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비닐
- 작성일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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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비닐
강석희
1.
꽃이 유난히도 많이 피었던 그해 봄에 나는 화투를 쳤다. 나와 함께 판을 벌인 아이들은 영지와 소연과 민정이었다. 나까지 더해서 넷, 넷은 광을 팔기에 딱 좋은 숫자였다.
화투를 시작한 건 대규 삼촌 때문이었다. 삼촌은 대대로 미남이 많은 임씨 집안 남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카인 영지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삼촌의 팬이었다. 니들이 생각하는 만큼 멋진 인간이 아니라며 삼촌을 깎아내리던 영지도 그의 얼굴만큼은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삼촌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 나온 정우성과 거의 똑같았다. 학교에 가면 남자애들이 개개풀린 눈으로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를 따라 했지만 누구 하나도 대규 삼촌의 아우라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낡은 체육복 바지에 촌스러운 체크 남방만 입고 다녀도 삼촌에게서는 광채가 뿜어 나왔다.
그런 삼촌을 나는 사랑했다. 첫사랑이었다.
우리의 나이 차는 열 살이었지만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두 해만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니까. 고백은 내가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푸르스름한 새벽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양가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은 우리의 모습이나 임씨 집안사람들에게 시집살이를 당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상상의 마지막엔 웬일인지 삼촌은 없고 영지가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겨울방학 내내 대규 삼촌의 하우스에 갔다. 아주 죽을 치고 있었다. 삼촌은 읍내의 사립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영지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유일한 집안사람이었다. 삼촌 자신도 서울에 있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로 3년째 비닐하우스만 지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임씨 집성촌이었던 우리 마을에서 영지가 숨을 만한 곳으로 하우스는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는 날이 밝으면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하우스에 모였다. 제일 먼저 간 사람은 물론 나였다. 내가 하우스 문을 열면 삼촌은 나른한 눈빛으로, 나를 미치게 하던 깊은 눈동자로, 나를 한번 쓱 보고 하던 일을 했다. 삼촌의 일이란 만화책을 보거나 닌텐도를 만지거나 카세트를 듣는 게 전부였다. 가끔씩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것들을 살피기도 했지만 성의라고는 없었다. 나는 애들을 기다리는 척하면서 어슬렁거리다가 삼촌의 물건을 무심한 듯 손에 쥐었다. 마음은 쉽게 요동쳤다.
다른 애들이 점심때가 한참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날, 삼촌이 내게 라면을 끓여 주었다. 가스버너 위에 바닥이 새까만 양은 냄비를 놓고 물이 끓어오르자 안성탕면을 넣었다.
“두 개 끓여?”
삼촌이 물었다. 나는 두 사람 점심으로 두 개는 좀 적은데, 생각하면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한 봉을 더 뜯었다. 저 결단력……. 나는 또 소소하게 반했다. 게다가 냄비를 들여다보는 삼촌의 콧날과 턱선이 또 절경이었다. 삼촌은 불을 끈 뒤 냄비에 풋고추 두 개를 가위로 잘라 넣었다.
“됐다. 먹자.”
삼촌은 이 빠진 사기그릇에 내 몫의 라면을 덜어 주고 자기는 냄비 뚜껑에 면발을 건져 먹었다. 그러고 있으니 나와 삼촌이 꼭 살림을 차린 신혼부부 같아서 볼이 뜨거워졌다. 생각을 들킬까 봐 그릇에 코를 박았다. 그릇 깊은 곳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풋고추 냄새 같기도 하고 농약 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가 나는 좋았다. 이건 혹시, 사랑의 냄새?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사레가 들렸다. 캑캑대는 나에게 삼촌이 미지근한 물을 갖다 줬다. 그러고는 두어 발치 떨어져서 담배를 피웠다. 연기를 뱉는 삼촌의 얼굴에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 사연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삼촌의 인생을 깊이 알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어른의 사연을 어른스럽게 들을 수 있는 얼굴을 빨리 갖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말하고 싶기도 했다. 당연히 말하지 못했다.
삼촌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훌쩍 떠나버렸다. 삼촌과의 마지막 하루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야 하우스에 모두 모인 우리는 주머니에서 사천 원씩 꺼내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고 민정이 새로 산 잡지들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온 페이지를 찢어서 나눠 가졌다. 혼자서는 못해 볼 농담을 삼촌에게 던지다가 낮잠을 잤고 깨어 보니 해질녘이었다. 하우스에 삼촌의 친구들이 놀러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나눠 준 족발과 소주를 먹었다. 그사이 해는 완전히 졌고 영지가 잔뜩 취해버렸다.
“에이, 씨발!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왜 자꾸 하라고 지랄이야!”
목까지 벌게진 영지가 욕을 하며 소연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나마 공부는 영지가 제일 잘했으므로 우리는 지랄하네, 자랑하네, 눈 감은 영지에게 말했다. 영지는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삼촌 친구 한 명이 영지더러 귀엽다고 했고 삼촌이 그 친구의 뒤통수를 툭 쳤다.
“꿈도 꾸지 마. 내 조카야.”
그러고는 웃었고 친구들도 같이 낄낄거렸다. 나는 별 이상한 농담을 한다 싶으면서도 삼촌의 목소리가 멋있어서 또 설렜다. 영지 아버지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일종의 시찰이었다. 열일곱 살 터울의 큰 형님이 늦둥이 막내에게 잔소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 겨울에 내가 몇 번 봤던 장면이었다. 들키지 않을 만한 곳에 몸을 숨긴 채였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영지 아버지가 저녁에 나타난 게 처음이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여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영지 아버지는 삼촌 친구들의 인사는 무시하고 곧장 영지에게 갔다. 영지야, 제발 정신을 챙겨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지만 영지는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어? 우리 다 좆됐네?”
영지는 그렇게 말한 뒤에 몰라몰라, 하며 돌아누워 버렸다. 영지 아버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삼촌 쪽의 술상을 냅다 걷어찼다. 삼촌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열중 쉬어 자세로 섰다. 삼촌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영지 데리고 가라.”
영지 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영지를 업고 도망치듯 하우스를 나왔다. 우리가 미처 멀리 가기도 전에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두드려 가며 어두운 논길을 계속 달렸다.
다음날 하우스에 갔을 때 삼촌은 없었다. 나는 삼촌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하우스에서 우니까 숨이 금방 찼다. 나는 명치를 주먹으로 꼭꼭 누르면서 참고 참다가 결국 소처럼 울어버렸다. 울면서, 기도했다. 삼촌이 못다 이룬 꿈이라고 말했던 것들을 꼭 이루기를. 말할 때마다 바뀌던 그 꿈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루기를. 기도를 끝내자 들썽거리던 몸과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나는 어질러진 삼촌의 평상 위에서 하얗고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새 화투였다. 나는 화투를 치는 삼촌을 상상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섞는 삼촌, 찡그린 얼굴로 패를 돌리는 삼촌, 재수 없이 자꾸 똥을 싸는 삼촌, 피박에 광박을 쓰는 삼촌, 개평을 달라고 조르는 삼촌, 욕을 하는 삼촌, 하지만 신나게 웃는 삼촌……. 나는 삼촌에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을 생각하며 주머니 깊숙이 화투를 넣었다.
영지 아버지는 하우스를 싹 밀어버렸다. 하우스는 크고 번쩍이는 자물쇠로 잠겼다. 영지는 열쇠를 몰래 복사했다. Y자 말뚝까지 모조리 뽑혀 나간 하우스에 삼촌의 물건과 옷가지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 모습이 퍽 황량해서 슬펐다. 만에 하나 삼촌이 돌아오면 또 이곳에서 지내게 되는 걸까? 그건 삼촌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식물이 자라지 않아도 하우스는 하우스여서 따뜻했다. 그것도 나를 슬프게 했다.
어쨌든 하우스는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신학기 개학을 앞둔 밤에 우리는 하우스에서 술을 마셨다. 애들은 부지런히 신문지를 깔고 과자봉지를 뜯고 종이컵을 돌렸다. 우리가 고2다 벌써, 나이 너무 많이 먹었어 같은 말들이 오고 가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나는 금세 취했고 사실은 내가 삼촌을 사랑했다고 말해버렸다. 애들은 뭐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래도 내 어깨를 만져 주고 빈 잔을 채워 주며 나를 위로했다. 그 바람에 나는 또 울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마음에 빈자리가 조금 생긴 것 같았다. 그 자리에 형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내가 모르는 어떤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애들은 취해서 그런 거라 했다.
삼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화투였지만 나는 그것의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화투가 가장 재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마을에서의 하루하루는 지독히도 지루했다. 놀 것도 볼 것도 없는 읍면 지역 거주 청소년의 삶. 게다가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우리에겐 경운기나 스쿠터를 몰아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애들의 어쭙잖은 운전 실력과 생색을 보는 건 더 싫었다. 기껏해야 술이나 홀짝이는 게 우리에게 허락된 유희였으나 그마저도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한다. 약간의 스릴이 즐거움의 전부였다.
그러니 화투가 얼마나 재밌었을까. 우리는 야자시간에 도망도 치고 독서실 간다는 거짓말도 해가면서 하우스에 들락거렸다. 그사이 우리의 실력은 제법 훌륭해졌다. 손에 쥔 패와 바닥에 깔린 패를 번갈아 보면서 서로의 손에 남은 패가 무엇일지 가늠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럼에도 큰돈은 오고 가지 않았다. 우리의 화투가 점당 십 원짜리였기 때문이다. 어느 주말 하루를 꼬박 놀고도 제일 많이 딴 사람이 가져간 돈은 삼천 칠백 원이었다. 그마저도 오백 원씩 개평으로 나눠 줬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에겐 마흔여덟 장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매번 다른 이야기를 빚어낸다는 사실이, 그 경이로움이 중요했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소박한 판돈이 재미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긴장감이 사라질 때가 온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아닌 뭔가를 더 걸어 보기로 했다. 화투를 친 두 달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걸 해내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한 거였다.
“쓰리고. 쓰리고로 해.”
말한 사람은 영지였다. 우리 중에 아무도 쓰리고를 해본 사람은 없었다. 그럴 판이 자주 만들어지지도 않았거니와 다들 쓰리고를 외칠 용기도 부족했다. 점당 십 원짜리여도 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딱 한 번, 영지가 쓰리고에 도전한 적이 있었지만 민정이 내게 광을 밀어 줘서 나가리가 났다. 삐진 영지는 그날 저녁 내내 광만 팔다가 집에 갔다. 제일 먼저 쓰리고에 성공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 준다. 그렇게 적은 쪽지를 화투 케이스 뚜껑에 붙인 사람도 영지였다.
화투를 그렇게나 쳤으니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패도 하나씩 갖게 되었다. 영지는 구쌍피(화려해서)를, 소연은 비광(쓸쓸해 보여서)을, 민정은 공산고도리(큰 점수를 낼 수 있어서)를 좋아했다. 나는 사쿠라가 그려진 삼광을 좋아했다. 삼광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에 저절로 축제가 떠올랐다. 그걸 손에 쥐고 있으면 용기가 생겼고 바라는 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벚꽃 철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짧은 시기를 ‘사쿠라 우대 기간’으로 정하고 사쿠라 껍데기를 쌍피로 인정해 줬다. 그리고 그때 내 손에는 사쿠라가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좋은 일은 그뿐이었다. 화투판에서 영원히 쥐고 있을 수 있는 패란 없었으므로 행복한 기분은 삼광을 바닥에 던질 때까지만 유효했다.
사쿠라 우대 기간에 엄마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벚꽃 잎을 털면서 산책로를 걸었다.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 그 길을 걸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엄마는 다시 1시간 동안 시외버스를 타고 C시에 있는 가정법원에 갔다. 그곳에서 아빠를 만났고 둘은 협의이혼을 했다. 아빠는 대략 1년 전에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반년 전에 집을 나간 상태였다. 나는 그 이야기의 전말을 엄마에게서 직접 들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내게 다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나한테도 말하지 말 것이지. 나도 모르고 싶은 이야기였다. 아빠와 그 여자에 관한 건 하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알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이혼까지 해버렸으니 더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현이한테는 뭐라고 해?”
내가 물었지만 엄마는 엉뚱한 말만 했다.
“밥이나 먹어.”
식탁에는 김밥 도시락이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오이와 우현이 싫어하는 당근이 다 들어 있는 걸 보니 엄마가 싼 건 아니었다. 아빠가 준 것이었다. 법원에서 나온 뒤 아빠는 엄마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차에 달려가 도시락을 가져왔다. 집에 가서 애들이랑 먹으라고. 저녁 차릴 정신 있겠냐고.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딴살림을 차리고서 우리를 찾지도 않은 사람이, 전화 한 통 없이 살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김밥을 왜?
먹어 보면 뭐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가장 큰 꼬다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김이 너무 질겨서 삼켜지지 않았다. 억지로 꿀꺽 삼켰더니 눈물이 찔끔 났다. 뚜껑을 덮으려는데 김밥 위에 벚꽃 잎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엄마의 어떤 순간을 떠올렸다. 이혼을 하고 꽃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다가 도시락을 열어 보는 엄마. 그때의 엄마가 가졌을 마음이 궁금해졌다. 아빠가 김밥을 준 이유보다도 궁금했다. 왜 버리지 않았지? 왜 짓밟아 으깨지 않았지? 벚꽃 잎이 팔랑팔랑 내려와 도시락 속으로 들어가는 짧지 않았을 시간 동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뚜껑을 덮지 못하고 오랫동안 김밥과 꽃잎을 봤다. 오늘 밤에는 엄마랑 자야겠어, 생각했다.
안방 침대에 누운 나를 보고도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옆으로 좀 가.”
그렇게 말한 게 다였다. 내가 벽 쪽으로 조금 붙자 엄마는 전등을 끄고 모로 누운 다음 TV를 켰다. 엄마는 자기 전에 꼭 KBS 1TV나 EBS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나는 TV화면 대신 천장을 보고 누웠다. TV에서 나오는 빛이 천장에 일렁였다. 어릴 적 무서운 꿈을 꾸거나 우현이 짜증나게 해서 엄마 곁에 누우면 보던 천장이었다. 하지만 그건 5년도 지난 옛일이었고 내게 그 천장은 낯선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엄마가 그런 시간 속을 지나는 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없어진 뒤로 이 집 안의 모든 게 낯설어지고 심지어 자식들까지 낯설어지는데, 그 낯섦은 아픈 것이어서 엄마는 지금 외롭겠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내게 쥐인 손을 그대로 둔 채 말했다.
“남자한테 마음 주지 마라.”
나는 엄마의 손을 놓았다. 두 손 사이에 고여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날갯죽지의 평형이 맞지 않는 느낌에 몸을 자꾸 뒤척이게 됐다. 엄마는 어느샌가 낮게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TV를 껐다. 엄마는 코까지 골며 잤다. 잘 자는 엄마가 얄미웠다. 이런 날에 왜 잘 자고 난리야?
“……미안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누구한테 미안하다는 거지? 나는 엄마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길 내심 바랐다. 엄마는 다시 코를 골았다. 같이 자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나는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앉았다. 처마에 매달린 무청 시래기와 감말랭이가 달빛을 받고 있었다. 저거 다 아빠가 좋아하는 건데. 이혼을 하는 와중에도 저런 걸 매달고 있었던 엄마의 청승이 싫었다. 빠른 시일 내에 사랑할 남자를 찾고 말 거라 다짐했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벚나무 가지에 푸른 잎이 돋으면 학교 테니스장을 둘러싼 장미 덩굴에 붉고 실한 꽃송이가 달렸다. 그 시기의 테니스장은 장미정원이라 불렸다. 그때에 2학년들은 테니스 수행평가를 봤다. 첫 테니스 수업 시간부터 마음이 설렜다. 장미들 너머에는 쌀쌀맞은 담벼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재미없는 비닐하우스가 줄 지어 있었지만 꽃을 보며 라켓을 휘두르니 차갑고 삭막한 것들을 다 잊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매년 테니스 연습을 할 때가 되면 2학년들 사이에 ‘볼팅’이 유행했다. 공으로 하는 미팅이었다. 방법은 이랬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학번과 전화번호를 적은 테니스공을 준비한다. 조금 과감한 애들은 키나 성격, 취미나 이상형 따위를 적기도 했지만 이름은 적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공을 라켓으로 쳐서 담장 너머로 날리면 끝이었다. 그다음은 우리 학교와 이름이 같은 남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차례였다. 밤이 되면 남학생들이 비닐하우스 사이를 오소리처럼 돌아다니며 공을 주워간다고 했다. 공에 적힌 숫자 몇 개를 보고 어떤 예감을 해야 하는 도박 같은 일을 기꺼이 하려는 애들이 많아서 경쟁이 붙기도 한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테니스 연습 기간에 2학년이 쓰는 4층은 자주 술렁였고 수업 기간마다 서랍 속에 감춰둔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애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학번만 적은 공을 날렸다고 한다. 그러면 남학생 대표가 우리 학교에 잠입해서 신발장에 쪽지를 놓고 갔다. 그렇게 쪽지를 받은 언니들은 거기에 적힌 시간과 장소를 보고 무작정 남자를 만나러 갔다.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볼팅은 너무 손쉽게 느껴졌다. 기다림과 긴장의 낭만이 부족하지 않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해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모두 볼팅에 참가했다. 우리는 공에 똑같이 생긴 장미꽃을 그려 넣었다. 나의 아이디어였다. 친구들에게는 우정의 증표 정도로 설명했지만 실은 4대4 미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모르는 남자애랑 단둘이 만나는 건 생각만 해도 어색했다. 나에게 연락을 한 남자애가 나를 만나서 즐거워할 것 같지도 않았다. 영지의 하얀 피부, 소연의 길쭉한 팔다리, 민정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나는 부러웠다. 그 애들에 비하면 내게는 매력이라 할 만한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빠질까, 하는 척만 할까, 생각해 봤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볼팅은 먼 훗날까지 이야기할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었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고 친구들은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파도의 온도와 맛과 냄새를 곱씹을 때 내게도 할 말이 필요할 테니까. 나는 공을 세게 쳐서 학교 밖으로 날려 보냈다. 망설이면 못 할 것 같아서 있는 힘껏 팔을 휘둘렀다. 공이 정점까지 올라갔던 공이 떨어지는 순간 반짝, 붉은 빛을 본 것 같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어떡하지? 진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기다렸느냐고 하면…… 기다렸다. 나만 빼고 다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영지였다. 영지는 비장한 분위기로 하우스에 나타났고 진지하게 화투를 쳤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광으로 3점을 모으고 나지막하게 원고를 부르더니 열피를 맞춰서 투고를, 쉴 틈 없이 육고도리에 성공하며 쓰리고를 해냈다. 그러고도 기쁜 기색 따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 이제 화투 못 칠 것 같아.”
처음 당해 본 쓰리고에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는 영지가 소원을 말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야. 너 혹시……?”
그나마 눈치가 빠른 민정이 묻자 영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영지를 붙잡고 흔들고 난리를 피웠다.
영지에게 전화를 한 애는 배드민턴 선수였다. 실력이 좋아서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도 출전하는 아이였다.
“야. 완전 이용대 아니냐?”
소연이 호들갑을 떨었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될지도 몰라.”
수줍어하는 영지를 보며 우리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영지의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축협 앞 정자에 함께 갔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조막만 한 남자애가 운동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부러웠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멋있잖아. 우리는 그 애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영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때까진 몰랐다. 화투를 안 칠 거라는 영지의 말이 앞으로는 남자친구랑만 놀겠다는 뜻이었다는 걸.
학교 밖에서 영지를 보기가 힘들어지면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운해 했다. 영지가 없으니 광을 팔 수가 없어서 나쁜 패가 들어올 때마다 매정한 놈, 매몰찬 놈, 하며 영지를 욕했다. 하지만 다음 차례로 전화를 받은 민정도 영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정은 밴드부에서 전자기타를 친다는 애의 전화를 받았다. 민정은 조금 민망해하며 소식을 전했다.
“잘 먹고 잘살아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연은 초조해 보였다.
“우리는 전화가 와도 그냥 무시할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전화가 안 오면 어쩌나, 소연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어차피 저쪽에서는 누군지도 모르고 거는 전화인데도 그걸 받지 못하면 자존심을 다치는 분위기였다. 흥성스럽게 시작되었던 볼팅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화를 받은 애들과 받지 못한 애들 사이를 갈랐다. 전화를 받은 애들 사이에서도 남자친구를 사귄 애와 그러지 못한 애로 나뉘었다. 그쯤 되니 나도 초조해졌다. 쫓기는 듯한 소연을 보고 있자니 소연에게 빨리 전화가 왔으면 해서 초조했고, 한편으론 어느 날 갑자기 소연마저 떠나버릴까 봐 초조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소연에게도 전화가 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데 한 달을 망설이는 마음은 대체 뭘까. 할 거면 빨리 하고 안 할 거면 영원히 하지 말 것이지.
내게는 계속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학교를 파한 뒤 나는 줄곧 집에만 있게 되었다. 애들은 서로 말이라도 맞춘 것마냥 하루걸러 이틀 걸러 내게 전화를 했고 별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얼른 끊었다. 통화가 끝나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우현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다.
친구들과 다시 모인 건 소연까지 연애를 시작한 날로부터 3주가 흐른 뒤였다. 애들은 내가 쓰리고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지현이 하고 싶은 거 하자. 지현이 먹고 싶은 거 먹자. 나는 애들이 그러는 게 너무 싫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 사이에 애들은 남자친구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하다가 어느 순간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삼켰다. 나는 우현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우현의 전화를 받자마자 집에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노래방이 있던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니 세상이 엄청나게 뜨거웠다. 어느덧 계절은 한여름이었다. 길 건너 아파트 담장에 달린 장미가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다시 내려가 애들이 있던 방의 문을 열고 말했다.
“하우스 열쇠 나한테 넘겨.”
참는다고 참았지만 끝까지 참지 못해서 말투에 날이 서고 말았다. 그날 이후 애들과 좀 어색해졌다. 그래도 혼자 있을 곳이 생겨 다행이었다. 더 이상 식구들에게 이상하게 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나는 하우스에서 혼자 이상해지기로 했다. 대규 삼촌이 남기고 간 듀스 테이프를 들으며 만화책을 봤다. 삼촌이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야한 만화책도 봤다. 펼쳐 보기 전까진 되게 재밌을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시시했다. 하지 말라는 짓도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있다는 걸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 여름의 첫 비로 기억되는 소나기가 내렸던 날도 나는 하우스에 갔다. 갑작스런 비에 흠뻑 젖은 나는 화투를 치던 때에 쟁여 뒀던 라면을 꺼냈다. 무릎을 세우고 버너 앞에 앉아 젖은 몸을 말렸다. 버너의 열기와 하우스의 습기에 몸이 푹 익은 과일처럼 뭉그러지는 것 같았다. 몸의 여기저기에서 올라온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다 끓지도 않은 물에 스프 먼저 풀었다. 그래도 내 몸의 냄새는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빗방울이 비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듀스 노래의 비트와 비슷했다. 두두둥, 두두둥, 둥둥둥둥! 귓전에 노랫소리가 맴돌았다. 어느새 비가 그쳐서 환한 빛이 비닐을 통과해 들어왔다. 습한 공기가 데워지면서 숨길을 꽉 막았다. 나는 비닐하우스 안이 그렇게 되는 걸 좋아했다. 라면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젓가락을 놓고 누웠다. 잠이나 한숨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에 갈까? 그러기는 싫었다. 하우스 안이 어두워질 때까지 웅크려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면서 전화기가 울렸다. 평상이 덜덜 떨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자세를 고치고 심호흡을 한 다음 전화를 받았다.
“2학년 6반 13번 번호…… 맞나요?”
2.
내 남자친구의 이름은 유호경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번호를 ‘유혹이♥’라고 저장했다. 그 누구도 남자친구의 애칭으로 삼지 않을 것 같은 말을 찾고 찾다가 고른 것이었다. 호경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화기가 울리면 누가 볼세라 조심스레 발신인을 확인했다. 내 손안에 호경을 감춰 두고 몰래 보는 것 같았다. 수화기에서 호경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휘말린 여자가 된 것 같았다. 떨리는 말투로, 우리 이러면 안 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기분. 정작 호경이 하는 말이란 석식에 꽁치가 나와서 야자를 짼다 따위였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귀엽게 들렸고 나도 야자를 쨌다.
호경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스스로에게 놀라던 날들이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호경을 알기 전까지 사랑에 관해 내가 알고 있던 감각과 지식은 대규 삼촌을 보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딘가 습하고 느린 마음,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넣고 그게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일 줄 알면서도 그걸 비는 마음이 소중해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사랑이었다. 호경과의 연애는 달랐다. 호경은 나에게 자신의 마음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려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린 건 마음만이 아니었다. 나는 호경을 위해 하우스의 문도 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하우스를 데이트 장소로 쓰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했다. 우리는 복사한 열쇠를 나눠 갖고 이용시간표도 짰다. 나는 그 모든 일에 전에 없이 적극적이었다. 친구들도 그걸 알았고 나를 놀렸지만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호경이 좋아하던 춤을 마음껏 출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호경의 꿈은 비보이가 되는 것이었다. 비보잉을 잘하진 못했지만 아주 좋아했다. 언젠가는 최고의 비보이가 될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런 호경에게 하우스는 좋은 연습실이었다. 입구 쪽에 맨질맨질한 비닐 장판이 깔려 있고 고물이긴 해도 전신 거울과 카세트도 있었다.
호경이 내게 가장 많이 보여준 기술은 핸드글라이더였다. 팔꿈치를 배꼽에 붙이고 손바닥만으로 전신을 지탱한 채 뱅글뱅글 도는 동작이었다. 호경이 완벽하게 익힌 유일한 기술이었다. 그걸 할 때 호경은 손에 양파 망을 꼈다. 이것저것 껴봐도 양파 망만큼 손에 착 붙는 게 없다고 했다. 처음엔 멋있었다. 핸드글라이더를 도는 것도, 그걸 잘 돌아 보려고 면장갑도 껴 보고 비닐봉지도 껴봤다는 것도 다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경이 양파 망을 집어 들면 곤란해졌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연습하던 호경은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에는 핸드글라이더만 하염없이 돌았다. 나는 호경이 기죽을까 봐 열심히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내가 들어도 내 박수소리엔 진심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거 나도 가르쳐 줘.”
그즈음 나와 친구들은 일요일 저녁마다 하우스에 모였다. 그 시간은 한 주 동안 각자의 연애에서 일어난 일들을 복기하고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핸드글라이더를 연습하고 있다는 걸 말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호경이 준 양파 망을 손에 끼워 보여주자 눈물까지 보였다.
“야. 손이 야해. 뭔가 섹시해.”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 사람에게 어떤 일까지 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했다. 다들 대단히 애쓰고 있었다. 밤에 부모님 몰래 담장을 넘은 소연이 이야기는 별것도 아니었다. 민정은 몇 년 동안 모은 저금통을 깼다. 그 돈은 남자친구의 기타를 커스텀하는 데 쓰였다. 그리고 영지는 남자친구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체전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남자친구가 말했다는 거였다. 영지의 말에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민정이 물었다. 영지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그 침묵 끝에 올 영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고 싶어.”
영지가 말했다. 나는 크게 놀랐다.
“혹시 하게 되면 너희한테 꼭 말하고 싶어.”
영지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래. 꼭 말해.”
소연이 말했다.
“근데 못 할 것 같아. 못 하고 속만 끓일 것 같아.”
말도 못 하고 속 끓일 일을 대체 왜 하려는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갔다.
“말 못 하겠으면 여기에 표시를 남겨 줘.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말리진 못할망정. 하지만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소연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티커를 꺼냈다. 다이어리를 꾸밀 때 쓰는 스티커였다. 소연은 빨간색 하트를 찢어서 영지에게 줬다.
“지금 너 앉은 자리에 붙여 놔.”
그렇게 해서 영지가 남자친구와 자는 일은 시간문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 일을 부추겼다는 생각에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호경과 통화라도 하면 잠이 올 것 같았지만 해선 안 될 말을 하게 될까 봐 꾹 참았다. 잠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미니홈피에 비공개 일기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싸이월드에 접속하자 영지에게서 선물이 와 있었다. 사랑해, 친구들.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것은 BGM 선물,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였다. 이어폰을 컴퓨터 본체에 꽂고 노래를 몇 번이고 들었다.
나는 핸드글라이더를 할 줄 알게 되었다. 평상에 빨간 하트가 붙은 걸 발견한 날의 일이었다. 영지가 고민을 이야기한 지 정확히 열흘 뒤였다. 호경은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계속 몸을 던졌다. 우당탕탕, 쿠당탕탕. 자꾸만 위험하게 넘어지는 호경이 걱정도 되었지만 솔직히 좀 가만히 있어 줬으면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걸 보면 스티커는 내가 처음 본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털고 일어나 비닐 장판 가운데에 섰다. 손에 양파 망을 끼자 호경이 한쪽으로 비켜섰다. 나는 셔플 스텝을 밟은 다음 손바닥을 장판에, 팔꿈치를 배꼽에 붙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몸이 팔꿈치 위로 둥실, 정말로 둥실 떴다. 놀고 있는 손으로 바닥을 밀었더니 몸이 팽이처럼 돌아갔다. 호경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곧바로 중심을 잃었다. 바닥에 반 바퀴를 굴러 대자로 누웠다. 몸의 오른쪽이 욱신거렸다. 눈을 뜨니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호경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호경의 티셔츠를 당겼다. 호경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비닐하우스에서 첫 키스를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는 그걸 해버렸다. 입맞춤은 짜고 축축했다.
호경과 나는 매일 입을 맞췄다. 하우스에서도 맞추고 가로등 없는 논길에서도 맞추고, 우리 집 담벼락 아래에서도 맞췄다. 엄청나게 좋았던 건 아니었다. 더운 날씨에 몸과 몸을 붙이고 입술을 맞대고 나면 땀이 흠뻑 났다. 키스 뒤에 보이는 건 호경의 번들거리는 얼굴이었다. 몇 번을 해도 짜고 축축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입을 맞춰댔고 어떤 날은 같이 있는 내도록 그러기도 했다. 두 시간을 입만 맞추고 나서 황당해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으면 영지에 관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영지는 스티커만 남기고 일주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가출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영지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딱 한 번 답신을 해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렸다. 영지는 J시에 있다고 했다. 소년체전이 열리는, 왕복 여섯 시간 거리의 도시였다. 짐작대로였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어디에 갔느냐가 아니라 왜 돌아오지 않느냐였다. 좋은 일 때문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영지를 생각하면 자꾸 불안했다. 그래서 호경에게 자꾸만 뭔가 묻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남자의 마음 같은 것. 그러나 묻지 않았다. 그건 영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고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영지는 보름 만에 돌아왔다. 남자친구는 시합이 끝난 뒤 바로 돌아왔지만 영지는 아니었다.
‘바람 좀 쐬고 갈게.’
열흘째 되던 날 영지는 버디버디로 이런 쪽지를 보냈다. 특수문자와 히라가나로 꾸며졌던 대화명은 ‘林泳知’ 세 글자로 바뀌어 있었다. 돌아오기 전날 영지는 미니홈피 스킨을 잿빛으로 바꾸었다. 미니미는 등을 돌리고 있었고 그 옆에 남자친구의 미니미는 없었다. 영지를 기다리던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니홈피를 들여다봤다. 다음날 영지는 쥐한테 파 먹힌 것 같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지난 밤 영지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등교와 동시에 담임에게 호출된 영지는 하루 종일 학생부 교무실에 있다가 돌아왔다. 1교시는 무릎 꿇고 반성, 2교시는 깜지 쓰면서 반성…… 그렇게 8교시까지 반성을 하고 온 영지는 아침보다 훨씬 후줄근한 몰골이었다. 여름방학이 올 때까지 쓰레기 소각장에서 혼자 분리수거를 하는 벌도 받았다고 했다.
영지는 담담했는데 우리가 울었다. 가장 속상했던 건 역시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읍내의 미용실에 갔다.
“가출했다가 잡혀 왔니?”
가슴에 ‘율’이라고 적힌 명찰을 단 언니가 영지에게 농담을 던졌다.
“남자랑 잤는데 걸렸어요.”
영지가 말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줬다.
“내가 잘 다듬어 줄게.”
언니의 얼굴에 가득하던 나른한 기운이 사라졌다. 언니는 한 올 한 올 세심하게 가위질을 했다.
“다 됐다.”
샴푸와 드라이까지 마친 영지의 머리는 중경삼림에 나온 왕페이처럼 짧아져 있었다. 영지의 하얗고 작은 얼굴과 썩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문득 영지가 양조위 같은 남자를 만나게 되려나 생각했다. 그 남자가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바랐다.
“이게 내 최선이야.”
말하는 언니에게 영지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우리도 따라서 인사했다. 커트비로 팔천 원을 받은 언니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하다가 오천 원을 돌려주었다. 사탕도 한 움큼 집어 주었다. 우리는 언니가 준 돈으로 맥주와 오징어다리를 먹었다.
영지의 남자친구가 변한 건 스티커가 붙고 나서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체전 전날에는 시합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영지는 이별을 직감했고 남자친구를 따라갔다. 찜질방과 PC방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위험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지는 남자친구와 한 번 더 잤다. 남자친구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지 역시 예감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영지는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다고 말했다.
“피임은?”
민정이 물었다.
“했어.”
영지가 말했다.
“후회는?”
소연이 물었다.
“없어.”
영지가 말했다.
“그럼 이젠……?”
내가 물었다.
“잘살아야지.”
영지가 말했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잘살 거라는 영지의 다짐이 내게는 질문이 되었다. 잘사는 게 뭘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그때 알았다. ‘잘’이라는 말에도 ‘산다’라는 말에도 너무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지의 삶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켜주는 마음으로 지켜보자. 문득 그런 말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그 문장을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적었다. 친구들이 포도알과 바꾼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주었다.
하지만 나는 영지를 지켜주지도 지켜보지도 못했다. 영지는 일주일 만에 전학을 갔다. 전학은 영지도 모르는 채 진행되었다. 영지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서울로 떠났고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전화를 했다. 우리는 하우스에서 머리를 모으고 앉아 영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됐다.”
영지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서울에 올 계획은 없었는데 말이지.”
영지는 작은 고모 집에서 살게 됐다고 했다. 눈칫밥을 좀 먹게 되었지만 고모가 부자라서 볕이 잘 드는 넓은 방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 방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했다. 나는 페브리즈를 아무리 뿌려도 소똥 냄새가 은은하게 나던 영지의 방을 떠올렸다. 새 학교의 아이들 몇이 영지더러 촌스럽다고 수군댔지만 또 몇몇은 영지의 짧은 머리에 관심을 보였다. 미용실 정보를 물었던 아이와는 친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통화는 금방 끝났다. 종료음이 울리고 소연이 휴대전화를 닫았다. 하우스 안은 조용했다. 뭔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우스에 간 것이었지만 소연과 민정이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자고, 이런 때일수록 더 똘똘 뭉치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가는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런 때, 라고 말해버리면 정말로 우리에게 나쁜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아서였다. 집이 가장 멀었던 나를 소연과 민정이 데려다주었다. 나는 두 사람의 가방에 박힌 나이키 로고와 노스페이스 로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왔다. 소연은 경기도 북부에 있는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우리 마을에서 차로 다섯 시간 반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놀랍게도 소연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소연은 남자친구와 같은 대학에 갈 거라고 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소연은 모의고사 등급을 최소 세 계단을 올려야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천지가 개벽하는 게 빨랐다. 하지만 나는 소연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만약 소연의 마음에 사랑이, 정말로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때의 나에게 사랑은 그런 의미였다. 내가 그걸 몸소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경을 사랑한 나는 호경이 좋아하는 춤을 계속 췄다. 내게 춤 연습은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살면서 춤추는 걸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비보잉 동작은 아프기까지 했다. 호경에겐 멍 자국 난 몸이 자랑이었을지 몰라도 내겐 아니었다. 무릎이나 팔뚝에 멍이 들면 학교 애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묘한 의심을 받기 좋았다. 그럼에도 내가 호경을 따라 하우스 바닥에 몸을 던진 것은 어디까지나 호경이 기뻐해서였다.
나는 호경과 춤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숨 막히게 뜨거운 하우스에서 춤을 추다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또 춤을 추다가 입을 맞추고 다시 춤을 추다가 헤어지는 데이트는 그만하고 싶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이렇게까지 성실히 할 거라면 공부를 하는 게 건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결국 폭발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날이었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하던 길에 트럭이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이 됐다. 차는 쌩하니 가버렸다. 길 위에 혼자 남은 나는 손으로 얼굴의 물을 훔치다가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내던졌다. 씩씩대며 하우스에 돌아가 문을 발로 찼다.
“야!”
내가 소리치자 호경은 스텝을 밟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호경은 나의 몰골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둥둥둥. 비트 소리만이 나와 호경 사이를 채웠다. 엉거주춤하게 선 호경은 지금 춤 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아는 얼굴로 나를 봤다. 하지만 그 얼굴보다 더 또렷하게 보인 것은 미세하게 박자를 타는 호경의 어깨와 등과 발목이었다. 음악이 들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반응하게 되는, 조건반사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런 호경을 보니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화가 조금 내려갔다. 넌 춤이 정말 좋은 거구나. 하우스 문을 박찰 때까지만 해도 ‘나야? 춤이야?!’ 같은 말을 할 작정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호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나랑 내기하자. 소원 들어주기 내기.”
호경은 수건을 들고 내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이 귀엽긴 했지만 양보할 마음은 없었다.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은 뒤 내기의 조건을 말했다.
“내가 일주일 안에 윈드밀이든 토마스든 돌면, 내가 이기는 거야.”
호경과의 내기에 대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소연은 기숙학원에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쓸 수 없었고, 영지는 고모에게 등을 떠밀려 템플스테이에 가 있었다. 마을에 남아 있던 민정은 보충수업 첫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는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실연이었다. 민정의 돈으로 기타에 불꽃 무늬를 새겨 넣었던 남자친구는 C시에서 열린 청소년 음악제에 다녀온 뒤에 헤어지자고 했다. 이별 통보는 싸이월드 방명록으로 했다. 그리하여 민정은 완전히 녹다운 된 채로 여름방학을 보냈다.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방명록만 열려 있던 민정의 홈피에 찾아가 안부를 묻곤 했다. 민정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그래서 정말 외로웠다. 내기 기간으로 정한 일주일 동안은 호경과도 만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했다. 호경이 나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길 바랐다. 조금이라도 슬퍼하길, 외로워하길. 하지만 나는 호경의 슬픔과 외로움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몫의 슬픔과 외로움뿐이었다. 그걸 털어내고 싶어서 비닐 장판에 계속 몸을 던졌다.
윈드밀과 토마스는 더럽게 어려웠다. 핸드글라이더와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인터넷에서 구한 강습 영상을 보고 또 보고 계속 봐도 요령이 익지 않았다. 왼발을 높이 차라고 해서 할 수 있는 한 힘껏 찼는데도 두 다리는 반 바퀴 만에 떨어졌다. 원심력을 이용하라고 했는데 애초에 내 몸에서 그런 힘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굴렀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나는 호경과 물과 별이 많은 곳에 가보고 싶었다. 바다여도 좋고 계곡이어도 좋으니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별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호경과 입을 맞추게 된다면, 내 첫 키스는 그걸로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몸이 풍차처럼 휙휙 돌아갔다.
어느덧 약속한 목요일이 되었고 나는 호경 앞에서 윈드밀과 토마스를 돌았다. 토마스 첫 바퀴가 휙 돌아갔을 때 내 뱃속에서 모터라도 돌아가는 것 같았다. 부릉부릉. 몸이 막 돌아가고 발목에서 날개가 펄럭대는 느낌이 들더니 윈드밀까지 단번에 성공이었다. 호경은 진심으로 놀란 얼굴이었다.
“언제 이렇게……?”
“소원이나 들어 줘.”
“윈드밀 자세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소원 안 들어 줄 거냐고!”
우리는 바다에 갔다. 하늘이 맑았고 바람도 적당했다. 그리고 딱 내가 원했던 만큼 더웠다. 호경과 손을 잡고 파도를 탔다. 큰 파도를 맞으면 손을 놓치게 되었지만 얼른 다시 찾아서 잡았다. 파도를 탈 때마다 가슴이 울렁였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사랑을 체험하는 기분이어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속에 있었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물에서 나와 컵라면을 먹었다. 그대로 몸을 말리면서 해가 완전히 지기를 기다렸다.
밤은 두꺼비집을 내린 것처럼 갑자기 왔다. 나는 호경의 손을 이끌고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주위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막차 시간이 가까웠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파도의 끝자락을 잡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바다는 멀어지기만 했다. 고개를 드니 밤하늘이 군청색이었다. 해변가 상점들의 간판 불빛 때문에 별은 밝은 것 몇 개만 듬성듬성 보였다. 나는 팔로 호경의 목을 감았다. 호경의 입술이 내 얼굴을 향해 내려왔다. 나는 처음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키스를 했다. 윈드밀과 토마스를 돌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남은 여름을 호경에게 완전히 잠겨 지냈다. 바다에서의 입맞춤 이후 나는 몸의 감각으로도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호경의 단단한 팔과 어깨가 내 몸을 감쌀 때의 기분, 바람떡 같은 입술로 내 입술을 덮을 때의 느낌. 그건 나만 알기에 아까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할 일도 아니었지만 내게는 내가 발견한 기쁨과 경이를 나누고픈 친구들이 있었다. 어서 빨리 아이들과 만나길, 연락이 닿길 바랐다.
소연은 2학기 개학 사흘 전에 돌아왔다.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돌아왔다고만 적어 두고 다른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소연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소연은 울먹이며 전화를 받았다.
“지현아…….”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소연은 울음을 참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집이야? 내가 갈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지금 하우스야. 여기로 와.”
민정이었다. 나는 곧장 하우스로 갔다. 소연은 퉁퉁 부어 있었다. 민정은 소연 곁에 바투 앉아서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평상 끝에 걸터앉자 민정이 말했다.
“헤어졌대. 남친이랑.”
아이들이 연애를 시작한 순서대로 이별을 맞고 있었다. 나는 소연에게 뭔가 위로가 될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얼어버렸다.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내가 바다에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호경과 보낸 여름의 모든 순간은 이제 나만 아는 이야기였다.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아이들과 예전 같을 수 없는 걸까? 나 혼자만 연애를 하지 않았을 때와 비슷해지는 걸까? 한여름의 하우스 안이었는데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완전히 벗지 못한 신발이 발끝에 걸려 있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냥 편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소연과 민정은 잘 들어 주고 기뻐하고 그러는 사이사이에 나를 놀리기도 하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 혼자만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게 미안했다. 나의 말 한 마디가 그 애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나를 미워하게끔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연과 민정과 함께일 때 나사를 잘못 조인 목각인형처럼 삐걱댔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건 정말로 둘 탓이었을 수도 있다. 연애를, 그 좋은 걸, 혼자만 하고 있는 내가 부럽고 얄미웠을 수 있다. 그래서 티가 났을 수도 있고 티를 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맞든 확실한 건 내게 어떤 선택이 강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호경과의 연애를 택했다.
소연과 민정이 나를 빼고 따로 만나는 날이 늘어 갔다. 둘이 찍은 스티커 사진을 미니홈피에서 확인하고 그 아래에 달린 영지의 ‘지현이는 어디?’라는 댓글에 ‘걔 엄청 바쁨ㅋ’이라는 대댓글이 달린 걸 봤을 때 나는 가슴 한가운데서 뭐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수록 나는 호경에게 더 몰두했다. 우리의 연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절히 매달렸다.
하지만 호경의 마음은 시들고 있었다. 호경은 나와 보내는 모든 시간에 시큰둥했다. 그 좋아하던 춤도 대충 췄다. 하우스에 같이 가도 스텝이나 몇 번 밟고 기술을 연습하는 시늉만 하다가 평상에 드러누웠다. 음악을 끄고 그 옆에 눕고 싶었지만 나는 계속 춤을 췄다. 정적과 고요가 두려워서였다. 호경은 만사 귀찮은 얼굴을 하고서 내 동작에 자꾸 시비를 걸었다. 손을 더 빨리 바꿔야지. 다리 더 크게 올리라니까. 호경은 나를 질투하고 있었고, 나는 호경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서운한 기색은 비칠 수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우리 사이가 쩍 하고 갈라져 버릴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스스로가 미워졌다. 그러는 만큼 엄마도 미워하게 됐다. 내가 호경에게 절절매는 게 엄마 탓 같았다. 좋은 건 하나도 안 주고 이상한 것만 물려줬다고,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가 아빠를 잊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방황했다. 그럴 수 있지. 엄마도 사람이니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빠 같은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잘 아는 마음이어서 엄마가 미웠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에코의 <행복한 나를>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전에는 손에 잘 들지도 않던 휴대전화를 열었다 닫으며 망설이거나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나와 우현의 곁에 눕기도 했다. 엄마의 몸에서는 옅게 술 냄새가 났다.
“지현아.”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를 때도 있었다. 우현은 안 부르고 나만 불렀다. 그럴 때 엄마가 하는 말은 언제나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어서 나는 깊이 잠든 척했다. 엄마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자기 방으로 갔다. 엄마가 널찍한 침대에서 혼자 자야 하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누운 자세만 조금 고칠 뿐 일어나지 않았다.
“누나. 엄마 왜 저래?”
우현이 물으면,
“나도 몰라.”
거짓말을 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나는 호경과 잤다. 그날 하우스 평상에는 화투 패가 어질러져 있었다. 소연과 민정이 맞고라도 친 모양이었다. 그 애들이 여전히 하우스에 드나든다는 걸 나는 몰랐다. 학교에서 매일 봤고 급식도 같이 먹었는데……. 그러는 동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쓸모없는 이야기로 끈끈해지던 날들이 완전히 끝나버린 것 같았다. 나는 헝클어진 패들 속에서 삼광을 찾아 주머니 깊숙이 넣고 반으로 접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다. 호경과 자고 싶다고.
무료한 얼굴로 눈을 감고 누운 호경에게 입을 맞췄다. 내겐 이제 너뿐. 나는 그것이 호경과 자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남은 소중한 것인 호경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호경의 품이 필요했다. 그 애의 살갗에 내 살갗을 맞대어 보고 싶었다. 호기심이나 충동 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말은 아무래도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건 10대 여자 아이의 입으로 말해선 안 되는, 설령 말한다고 해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을 마음이었다. 나는 그 뒤로 며칠 동안 내가 어째서 호경과 잤는지, 사랑 말고 다른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찾아낸 말들은 모두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다이어리에서 하트 스티커 하나를 떼어 평상 한가운데에 붙였다. 소연과 민정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춘추복을 입어도 된다고 말했던 날, 나는 호경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딱 한 번이었던 잠자리 뒤로 호경은 내게 잘해 주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용돈도 얼마 받지 않는 주제에 아디다스 저지를 선물로 사줬고 주말이면 영화관과 노래방과 커피숍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노력들은 나를 슬프게 했다. 춤은 안 추냐고 물으면, 춤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경이 미안해서 그런다는 걸 알았다. 호경은 사과하는 사람의 얼굴로 잘해 줬다. 내게 못 할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몸을 밀착하고 있을 때 우리의 사랑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호경에게서 받은 마지막 선물은 새끼 강아지였다. 호경과 강아지를 번갈아 보면서 나는 그만 호경을 놓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갖고 싶다고 한 적 없는 선물을,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는 선물을, 더는 받을 수 없었다. 내가 호경에게 받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고 그건 호경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미안해. 미안했어.”
호경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울다가 끝내 강아지를 안겨 주고 갔다.
3.
집에 데려가긴 했지만 강아지를 예뻐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털 있는 짐승이라면 죄다 무서워하는 우현도 강아지를 멀리했다. 강아지에게 사랑을 준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강아지에게 뽀삐라는 이름도 지어 줬다. 예쁘게 생긴 강아지는 무조건 뽀삐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맘대로 하라고 했다.
“집에 애기가 있는 게 얼마만이니?”
엄마는 뽀삐를 보며 나와 우현의 아기 시절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우현이 싫다고 질색을 해도 엄마는 뽀삐를 집 안까지 데리고 들어왔다. 뽀삐를 안고 TV를 봤고 뽀삐가 잘 때 옆에서 같이 잤다. 그래도 뽀삐 덕분에 엄마가 아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기뻐 보였고 좋아 보였다. 뽀삐에게 조금은 잘해 줘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고 읍내에 나가서 중고거래를 했다. 호경이 준 옷과 음반과 액세서리를 팔아 사료와 개껌과 장난감을 샀다.
집에 돌아가니 우현이 거실 소파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눈이 좀 부은 채였다.
“너 왜 그래? 울었어?”
내가 묻자 우현이 울먹이며 말했다.
“누나. 뽀삐 집 나갔어.”
우현이 집에 왔을 때 엄마는 없었고 뽀삐만 거실에 있었다. 짜증이 난 우현은 현관문을 열고 뽀삐를 마당으로 쫓아냈다. 그런데 뽀삐가 덜 닫힌 마당 대문으로 쏙 나가버린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방에서 게임을 하던 우현은 한참 뒤에야 마당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뒤늦게 찾아봤지만 뽀삐는 어디에도 없었다.
“걱정 마. 곧 오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게도 확신은 없었다. 뽀삐가 과연 혼자서 집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자랐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쓰느라 지친 우현은 소파에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이런 때에 집을 비운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우현이 개를 무서워하는 걸 빤히 알면서 거실에 뽀삐를 두고 나간 무신경함이 미웠다. 기다려도 뽀삐는 오지 않았고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현을 깨워 뽀삐를 한 번 더 찾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흩어져서 뽀삐를 찾았다. 한 시간 넘게 돌아다녔지만 뽀삐는 보이지 않았다. 동네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우현은 또 울었다. 뽀삐가 돌아오면 잘해 줄 거라고 했다. 꼭 그러라고 대답했다. 뽀삐를 찾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우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걷다가 엄마를 봤다. 천변의 벚나무 길에서였다. 아빠와 남이 되기 위해 걸었던 길, 엄마는 그 길을 다른 남자와 걷고 있었다. 손을 꼭 잡고서였다. 엄마는 처음 보는 분홍색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나는 이놈의 세상이 내게 너무하지 않나 생각했다. 인생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야. 눈앞의 엄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로등 불빛 아래로 엄마의 옆얼굴이 슬쩍 보였다. 엄마는 내가 처음 보는 얼굴로 웃었다. 아니 나는 그 얼굴을 알았다. 그건 내가 호경을 볼 때의 얼굴,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런 표정을 지으려면 얼굴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엄마가 물려준 것 중에 꽤 괜찮은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남자가 우산을 펴서 엄마 쪽으로 기울여 주었다. 가로수 아래로 작아져 가는 노란색 우산을 물끄러미 보며 서 있었다. 빗방울이 금세 굵어졌다. 나는 엄마로부터 등을 돌리고 달렸다. 우현에게 뭐라고 설명하지? 아니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야. 계속 달려서 도착한 곳은 하우스였다. 나는 어두운 하우스에서 영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지는 연결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지가 훨씬 많은 말을 했다. 영지는 어제도 만났던 것처럼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영지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발밑에 빗물이 고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우스 지붕이 뚫려 빗방울이 새고 있었다.
“망가진 게 참 많아.”
내가 말했다.
“나만 하겠니?
영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영지를 따라 웃었다. 영지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만날 시간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빗물이 만든 작은 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양말이 푹 젖었다. 전화가 울렸다. 우현이었다.
“누나. 뽀삐 집에 왔어! 얘 되게 똑똑한 거 같아.”
“…….”
“빨리 와. 엄마가 치킨 시켜 준대.”
나는 양말을 벗고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우현에게 말했다.
“두 마리 시켜 달라고 해.”
하우스 문을 잠그고 열쇠를 힘껏 던졌다. 열쇠는 포물선을 그리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휴대전화를 다시 꺼내서 소연과 민정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비는 가을 태풍을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날씨 탓에 치킨 집은 열지 않았고 우현은 하늘에 대고 짜증을 냈다. 엄마는 뽀삐를 안고 일찍 잠들었다. 밤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바람보다 비가 강한 태풍일 거라고 했지만 우리 마을은 반대였다. 새벽녘 한 시간 정도는 마을 사람들이 다 깰 정도로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맞고 학교의 소나무가 쓰러졌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 나무인데 쓰러지고 보니 운동장 절반을 가로지를 만큼 컸다.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나무를 토막 내서 싣고 가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전에는 수업을 듣지 않고 학교 청소를 했다. 우리 학년은 운동장을 맡았다. 나무가 사라진 운동장이 새삼 넓어 보였다. 젖은 흙 위로 점점이 박힌 솔방울이 뽀삐가 싼 똥처럼 보였다. 귀여운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뭇가지와 쓰레기를 줍는 사이에 잘생긴 솔방울도 찾았다. 테니스장 앞에서 붓펜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솔방울을 발견했다. 나는 그걸 손에 넣고 주먹을 꼭 쥐었다. 조금 아팠지만 지압을 하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솔방울을 꼭꼭 쥐며 테니스장으로 들어갔다.
테니스장도 엉망이었다. 장미가 흐드러지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늘어진 네트와 흩어진 공들로 어지러웠다. 나는 교사 휴게실로 쓰는 컨테이너 박스로 갔다. 문 앞에 놓인 노란 상자 속에 망가진 라켓들이 어지러이 꽂혀 있었다. 그나마 쓸 만한 것을 골라 꺼냈다. 줄이 하나 끊어지고 몸통이 조금 휘었지만 한 번 휘두르는 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공을 하나 주워서 머리 위로 던진 다음 라켓을 휘둘렀다. 공은 네트를 살짝 넘어가 코트 구석에 절묘하게 떨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완벽한 스트로크였다.
“와!”
손과 팔에 전해진 감각이 너무 경쾌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주먹을 꽉 쥐자 손바닥에 솔방울이 꾹 눌렸다. 솔방울을 쥔 손을 펴보았다. 자그마한 이빨로 깨문 것 같은 자국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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