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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이 죽은 날

  • 작성일 2023-03-01

조지 마이클이 죽은 날

고요한

조지 마이클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고도 해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잘못 걸었나 싶어 휴대폰을 귀에서 뗀 후 액정에 뜬 이름을 보았다. 해미의 전화번호가 맞았다. 그럼에도 윤해미 씨 휴대폰 맞죠, 하고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묵묵부답이었다.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해 서둘러 용건을 꺼냈다.

- 후지가 아파서 병원 갔다 왔어. 그래서 말인데 후지와 셋이 가족사진 찍으면 안 될까?

용건을 말해도 대꾸가 없어 슬쩍 화가 치밀었다. 말 한 마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가 싫어진 건가. 내 말 듣고 있는 거냐고 톤을 높이자 그제야 대꾸하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전화를 걸어 한숨을 쉬는 건지, 후지가 아파 한숨을 쉬는 건지, 사진을 찍으러 가자 해서 한숨을 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을까 봐 얼른 조지 마이클 이야기를 꺼냈다.

- 가족사진 찍고 조지 마이클을 추모하자. 오늘 조지 마이클이 죽었잖아.

- 조지 마이클이 왜 죽어?

아직 해미는 조지 마이클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지 마이클은 1980년대를 상징하는 영국의 전설적인 팝가수였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두 번이나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게 조지 마이클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노래인 ‘라스트 크리스마스’처럼 크리스마스 아침에 죽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해미는 조지 마이클이 2인조 그룹인 ‘왬’으로 활동했을 당시의 노래까지 알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꼼짝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더 좋아한다는 내색도 못 하고 그의 노래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올 거지?

- 안 가.

- 나 오늘 금수 씨와 뮤지컬 보러 갈 거야.

안 되겠다 싶어 해미가 가장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불렀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아이 게이브 유 마이 하트…… 사망 기사를 찾는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소절을 채 부르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후지가 아프다는 것보다 그의 죽음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노래를 멈추고 거실 벽에 걸린 액자를 바라보았다. 유리가 깨지고 없어 텅 비어 있는 액자였다.

해미와 나는 만난 지 이틀 만에 동거에 들어갔는데, 그때 해미는 자기 몸만 한 조지 마이클 사진을 달랑 들고 들어와 액자에 끼워 넣었다. 한 달 전 집을 나갈 때도 조지 마이클 사진만 빼 들고 나갔다.


해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십 분 후였다. 후지를 보러 잠깐 들른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걸 취소하고 오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겐 오늘이 해미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금수와 만나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금수는 내가 다니는 주류 회사의 동료였다. 주류 회사에서 금수와 나는 매일 2톤 트럭에 소주와 맥주를 싣고 시내 주점과 동네 마트로 배달을 나갔다. 각자 트럭을 몰아 배달은 따로따로 나갔지만 점심땐 중간지점에서 만나 같이 밥을 먹었다. 입사는 내가 일 년 빨랐으나 나이가 똑같아 우린 친구로 지냈다. 그런데 해미가 집에서 나간 걸 알고부터 금수는 나를 피했다. 모닝커피를 마시자고 하면 빈속에는 삼가야 한다며 거절했고 점심을 먹자고 하면 거래처에 수금하러 간다며 마다했다. 퇴근할 때 소주 한 잔 마시자고 해도 갖은 핑계를 댔다.

물론 해미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같이 입사한 동료가 아침마다 시시콜콜 이야기를 해주는 바람에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았다.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것도 동료가 알려준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배달을 끝내고 들어온 금수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금수는 들은 척도 않고 퇴근하기 위해 자신의 차를 세워 둔 곳으로 갔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몸을 반쯤 집어넣은 금수의 팔을 잡아당겼다. 금수는 내 팔을 쳐내고 이미 두 사람은 끝난 게 아니냐고 물었다.

- 우리 아직 안 끝났어.

- 너만 안 끝난 거겠지. 찌질하게 굴지 말고 너도 마음 정리해. 이참에 우리 관계도 청산하자. 사람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집착증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찌질한 새끼.

금수는 내게 쏘아붙이고 차 문을 닫았다. 내가 차 문을 열어젖히자 금수가 나와 멱살을 잡고는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쳤다. 나는 그 일을 떠올리며 거실을 치웠다. 싱크대에 쌓아 둔 밥그릇도 씻고 밥알이 묻은 방석 커버는 세탁기에 처넣었다. 방바닥에 널린 후지의 동화책은 베란다 쪽으로 밀쳐놓고 엄지발가락으로 로봇청소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꼼꼼 청소를 시작합니다. 배우 류승룡의 친절한 멘트와 함께 로봇청소기는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며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과 먼지를 빨아들였다.

한참 돌고 있던 로봇청소기가 딩딩거렸다. 바퀴에 이물질이 걸렸습니다. 이물질을 치워 주세요. 류승룡이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로봇청소기가 동화책에 걸려 헛바퀴를 돌았다. 사이드 브러시에 찢긴 동화책을 치우고 로봇청소기를 들어 충전대에 올려놓은 다음 소파에 있는 후지를 안아 주었다.

- 후지야, 네 엄마가 온단다. 네가 많이 아프다고 했거든. 엄마 오니까 예쁘게 하고 있자.

방울머리끈으로 후지의 머리를 묶어 주고 흘러내리는 앞머리에 빨간색 핀을 꽂아 주었다. 후지를 단장해 주고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에 헤어롤을 말았다. 뒤통수에도 헤어롤을 두 개씩 말아 놓고 미용가위로 삐져나온 콧수염을 잘랐다. 길게 자란 구레나룻까지 다듬자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과 잘 어울렸다.

나는 거실로 나가 새로 산 조지 마이클 사진을 빈 액자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도수 없는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액자 속의 조지 마이클과 나를 비교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며 네모진 얼굴, 턱까지 내려온 구레나룻과 수염, 쌍꺼풀 진 눈과 두꺼운 입술까지 똑같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나보다 후지가 먼저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하룻밤 사이 해미의 긴 머리카락은 단발로 잘려 있었다. 조문이라도 온 듯 해미는 침통한 표정으로 후지의 사타구니에 난 종양 덩어리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 그동안 애를 어떻게 돌본 거야? 왜 갑자기 종양이 생기냐고.

- 네가 우릴 버리고 나간 후부터 그래.

- 나한테 화풀이할 거 애한테 한 거 아냐?

해미는 후지를 바닥에 눕히고 구급상자에서 거즈를 꺼내 종양의 진물을 닦아 준 뒤 나를 쏘아보았다.

- 꼬라지가 그게 뭐야?

- 뭐가?

- 머리에 왜 헤어롤을 말고 있냐고. 수염은 깎지도 않고 안경은 또 뭐야. 참, 가지가지 한다.

조지 마이클처럼 보이기 위해 했다는 말을 꾹 삼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헤어롤을 뽑았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힌 헤어롤을 소파에 던졌다. 헤어롤은 굴러서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헤어롤도 뽑아 던지고 뿔테 안경을 벗었다.

후지를 입양한 후부터 나는 퇴근하면 곧장 집에 들어왔다. 해미가 밥을 하는 사이 나는 거실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셋이 나란히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나는 해미에게 금수와 배달을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점심 메뉴를 고르다 다툰 이야기를 해줬다. 금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해미는 깔깔대며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해미는 후지에게 사과를 깎아 먹이고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그런데 조지 마이클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 가족은 셋이 아니라 넷인 것 같았다. 조지 마이클과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셋이 소파에 앉아 일일드라마를 보는데 해미가 채널을 돌렸다. 얼떨결에 조지 마이클의 영국 공연을 보았다. 해미는 세상에 저렇게 감미로운 목소리가 어디 있냐는 둥, 가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는 둥 조잘댔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공연에 흠뻑 취한 해미가 올 크리스마스 땐 조지 마이클을 보러 영국에 가자고 했다. 딱 잘라 거절한 뒤 조지 마이클보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간을 찌푸리는 해미에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원하는 프로를 보자고 했다. 해미는 티브이가 두 대면 다툴 일도 없다고 쏘아붙였지만 결국 내 의견을 따랐다.

빨리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위바위보, 하고 잽싸게 주먹을 내놓았다. 해미는 보를 내놓고 빙긋 웃었다. 공연은 보고 싶지 않아 후지를 데리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산책하러 나갔다. 빨간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남자가 야구공을 발로 차며 메타세쿼이아 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그 남자를 따라 길 끝까지 갔다 들어가니 공연은 끝나 있었다.

날이 갈수록 가위바위보는 늘었다. 밥 짓기 당번을 정할 때도 가위바위보, 세탁기를 돌릴 때도 가위바위보. 드라마가 종영되는 날도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삼대이로 졌지만 드라마가 마지막 회라면서 한 번만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미는 조지 마이클의 독일 공연이라 안 된다며 리모컨을 쥔 채 화면에 얼굴을 갖다 댔다. 공연 일부가 끝나고 다른 가수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리모컨을 빼앗아 채널을 돌렸다. 해미가 등짝을 후려쳤지만 리모컨을 뺏기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 넌 나보다 조지 마이클이 좋아?

- 당연하지. 난 세상에서 조지 마이클이 가장 좋아.

- 그딴 새끼가 왜 좋은데?

- 그 새끼라니 내 가족한테! 내가 혼자 있을 때 나와 같이 있어 준 사람이 조지 마이클이야.

- 가족은 개뿔. 니가 그 새끼랑 대화를 하냐, 밥을 먹냐, 잠을 자냐. 내가 너랑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지. 그런 내가 가족이지 왜 그 새끼가 가족이야.

- 착각하지 마. 같이 밥 먹고 잠자는 너는 내게 동거인일 뿐이야. 내가 마음을 준 가족은 조지 마이클뿐이라고.

- 그럼 그 새끼랑 둘이 살아!

화를 참지 못하고 조지 마이클을 향해 리모컨을 던졌다. 유리가 깨져 거실 바닥에 튀었고 사진은 반쯤 앞으로 고꾸라졌다.

해미는 고꾸라진 사진을 빼내 밖으로 나갔다. 유리 조각을 밟았는지 거실 바닥에 핏자국이 뭉개져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해미를 불렀다. 해미는 돌아보지 않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절뚝절뚝 걸어갔다.

슬리퍼를 꿰차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사이 해미가 보이지 않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도 없어 환하게 불이 켜진 행복 사진관 앞으로 다가갔다. 쇼윈도에는 둘이 찍은 것도 있고, 셋이 찍은 것도 있고, 손자 손녀와 할머니까지 삼대가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개중 맨 끝에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부부가 돼지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돼지에게도 있는 가족이 왜 내겐 없을까. 해미가 들어오면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으로 갔다. 그때까지 해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고 출근해 회사 식당으로 갔다. 식당 조리실 안에서 칼로 배추를 쪼개는 해미가 보였다. 해미는 나를 보고 배추를 집어 던졌다. 칼까지 날아오는 줄 알고 식겁해 몸을 피했으나 다시 날아오는 배추에 정통으로 맞았다. 배추는 내 가슴을 때리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걸 금수가 보았다. 그때부터 해미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금수를 만났다.


- 그래서 후지는 얼마나 살 수 있대?

악성 종양이라 수술해도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하자 해미는 큰 병원도 가봤냐고 물었다. 큰 병원은 물론이고 대학병원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해미는 한숨을 쉬며 입을 비죽거렸다.

- 내가 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 가족사진 찍고 셋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거지.

- 됐어. 사진은 너 혼자 찍어. 내가 여기 온 건 후지를 데려가기 위해서야. 후지의 마지막은 내가 지켜줄 거야.

후지를 데려가면 해미가 집에 올 일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해미가 집을 나간 후에도 덜 초조해한 건 후지를 핑계로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지의 마지막은 내가 지켜줄 거라며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먹였다. 입맛이 돌아왔는지 후지는 분홍색 혀를 내밀어 낼름낼름 고기를 받아먹었다. 해미가 먹이지 말라고 했으나 며칠간 잃은 밥맛을 찾아 주기 위해 무시하고 줬다. 나를 밀치고 해미는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얇게 깎아 후지에게 줬다. 후지는 사과를 씹지도 않고 뱉었다.

- 후지는 육식주의자야.

나는 해미에게 말했다.

- 내가 만날 사과 깎아 준 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후지는 채식주의자야.

얼른 나는 후지를 끌어당겨 닭가슴살을 줬다.

- 아냐. 후지는 닭가슴살 좋아해. 너 몰래 소고기도 줬어.

해미의 신경을 건드려선 안 되는 걸 알면서 우리를 버리고 간 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 안 해도 될 말이 튀어나왔다. 육식주의자건 채식주의자건 그게 뭐 중요하다고. 눈이 내려 완벽한 크리스마스였으나 벌어진 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해미가 집을 나간 후 내 일상은 시들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무얼 해도 즐겁지 않았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후지를 돌보지 않고 죽은 듯이 소파에 누워 메타세쿼이아 길만 바라보았다. 어쩌면 후지가 아픈 건 나 때문인지 몰랐다. 밥을 먹지 않을 땐 배고프면 먹겠지 하고 무관심했고, 사타구니에 종양이 불거진 것도 몰랐을뿐더러 그걸 알았을 땐 뾰루지이겠거니 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종양이 눈에 띌 만큼 커져서 병원에 갔을 땐 이미 늦었다. 하지만 해미에게 그런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 그만 먹여. 아무거나 먹이니까 애가 아픈 거 아냐.

해미가 내 손에서 후지를 낚아채 옷을 입혔을 때 금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사이 얼른 후지를 품에 안았다. 후지가 해미에게 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놓아 주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며 해미는 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해미는 곧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전화를 끊고 후지를 빼앗아 현관문 앞으로 갔다. 달려가 두 팔로 앞을 가로막았다. 친구 집에 후지까지 얹혀살면 민폐야. 해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뮤지컬 시작 시간이 다섯 시니까 두 시간 동안 해미를 붙잡고 있으면 될 것이었다. 내가 바위처럼 꿈쩍을 않자 해미는 바람에 흔들리는 메타세쿼이아를 바라보았다. 정말 뮤지컬을 보러 갈 거냐고 물었다.

- 뮤지컬을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 상관있지. 금수랑 간다며? 가지 마. 너 뮤지컬 안 좋아하잖아.

- 그래, 안 좋아해. 근데 이 뮤지컬엔 조지 마이클 노래가 나와.

- 그거 다음에 나랑 보러 가자.

- 넌 조지 마이클 싫어하잖아. 금수 씨는 조지 마이클 좋아해.

- 나도 좋아할게. 저기 봐봐.

나는 벽에 걸어 놓은 조지 마이클을 가리켰고 해미는 그제야 그것을 보았다. 지금껏 굳어 있던 해미의 얼굴이 처음으로 부드러워졌다. 이제 됐다 싶어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지만 해미는 못 들은 척했다.

보육원에서 자란 나는 가족사진이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원장실에 불려갈 때마다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가족이 없을까. 나는 침대 맡에 걸어 둔 액자에서 그림을 빼내 뒷면에 아버지와 엄마 얼굴을 상상해 그려 넣었다. 태어났을지도 모를 동생도 그렸다. 나까지 넷을 그려 넣자 완벽한 가족이 꾸려졌다. 하지만 주류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크레파스로 그려 놓은 액자 속의 가족은 더 이상 위안을 주지 못했다.

입사 동료의 집에 갔다 대문짝만 한 가족사진을 본 후 커다란 액자를 사서 벽에 걸었다. 이 안에 가족사진을 찍어 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족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한동안은 일인가족이란 말이 생겨나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내게도 가족이 있는 거니까. 내 가족은 바로 나니까. 그래서 텅 빈 액자 속에 내 사진을 넣었다. 하지만 일인가족처럼 느껴지기는커녕 혼자라는 생각만 더욱 커졌다.

결국 액자에 넣은 사진을 빼내고 입사 동료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동료는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게 해미였다. 회사 인근 레스토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휴대폰에 가족사진을 저장해 다니느냐고 물었다. 가족사진은 방 한가운데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다며 해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순간 해미는 입사 동료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마음이 따뜻할 거라 믿었다. 커피를 마신 후 해미는 가족사진을 보여준다면서 자신의 단칸방으로 나를 끌고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벽을 바라보았다. 벽 한가운데 붙여 놓은 사진 속에서 백인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이게 가족사진이에요? 그럼요. 여기 나랑 조지 마이클. 사진 한 귀퉁이에는 해미의 사진이 초라하게 붙어 있었다.


- 라스트 크리스마스, 아이 게이브 유 마이 하트……

아까 채 못 부른 노래를 다시 부르자 해미는 후지를 안고 창가로 갔다. 저곳은 메타세쿼이아 길, 저곳은 파출소, 저곳은 새마을 금고, 저곳은 버스정류장, 저곳은 행복 사진관…… 건물 이름을 하나씩 알려주는 사이에도 나는 어설픈 발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해미는 아무런 표정 없이 창문을 열더니 손바닥에 눈을 받아 후지의 입가에 대주었다. 먼지처럼 창문으로 눈이 날아 들어왔다.

- 맨 처음 일한 곳이 명동의 레코드 매장이었어. 쉬는 날도 없이 하루 종일 매장을 지키면서 칠 년을 일했어. 참을 수 없는 건 크리스마스였어. 미사를 보려고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얼마나 외롭던지. 그때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왔어.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나를 안아 주었어. 순간 외로움을 잊은 거야. 백 번도 넘게 그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조지 마이클과 크리스마스를 보냈어. 일이 끝나고 난 벽에 걸린 조지 마이클 브로마이드를 떼어 벽에 붙였어. 그날 밤 조지 마이클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지.

그제야 나는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게 된 걸 이해하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바라보았다. 잎이 다 떨어진 메타세쿼이아는 살을 발라낸 생선뼈를 세워 놓은 것 같았다. 빨간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남자가 야구공을 발로 차며 메타세쿼이아 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남자가 사라진 후 해미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초인종 소리에 내 목소리는 묻혔다. 나는 해미를 노려보았다.

- 금수 부른 거야?

- 뮤지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구원자를 만난 듯 해미는 현관문을 가리켰다.

-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해. 거기서 뮤지컬 하거든. 어서 문 열어 줘.

씩씩대며 현관 앞으로 다가갔지만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해미를 데려가려고 왔다면 여기서 금수와 단판을 지어야 했다. 엎어진 해미의 신발을 툭 차고 문을 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티브이 박스만 보였다. 박스 밑으로 금수가 늘 신고 다니는 아디다스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박스를 밀었다. 밀리지 않으려고 금수도 내 쪽으로 박스를 밀었다. 힘에 밀려 내 등이 벽에 닿자 숨이 막혀 주먹으로 박스를 쳤다. 박스가 뒤로 물러났다. 관계를 청산하자는 놈이 웬일로 집까지 찾아왔냐고 빈정댔다. 우선 이 멍청한 티브이 박스 좀 치우란 말야. 이건 대체 왜 들고 온 거야.

- 배달이 좀 늦었죠? 고객님.

금수가 아니었다.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옆집과 호수를 착각하고 초인종을 누른 것 같아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아침부터 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오느라 티브이가 배송되는 날인 걸 깜빡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티브이 박스의 끄트머리를 잡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털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피곤해 보였다. 수염은 깎지 않아 거칠었고 얼굴은 잠을 못 자 누렇게 떠 있었다. 남자는 박스를 싼 밴딩끈을 잘라내고 스티로폼에 쌓인 티브이를 꺼냈다. 금수가 아니어서 해미는 실망한 눈빛이었다. 해미 앞으로 다가가 새로 산 티브이를 가리켰다.

-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 이거 나 때문에 주문한 거야?

- 응.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눈이 거실 바닥에 쌓여 면도날처럼 희끗희끗 반짝였다. 창문을 닫다 눈을 밟았는데 면도날에 벤 듯 발바닥이 시렸다. 발바닥에 눌린 눈을 털고 이젠 티브이 때문에 싸울 일은 없겠다고 말했다.

- 조지 마이클이 죽었는데 티브이가 두 대인 게 무슨 소용이야. 근데 주는 거니까 받을게.

거실 벽 한가운데 티브이를 거치하려고 브라켓을 박으려는 남자를 해미가 제지했다. 나는 티브이를 방에 놓을 거냐고 물었다.

- 아니, 가져가려고.

- 가져가? 어디로?

- 금수 씨네 집으로.

- 그건 안 돼.

- 내 선물이라며?

가져가네 못 가져가네 티격태격하는데 로봇청소기가 내 발등을 타고 올라왔다. 장애물에 걸렸습니다. 장애물을 치워 주세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승룡은 평온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가 왜 장애물이야, 승룡이 형.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만날 청소시켰다고 볼멘소리 하는 거야? 장애물은 내가 아니라 금수란 말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은지 류승룡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눈치를 보던 남자가 로봇청소기를 밀쳐 충전대로 보냈다. 로봇청소기는 충전대로 가다 후지를 밀쳤다. 해미가 로봇청소기의 등짝을 후려친 뒤 엎어진 후지를 끌어안고 불안해할 때마다 먹이는 간식을 줬다. 후지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해미가 간식을 씹어 손바닥에 놓자 그제야 혀를 내밀어 핥았다. 나는 남자에게 티브이 설치는 하지 말고 가라고 했다. 남자는 밴딩끈을 쓸어 박스에 담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는 까치발을 들고 나갔다.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손톱으로 스티로폼을 긁었다. 삐비비빅 소리를 내며 거품처럼 하얀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해미를 집에 눌러 앉힐 방법을 곰곰이 떠올렸다. 조지 마이클을 볼모로 잡고 있을까. 후지가 죽을 때까지 데리고 있을까. 그런데 그것들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해결책은 해미가 나를 가족으로 인정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티브이를 사는 것보다 그게 먼저 선행되어야 했다.

- 눈까지 오니까 사진 찍기엔 딱이야. 사진 찍어서 이 액자에 넣자. 이런 액자에 셋이 들어가면 예쁠 것 같지 않아?

나는 벽에 걸린 액자를 내린 후 조지 마이클 사진을 빼서 소파에 놓았다. 그러고는 액자 틀 안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라면 박스만 한 액자의 한쪽이 내 얼굴로 채워졌다. 해미에게 액자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내자 별짓을 다 한다면서 얼굴을 구겼다. 나는 오른손으로 후지를 들어올려 액자 가운데 부분을 채웠다. 그리고 액자 틀을 든 채 해미 옆으로 슬그머니 한 발을 옮겼다. 해미는 그런 나를 비웃고 옆으로 한 발자국 갔다. 액자 틀을 잡은 손이 저렸지만 참고 다시 쓱 한 발자국 갔다. 한 발짝씩 다가갈 때마다 해미는 옆으로 한 발짝씩 달아났다. 거실을 한 바퀴 돌 때까지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 두 발자국 달려가 해미를 액자 틀 안에 넣었다. 해미가 손으로 액자를 밀어냈다.

- 근데 왜 우리가 가족사진을 찍어야 하지?

- 우린 가족이니까. 한집에 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후지까지 있잖아.

- 한집에 산다고 가족이야?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지만 거래처 고객을 대할 때처럼 설득 방법을 찾는데 소파 위에서 웃고 있는 조지 마이클이 보였다. 액자 틀을 내려놓고 해미에게 말했다.

- 이렇게 생각해 봐, 외롭고 쓸쓸할 때 너와 같이 있어 준 조지 마이클이 네 가족이라며. 마찬가지야. 내가 외로울 때 네가 나타나 줬고, 힘들 때도 네가 내 옆에 있어 줬어. 버려진 후지를 입양해 우리가 옆에 있어 줬고. 그러니까 우린 가족이지.

- 조지 마이클이 내 가족인 걸 인정하는 거야?

- 어? 그, 그래. 쉽게 말하면 그런 이치지. 이젠 나도 조지 마이클을 가족으로 받아들일게. 그러니까 너도 우리가 가족이란 걸 인정해야지?

음, 하고 해미는 뜸을 들였다. 나는 조지 마이클 사진을 사러 팬시 가게를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닌 이야기를 해줬다. 조지 마이클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알려줬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급식을 하는 단체인 ‘엔젤 푸드’의 가장 큰 후원자였고 에티오피아 기아 지원 활동을 했다는 것. 그의 선행을 알고 나도 에티오피아 기아 지원에 만 원을 보탰다면서 이젠 마이클 잭슨보다 조지 마이클이 더 좋다고 했다.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수염을 기른 것도 조지 마이클을 닮으려고 한 거라고 하자 해미가 환하게 웃었다.

마침내 해미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인정했다. 나는 해미를 끌어안고 내년 크리스마스엔 조지 마이클을 보러 영국에 가자고 했다. 조지 마이클이 죽었는데 영국에 가서 뭘 하냐며 해미는 나를 밀쳤다. 내가 올 크리스마스 때 영국 가자고 했잖아. 내 말대로 했으면 지금 그의 장례식장에 조문이라도 갔을 거 아냐. 안타까워하는 해미에게 내년엔 그의 생가를 찾아보고 그가 공연한 곳을 둘러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휴대폰 벨소리에 내 목소리는 묻혔다. 해미는 내 눈치를 보다 금수의 전화를 받았다. 해미는 후지가 아파 뮤지컬을 볼 수 없다면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 조지 마이클과 가족사진 찍자.

해미가 말했다.

- 뭐?

- 가족이 되었는데 빠뜨릴 순 없잖아.

- 조지 마이클은 죽었잖아?

- 이것 가져가면 되겠네. 넷이 찍어서 액자에 넣으면 예쁠 거야.

해미는 소파에 있는 조지 마이클 사진을 가리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해미를 설득하다 보니 조지 마이클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꼴이 된 것이다. 그나마 조지 마이클은 죽은지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일단 해미는 추모부터 하자고 했다.

나는 소파 위에 조지 마이클 사진을 세웠다. 소파와 벽 틈 사이로 사진이 빠졌다. 소파를 밀쳐 사진을 끄집어내 다시 세우고 동화책으로 양쪽 아랫부분을 받쳤다. 해미는 쭈뼛쭈뼛 조지 마이클 앞으로 가더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부디 그가 천국에서도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부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천국에도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해주세요. 진짜 가족이 죽은 것마냥 해미는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조지 마이클의 명복을 빌었다. 당신의 죽음이 나와 해미를 다시 연결시켜 줬다고.

기도를 마치고 작년에 산 커플 산타 룩을 입고 주머니에 안경을 넣었다. 해미는 조지 마이클을 추모하는 의미로 입는 거냐고 물었다. 말하자면 그런 셈이라고 둘러대자 해미는 곧장 옷을 갈아입었다. 산타클로스 옷은 단발머리와 잘 어울렸다.

해미는 후지를 품에 안고는 조지 마이클 사진을 둘둘 말아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눈과 함께 얼굴에 훅 끼쳤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옆집 여자가 해미를 보고 요즘 얼굴 보기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해미는 살짝 목례만 하고 사진관으로 걸어갔다. 앞서가는 발자국에 내 것을 포개자 초조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해미의 발자국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것 같지 않았다. 얼른 발자국을 따라잡아 어깨에 손을 올리고 보조를 맞췄다. 내 손등에 하얀 눈이 쌓였으나 그것마저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내 생의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파출소를 지나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행복 사진관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맞이 가족사진 70% 특별세일이란 현수막 끈 한쪽이 떨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머리에 쌓인 눈을 털고 있는데 해미가 쇼윈도 앞으로 갔다. 해미는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부부 사진을 보고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실내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부부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부부 옆으로 가서 앉았을 때 빨간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사진사가 보였다. 야구공을 차며 메타세쿼이아 길을 뛰어가던 남자였다. 입구 한쪽 바구니에 담긴 야구공에 시선이 머물자 사진사는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나를 자주 봤다며 아는 척을 한 후 노부부를 불렀다. 할아버지 혼자만 카우치에 앉았다. 영정사진을 찍어 달라면서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보고 웃었다. 할아버지가 찍고 나자 할머니가 카우치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틀어진 목도리를 바로잡아 주고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도 카메라를 보고 웃었다. 노부부가 외투를 챙겨 입고 나간 후 사진관은 적막했다.

- 오늘이 조지 마이클에겐 마지막 크리스마스였네. 이젠 그가 죽어 다시는 크리스마스가 올 것 같지 않아.

나는 넋두리를 하는 해미를 위로해 주었다.

- 조지 마이클이 죽어도 크리스마스는 와. 새로 산 티브이로 그의 노래를 들으면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될 거야.

나는 안경을 꺼내 쓰고는 사진사에게 가족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근데 누굴 닮은 것 같은데. 조지 마이클요? 아, 맞네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해미를 쳐다보았다. 봤지? 조지 마이클 닮았다잖아. 수염만 조금 더 기르면 완전 조지 마이클이야. 나는 후지를 안고 카우치에 앉았다. 해미는 내 옆에 앉아 조지 마이클 사진을 펼쳐 카우치에 기대 세웠다. 사진사는 그런 해미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못 본 척 오른손을 펼쳐 해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해미는 손을 벌려 조지 마이클을 끌어안았다. 사진이 고꾸라질까 봐 해미는 그것만 신경 쓰고 있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우리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표정이 굳었던지 사진사는 사과를 통째로 입에 넣을 때처럼 입을 벌리고 활짝 웃으라고 했다. 나와 해미가 최대한 입 꼬리를 올려 웃자 사진사는 셔터를 눌렀다. 우리 후지도 웃었나요? 내 말에 사진사가 고개를 저었다. 목을 살살 긁어 줘도 웃지 않아 사진사가 딸랑이를 흔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진사는 딸랑이를 던지고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고 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지가 카우치 다리에 오줌을 지리다 뒷발이 미끄러져 배가 바닥에 닿았다. 힘겹게 일어선 후지는 사타구니에 난 종양 덩어리를 핥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미가 후지를 들어 안아 카우치에 앉혔다.

- 영정사진 찍어 주세요.

갑작스런 행동에 말리지도 못하고 후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딸랑이를 흔들어도 웃지 않던 후지가 나를 향해 컹, 하고 짖고는 조금 전 할아버지처럼 웃었다. 사진사는 영정사진을 찍고 컴퓨터 앞으로 나를 불렀다. 씁쓸한 마음으로 영정사진을 고르고 나자 사진사는 넷이 찍은 것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본 순간 해미의 가족은 내가 아니라 조지 마이클이란 걸 깨달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없었다. 해미와 두 명의 조지 마이클이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빨간 우산을 쓴 채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가 보였다. 노부부의 모습 속으로 나와 해미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옆에 껌처럼 들러붙어 있는 늙은 조지 마이클도. 한 세월 동안 틀어진 목도리를 바로잡아 주고 영정사진까지 찍어야 가족이 완성되는 것일까. 그때 사진사가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틀고는 내게 엄지척을 했다. 허탈한 표정으로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들었다. 오늘이 우리에게도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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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히데오 서장원 히데오에겐 몇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친부가 일본인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어느 저녁나절, 한적한 거리를 걷던 중에 히데오는 이 사실을 내게 말해 줬다. 이후 히데오는 어린 시절에 대해 조금씩 더 들려주었고, 나중에 나는 히데오의 생애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꿸 수 있게 됐다. 히데오가 태어난 곳은 교토 외곽으로, 한국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행지 교토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였다. 히데오는 그곳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습한 여름 날씨나 우듬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자기 기억인지 교토에 대해 보고 들은 뒤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이곤 했다. 교토에서 있었던 일 중 히데오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모두 나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책상 가득 자이니치나 조센진, 총 같은 단어가 적혀 있던 풍경이나 동급생 남자애들이 그의 가방을 걷어차며 드리블 시합을 했던 일, 그를 조롱하려고 반 아이들이 케이팝 노래를 개사해 불렀던 일, 그런 사건들. 한번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 저녁에 히데오의 부모는 아들을 위해 나고야로 이주하는 일을 의논했다. 히데오의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나고야에서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히데오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데오가 아는 한, 히데오의 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남편도 아들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날 밤, 히데오는 코의 통증과 식도로 넘어오는 피,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과 나고야에서 보낼 새로운 나날의 환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히데오의 부모는 나고야행을 두고 갈팡질팡했고, 히데오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 후 히데오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경기도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일본에서의 삶을 철저히 숨겼다. 나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첫 번째 이름 히데오를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히데오를 처음 본 건 연극원 강의실에서였다. 아직 벚꽃도 피지 않은 3월, 나와 히데오를 포함해 여덟 명의 학생이 강의실에 책상을 둥글게 붙여 앉았다. 그해 연극원에서는 입학이 예정된 학생들을 모아 15분 내외의 단막극, 일명 “짤막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신설했다. 입학 전에 그룹별로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3월 개강과 동시에 연극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이색적인 신입생 환영회라 할 수 있었다. 학보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신입생 그룹 중 하나를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해 들어 나에게 처음

  • 관리자
  • 2025-06-01
그리고 밤과 가을이

그리고 밤과 가을이 김연수 1 지난여름, 정기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길을 걸어갈 때면 날벌레들이 달려드는 것 같아 혼자 손사래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기사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 뒤쪽에서 번개 같은 게 번쩍이기도 했다. 노안이 찾아온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안경도 새로 맞췄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시력이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 더해 전에 없던 것들이 보이는 증상까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독서가 성가신 일이 되면서 생활은 성기어지고 마음은 허술해졌다. 더 오래전, 나이가 들면 활자 같은 건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물든 마음을 고치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은근히 노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절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두 번째는 포항에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 민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건 서울과 포항이라는 지리적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에 집을 새로 구하면서 민지는 아빠인 정기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사의 이유가 언제부터인가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여자 선배 희선과 같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됐다. 그는 민지와 희선이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번 딸에게 희선에 대해 물었지만, 민지의 반응은 모호했다. 그러다가 정기는 그 일에 대해 더 묻지 않게 됐다. 한 번은 민지가 “나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앞뒤 대화의 맥락으로는 그 일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정기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자신이 담당한 부고란에 누구의 죽음을 다룰 것이냐는 점이었다. 최종 후보는 미국의 SF 소설가와 전 여당 대표, 둘 중 하나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신문 부고란에 누구를 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기에게는 앞의 두 고민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앞의 두 고민은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결과를 수습하는 것이었지만, 세 번째 고민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기는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냐, 정치인이냐. 정기의 고민은 여름만큼이나 깊어졌다. 2 노트북 화면 너머로 신문사 후배인 은영이 지나가고 있었다. “휴가는 즐거웠어?” 정기가 알은체를 했다. “줄곧 비만 내렸잖아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떻게 해요?” 잔뜩 낯을 찌푸리며 은영이 말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거 따지고 들면 아무 데도 못 가죠. 태풍 지나갈 때 제주 안 있어 봤죠? 그게 진짜 여름이더라구요. 바람이 몰아치는데, 어휴, 엄청났어요. 그러더니만 휴가 마지막 날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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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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