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해관계
- 작성일 2017-03-01
- 댓글수 0
[단편소설]
그들의 이해관계
임현
1
한번은 해주가 무얼 보았다고 해서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느냐. 보이긴 뭐가 보인다는 거냐. 봐라, 나도 지금 같이 보는데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나름대로 나도 지쳤던 게 아닐까,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해주를 많이 견디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그게 다 뭐였나 되짚어 가다 보면 별의별 게 다 떠오르고, 서운한 것들, 아쉽고 섭섭한 것들, 뭔지 모르게 해주가 마구 우기던 것들만 기억나서 더 화가 났다. 그러다가도 나중에는 좋았던 것, 괜찮았던 것, 해주가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쓸어 주던 장면 같은 게 함께 떠올랐으므로 괜히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낸 내 잘못이 더 크다는 쪽으로 매번 결론 내렸다.
또 하루는 어디서 도라지가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나 분말로 된 것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보름쯤 전부터 해주의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잔기침이 그치지 않았다. 병원에 좀 가보는 게 어떻겠냐 해도 바쁘다고만 하고 뭐가 그렇게 바쁘냐, 바쁜 것도 건강할 때 바쁠 수 있는 거 아니냐, 잔소리했다. 그런데도 해주는 알았다거나 걱정 말라거나 하는 말 없이 줄곧 해야 할 일이 있다고만 해서, 옆에서 자꾸 그러면 자다가 내가 깬다고, 오늘도 여러 번 그랬다고,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같이 사는 사람 생각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해버렸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나 너무 모질게 대했다는 생각에 종일 신경이 쓰였다. 서운해 하던 표정이 떠올라 낮에 잠깐 전화했는데 내가 하려는 말은 다 듣지도 않고 해주는 “간다고, 가. 지금 가고 있잖아.” 하더니 바로 끊어버렸다.
가루로 된 도라지라 물에 타 먹기도 좋고, 국이나 찌개에 넣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해주만은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기운도 없어 보이고 후두가 많이 부었다고만 했다. 병원에서 그런 말을 듣고 와서인지, 아니면 좀처럼 서운한 감정이 줄지 않아서인지, 사온 것에는 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유자차만 여러 번 우려 마셨다. 무안한 마음에 우리 집에 이런 게 있었느냐고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나흘이 지난 뒤에 나는 해주와 함께 병원에 갔다. 그러지 말라는 걸 억지로 내가 따라나섰는데 거기 의사가 부기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며 내시경 화면을 보여주었다. 드물긴 한데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모르고 보면 부은 것 같지만, 본래부터 그런 모양이더라는 설명이었다. 그래도 염증이 있는 건 맞으니까 약은 계속 복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내가 제대로 들었던 게 맞는지 되묻고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그 의사의 말을 우리가 똑같이 들었는데도 해주는 어딘가 나랑 다르게 이해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래서였다고 생각한다. 이후로 해주는 계단을 오르거나 무거운 걸 들어야 할 때 평소보다 더 힘들어했다. 자주 입맛이 없다고도 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 그런 곳이라면 건강에도 좋고 여유로울 것 같지 않느냐 계속 물어서 사람을 귀찮게 했다. 한번은 술 약속이 있어서 밤늦게 들어간 적이 있는데 미리 전화를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불 꺼진 거실에 해주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왜 자꾸 자기를 혼자 두는 거냐며 전에 없이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해주가 지금 무얼 떠올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게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 경우, 선천적으로 그런 후두를 가졌다는 게 무슨 질병은 아니고, 다만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른 것일 뿐 나쁠 건 별로 없다는 의미로 여겼던 것에 반해, 해주는 보다 무겁고 심각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걸 장애나 기형처럼 어딘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의미로 곡해해서 들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저러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런 말들은 해주에게 전혀 할 수 없었다. 병원을 빠져나오던 그날 나는 이미, 불안해하는 해주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는데 해주는 그런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에는 그게 너무 슬퍼 보이고 무얼 뜻하는 줄은 몰랐다. 그랬으므로 빠른 보폭으로 줄곧 나를 앞장서 걸어가는 해주를 가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게 다 해주를 위하는 거라고,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해주에게 크게 화를 내던 날도 그랬다. 나는 그런 대처가 우리의 상황을 조금 더 괜찮게 하는 데 일조할 거라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카페에 있었다. 손님들이 많아 복잡했고 주문을 하는 데만도 줄이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음악소리도 크고 웃음소리, 말하는 소리가 컸다. 옆에 앉은 여자도 “뭐라고? 좀 더 크게 말해 봐. 잘 안 들려. 방금 그거, 그거 다시 말해 보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로 가까운 데 있어서 이따금 경적소리도 크게 들렸다. 그런데도 해주만큼은 조용했다. 간혹 무언가를 말하긴 했으나 그때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고? 되물으면 아니라거나, 됐다거나, 별거 아니었다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모처럼 함께 외식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서 해주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고 싶었으나 정작 해주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제대로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어서 말해 보라고, 그 별거 아닌 게 도대체 뭐였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아닌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는 있어도 그럼에도 당시의 해주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을 거라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그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전화를 받으러 나간 여자가 돌아왔고 어딘가 산만하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급히 해주에게 물어왔다. 테이블에 지갑을 두고 갔는데 못 봤냐는 것이었다. 같이 있던 남자가 챙겨 가더라고 해주가 대답했을 때 여자는 몹시 당황해했다.
“누가요? 그게 누구예요? 나는 처음부터 여기 혼자 왔는데 누굴 말하는 거예요? 왜 그런 걸 보고도 가만있었어요?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데 왜 가만 뒀어요?”
그 일에 대해서라면 나는 여전히 여자의 부주의가 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해주가 책임질 만한 일은 아니고 그건 우리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었다. 가만 듣고만 있을 게 아니라 왜 애먼 사람에게 그러느냐고 따지고 화를 냈어야 했다. 아니라면 무시할 수도 있었다. 바쁘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말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더욱 애매하게 만든 것은 해주의 태도 때문이었다. 카페의 매니저를 호출하고 매장 내에 설치된 카메라를 확인하기를 먼저 요구한 것도 해주였다. 화면에서 여자가 내내 혼자 앉아 있다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급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다 보았는데도 해주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명백하게 확인 가능한 것이 있는데도 그런 것은 하나도 믿지 않은 채 지갑을 들고 가는 남자만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아까 이 사람과 분명 같이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그걸 자기가 보았다고 우긴 것도 모두 해주 혼자뿐이었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그만 좀 하라며 해주의 팔을 끌어당겼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소란 좀 피우지 말라고 소리쳤다.
“보긴 도대체 뭘 봤다는 거야.”
해주와 달리 내게는 실제로 그 남자와 여자가 동행했는지 여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들, 해주가 자꾸 그렇게 말함으로써 생기게 될 문제들, 그러니까 지갑을 잃어버린 여자가 의심할 수도 있을 만한 것, 도리어 우리를 지목하고 그것으로 하게 될지 모르는 불필요한 해명들이 나는 더 염려됐던 것이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라면 미리부터 대비하고 준비하고 차단해야 했다.
그랬는데도 상황은 왜 더 나쁘게만 흘러갔나.
왜 하나도 좋아지지 않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무얼 하긴 했는데 그게 해주가 아니라 다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해주가 분명 보았다고 했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한 걸 왜 혼자만 봤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었다. 왜 너만 계속 다르게 듣느냐고, 괜한 일에 제발 걱정 좀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려고 애쓸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던 해주를 말릴 게 아니라, 뭐가 그렇게 너를 암담하게 만들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말해 보라고, 그게 뭐든 같이 견디자고. 아니면 그냥 옆에서 가만 듣다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내 말만 해버렸다는 생각에 외로워졌다. 그걸 해주 혼자 견뎠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이제 와서 나는 우리가 더 오래 같이 살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자주 상상한다. 그랬다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얻을 수 있는 것과 잃게 될 것 들을 구분하다가 결국에는 크게 싸웠을 거라고, 그런 날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다가 집히는 게 무엇이든 던지고 부수고 그랬을 거라고, 살면서 우리가 진짜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마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붙잡거나 매달리는 일 없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매정한 말로 상처를 줬을지 모른다. 가능한 최악의 경우로 흘러가다가 매일매일을 후회하고 지난날에 좋았던 것도 실은 하나도 좋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게 무엇이든 더 괜찮아 보였다. 아무리 나쁜 상상을 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말 같아서 나를 몹시 슬프게 만들었다.
그런 뒤에는 늘 미안한 것들만 남았다. 내가 하거나 하지 않았던 일들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혼자 좀 쉬고 오겠다는 해주를 말리지 않았던 거, 어디든 한적한 곳이 좋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되레 반색했던 거, 다음날 일찍 버스터미널까지 해주를 배웅했는데 예약도 없이 도착한 시간은 어중간했다. 그랬으므로 다음 배차 시간을 기다리며 뭐라도 먹거나 마시거나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급하게 남는 차편을 구해 해주를 태웠던 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런 풍경이 맑은 날보다 더 좋을 거라는 통화나 잠깐 했을 뿐, 무엇도 대비하지 못했던 것 등등.
사고가 있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였고 한가운데 전복된 차량이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짙었다고도 했다. 다중 추돌사고로 이어진 탓에 여러 명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했다. 뉴스 속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명단이 방송되었고 거기에는 해주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2
해주를 잃고 해주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납득하기 힘든데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관공서에 들러 신고서를 작성하고 통신사나 각종 계약 건들을 해약했다. 그때마다 사유를 물어서 그간의 정황을 설명하고 어색한 위로를 들어야 하고 다시 실무적인 절차와 과정을 숙지해야 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남들에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도 견디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종종 다리가 저려서 밤에 잠들기 어려웠는데 진찰 결과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면 좋다거나 우유나 멸치에 수면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누군가는 그것 말고 육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불면증이 심하다고만 했을 뿐인데 내 손을 붙잡고 햇빛을 자주 쐬고 특히 고기를 먹으라고,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잘 버텨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다 기어코 참지 못하고 은행에서 화를 내버렸다. 도장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고함을 질렀다. 다시 말해요? 그게 어디 있는지 진짜 모른다니까. 그것 모두 그 사람이 보관하고 관리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그런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고. 어디 있는지 나한테 말하지도 않고 갑자기 죽어버렸다니까. 그런데도 왜 나를 배려하지 않나. 나를 왜 좀 더 성의 있게 대하지 못하느냐고 창구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무릎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중년의 여자였고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껴안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내게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런 거 하지 마요.”
나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람 많은 데서 왜 자꾸 혼잣말해요. 무섭게 왜 그래요. 그러지 마요. 그런데 아까부터 뭐라는 거예요?”
여자의 물음에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말 하긴 했는지, 그게 어떤 종류였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여자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떤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것으로 지금의 내 상황이 얼마나 나빠져 버렸는지 등은 알 것 같았다. 여자는 잠깐 가방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읽어봐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 그것을 쥐고 있었다. 내려야 할 곳은 이미 지나친 뒤였으나 여자가 내린 뒤에도,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가 다시 자리가 비워진 뒤에도, 그것으로 정말 무언가 도움을 받겠다는 심정으로, 종교 단체에서 나눠주는 손바닥만 한 그 홍보 책자를 오래 붙잡고 놓지 못했다.
한동안 나는 해주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사고와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하고 혹시나 누락된 정황은 없는지 살피고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나.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럴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생겼다. 그런 일들은 너무 쉽게 일어나 버린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많은 일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상황은 자꾸 나쁘게 돌아가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떤 행동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없었다. 함부로 미안해하기도 어려웠다. 뭘? 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찾을 수 있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 가까웠고 책임질 만한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제목의 기사를 읽을 수는 있었다.
“참사를 피한 기적의 버스 운전사, 부당 해고당해.”
사고 당일 해당 노선을 운행 중이던 고속버스가 예정에 없이 경로를 벗어났다는 내용이었는데 열두 명의 승객이 탑승해 있었고 그 덕분에 모두 무사했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데도 사 측에서는 운전사에 대해 문책성 징계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규정 위반에 따른 절차라고는 하지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처분이라고 기사는 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승객의 인터뷰로 이어졌다.
“지나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우리더러 그냥 사고를 당하라는 말인가요? 사고를 피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요.”
좀처럼 나는 그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언지 모르게 화가 난 탓에 밤새 뒤척이기도 했다.
지나치다고?
너무하다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고, 집 안의 문 달린 것들은 모조리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찬물을 뒤집어썼는데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포털사이트에서 그 기사를 다시 검색하기도 했다. 1인 시위 중이라는 운전사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그 제목, ‘기적’이라는 그 단어 앞에서 시선이 또 한 번 멈춰버렸던 것이다. 기적? 기적이라니. 사고를 피하는 게 기적이라면 그렇지 않은 쪽은 무엇인가. 기적의 반대말이 뭐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그게 기적 아닌가? 그러면 뭐, 해주는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그게 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일이었다는 건가? 그냥 그럴 수 있는 사고였다는 거야, 뭐야.
전체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절대량 같은 게 있어서 그게 늘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확률상으로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데 다만 엄청나게 큰 분모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분자 값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항상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왜 하필 그게 해주였나.
나는 아무나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이래도 되는 거냐고 고함을 지르고 행패도 부리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그런데도 내가 지금 상식적으로 보이느냐고, 묻고 싶었다. 누가 더 몰상식한 거냐고. 엄연히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있는 사고인데도 기적 운운하는 당신들이 더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내가 이런다고.
버스 운전사의 사정에 대해서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그를 구명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그의 조카라는 사람이 올려 둔 게시글이 있었다.
“저희 삼촌이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점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해주와 무엇이 달라서 그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나. 그런데도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이, 회사 측의 주장과 다르게 ○○운수는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든지, 배차 시간이 빠듯해서 여타 다른 업체에 비해 근무여건이 좋지 않았다느니, 노사 간의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이전에도 사소한 결격을 핑계 삼아 직원들을 가차 없이 해고했다, 작성자의 삼촌도 유사한 케이스였는데 그래서 억울하다, 같은 호소로만 가득했다.
지하철역에서 10분가량 걸었을 뿐인데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많이 달랐다. 공터가 넓었고 대체로 낮고 노후한 건축물들뿐이었다. 운수회사까지는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그곳까지 가는 내내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만나서 무얼 해야 하나, 무얼 내가 할 수 있나, 소리를 지를까, 멱살은 잡아도 되는 건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거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하지? 나를 왜 화나게 하냐고? 아니면 왜 함부로 살아남았느냐고? 해야 할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차고지 앞에 이르렀을 때에야 입구에서 홀로 시위 중인 그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더 건장한 사내이기를 바랐다. 회사 로고가 박힌 낡은 외투가 아니라 보다 점잖은 차림이었다면 달랐을까.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 걸어올 때는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건네는 전단지를 뿌리치고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불편하게 이게 다 뭐 하는 짓이냐고 매몰차게 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의 왜소한 체구는 어딘가 절실해 보이는 데가 있었다. 원하지 않는데 저절로 두 손으로 받게 하고 고개가 숙여지고 고생이 많다고, 힘내라는 말도 함께 하게 만들었다. 남자가 필요 이상으로 내게 고마워했다.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가벼운 말에 기운을 얻은 것 같았다. 그게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제법 바람이 차갑긴 했으나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음료를 고르지 않았을 거고, 그걸 굳이 돌아가 남자에게 내밀지도 않았을 거고, 이것은 진짜 나의 호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을 들키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혹시 기사에서 봤던 그분이 아니냐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원래도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하려는 말이 많았다. 전단지에 적힌 것을 아주 외워버린 것처럼 고생한 것도 많고 억울한 것도 많고 그런 사람을 부당하게 해고했으니, 해야 할 말은 더더욱 많은데 좀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취재를 나온 기자가 몇 있긴 했으나 달라진 건 전혀 없다고도 했다.
“인터넷 매체라 구독률이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보도 경계석에 남자와 나란히 앉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주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나 역시 있는 줄도 몰랐을 낯선 명칭의 언론사였다. 더욱이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보았던 호소문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을 금세 정의롭게 만들었다가 비슷한 게시글에 묻혀 빠르게 잊힐 만한 사연이었다.
“대부분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남자의 옆모습을 힐끗 훔쳐보았다. 음료를 마시느라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게 내심 서운하다는 뜻인지, 그런 기사를 기억하고 있는 내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처럼 보인다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 지금 우리를 보면 해고를 당한 쪽이 나라고 잘못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진짜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어쩌다가 당신은 사고를 피하고 살아남았나. 그것은 줄곧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이었으나 의도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무심한 척 멀쩡한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는 회사 측의 부당함을 함께 지적하는 중에 지나듯 물었다. 옆 사람이 아니라 지나는 것도 별로 없는 빈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여전히 나를 보는 줄 알았는데 실은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다가 누군가 지나갔고 들고 있던 전단지를 서둘러 쥐여 주고 다시 돌아와서는 “선생님은 기적을 믿는 편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멈춰 있던 무언가가 다시 내 가슴을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빈 캔을 움켜쥐었다. 바닥에든, 남자에게든 그대로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내게는 남아 있었다. 대신 아니라고, 나는 보다 상식적인 쪽이라고만 대답했을 뿐이다.
3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꾸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 기가 막히게 신호에 한 번도 걸리지 않는다거나, 라디오에서 때마침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온다든가, 기다린 것도 아닌데 시계가 정확히 11시 11분을 가리키기도 하고 뭐 그런 거. 그럴 때 나는 기분이 이상합니다. 지금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거든요. 뭔지 모르게 벗어난 느낌이 듭니다.
버스라는 게 그렇습니다. 정해진 노선이 있고 그걸 따라야 하거든요. 우체국 지나서 시청, 은행 다음에 주공아파트, 그래야 하는 거거든요. 우체국에서 주공아파트로 가는 더 빠른 길을 내가 알고 있어도 그냥 돌아가야 합니다. 택시와 달리 손님이 어디에서 내릴지, 또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한번은 시내버스 모는 오경남이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센터를 통해 민원이 자주 들어왔는데 그 때문에 사내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는 조금도 없이 자꾸 정차해야 할 곳을 지나쳤습니다. 태워야 할 사람을 태우지 않는 게 무슨 대중교통이냐고 항의가 심했습니다. 내려야 할 곳에서 내려주지 않아서 중요한 시험을 놓칠 뻔했다는 수험생도 있었습니다. 시청에 정식으로 신고하겠다는 걸 적지 않은 위자료로 겨우 달랬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그 위자료의 금액만큼 감봉을 당했는데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던 그 오경남이가 나를 붙잡고 그래요. 귀에서 자꾸 뭐가 들린다고. 지난번에는 중학생들 서넛이 뒷자리에 앉아서 크게 노래를 불러 대서 혼을 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도로 그러기에 괘씸한 마음에 정류장도 아닌 곳에 버스를 세웠다고도 했습니다. 다른 손님은 더 없었으므로 그냥 참을 만도 했을 텐데 그게 너무 가깝게 들리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치 일부러 더 들으라는 듯이요.
“그런데, 형님. 내가 딱 이렇게 돌아보는데 말입니다. 뒤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전에 이미 다 내려버린 거지. 그럼 이건 다 뭔가 싶어서 순간 뒷골이 다 쭈뼛해집디다. 그런데도 노랫소리는 계속 들리고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그런 말을 하는 오경남이 나는 걱정되었습니다. 그랬으므로 그의 손을 붙잡고 나도 그렇다고 나도 요통이 심해서 밤새 종아리가 저릿저릿하다고, 인천 노선 장 씨가 전립선염으로 고생하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고, 다들 그렇다고 그런 거 한둘 앓지 않는 버스 기사가 어디 있느냐고, 달랬습니다. 그러고는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자꾸 그렇게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노조 쪽에서도 뭘 어떻게 도울 수가 없지 않느냐. 조심해야 할 것들, 그렇지 않을 경우 생기는 문제들, 그럼에도 괜찮아질 가능성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된다, 해고라는 게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잘해라, 더 잘해야 한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오경남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요, 내가 지금은 그걸 좋아하게 됐다는 겁니다. 계속 듣다 보니까 그게 또 나쁘지가 않아요. 집중하게 되고 더 듣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놓쳐요.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잖아요.”
오경남이 해고를 당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습니다. 정차지를 놓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태우지 못한 승객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뒤에 오는 버스가 있었고 그걸 타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선을 벗어났을 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내릴 사람도 없는 곳으로 오경남은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내부순환로를 타고 동부간선로 쪽으로,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는 유일한 시내버스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사람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되면 결국엔 경로를 벗어나 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이 자꾸 좋아진다, 라는 것은 누군가 나쁜 쪽을 떠안게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래는 공평하게 나눠서 나쁜 일을 상쇄시킬 수 있는 문제인데도 누군가 한쪽만 너무 갖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을 더 가지려고 하고, 웬일인지 신호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로 뒤따르는 누군가가 줄곧 신호에 걸리고 있다는 말인데,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급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으로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냥 좋은 일을 좋아하더라, 이 말입니다.
오경남이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 남은 사람들이 느낀 그 기분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회사에서 점진적인 인원 감축을 공표한 지 이틀 만에 오경남의 버스가 예정에도 없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묘한 안도감이 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게 왜 나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 덕분에 당분간 우리가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후, 오경남을 찾아간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만 그러나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 도울 게 있다면 돕겠다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요즘엔 말이오, 형님. 그게 더 선명하게 들려요. 그런데도 그걸 따라 부르기는 어렵단 말이지. 며칠 안 들려서 종일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하루는 심심하고 적적해서 그 노래라도 너무 듣고 싶은 거지. 혼자서 좀 불러 볼까,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 그게 뭐였나, 뭐였더라, 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들리는 겁니다. 들을 때는 이게 참 분명한데 나중에는 하나도 안 떠오르고 전에는 들리는 것만 해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듣기에 참 좋습디다.”
그러고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주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요, 형님.” 하고 나를 다독였습니다. 그 말이 나를 휘청거리게 했습니다. 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이나 듣자고 오경남을 찾아간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랬겠습니까.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살면서 그런 것을 필요로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알맞게 불행하고 적당하게 행운을 누리다가 누군가를 위해 휘청거려 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전해 주는 그런 거. 오경남의 해고로 내가 어떤 행운을 누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경남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였다는 것, 그것으로 무언가 내게 몰아주려 했다는 것,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받은 그 위로가 내게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낯설더라는 겁니다.
사고가 있던 그날은 오전부터 서해안 방면의 고속버스 운행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안개가 짙다는 예보를 듣긴 했으나 그런 날씨야 이미 흔했으므로 그렇게 큰 사고로 이어질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터미널을 막 빠져나왔을 때, 들리기 시작한 그것이 무슨 종류의 것인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다만 오디오의 볼륨을 키워 둔 건 줄로만 알고 서둘러 줄였는데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노랫소리 말입니다. 오경남이 들었다는 그것. 승객 중에 누가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괜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나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대부분은 잠들어 있을 뿐, 아니더라도 특별히 소란스러울 것 없이 조용했습니다. 그게 나를 몹시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무얼 듣는 거지? 지금 듣고 있는 게 다 뭐야? 라디오를 켜고 아무 채널이나 맞춘 뒤 볼륨을 키웠습니다. 그랬는데도 들리는 것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시끄럽게 무슨 짓이냐는 항의만 들었습니다.
“손님, 그런데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뭐가요? 무슨 소리요? 자는 사람 깨우지 말고 조용히 좀 갑시다.”
내게는 분명하게 들리는 이것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지 이후로는 아무도 깨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서웠습니다. 버스 안에 승객들과 함께 있는데도 어딘가 외따로이 나만 떨어져 있는 것만 같고 남들은 다 저기 있는데 나만 왜 여기 있나,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그래요, 어딘가 치우쳤다는 그 기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오경남이 그랬던 것처럼 이대로 경로를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함부로 사로잡히지 말고 안 들리는 척하자. 다른 것을 듣자. 휴게소에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커피를 두 잔 마시고 자양강장제도 마시고 세수를 했습니다. 특별히 귀도 꼼꼼히 씻고 이제는 들리지 않는지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만 나아진 게 전혀 없었습니다. 몸 어딘가에서 울려오듯 귀를 막아도 들렸습니다. 어딜 가든 나와 함께 그것이 따라다녔습니다.
운전대를 다시 잡기가 나는 겁이 났습니다. 이대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어떡하나. 목적지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을 상상하니 아찔했습니다. 대신 보이는 것을 더욱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전면을 주시하고 이정표를 확인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들리는 것은 애써 외면한 채 보이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누가 나를 부르는 것도 모르고 저기요, 기사님, 하는데도 가야 할 방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내 어깨를 두드렸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부르는데 왜 대답을 안 해요. 여기 한 명 덜 탔다니까요.”
상황은 자꾸 나쁘게만 흘러갔습니다. 다른 것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승차 인원을 점검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어쩌면 더러 있을 만한 사소한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실수조차 얼마든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분기점으로 빠져나가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챙기지 못한 승객을 서둘러 태우고 사과를 하고 원한다면 적당한 위로금을 주며 무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갖가지 대책을 세우며 나는 급하게 휴게소로 차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두고 온 승객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경내 방송이 이어졌으나 누구 하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잠깐 자리를 비웠던 관계자가 돌아와 좀 전에 어떤 여자 분이 찾아왔었다고, 타고 온 버스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더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뒤따라오던 다른 버스에 다행히 자리가 남아서 그걸 태워 보냈어요.”
다행이라니. 누구에게 다행이라는 뜻이었을까요. 분명 가장 나쁘게 된 건 내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들리던 것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어지러운 것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목적지까지 승객을 태워 간 다른 수단이 있었으니까요. 필요하다면 왜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느냐며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왜 이렇게 오래 버스를 지체시키느냐고 항의를 받는다면, 양해를 구할 것이고 지금까지의 정황을 설명할 생각이었습니다. 괜한 한 사람 때문에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죄송하다고요. 그러나 아무도 그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버스로 돌아왔을 때, 상기된 목소리의 승객이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저기요, 어서 뉴스 좀 틀어 봐요.”
버스에 다시 시동을 걸고 비치된 텔레비전의 채널을 조절하는 동안에도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항공 촬영된 도로의 사정은 엉망이었습니다. 여전히 다 걷히지 못한 안개 때문에 구조작업이 더뎌지고 있다는 앵커의 설명에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줄 전혀 몰랐던 겁니다. 전복된 버스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 차량들이 많았고 예정대로였다면 우리도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누군가 조용히 전화기에 대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야, 아빠. 괜찮아. 울지 마. 난 괜찮다니까. 지금 그거 나 아니라니까.”
그런 말로 상대방을 안심시켰습니다.
버스 안은 적막했습니다. 통화하는 소리, 설명하고 달래고 안심시키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무척 고요해졌습니다. 가만히 자기 자리에 앉아 뜻밖의 행운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듯했습니다. 너무 무거운 정적 탓에 나는 차라리 그 노랫소리가 다시 들리길 바랄 정도였습니다. 무언가 다른 데 정신을 쏟을 만한 게 필요할 만큼 그 승객의 안부만 걱정되었습니다. 앞서간 그 버스는 어떻게 된 걸까.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괜찮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데도 자꾸 그렇게만 믿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여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 덕분이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누린 그 다행스러운 순간을요, 함부로 무엇이라고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혹시라도 그 사고로 나쁜 일을 당했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르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놀라운 일이라고만 믿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 버렸다고.
4
만약 쥐고 있던 것이 빈 캔이 아니라 빈 병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처럼 잔뜩 구겨버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쥔 것을 더 세게 쥐려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진짜 해주였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남자가 태우지 못한 그 유일한 승객이 해주였고, 거기에 대해 남자가 책임질 만한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아직은 알 수 없고 앞으로 내가 알아 가야 할 문제였다. 다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사고를 피한 그 버스 안에 해주가 없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해주는 왜 아니었나.
남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미안해했다. 해주도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그걸 묻지 않았거든요. 그때 왜 그랬냐고, 왜 왔던 길을 되돌아갔느냐고 묻지 않고 다행이라고만 했습니다. 대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고, 무언가 들리는 것이 있어서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했다는 말만 하는데도 사람들이 그걸 다 알아들어요. 그냥 안다고, 그럴 때가 있다고, 어떤 큰 힘이 기적처럼 도울 때가 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무얼 더 설명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개는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라면 비난당할 게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그게 무서워서 나는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의 사정에 대해서라면 그냥 괜찮을 거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그게 궁금한 거잖아요. 내 말이 듣고 싶은 거잖습니까. 왜요? 그게 왜 궁금해요? 무슨 말이 듣고 싶은데요? 그러면 그 여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 선생님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정말 몰랐거든요. 일이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달랐을까요? 내가요, 지금 하는 일이 어떻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다 알면서도 그 사고지점을 향해, 정해진 노선대로 그냥 운행해야 하는 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나는 다 미안해지더란 말입니다.”
울먹이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는 대신 나는 그와 마주 앉았다. 마주 앉아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런다고 내가 더 괜찮아지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여전히 해주는 보고 싶고, 그립고 아픈 것들은 조금도 줄지 않았으나 그때는 그런 것들이 몹시 필요해 보였다.
해주를 떠올리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또 무엇이었나, 후회하게 된다. 왜 그러지 못했나. 한번은 새벽에 내 머리를 자꾸 쓰다듬어서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뒤통수가 납작해서 만지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해주가 그랬는데 이렇게까지 반듯한 걸 왜 여태 말해 주지 않았느냐며 신기해했다. 별것 아닌 걸로 또 유난이라고 핀잔했으나 그때는 그냥 가만 내버려두었다. 내 손을 끌어간 해주가 자기 뒷머리를 쓰다듬게 해서 정말 나랑 다르네, 대꾸만 하고 어느 순간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그랬다가도 또 얼마 안 있어 옆에서 자꾸 건드리는 바람에 도로 깨기를 반복했으나 천장을 보며 바로 눕지 않고 엎드린 채 더 많은 뒤통수를 내어 주었다. 누가 나를 만지는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해주가 혼자서 좀 쉬고 오겠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런 기분은 여전했다. 그랬으므로 거길 왜 가려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냐고, 누가 거기 있는 거냐고, 무얼 준비하는 사람처럼 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가 대체 다 뭐냐고. 그런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해주의 장례식 내내 모르는 남자가 나타나 나보다 더 슬퍼할 것이 두려웠다. 그러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손을 붙잡았고, 등을 두드려 주고 함께 울고 그랬으나 이런 의심들에 대해서라면 함부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더 많은 위로를 들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더 이해하려 들었을 테고, 그것으로 우리를, 해주와 나를 더 안타깝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문장웹진 2017년 03월호》
추천 콘텐츠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 관리자
- 2025-06-01
바람 부는 날 정기현 단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펜스와 인접한 아파트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단지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의 수심이 깊어져 모든 것이 감추어졌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긴긴 태양 볕 아래 그 흉물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여름과는 달리, 겨울의 단지는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였다. 이야기를 가득 품은 고성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 앞,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라는 별칭이 붙은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과 건설사 간 충돌로 공사가 중단되어 짓다 만 아파트 건물들이 2년 동안 그대로였다. 1만 5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착공에 들어갔던 대규모 단지는 2차선 통행로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 겨울부터였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려면 펜스가 세워지기 전보다 30분씩은 더 둘러 걸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정류장까지 걸을 때면 아파트 중앙 통행로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솔바람, 산들바람 아니고 토네이도에 가까운 세기였다. 물론 토네이도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 하나는 거뜬히 날려 버릴 듯 기세 좋은 바람이었다. 단지 바깥은 바람 한 점 없이 잠잠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람길을 잘못 낸 시공 탓에 불어 대는 건물풍일 터였다. 거센 바람에 펜스가 흔들리며 콰챵- 하는 소리를 낼 때면 살을 에는 새벽녘 추위도 어쩐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 굳게 잠긴 펜스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물쇠를 열고 단지 가운데 통행로로 다닐 수 있다면 그 끝의 버스 정류장에 금세 도달할 텐데. 아침마다 30분씩은 더 자고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바람쯤이야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한파 특보 경보 문자가 알람보다도 일찍 울려 잠을 깨웠던 날, 나는 빌라 현관을 벗어나 오른쪽 인도로 걷는 대신 길 건너 펜스 쪽으로 향했다. 펜스 출입구에는 주먹만 한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자물쇠를 세게 두 번 당겨 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자물쇠가 훌렁 풀려 버렸다. 펜스 안쪽으로 손을 쏙 넣어 자물쇠가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소리로만 접하던 바람의 길. 이용자가 나 혼자뿐이라 길은 실제 너비보다도 광활해 보였다. 건축 자재들, 내부 설비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고목처럼 주차되어 있는 승합차도 몇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도 단지로의 진입을 막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길과 나뿐인 세계에 진입한 것만 같았다. 통행로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었다. 바람은 듣던 대로 거세었다. 나는 두 손으로 외투를 꼭 여민 채 거센 바람에 맞서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아 한 발이 떨어지면 다른 한 발은 땅에 꼭 붙어 있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했다. 고갯길의 고
- 관리자
- 2025-06-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