록 위를 맴돌고 있다. 무슨 일이지? 그는 주머니 속 약 봉투를 움켜쥔다. 종이가 구겨지고, 어쩌면 알약들 중 몇 개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가루가 흩어졌을 수도, 그의 주머니가 고양이 대신 약을 삼켰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음 블록으로 넘어가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녹색불, 차량용. 교통경찰의 모자. 서둘러 이족보행 하는 이들. 흰 선들과 검은 면. 노랑. 하늘. 타일들. 유리들. 창문들. 신호들. 그는, 그러니까 자전거를 타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본다. 오후의 햇빛이 검은색 차광필름을 씌운 직업소개소 창문을 스치고, 할렐루야, 어디선가 주를 찬양하며 외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교통경찰이 노곤한 팔목을 들어 교대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고, 그는, 그러니까 고양이용 신장 약을 품고 있는 사람은 마침내 길을 건넌다. 그의 고양이는 성난 꿈을 꾸는 중이다. 그렇다고 하자. 들판에서, 초원에서, 사막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사냥감을 쫓으며 신나게, 한껏 신이 나서 달려가는 중이다. 그의 고양이는 신장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하자. 적어도 우리는 그러하기를 바라야 한다.
두 사람이 동물병원으로 들어간다. 둘 중 한 사람은 커다란 플라스틱 이동장을 감싸 안듯 들고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이 안전문을 젖히고, 이어 출입문을 연다. 편의점에 가려고 접수대를 빠져나오던 근무복 차림의 직원이 자신의 자리로 부드럽게 돌아간다. “아이 이름이 뭔가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동물 아이의 이름은… 디귿으로 시작하거나 M으로 시작할 것이고, 체중은 4.3킬로그램이거나 7.5킬로그램일 것이다. 동물 아이는 개이거나 고양이일 것이고, 어느 쪽이건, 진찰대 위에서 유순한 얼굴로 인간 어른들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가 기차역을 등지고 걸어간다. 검은색 러닝화를 신고, 회색 트레이닝 바지에, 검은색 점퍼를 입고, 군청색 야구모자를 쓴 모습이다. 평범한 사람. 이 거리를 백 명이 지나가고 있다면 그중 스물다섯 명쯤은 이런 차림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과연… 행인들에게는 저마다 목적지가 있다. 행인이라는 단어에는 목적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그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고양이에게로, 신장에게로, 신성에게로, 어떤 기대를 향해.


이어지는 장면들, 기대들, 희망들, 물건들, 상품들. 누군가가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유기농 올리브유 가격을 확인하고 기함한다. 세척된 열무 뿌리에 남아 있는 조그만 흙먼지들, 알갱이들. 비말 확산을 방지하는 투명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이 누군가에게 칡과 더덕의 효능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고, 에스컬레이터와 회전문은 오후 여덟 시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베개를 사러 왔다가 식품매장에 들른 누군가가 잼과 꿀 선반 사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의 신체는 잼과 꿀, 그리고 핫케이크 믹스와 중력분 사이에 있지만 그의 정신은 베개들 사이를 유영하고 있다. 예컨대 경추 베개와 라텍스 베개 사이를, 메모리폼 베개와 깃털 베개 사이를, 혹은 베개들 위를, 그들 아래를. “지나갈게요.” 누군가가 말하고, 자신의 말을 확실히 하듯, 그의 등 뒤를 지나간다. 찰나의 스침. 아무 이야기도 발생시키지 않는 만남. 차를 파는 매대 앞에서 누군가가 선물용 차를 고르고 있다. 조그만 직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반찬들. 세 묶음에 만 원인 반찬들은 네 묶음에 만 원이 되었다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면 다섯 묶음에 만 원이 될 것이다. 시간의 문제다. 한 아이가 소프트아이스크림 코너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아이의 부모는 당황하지 않고 계산을 끝마친다. 집으로 가려다 충동적으로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식품매장에 들어선 사람(우리는 그를 만난 적이 있다)이 곧장 김치 코너로 직행한다. 위생모들, 앞치마들, 족저근막염에 시달리는 고르지 못한 발들. 신체와 상품들이 뒤엉키고, 드물게 동전이 쟁그랑대고, 비닐봉지를 펼치는 소리와 인사말들이 오고 간다. 음악이 있는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도 음악을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 영수증 드릴까요?” 대답은 고갯짓이거나 단답형이거나 미소다. 누군가가 매끈한 타일 바닥에 머리카락을 한 올 떨어뜨리고, 충동들, “난 아가씨들 등에 머리카락이 묻어 있으면 그걸 꼭 떼고 싶더라.” 계단참의 대화들. 누군가는 어려서 처음 백화점에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5층 식당가에서 돈까스도 돈카츠도 아닌 돈가스를 먹었고, 아마도 이천오백 원, 4층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백화점에 조그만 서점이 딸려 있었던 시절이다. 그의 부모가 둘 중 한 사람, 아마도 아버지의 상사에게 선물하기 위한 벨트를 고르는 동안, 그는 화장실을 찾아 2층 신사복 매장을 헤매다 어느 철문을 열었고, 매캐한 담배 연기에 노출되었고, 눈두덩을 하늘색으로 칠한 여자들이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계단참에서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던 여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생각한다. 그때는 비상계단에서, 기차 통로에서, 지상 전철역 승강장에서 다들 담배를 피웠지… 그러니까 남자들이… 여자들은 비상계단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가야 했어… 그는 베이지색 조끼와 미색 블라우스, 다시 베이지색 스커트로 이루어진 백화점 유니폼 차림의 속눈썹이 긴 여자가 다정하게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꼬마야, 화장실 찾니?”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 냄새들. 그는 로메인과 버터헤드 양상추를 한 팩씩 장바구니에 담으며 스페인산 올리브유를 살지 말지 고심한다.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어느 커플이 그를 지나치며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으로 사.” 웃음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 구조들, 철골들, 타일들, 콘크리트…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각층을 안내하던 여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름다운 얼굴들이 빈틈없이 나붙은 화장품 가게 안 유리 진열장 뒤를 지키던 여자들은? 그는 어느 햄버거 가게에서 식사를 하던 중 “저기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대답하며 일어선 적이 있다. 그의 장바구니가 채소들과 네 팩에 만 원이 된 반찬들로 채워졌다. 감자볶음, 멸치볶음, 메추리알조림, 나물 3종 세트. 그가 고른 네 가지 반찬들에는 더덕구이가 포함되지 않는데, 그건 할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들, 비닐 포장재들, 완충재들, 종이봉투들, 웃음들, 찌푸림들, 더덕들, 구이들, 모든 것들이 있다. 없는 것만 빼고. 어느 할인용품점 슬로건처럼. 옛날 노래 한 토막처럼.


노래들, 입김들, 호객행위들. 베개를 사러 간 사람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 지루함에 카페 밖으로 나온 사람이 영등포역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 근처에 몸을 숨기고 담배를 피운다. 그의 시야는 교차로로 구획되고,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 준할 때 일사분면에 해당하는 면은 예각의 형태로 영점을 찌르고 있다. 누군가가 백반집에서 나오고, 누군가는 죽집으로 들어간다. 그는 죽집, 죽집, 하고 발음해 본다. 죽집이라는 조어가 가능하다면 예컨대 이불집, 베개집, 침대집이라는 단어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불집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담벼락 구석에 용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스티커에 이불솜 틀어드립니다, 라고 적힌 것도 그는 본 적이 있다. 집, 집, 집 자로 끝나는 말은… 그는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단어들을 떠올린다. 우리 집, 틀렸어. 아집, 그래. 고집, 수집, 포집, 징집. 그때 경적이 크게 울린다. 그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무작정 낀 택시를 향해 성난 운전자가 핏대를 세우는 꼴을 지켜본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차창 밖으로 튀어나온 팔 하나. 욕설들. 아랑곳없음. 오토바이 한 대가 잔뜩 화가 난 은색 세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고, 그 뒤로 자전거 한 대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불솜을 튼다는 건 어떤 걸까, 그는 문득 궁금하다. 잠시 멈춰 섰던 차들이 출발하고, 직진과 좌회전, 트럭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두 시 이십육 분, 베개를 사러 간 이가 이런저런 베개를 체험하다 까무룩 잠든 건 아닌지 의심한다. 그는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의 담배는 어떻게 됐지? 꽁초가 남았을까? 그는 꽁초를 어떻게 처리했지?) 누군가가 죽집에서 자그마한 쇼핑백을 들고나온다. 쇼핑백 안에 죽이 들어 있지 않을 확률은? 그는 자문하고,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영등포시장을 향해 걷는다. 전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장소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시장 초입의 주방용품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몇몇 사람들. 서너 명? 스무 명? 오십여 명? 시장 통로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쟁반들, 냄비들, 그릇들, 젓가락들, 너무 많은 물건들이 있다.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닭강정을 사는 사람, 한산한 전집과 떡집, 선글라스를 낀 채 간이지붕이 덮인 시장통 어둠에 적응하는 사람, 자전거를 탄 배달원, “모든 사람은 무조건 두 종류로 나뉠 수 있어”, 그는 귀를 기울인다. “봐, 모자를 썼거나 쓰지 않은 사람. 양말을 신었거나 신지 않은 사람. 떡볶이를 먹거나 먹지 않는 사람.” “그러면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상태가 아니야. 착각이야.” 그는 대화를 지나치고, 막걸릿집을 지나친다. 전방이 갑자기 떠들썩해진다. 누군가가 나타난 모양이다. 그는 그쪽으로 고개를 길게 늘인다. 어느 정치인이 유세라도 나온 것이다. 시끌벅적함, 소음들. 박수소리들. 몇몇 사람들이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하고, 비닐랩으로 매끈하게 감싼 플라스틱 생선회 접시를 진열하던 상인이 몰려든 사람들 무리를 무심히 바라보다 그만둔다. 카메라들. 그러나 이내 소란이 멎는다. 어떤 사람들의 시간은 가속되는데, 정치인과 그 수하들의 시간은 이미 오후 네 시에 근접해 있다. 그는 마라탕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베개를 사러 갔던 사람이 보낸 문자가 도착해 있다. 어디야? 그는 어찌 된 일인지 잡화점 앞에 할인 가격이 붙어 잔뜩 쌓인 A4용지 상자들을 보며 한 박스쯤 사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짧은 외침들, 시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어투들, 문법들. 카드 됩니다. 누군가가 중국집 전단을 그에게 들이밀고, 그는 중국집이 어째서 중국집이라 불리는지 잠시 궁금해한다.


택시 기사가 콜을 기다리며 정차 중이다. 어디서? 어디선가. 우리는 대부분 눈치껏 정차하기 맞춤한 장소에서 콜을 기다리며 건성으로 라디오를 듣는 택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라디오에서 일반적인 어법과 표현을, 그러니까 어법들과 표현들을 배웠다. 사라진 장갑 한 짝들, 양말들, 거스름돈들. 망원동 유수지 근처 기사식당에서 돼지불백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당산역으로 손님을 태우고 왔던 택시 기사가 라디오가 내보내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강부자 선생님의 신곡을 방금 들으셨습니다.” 이어 광고와 짤막한 뉴스가 이어진다.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 침묵하는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폭설주의보가 발령… 누군가가 다급한 걸음으로 기사의 택시를 향해 다가온다. 뒷문이 벌컥 열리고, 이어 쏟아지는 말들. “천호동 쪽으로 빨리요.” 기사가 기어를 바꾸고, 차가 출발하고, 기사는 천호동 쪽으로 급히 가야만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다 그만둔다. 택시가 영등포역 앞을 지나고, 이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시장을 배회하다 베개를 사러 갔던 사람과 재회한 이가 백화점 식품관으로 들어가는 회전문 앞에서 묻는다.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아?” 끄덕임. “누워 보고 샀지?” 끄덕임. 오늘 밤 두 사람의 꿈이 평안하기를. 그들은 다시 영등포역 쪽으로 걷는다. 구름이 이동하고, 햇빛, 눈이 녹고 있고, 그림자들이 연해지다 짙어진다. 웃음이 아니라 미소였어… 행인들 중 한 사람이 생각하고, 누군가의 구두 뒤축이 사탕껍질을 밟고 지나간다. 이런 일들, 사건들, 하찮은 장면들.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아마도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할 순간들. 삽화들. 손거스러미들. 어그러진 계획들. 낚시용품점에서 겨울철 빙어 낚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오던 사람이 건물 위층에 위치한 한국나방협회 간판에 잠시 주목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나방협회라니, 그게 무슨 의미지? 하지만 그는 한국 옥수수재단과 한국 칡연합회 간판도 본 적이 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어쨌거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내일 폭설이 내릴 수도 있겠지만, 곧 봄이 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기를… 그의 빙어 낚시는 자동으로 유예된다. 다음 겨울로. 다음 겨울이 오기를. 그 사이에 이 지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방해받지 않기를. 그는 호주머니가 빈 채로 걷고 있다. 충동들. 불가산명사가 될 수 없는 추상명사들. 고유명사들. 그들 모두에게 이름이 있어야 할 텐데. 우리는 희망하고, 애를 쓴다면 그들 모두에게 이름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 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도 철물점과 가죽옷 전문점 사이에 낀 스페인 음식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브레이크타임 알림판 아래 메뉴판을 잠깐 들여다본다. 빠에야. 감바스 알 아히요. 브루스케타. 세르베사. 암호들, 명사들, 음식들. 그는 불 꺼진 음식점 안을 들여다보고, 빈 테이블 앞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하얀 유니폼 차림의 주방장과 시선을 마주치고, 급히 몸을 돌리고 가려던 방향으로 간다. 더는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 택시 기사… 기사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가 신한은행 ATM지점에서 나오다 잔기침을 하고, 입자들, 누군가가 7층짜리 건물 2층 내과에서 간염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왼팔 소매를 걷는다. “아, 하세요.” 같은 건물 3층 치과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행인들은 이런 말들을 듣지 않고, 저마다 가던 길을 가고 있다. 흔히 하는 말대로 인생처럼, 강물처럼, 때로 역류하면서.
베개를 산 사람이 커피를 마신 사람과 조우한다. 베개를 산 사람이 당분간 또 다른 베개를 살 일이 없기를. 그러나 베개를 산 사람도, 커피를 마신 사람도 내일 다시 한번, 혹은 두 번, 혹은 그 이상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식도염을 앓을 수도 있고, 병원에서 B형 간염 항체가 없다는 소식을 접할 수도 있고, 치과의의 다정하면서도 과격한 손놀림에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들은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없다. 막을 수가 없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바스크립트 기초반 여섯 번째 수업을 앞둔 사람이 노트북을 한 대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집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택배 기사가 그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고, 3층 주인집 남자가 빨랫줄에 수건을 걸고 있다. 빨래들. 수건들. 셀 수 있을 때 세어야 한다. 언제고 셀 수 없게 될 테니까. 영등포동 8가 어느 골목길에서 축구공 하나가 도로로 뛰어든다. 아이가 도로경계석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서고, 햇빛, 아이의 머리칼이 잠시 금색으로 빛나고, 착각, 공이 우리와 아이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다른 골목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호가 바뀌고, 아이는 침착하게 길을 건넌다. 오른손을 들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으므로. 아이가 공을 찾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이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아직 커피를 마신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아이들은 아직 슬프지 않고, 미치지 않고, 대부분의 사건이 먼 나라 얘기들이라고 생각하거나, 어쩌면 아무런 생각이 없다. “벌써 2029년이라니.” 베개가 든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영등포역을 향해 걷는 사람이 말한다. “뭔가 이루었을 줄 알았는데.” 주님을 찾으며 노래를 부르던 이가 새로이, 그러나 같은 노래를 시작한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다른 청중들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쑥색 외투에 인디고색 청바지를 입고 상아색 목도리를 두른 차림으로 타임스퀘어 쪽으로 향하던 누군가가 불현듯 이렇게 생각한다: 키가 250킬로미터쯤 더 크면 좋을 텐데.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 세계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그의 키(164센티미터)에 250킬로미터가 더해진다면(250.164킬로미터) 그는 몇 걸음에 대한해협을 건널 수도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가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하루에 1미터씩 클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지금 걸친 모든 의복들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는 한 걸음을 내딛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에어컨 실외기 위로 뛰어오른다. /* 가시나무새. */ 누군가의 기억이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일, 두 시 이십구 분이다. 반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우리는 간신히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믿을 것. 누군가가 문득 서쪽을 바라보는데, 그가 가던 방향이기 때문이고, 마침 김포공항으로 착륙하기 직전인 비행기 한 대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해가 지려면 서너 시간이 남아 있고, 봄이 오려면 한 달쯤 남아 있다. 우리의 하루가, 삶이, 마음이 온전해지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할까. 아무도 묻지 않기에 우리는 그들의 질문을 대신해볼 수 있다. 버스 승강장에서 5714번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그들이 내일도 같은 버스를 기다릴 수 있기를. 그래야 한다면. 차가운 금속제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외래종 양상추와 올리브유가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있고, 또 누군가는 대전역 앞에서 서툰 호객행위에 홀려 외국문학 선집을 할부로 샀던 기억을 떠올린다. 총 열두 권으로 이루어진 세트였고, 첫 권의 제목은 가시나무새였지… 그는 고등학생이었고, 이십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는 집으로 날아든 고지서를 부모가 볼 수 없도록 가로챘고…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지? 그가 『가시나무새』를 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떤 삽화도 기억나지 않으니… 서울 동쪽으로 갔던 택시들이 서쪽으로 돌아오고, 서쪽으로 갔던 택시들이 동쪽으로 돌아온다. 일방통행로를 주의할 것. 어쩔 수 없이 일방통행로에 반대 방향으로 진입해야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비상등을 켜야 한다. “아니야, 모든 사람들은 세 종류로 나뉠 수 있어. 모자를 쓴 사람,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 모자를 쓸 사람.” “아니야, 잘 생각해 봐. 그러면 모자를 쓰고 싶지만 쓰지 않을 사람, 모자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분류해야 해?” “네 말에 일리가 있어. 보자. 모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모자를 무시하는 사람, 모자를 먹는 사람, 모자를 기르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대화들, 토막들, 다정한 말들. 성난 꿈들과 노란색과 안전한 꿈들. 말도 안 되는 말들. 누군가가 핸드폰에 USB-C 케이블을 꽂으며 생각한다. ‘C 다음에는 D가 올까.’ 그는 이러한 가능성을 의심한다. 초등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C 다음에는 D가 오지만, G 다음에는 H가 오지 않는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누군가가 등산복을 떨이로 파는 상점 앞에서 망설인다. 누군가가 문득 강렬한 기억에 사로잡힌다. 모든 기억들은 강렬하다. 기억들. 강렬함들. 통각들. “할렐루야.” 누군가가 외치고,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 오후 두 시 삼십 분. 해가 지려면 서너 시간이 남아 있다.











전하영
작가소개 / 한유주

소설가. 근작으로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가 있다.


《문장웹진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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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계속

[단편소설] 2016.11.4. 최종수정 되었습니다. 개의 계속 한유주 쓰지 마라.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처음, 그러니까 시작, 시작하기 전에도 처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무슨 말일까. 또 이래서는 안 돼. 이러면 안 돼. 또 이렇게 시작하면, 아니, 시작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면 또 모두에게서 비웃음을 당하고 말 거야. 쓰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쓰지 마라. 그래서 나는 쓰지 않기로 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 고작 몇 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려면 몇 초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생각했다. 밤에는 누워서 가슴에 칼을 꽂는 방식에 대해, 가슴에 칼이 꽂히는 각도에 대해 생각했고, 낮에는 길 위에서라면 도로에 뛰어드는 방식에 대해, 내 몸이 그릴 포물선의 정확한 형태에 대해 생각했고,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폐쇄된 공간에서는 역시 칼을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나는 매 순간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몇 초에 한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정신이 말짱했어, 그러니까 하루에 한두 번씩, 어쩌면 서너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 하루에 한두 번이나 서너 번은 아무것도 아닌 숫자이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매일같이 드물게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이번에도 처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 처음에는, 자살하겠다는 의지가 그러지 않겠다는 의지보다 크지 않아서, 아마도 내가 자살할 가능성도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만 생각했어야 했어, 나는 의외로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라서, 누구나 의외로 논리적이고 계산적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자살을 계속 생각해도 어차피 자살하지 않을 거라면 그만 생각했어야 했다. 어쨌거나 정상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자살 충동은 대부분은 몇 초, 적게는 몇 분, 드물게 몇 시간 지속되었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가면 나는 다시 잠들거나 길을 걷거나 낯선 얼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무언가가 시작되어야 할 텐데,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 텐데. (쓰지 마라)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자살하면 쓰지 않아도 되겠지, 아무것도. 자살하면 읽지 않아도 되겠지, 아무것도. 자살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무 말도. 자살하면 보지 않아도 되겠지, 모든 것들을. 하지만 우습게도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지금, 그러니까 지금, 쓰고 읽고 말하고 보는 지금, 나는 이 글을 끝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자살을, 혹은 자살에 대한 생각을 미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써야 한다. 왜 죽음이 아니라 자살이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한동안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죽음이야말로 애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분간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

  • 한유주
  •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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