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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 작성일 2022-12-01

[단편소설]



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김완준





1.



호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호주 대륙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바위산, 단일 바위로는 세계에서 가장 커서 ‘지구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율라라에 간 적이 있다. 현지인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율라라를 등반한 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눈길이 닿는 모든 공간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하늘바다에 뿌려진 그 별의 꽃밭을 바라보고 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호주에서 돌아온 뒤 어떤 모임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교수를 만나 율라라에서 별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얘기했더니 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의 말에 살짝 놀랐다. 인간의 유전자에도 기억이 있다고?
“생명의 조상은 우주로부터 왔어요. 하늘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고향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 때문이지요. 생명은 바다에서 진화했다는 설도 있어요. 인간은 태어나기 전 10개월 동안 양수 속에서 살잖아요. 그런 경험 때문에 바다를 보면 역시 기분이 편안해지죠. 우리 머릿속에는 수억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생명의 근원에 대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어요. 그 기억의 유전자 때문에 인간은 하늘을 그리워하고 바다를 동경하는 거예요.”
그때부터일 것이다. 내가 섬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내 기억의 유전자에 각인된 생명의 고향, 바다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 나를 섬으로 이끌었다.


2.



나는 지금 보라카이에 석 달째 머물고 있다. 보라카이는 필리핀에 있는 7,000개의 섬 중 하나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을 날아가면 타블라스 섬과 파나이 섬 사이에 보라카이가 있다. 남북으로 9킬로미터 동서로 1킬로미터 정도 되는 보라카이는 파라다이스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섬이다. 은백색의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 그 해변에서 저 멀리까지 완만하게 이어진 수심. 깊은 곳까지 훤히 비치는 맑고 투명한 바다. 그 속에 사는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다양한 열대어들.
내가 보라카이를 처음 방문한 건 10년 전이다. 10년 전 보라카이에는 지금보다 깨끗한 바다와 순박한 섬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보라카이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매일 바다로 갔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씩 한 달 동안 백 번 가까이 바다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바다는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늘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아침에는 찬란한 미소로, 낮에는 불꽃처럼 뜨거운 눈길로, 저녁에는 부드러운 손길로.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30분 정도 헤엄쳐 가면 물속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산호초가 무성했고 열대어들이 숨바꼭질을 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전복도 발견했다. 전복을 캐는 날이면 단골 식당 상하이로 가서 서빙을 하는 주인의 조카에게 구워 달라고 했다. 주말이면 술루 바에서 밤늦게까지 춤을 춘다던 그 여자애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보라카이는 변해 있었다. 예전의 원시적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관광객이 북적이는 유흥지가 되어버렸다. 보라카이는 더 이상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쨌든 나는 계획한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소설을 마무리하면 된다.
오늘 계획했던 분량의 집필을 마쳤으니 이제 산책을 할 참이다. 내가 묵고 있는 보트 스테이션 쓰리 부근의 숙소에서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 해변도로를 왕복하는 게 나의 산책 코스다.
보라카이의 메인 해변인 화이트 샌드 비치에는 세 개의 선착장이 있다. 메인 랜드인 카티클란과 가까운 순서대로 보트 스테이션 쓰리, 보트 스테이션 투, 보트 스테이션 원이다. 이 선착장들은 술루 해와 맞닿은 서쪽 해변에 있다. 수부얀 해와 맞닿아 있는 동쪽 해변은 파도가 거칠어서 윈드서핑 하기는 좋지만 배를 대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카티클란에서 보라카이로 오는 모든 배는 이 세 개의 선착장에 차례로 닿는다. 보라카이에서 나갈 때는 올 때와 역순으로 세 개의 선착장을 거친다. 보트 스테이션 주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소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보트 스테이션 쓰리, 보트스테이션 투, 보트 스테이션 원의 순으로 숙소 가격대가 높아진다. 나 같은 장기 투숙객이나 배낭여행자들은 저렴한 숙소가 모여 있는 보트 스테이션 쓰리 주변에 주로 묵는다.
서쪽을 향해 있는 화이트 샌드 비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비치로드는 보라카이 섬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뻗어 있다. 비치로드를 사이에 두고 화이트 샌드 비치 맞은편에는 숙소, 레스토랑, 여행사, 다이빙 숍, 카페, 바,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비치로드에서 해변 반대편, 동쪽으로 100미터 정도 가면 메인로드가 나온다. 메인로드 너머에는 현지인들이 사는 집과 논과 밭과 돼지나 닭을 키우는 작은 농장 따위가 있다. 비치로드 주변이 관광객을 위한 동네라면 메인로드 주변은 현지인을 위한 동네인 셈이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방을 나섰다. 숙소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베베스가 눈인사를 했다. 베베스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지배인이다. 이 숙소는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인데 1층에 열 개, 2층에 여덟 개의 방이 있다. 방 안에는 욕실 겸 화장실이 있고 천장에서는 실링팬이 돌아가는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다. 보라카이의 한낮 더위는 실링팬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지만, 에어컨 룸은 장기 투숙객에겐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베베스는 화이트 샌드 비치를 따라 늘어선 여러 개의 바 중 한 곳에서 일했다. 10년 전 보라카이에 처음 왔을 때 그녀가 일하는 바에 간 적이 있다. 그녀에게 맥주를 주문했으며 그녀를 위해 칵테일도 한잔 시켜 줬다. 그때 그녀는 작은 야자열매를 닮은 얼굴에 술루 해의 물결처럼 반짝이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어제 히틀러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그중 네 마리는 죽고 세 마리만 살아남았어.”
베베스가 간밤에 보라카이에서 일어난 뉴스를 말해 주었다. 며칠 전부터 히틀러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을까 하는 게 보라카이 토박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히틀러는 클라우스라는 독일인이 기르는 셰퍼드다. 클라우스는 화이트 샌드 비치에서 다이빙 숍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남자다. 그가 왜 자신의 개 이름을 히틀러로 지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베베스에게 엄지 척을 해준 다음 숙소를 나섰다. 싸구려 숙소가 몰려 있는 골목을 나서자 비치로드가 나타났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치로드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끝까지 거침없이 뻗어 있는 바다는 수면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머금은 채 수만 개의 비늘을 번득이며 뒤척이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비치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100미터쯤 걸어가면 보트 스테이션 쓰리가 있다. 그곳에는 늘 여러 명의 사내가 모여 있다. 그중에는 보트 맨도 있고, 영어가 서툰 보트 맨을 관광객과 연결시켜 주는 삐끼도 있고, 차량 통행이 금지된 비치로드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씨클로 운전사도 있다. 그들은 각자의 고객들을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노름을 했다.
보트 스테이션 쓰리를 지나치는 나를 향해 그곳에 모여 있던 사내 몇이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 사내들 속에 벤슨은 보이지 않았다. 벤슨은 보트 맨과 손님을 연결해 주는 삐끼다. 마닐라에서 20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하다가 지옥 같은 도시를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보라카이에 정착했단다. 이제 막 오십대로 접어든 벤슨은 언제나 묵은 때로 반들거리는 빨간색 야구모자와 목이 늘어진 티셔츠 차림에 맨발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 보라카이에 처음 왔을 때 그를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낚시를 하고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벤슨의 소개로 배를 빌렸다. 벤슨도 나와 함께 바다로 가서 수영을 하다 뱃전으로 올라오는 내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워 주기도 하고,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며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보트 스테이션 쓰리를 지나 술루 바 앞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Water World’라는 다이빙 숍에서 일하는 엘라였다. 워터 월드의 주인은 미스터 리라고 불리는 40대 중반의 한국 남자다. 보라카이에는 다이빙 숍이나 여행사나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이 몇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미스터 김이나 미스터 리나 미스터 박으로 불렸다. 업소 사장이 여자인 경우에는 나이나 결혼 유무에 상관없이 미스 김, 미스 리, 미스 박으로 통했다. 같은 한국인끼리는 김 사장, 이 사장, 박 사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에게 붙여진 김, 이, 박이 실제 성씨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자신이 일하는 다이빙 숍의 사장이 한국인이고 워터 월드를 이용하는 대다수의 손님이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엘라는 간단한 한국어를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나는 워터 월드를 이용한 적이 없다. 엘라하고 정식으로 안면을 트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그저 산책을 하면서 워터 월드 앞을 지나다녔고 워터 월드 앞에 나와 있던 엘라와 눈이 몇 번 마주쳤고 그때마다 가벼운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엘라는 내가 워터 월드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미스터 김!”
워터 월드 앞을 지나 낮술 마시기 좋은 니기니기누누스를 향해 가는데 해변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며 뛰어왔다. 벤슨이었다. 왕년의 영화배우 김희갑과 비슷하게 생긴 이 필리핀 사내는 오늘도 때에 절어 반들거리는 빨간색 야구모자와 목이 헐렁한 티셔츠 차림에 여전히 신발은 신지 않은 상태였다.
“산책 가는 길인가?”
벤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오래 땡볕 아래를 돌아다녀야 저렇게 진한 초콜릿색 얼굴이 될까. 보라카이의 햇살은 살인적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10분 만에 등을 홀랑 태워 먹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이나 누워서 자지 못하고 엎드려서 자야 했다.
“Everything OK?”
나의 물음에 벤슨은 잠시 먼 바다를 바라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히틀러가 말이야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그중 네 마리는 죽었고 세 마리만 살아남았지 뭔가. 어젯밤에 술루 바에서 또 싸움이 벌어졌는데…….”
보라카이는 좁다. 별다른 사건도 없다. 그러다 보니 뉘 집 개가 새끼를 낳았고 간밤에 어느 술집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건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점심때쯤이면 북쪽 끝 야팍에서 남쪽 끝 마녹마녹까지 히틀러가 낳은 새끼와 술루 바에서 일어난 싸움 얘기가 쫙 퍼져 있을 것이다.
“오늘은 보트 트립 안 가는가?”
“글쎄…….”
“가게 되면 나를 찾게. 보트 스테이션 쓰리 근처에 있을 테니.”
“Of course!”
벤슨에게 엄지 척을 해보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보트 스테이션 투가 보였다. 보트 스테이션 투부터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는 보라카이의 번화가다. 에어컨 룸에 수영장에 조식 뷔페를 제공하는 고급 호텔과 그 호텔의 투숙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레스토랑, 바, 스파, 기념품 상점들이 몰려 있다. 보트 스테이션 원을 지나면 최고급 호텔이 몇 있는데 그 앞 해변은 투숙객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만 갈 것이다.
보트 스테이션 쓰리 부근의 숙소에서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는 내 걸음으로 한 시간쯤 걸린다. 손목시계는 오후 네 시가 막 지나고 있다.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면 다섯 시가 조금 못 될 것이다. 그럼 샤워를 하고 니기니기누누스에 가서 모히토 한잔을 마시며 선셋을 감상하면 딱 맞겠다. 선셋을 감상하다 그럴듯한 문장이 떠오르면 숙소로 돌아와 소설을 조금 더 쓰고,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시원한 맥주를 두어 병 마시리라.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한번 닦아내며 보트 스테이션 투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3.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로비 한쪽의 탁자에서 베베스와 말린과 바나데스와 멜로디가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굿 애프터눈 미스터 김.”
말린이 인사를 건넸다. 비치로드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오토바이 대여업을 하는 남편과 두 명의 자식을 건사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늘 한 옥타브 높았다.
“같이할래요?”
좋은 패를 들었는지 손에 쥔 카드에 눈길을 고정시킨 채 바나데스가 말했다. 내 짐작으로는 서른 중반은 되어 보이는데 아직 이십대라고 우기는 그녀는 말린네 집에 세 들어 산다. 말린네 집에는 모두 다섯 개의 방이 있다. 1층에는 세 개의 방과 주방이, 2층에는 두 개의 방과 거실이 있다. 취사는 1층에 있는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방마다 있다. 말린네는 1층의 큰 방에 네 식구가 모여 살고, 나머지 방들은 세를 놓았다. 말린네 집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2층 방에 혼자 살고 있는 바나데스는 보트 스테이션 쓰리와 보트 스테이션 투 사이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열 시까지 일한다. 출근할 때마다 화장을 짙게 하는 그녀는 유러피안 홀아비를 만나면 이 섬을 떠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늘도 바 호핑 갈래요?”
역시 말린네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멜로디가 윙크를 하며 물었다. 소녀티를 갓 벗은 스무 살의 멜로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치로드의 바에서 일했다. 아직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그녀는 밤마다 진한 화장과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외출을 한다. 밤 외출에 나선 그녀는 보트 스테이션 쓰리와 보트 스테이션 투 사이에 있는 바라쿠다와 섬머 플레이스를 차례로 거친다. 그곳에서 칵테일이나 산 미구엘 맥주를 한 병쯤 마시고 보트 스테이션 투 근처의 바줄라로 간다. 그 무렵이면 밤 열 시를 넘어선다. 바줄라에서 다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며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보트 스테이션 투와 보트 스테이션 원 사이의 코코 망가스로 간다. 코코 망가스는 fifteen shoot로 유명한 칵테일 바다. fifteen shoot는 스트레이트 잔에 담긴 열다섯 가지의 술이다. 이걸 15초 안에 모두 마시면 코코 망가스 벽에 국적과 이름이 새겨진다. 10년 전 처음 그 바에 갔을 때 나도 fifteen shoot에 도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동판에 새겨진 이름이 100여 개가 넘는 걸 보곤 포기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일이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자정이 지나면 멜로디는 코코 망가스를 나와 건너편에 있는 비치 콤보로 간다. 거기서도 오늘 밤을 함께할 보이 프렌드를 구하지 못하면 새벽 한 시쯤 보트 스테이션 쓰리 근처의 술루 바로 간다. 밤 아홉 시에 문을 여는 술루 바는 자정까지는 가라오케였다가 자정 이후에는 클럽으로 변신한다.
내가 어떻게 멜로디의 동선을 자세히 아느냐고? 며칠 전에도 멜로디가 나에게 “바 호핑 가실래요?”라고 물었다. 배를 타고 이 섬 저 섬 돌아다니는 아일랜드 호핑은 해본 적 있지만 바 호핑은 뭔지 몰랐던 나는 그날 저녁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러곤 보트 스테이션 쓰리부터 보트 스테이션 원까지 바와 클럽을 순례하는 바 호핑을 했다. 마지막에는 술루 바에서 춤까지 한바탕 추고 난 뒤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오는 바람에 꼬박 열두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멜로디는 자신보다 두 살 많은 델로즈와 함께 말린네 1층 방에서 살고 있다. 멜로디는 델로즈를 언니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친언니 같지는 않았다. 둘은 늘 붙어 다녔다. 밤에 바 호핑을 갈 때도 늘 함께였다. 이제 막 나쁜 길로 빠져든 어설픈 불량소녀처럼 생긴 멜로디와 델로즈는 밤마다 바와 클럽을 순례하며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춤추고 떠들어대는 걸 즐겼다. 멜로디는 외국인이든 필리핀인이든 국적에 상관없이 어울렸다. 단, 상대가 잘생기고 나이가 많지 않아야 했다. 델로즈는 필리핀 남자와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인이나 일본인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고 서양 남자와만 어울렸다. 그것도 족히 마흔 살은 넘어 보이는 배불뚝이 아저씨하고. 그런데 카드게임 판에 델로즈가 보이지 않는다. 숙취로 아직 침대에 뻗어 있는 걸까. 아니면 어젯밤에 사귄 보이프렌드가 묵고 있는 고급 호텔에 놀러간 걸까.
베베스와 말린과 바나데스와 멜로디와 델로즈는 죽이 잘 맞는 카드게임 멤버들이다. 그들은 바나데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오후 세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카드게임을 하며 간밤에 보라카이에서 발생한 뉴스를 화제 삼아 수다를 떨곤 했다.
“굿 럭!”
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에게 엄지 척을 해보이곤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이 숙소의 1층에는 단기 투숙객이, 2층에는 나처럼 장기 투숙객이 주로 묵는다. 숙박비는 하루 1,000페소, 한화로 2만 5천 원쯤 하는데 1주 이상이면 하루 800페소, 한 달이면 하루 500페소까지 내려간다. 2층에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방이 네 개씩 있는데 내 방은 복도 맨 끝이다. 내 옆방은 비어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 방에는 알렉이라는 스웨덴 청년이 묵었다. 알렉은 세계 일주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이집트의 다합과 태국의 꼬따오와 인도네시아의 길리를 거쳐 보라카이에 왔다고 했다. 그는 보라카이에 일주일쯤 머물다 팔라완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보라카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3주나 더 있었다.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 알렉은 아침마다 클라우스가 운영하는 다이빙 숍으로 갔다. 그곳에서 노닥거리다 혼자 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약간의 사례비를 받고 보조강사를 했다.
알렉은 가끔 여자를 데리고 왔다. 다이빙을 하다 눈이 맞은 사이인 것 같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도록 그의 방에서 들려오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알렉을 떠올리자 문득 한 여자가 생각났다. 10년 전 보라카이에 처음 왔을 때 올가라는 이름의 필리핀 여자를 만났다.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던 올가는 이미 여섯 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10년 전, 나는 서울을 떠나 태국으로 갔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일주일 정도 머문 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꼬파얌 무꼬쑤린 씨밀란 카오락 푸켓 피피 크라비 꼬란타 꼬잠 꼬묵 꼬리뻬를 거쳐 말레이시아의 랑카위 페낭 팡코르 카메론하이랜드 쿠알라룸푸르 말라카 타만네가라 싱가포르까지 여행했다. 6개월 동안 태국과 말레이시아 서부 해안의 섬과 해변을 주유한 나는 인도네시아로 건너가서 발리와 롬복과 코모도를 여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숨 가쁘게 말레이 반도를 종단한 탓에 체력이 바닥나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여행을 계속하기로 하고 보라카이로 갔다. 태국의 어느 섬에서 만난 한 여행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셋을 보려면 보라카이로 가라.”고 했다. 그 말에 홀려 보라카이를 찾은 나는 낮에는 해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다시 책을 읽다가 낮잠도 자고 저녁에는 비치로드의 바에서 산 미구엘 맥주를 홀짝이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스트 두 조각과 달걀요리와 오렌지 주스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 다음 해변으로 가려고 선글라스와 돗자리와 선블록 로션과 책 한 권을 넣은 방수 백을 들고 나서다가 숙소 앞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필리핀 토속어인 타갈로그어로 떠들면서 놀고 있었는데 그중 한 여자 아이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하얀 피부에 금발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그 아이는 겉모습은 완벽하게 백인인데 다른 필리핀 아이들과 타갈로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어른이든 아이든 백인이 타갈로그어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아이에게 “굿모닝.”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잠시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안해진 나는 조용히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서 한참 빈둥거리다 낮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아이를 보았다. 해변에서 숙소로 가는 골목에는 현지인들이 사는 방갈로 형태의 가옥이 몇 채 있는데, 그중 한 집 발코니에 그 아이가 젊은 필리핀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이는 여자를 향해 뭐라고 칭얼거렸고 여자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흘깃 봤지만 여자와 아이가 모녀 사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곁눈질을 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잠시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이내 품에 안긴 아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당시 내가 묵고 있던 숙소는 50대 중반의 미국인 사내 린과, 필리피노 어머니와 스페니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30대 초반의 청년 헤르만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마닐라 근교에도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가지고 있는 린은 1년의 절반은 필리핀에서 살고 절반은 미국의 고향에서 산다고 했고, 헤르만이 보라카이에 상주하면서 숙소의 실질적 경영을 맡는다고 했다. 비슷한 또래인 헤르만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린이 마닐라에 가고 없을 때는 아침식사도 함께하고 저녁에는 맥주도 같이 마셨다.
“오늘 이상한 아이를 봤어.”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헤르만에게 말을 걸었다.
“찰리 말이야?”
“찰리?”
“백인인데 타갈로그어를 유창하게 하는 여자 아이. 이 골목에서 이상한 아이라면 그 아이밖에 없지. 외모는 백인인데 잉글리시는 한 마디도 못 하고 타갈로그어만 할 줄 아니까.”
“어쩌다 그렇게 됐어?”
“엄마가 영국에서 온 남자랑 원 나이트 스탠드를 했는데 임신이 됐대.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애 아빠는 휴가가 끝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였고.”
“애 아빠에게 연락 안 했대?”
“그 남자 이름이 뭔지도 모를걸?”
그런 사연을 듣고 나자 그 아이가 가여워졌다. 백인이면서 영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신세.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존재.
그 뒤로 그 아이 찰리를 보면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한번은 해변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챙겨 둔 감자 칩 한 봉지를 건넸다. 그러자 찰리는 반색을 하며 받아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콜라나 망고, 초콜릿 같은 걸 준비했다가 찰리를 만나면 건넸다. 그때마다 찰리는 내가 내민 선물을 반갑게 받아들고 집으로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찰리네 집 앞을 지나는데 발코니에 찰리 엄마가 나와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채 지나가는데 그녀가 나를 불렀다.
“미스터 김.”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며칠 뒤, 용기를 내서 자기 집 베란다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저녁식사를 같이하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몇 초 동안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오케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제일 비싼 티셔츠를 입고 겨드랑이에 향수도 뿌리고 그녀 집으로 갔다. 그녀는 검은색 원피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검은색 옷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 마리 블랙 스완이었다.
그날 그녀와 함께 보라카이에서 가장 비싼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에서 모히토를 마셨다. 그녀는 보라카이 토박이였다. 보라카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보라카이에서만 살았다고 했다.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부모는 그녀가 중학생 때 태풍을 만나 실종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혼자 힘으로 살아야 했다.
자정 무렵 우리는 비치 콤보로 자리를 옮겼다. 보트 스테이션 원 끄트머리에 있는 비치 콤보는 야자수에 조명이 얼기설기 매달려 있는 노천 바인데, 밤이면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이 잔뜩 몰려와서 새벽까지 파티를 즐겼다.
저녁을 먹고 모히토를 마신 올가와 나는 비치 콤보에서 맥주를 몇 병 더 마시고 나자 어느덧 서로의 볼을 가볍게 터치하는 정도의 스킨십을 나누게 되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춤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되었다.
“그만 가요.”
올가는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어들고 해변으로 내려섰다. 나도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발가락 사이로 밀려드는 모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수만 개의 별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해변은 어둠의 뼈처럼 하얗게 뻗어 있었다. 올가는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쫓아갔다. 내가 나란히 걷기 시작하자 그녀가 물었다.
“나 좋아해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 속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오늘 나랑 자고 싶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도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나랑 자려면 좀 비싼데…… 괜찮겠어요?”


4.



올가와 데이트를 한 다음날, 나는 보라카이를 떠나 인도네시아 발리로 갔다. 발리에서 롬복을 거쳐 코모도로 갈 계획이었다. 꾸따 해변에 머물며 롬복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던 나는 신체의 은밀한 부분에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갔다가 성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오늘 나랑 자고 싶어요? 나랑 자려면 좀 비싼데…… 괜찮겠어요?”
보라카이에서 올가와 데이트를 하던 날, 비치 콤보에서 해변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올가는 그렇게 물었다.
“얼만데?”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고 올가는 액수를 말했다. 우리는 함께 내 방으로 갔다. 동이 틀 무렵 올가는 내 방에서 나갔고 나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보라카이를 떠났다. 보트 스테이션 쓰리에서 배를 타고 카티클란으로 가서 마닐라행 비행기를 탔다. 마닐라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로 발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보라카이를 떠났다.
나는 올가와 저녁을 먹고 칵테일을 몇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다음 “Sleep well.”이라고 밤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운이 좋으면 볼 키스쯤은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식으로 그녀와 몇 번 더 데이트를 하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 찰리와 셋이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겠지. 그런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랑 자려면 좀 비싼데.”라는 말을 듣고 나자, 그녀에게 나는 하룻밤 잠자리와 생활비를 교환하는 고객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참담한 기분에 빠진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찰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원하는 액수의 돈을 줄 테니 나하고 자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면서 화를 냈다. 할 수 없이 그녀와 함께 내 방으로 와서 섹스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모든 게 싫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이 싫고 숙소 정원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싫고 내 곁에 누워 있는 여자가 싫고 무엇보다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보라카이를 떠나 발리로 왔다. 그리고 올가가 내 몸에 옮겨 놓은 병을 발견한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했지만 치료가 우선이었다. 발리의 병원에서 치료받기는 싫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외국에서 성병이나 걸려서 온 놈 취급받을 게 싫었다. 나는 호주로 가기로 했다.
호주 대륙 북쪽 끝에 있는 다윈은 발리에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다윈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하는 한편 호주 여행 정보를 수집했고 병이 완치되자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다윈에서 동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카카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국립공원으로 원시 상태의 숲과 습지와 계곡과 강에 수많은 야생 동물이 자유롭게 뛰노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야생 상태의 동물들을 보았다. 그들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체모에는 윤기가 흘렀고 평원을 응시하는 눈빛은 날카로웠으며, 초원을 질주하는 몸에서는 탄력이 넘쳤다. 카카두의 동물들을 보면서 나는 원시 상태의 생명체가 얼마나 늠름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다음 행선지는 율라라였다. 사암(砂巖)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율라라는 원래는 산맥이었는데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일부만 섬처럼 남겨졌다. 율라라의 표면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나는 율라라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하루는 단체 투어로 율라라를 등반했고, 하루는 혼자 율라라 주변을 산책했다. 율라라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는지 지켜보았고 4만 년 전부터 호주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이 남긴 벽화도 보았다. 마지막 날 저녁, 악어 스테이크를 먹고 숙소 근처를 산책하다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는 평상을 발견했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평상 한복판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맙소사! 무수한 별들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뜨자 상하좌우 시선이 닿는 끝에서 끝까지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별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별들이 나를 하늘로 빨아올리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몸 전체가 하늘로 스르르 빨려 올라가 별과 별 사이를 유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밤늦게까지 평상에 누워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았다.
율라라 여행을 마치고 골드코스트로 갔다. 호주 동부의 해안 도시 골드코스트에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라는 해변이 있다. 곧게 뻗은 해변이 5킬로미터나 이어지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는 파도타기의 명소지만 나는 파도타기 대신 체험 다이빙을 했다.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중이라는 영국인 부부가 다이빙 가이드였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그날 오전 세 시간 동안 다이빙을 한 뒤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무려 서른 시간이나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박 2일 동안 자다가 깨어나 보니 핸드폰에는 한국에서 온 문자가 여럿 찍혀 있었다. 절친의 부고였다.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밤 버스를 타고 시드니로 가서 이튿날 오전 비행기를 타면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드코스트에서 밤 버스를 타고 시드니로 향하는 열 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시드니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친구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이제 서른다섯밖에 되지 않았는데 세상을 뜨다니. 운명의 신이 있다면 친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황망히 데려가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동갑내기 여자와 동거를 시작해서 내년이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린 친구는 낮에는 식당 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편의점 근무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포장마차를 차렸다. 그즈음 조그만 회사에 다니던 나는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면 친구의 포장마차에 들러 우동 한 그릇과 소주 반병을 먹고 귀가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려 해서 나는 친구 와이프 등에 업혀 있는 아이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어 주고 도망쳤다. 몇 년 뒤 내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 친구도 은행 융자를 받아서 목 좋은 곳에 어엿한 가게를 차렸다. 개업하는 날 작은 화분을 사들고 찾아가자 친구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가게에 물려 있는 빚만 다 갚으면 와이프에게 웨딩드레스 입혀 줄 거다.”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자 친구 와이프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친구는 서너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걸 몹시 힘들어했다고 한다. 와이프가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아 보라고 하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단다.
“일 때문에 쌓인 피로는 일하면서 풀어야 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가게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 갈 엄두를 못 냈을지도 모른다. 하루빨리 빚을 갚고 와이프에게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혀 주고 싶어서 자기 몸은 돌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참다 참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갔을 때는 암이 온몸으로 퍼진 상태였다. 변변한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동갑내기 와이프와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한 딸을 남겨 둔 채.
발인을 하고 화장장을 거쳐 납골당에 안치하는 과정까지 나는 어린 상주를 대신해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친구 와이프는 넋이 나간 상태였다.
친구 와이프와 딸을 대신해서 내가 친구의 주변 정리를 떠맡았다. 가게 운영 상태를 점검해 보니 큰 문제는 없었다. 은행 빚은 거의 다 갚은 상태였고 거래처에 지불해야 할 돈도 많이 밀리지 않았다. 이것저것 따져 보니 가게에서 이전처럼만 수입이 나오면 남은 두 식구가 그럭저럭 생활은 할 수 있었다. 친구 와이프 쪽 친지나 지인은 다들 본업이 있어서 별다른 할일이 없는 내가 친구 와이프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가게 운영을 맡아 주기로 했다.
친구의 가게는 신촌 먹자골목에 있는 카페였다. 낮에는 커피와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팔았고 저녁에는 맥주와 간단한 안주도 추가했다.
나는 카페 운영에 경험이 없었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카페 문을 열고 음료를 만들고 재료가 떨어지면 주문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온 휴학생이 도맡았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저녁시간과 주말에만 일을 하는 알바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가 계산을 하거나 아주 바쁠 때 서빙이나 설거지를 잠깐 도와주면 되었다. 그렇게 카페 일을 하다가 손님이 뜸할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도 한때는 문학 소년이었다. 고등학생 때 대학교 주최 백일장에 참가해서 상을 타기도 했다. 대학도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문학 공부도 해봤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에 창작물을 합평하는 시간이 있어서 시와 소설을 써서 제출했다. 그때 알았다. 글이라는 게 얼마나 쓰기 어려운 건지. 소재는 기발해야 했고 문장은 독특해야 했으며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부족해도 그저 그런 글이 되고 말았다. 내가 쓰는 글이 바로 그저 그런 글이었다. 무난하지만 별 특징이 없는 글, 술술 읽히지만 별 재미가 없는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학 동기 몇은 이미 어엿한 작가가 되어 책도 내고 신문에 기사도 났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친구들만 들락거리는 블로그에 여행 이야기를 올리면서 뒤늦게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비록 몇 명 되지 않지만 내 글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생기자 계속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쓴 여행 이야기가 언젠가는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나는 걸 꿈꾸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제법 많은 이들이 내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댓글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기 시작하더니 서로 친해지는 눈치였다. 자기들끼리 댓글로 의견을 교환하고 여행 정보도 나누는가 싶더니 급기야 내 글을 책으로 내자는 얘기가 나왔다. 누군가 농담처럼 제의했는데 몇몇이 동의하면서 적극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몇 사람이 십만 원씩 내자 금세 백만 원이 넘었고 며칠 만에 수백만 원이 되었다. 대단한 작가도 아닌 나로서는 지인들의 호의를 무턱대고 사양할 입장이 아니었다. 결국 블로그에 끄적거렸던 글을 모은 나의 첫 책이 나왔고, 내가 일하는 카페에서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도 했다.
책은 고만고만하게 팔려 나가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지인들의 투자금도 무사히 반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출판사 사장은 두 번째 책을 내자고 부추겼다. 이번에는 팔릴 만한 걸 써보라고 하면서 계약금까지 줬다.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쓴 글이 주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책으로 묶여 나오고 보잘 것 없지만 수입도 생기자 슬그머니 욕심이 났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닌데 까짓것 또 써보지 뭐. 이번에는 장편소설을 쓰기로 했다.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더 잘 팔린다는 출판사 사장의 부추김이 작용한 데다, 문학 소년 시절에 품었던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여행하면서 겪은 사건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배합하면 그럴듯한 소설이 되겠다 싶었다.
본격적으로 소설 창작에 매달리기 위해 노트북을 새로 사고 카페 근처 원룸에서 일산 호수공원 옆 오피스텔로 거처도 옮겼다. 친구 와이프에게 연락해서 카페 일을 더는 못 하겠다고 하자 그동안 애써 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당분간은 출퇴근길에 구상을 하고 카페 자투리 시간과 퇴근 후에 집필을 하다가 카페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본격적으로 몰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소설 쓰기를 시작한 게 5년 전이었다.
친구 와이프에게 가게 운영을 넘기고 일산 호수공원 옆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집필에 매진했다. 처음 두어 달은 제법 열심히 썼지만 완성된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100매밖에 되지 않았다.
“소설은 시작이 반이야. 쓰기 시작했으니까 페이스만 잘 유지하면 돼.”
“쓰다가 막히면 책을 읽어. 그러면 다시 문장이 떠오르지.”
오래 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쓰다가 막히면 책을 읽고 다시 쓰다가 막히면 책을 읽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도 진척은 더뎠다.
“환경을 바꾸어 보세요. 절에 가든지 작가들에게 집필 공간을 제공하는 창작촌에 입주하든지.”
이번에는 출판사 사장의 조언에 따라 절에도 가고 창작촌에도 들어가서 꾸역꾸역 쓴 끝에 200매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다시 먹통이었다. 고심 끝에 동남아에 가기로 했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 동남아의 섬에서 섬으로 떠도는 이야기니까 현장 취재도 하고 집필 환경도 바꿀 겸 동남아의 섬에 머물며 써보기로 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섬을 3개월마다 옮겨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달리 외국에 나오니까 장소를 옮길 때마다 달라진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서 집필 모드로 몰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3년 동안 동남아의 섬 열두 군데를 옮겨 다니며 가까스로 900매의 원고를 완성했다. 100매만 더 집필해서 1,000매를 채우려고 보라카이에 왔다. 그게 3개월 전 일이다.


5.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소설도 피날레가 멋져야 한다. 그런 부담감에 마지막 장면이 애를 먹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는 일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3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는 필리핀 비자 만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내일까지도 소설을 매듭짓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할 작정이다.
오늘 밤에는 멋진 피날레가 떠오르길 기대하며 조금 일찍 산책을 나섰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숙소를 나와 비치로드로 접어들었다. 보트 스테이션 쓰리를 지나는데 카티클란에서 출발한 배가 막 도착했는지 한 무리의 여행자가 화이트 샌드 비치로 내려서고 있었다. 20여 명의 여행자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가방을 한두 개씩 지니고 있는데 한 청년만 아무런 짐이 없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청년을 지켜보았다.
얼굴 윤곽은 한국인 같았다. 다른 나라 사람은 잘 몰라도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게 그동안의 여행 경험으로 터득한 나만의 감식안이었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보라카이에 처음 온 티를 감추지 못한 채 청년은 해변 한복판에서 열대의 태양이 뿜어내는 햇살을 방어할 선글라스도 없이 맨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났는데 전혀 낯선 곳이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옷차림도 관광지에 온 여행자가 아니라 집 근처 편의점에 음료수라도 사러 나온 모습이었다. 행색으로 보아하니 무언가 남다른 사연이 있을 듯했다. 어쩌면 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해 줄 기막힌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그 청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비치로드에서 해변으로 내려서면서 청년에게 건네는 첫 마디를 “Hello.”라고 하는 게 좋을지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게 좋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김완준
작가소개 / 김완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졸업. 198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2년 계간 《문학인》 가을호 소설 발표. 장편소설 『the 풀문 파티』, 소설집 『열대의 낙원』 출간.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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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우릴 떠난 채식주의자와 불을 끄는 돼지들

우릴 떠난 채식주의자와 불을 끄는 돼지들 김아인 1 산길의 고지를 넘자, 훅 안개가 끼는가 싶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권은 전조등을 상향으로 바꾸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늦여름이면 곧잘 있는 일이었다. 권은 턱을 당기고 운전대를 단단히 잡았다. 좁은 2차선 도로에 굴곡마다 급커브를 도는 가파른 산길이었다. 늦은 새벽에 비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익숙히 오가는 길이라 해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권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시 반이었다. 이대로면 집에 들어가는 건 세 시나 되어서일까. 권은 어금니를 맞붙이며 나오는 하품을 흘려보냈다. 왠지 평소보다 몸도 찌뿌둥하고, 눈도 뻑뻑한 기분이었다. 권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걸어가든 기어가든, 일단 굴러가곤 있다는 게 중요했다. 회사 차량─주행거리 36만 킬로미터의 다마스 트럭이 말썽을 피우거나, 도로가 끊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권은 눈살을 찌푸렸다. 축축한 기억 하나가 머릿속 깊은 곳에 얽혀있는 배관 속을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지나갔다. 권은 그것이 뒤로 남긴 끈끈한 발자국을 되짚어 다시 한번 그 냄새와 습기를 떠올려냈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그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2 권의 별명은 권이었다. 권. 태극권. 영춘권. 북두의 권. 사실 그가 다니는 곳은 주먹질과는 거리가 먼 유도 도장이었지만, 또래 아이들에겐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권이었고, 전혀 다른 곳에 가도 권이었고, 유도가 뭔지 알 만큼 아는 이들 사이에 속해도,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권이었다. 권이 유도를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열여섯은 선수를 목표로 하고 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그에겐 소질이 있었다. 우선 신체적 조건이 좋았다. 체격이 크고, 힘과 유연성이 좋았다. 처음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한 말에 따르자면 균형감각이 굳세고 순발력도 탁월했다. 하지만 진짜 소질은 따로 있었다. 권은 상대 선수의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거나 여러 파훼법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도, 본능에 따라 승리를 위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관장은 그걸 두고 재능의 영역에 있는 감각이라고 말했다. 머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그런 본능적인 감각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란 거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너는 생각하기 시작하면 굼떠져. 알겠어? 그 순간의 판단을 믿고 바로바로 움직이라고. 너는 그게 맞아.” 권은 그 말을 따랐다. 그는 반년 만에 청소년부를 떠나 성인부에 들어가게 됐고, 일 년이 좀 더 지나선 체급과 나이를 통틀어 지역 내에 붙을 만한 상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학교나 시설,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할 때도 주목받을 만큼 두각을 드러냈다. 관장은 권을 자랑스러워했고, 권도 자부심을 느꼈다. 추천으로 체육대학에 입학한 후, 권은 더 많은 시간을 유도에 쏟아부었다. 자잘한

  • 김아인
  • 2026-05-01

문장웹진 소설

모래 유원지

모래 유원지 김소라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매일 오후의 풍경이 그렇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저벅이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할아버지는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투명한 아스피린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동그란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덜어내 입안에 톡 털어 넣고는 물도 없이 삼켜버렸다. 아주 보란 듯. 때때로 입이 말라 단번에 삼키지 못하면 얇은 입술에 힘을 주고 한참을 우물거려 침을 모았다.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았다. 그다음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닮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귀담아들을 정도로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영영 소식이 끊긴 아들이라든가 단골손님이라든가. 또는 이 동네에 관한 것, 그리고 저 동네에 관한 것. 전파사 문 앞에 놓인 접이식 철제 의자가 할아버지의 자리였다. 앙상한 다리를 꼬고 구부정하게 앉아 주절주절, 내가 탈 마을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중얼거렸다. 말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이 대화가 아주 일방적이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 나는 늘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는 ‘결국’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 사실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그러다가 결국엔 말이야. 결국 이렇게 된다구. 그 말버릇 때문에 할아버지는 마지막을 다 아는 듯도 했고, 모르는 듯도 했다. 기대하는 듯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가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마지막을 기다리게 된다. 결국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을 길잡이 삼아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를 기꺼이 따라가곤 했다. 천변을 따라 마을버스가 느리게 다가왔다. 이 버려진 동네는 물이 바짝 말라버린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알파벳 U자를 길게 늘여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나와 할아버지는 가장 끝, 휘어진 부분의 막다른 곳에 살았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올망졸망한 단층 건물들을 굽어보는 유일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3층엔 내가 세 들어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딱 알맞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다. 2층엔 건물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살았고, 1층엔 오래전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가 문을 닫은 채 남아 있었다. 이 깊숙한 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승객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푸쉬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올라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게 되어 있거든, 결국. 버스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가 뻐끔거렸다. 여전히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U자 모양의 천변길을 벗어나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지하철역이 나왔다. 단 두 정거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그 사이 풍경은 TV 채널을 돌린 것처럼 완벽히 바뀌었다. 고르게 망해버린 천변과 달리 지하철역 주변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럴싸한 카페와 서점, 은행, 최신 휴대폰을 파

  • 김소라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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