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구와구 이빨 괴물
- 작성일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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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와구와구 이빨 괴물
박나현
‘엄마 사라져라. 사라져라. 알라핑퐁쑝.’
나는 귀를 막고 주문을 외웠다. 엄마의 잔소리 태풍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김준! 어서 밥 먹어. 학교 늦잖아. 옷은 그게 뭐니? 제대로 못 입니? 너 이제 어린애 아니야. 열한 살이야. 다 너 잘되라고 엄마가 이러는 거야.”
내 귀에 마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잔소리가 시작되면 꽉 닫히는 마개 말이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상했다. 이렇게 조용할 수가.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옆집에 잘못 온 것 같았다. 문밖에서 호수를 확인했다. 우리 집이었다. 이 낯선 풍경은 뭐지? 평소는 이렇다. 거실에는 전화하는 엄마가 있다. 내가 온 걸 알아채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때부터 두두두두 잔소리 공격이 시작된다.
나는 살금살금 거실로 걸어갔다. 엄마가 없다. 어, 그런데 엄마의 휴대전화는 있다. 엄마와 휴대전화는 한 몸처럼 늘 함께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뭐지? 주문이 통했나?’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내 뒤통수가 싸늘했다.
“김준. 손 씻었어? 집에 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했잖아!”
엄마다. 나는 귀를 막고 방으로 달리듯 걸어갔다. 그때 무언가 돌멩이 같은 것이 발에 걸렸다. 발밑을 살폈다.
“으악!”
방금 스케일링이라도 한 듯 눈부신 틀니가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징그러운 건 틀니에 붙어 있는 두 눈이었다. 위아래, 이쪽저쪽 뱅글뱅글 돌아갔다. 틀니 밑에는 짧은 다리가 달려 있었다. 더욱 특이한 건 발이었다. 다리 길이보다 발이 더 컸다. 이빨 괴물은 커다란 두 발을 모으고 콩콩콩 뛰어다녔다. 눈, 이빨, 발뿐인 군더더기 없는 몸매의 삼등신, 이빨 괴물이었다. 이빨 괴물이 내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으아아아아. 이거 놔!”
나는 발을 흔들었다. 이빨 괴물이 뒤로 콩 뛰어 한 발 물러섰다. 나와 이빨 괴물은 3초간 정지 상태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이빨 괴물이 눈알을 위로 올리더니 이빨을 탁탁대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재빨리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뭐, 뭐, 뭐야? 저 이빨?”
내 심장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그때 문 뒤에서 잔소리 공격이 시작됐다.
“김준, 너 안 나와! 이야기 아직 안 끝났는데 방에 들어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괴물인가? 내가 알고 있는 괴물은 아주 크고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괴물이라기에는 너무 단순한 몸매였다. 그럼 새로 나온 로봇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운 말발이었다. 아, 몰라. 몰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로봇이든 괴물이든 엄마 목소리라니, 정말 소름 끼쳤다.
나는 방문에 귀를 찰싹 붙였다. 밖이 조용했다. 방문을 빼꼼 열었다. 으악, 이빨 괴물이 눈알을 굴리며 콩콩콩 뛰어왔다.
“김준, 아직 말 안 끝났어!”
나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아야!”
쿵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죽었나?’
나는 살짝 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이빨 괴물이 뒤로 발랑 넘어져 바둥대고 있었다.
‘저 어설픈 괴물은 뭐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어설퍼도 괴물은 괴물이었다. 어디다 신고해야 하나? 112로 하면 될까? 나는 작은 소리로 어떻게 말할지 연습했다.
“틀니만 있는 이빨 괴물이 엄마 목소리로 잔소리해요.”
연습한 뒤 내 모습을 훑었다. 대충 봐도 오래 봐도 착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장난 전화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괴물을 신고하는 곳은 없나? 휴대전화로 ‘괴물 신고’를 검색했다. ‘괴물 투수’ 야구선수나, 가지고 놀면 엄마한테 혼나는 ‘액체 괴물’에 대한 기사뿐이었다.
그때 이빨 괴물이 방문을 두드렸다.
“김준, 집에 오면 간식 챙겨 먹으라고 했지. 다른 애들은 알아서 잘한다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빨 괴물도 엄마처럼 다른 아이와 비교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 효과 백배라는 잔소리 공식이라도 있나 보다. 언제는 넌 남들과 다르다고 하고 언제는 남들처럼 못하냐고 한다. 엄마 잔소리는 늘 엄마 마음대로다.
아, 간식 안 먹는다며 버텨야 하는데, 꼬르륵, 꼬르륵. 눈치 없는 배꼽시계가 울려 댔다. 문을 열면 지는 거다. 꼬르륵, 아니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나는 문을 열었다. 이빨 괴물이 콩콩대며 쫓아왔다.
“너 옷이 그게 뭐니? 좀 단정하게 못 입어! 머리는 또 그게 뭐야? 넌 누굴 닮아 이 모양이야. 그 아빠의 그 아들 아니랄까 봐. 어쩜 그런 것까지 똑같니?”
어떨 때는 아빠에게 하는 잔소리 같다. 아빠 대신 대답할 수 없어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다고 잔소리한다. 잔소리 백과사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크림 빵을 와구와구 입 속에 구겨 넣었다.
“식탁이 더러워졌잖아. 바닥에 흘리지 좀 마.”
나는 빵을 씹으며 이빨 괴물을 흘겨봤다.
“너 눈 왜 그래? 어디 찢어진 가자미눈으로 쳐다봐! 눈 착하게 못 떠?”
이빨 괴물이 눈알에 힘주며 이빨을 탁탁댔다.
‘원래 찢어진 눈이거든. 착하게 떠도 똑같거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빵과 함께 꼴깍 삼켜 버렸다. 목구멍에 빵이 걸렸는지 답답했다. 마지막 빵까지 입에 넣고 식탁 의자를 거칠게 밀었다. 이빨 괴물이 의자에 밀려 발랑 넘어졌다.
“아야. 너 일부러 그랬지? 이 녀석이.”
오호, 이빨 괴물의 약점을 알아냈다. 의문의 일 승을 한 것 같았다. 이빨 괴물의 공격 무기는 잔소리 폭탄이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한참을 바둥대던 이빨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나를 보며 두 발로 콩콩콩 뛰어왔다.
“어서 숙제해. 집에 오면 가방 정리하고 숙제부터 하라고 했지. 미리미리 해 놓으면 좋잖아. 다 너 잘되라고 내가 이러는 거잖아.”
나는 휴대전화를 보며 못 들은 척했다.
“내가 말하는데, 지금 전화를 봐? 휴대전화 당장 압수야!”
이빨 괴물을 피해 나는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빠른 걸음을 걸어도 이빨 괴물이 따라와 잔소리했다. 나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이빨 괴물을 슬쩍 밀었다.
“앗!”
이빨 괴물이 뒤로 발랑 넘어졌다. 천장을 보며 두 발을 바둥대는 꼴이 웃겼다. 픽,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내가 넘어졌는데 웃어?”
엄마 목소리라 조금 뜨끔했다. 그냥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건 분명 이빨 괴물이다.
이빨 괴물은 지치지 않았다.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일단 방으로 후퇴했다. 이빨 괴물이 방문에 대고 큰소리쳤다. 화장실도 좋은 피신처가 아니었다. 나는 두 귀를 막고 버텼다.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말끝마다 붙은 저 꼬리표. 다 나 잘되라고 잔소리하는 거라고?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팡! 하고 터져 버렸다.
“그만해! 이 징그러운 이빨 괴물아!”
이빨 괴물이 주춤거렸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어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어!”
나도 이제 이판사판이다.
“그럼 눈을 네모로 떠? 나도 입이 있다고! 소리 지를 수 있다고.”
이빨 괴물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나. 지금 무슨 말버릇이야!”
나는 손을 들어 타임을 걸었다.
“근데, 배은망덕이 뭐예요?”
이빨 괴물은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설명했다.
“배은망덕? 배은망덕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걸 말해.”
아, 그런 뜻이구나.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덕은 뭐예요?”
이빨 괴물이 바닥에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꼭 엄마 같다. 엄마도 잔소리하다 내가 물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알려 줬다.
“은덕은 은혜로운 덕을 말하지.”
“아, 그럼 덕은요?”
이빨 괴물이 이빨을 탁하고 한 번 부딪치더니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녀석이! 너 지금 장난쳐? 열 살이 넘었는데 덕이란 말도 몰라?”
나는 정말 몰라서 물었다. 열한 살이면 다 알아야 하는 법이라도 있나?
“만날 못한다고만 하고. 나도 잘하는 거 많거든!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고 나서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너 잘하는 거 있지. 뭐 질질 흘리는 거 잘하지. 너 정신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니?”
“정신? 정신은 우리 엄마 이름이거든. 이정신. 엄마 이름을 왜 내게 찾아?”
이빨 괴물의 눈알이 벌게졌다. 눈알에 붉은 핏줄이 터질 듯 솟아나더니 몸을 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 순간 끼익끼이익, 소름 돋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빨 괴물이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내 팔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내 귀를 꽉 막았다. 이빨 괴물은 이빨을 갈 때마다 몸이 점점 커졌다. 마치 황소개구리처럼. 나는 두 귀를 막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몸이 터질 듯 빵빵해진 이빨 괴물이 이빨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엄마는 말이 막힐 때마다 저 말을 했다. 엄마의 최강 무기라도 되는 듯 말이다. 내가 ‘죄송해요.’란 말을 해야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났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빨 괴물이 엄마 목소리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꾹꾹 참았던 말들을 줄줄 쏟아 냈다.
“공부, 공부해서 잘될 거면 엄마가 하면 되잖아! 엄마도 공부 안 해서 훌륭한 사람 안 된 거 아니야?”
“이 녀석! 힘들게 낳아서 키워 놨더니, 어딜 대들어?”
“나도 살기 힘들다고, 학교에 학원에 잔소리에 정말 짜증이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통에 집 안에 고래가 헤엄쳐 다닐 것 같았다. 하지만, 고래는 없고 이빨 괴물의 몸이 천장에 닿을 듯 커져 있었다. 조금만 더 소리를 지르면, 이빨 괴물의 몸이 빵! 하고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엄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찐찐찐 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이빨 괴물이 소파 위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휴대전화 창에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할머니다. 손이 없는 이빨 괴물이 이빨로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이번에는 ‘깨톡’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오늘 김치 가지러 온다더니 왜 안 와? 한참을 기다렸잖아.
―넌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니?
―내가 너 때문에 잠이 안 온다 안 와.
―내가 시집간 딸 걱정해야겠어?
엄마의 휴대전화 창에 할머니의 잔소리 문자가 줄줄 이어졌다. 깨톡이라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소했다.
“또, 또 잔소리. 아휴, 듣기 싫어!”
이빨 괴물은 짜증 난 듯 혼잣말을 툭 내뱉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깨톡도 씹니?
―엄마 말 잔소리로 들리지?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아이참, 엄마 때문에 못 살아 정말.”
몸이 빵빵해진 이빨 괴물이 화가 난 듯 방방 뛰었다. 뛸 때마다 빵빵하게 부푼 몸이 천장과 벽에 통통 부딪혔다. 나는 팔짱을 끼며 이빨 괴물을 쳐다봤다. 이빨 괴물은 나를 보며 헛기침했다. 나는 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할머니 깨톡 잔소리에 이빨 괴물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푸, 그러자 갑자기 이빨 괴물의 몸이 쪼그라들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실을 이리저리 튕겨 다녔다. 천장에 툭, 벽에 툭, 바닥에 툭. 쉴 새 없이 튕겨 다니던 이빨 괴물이 바닥에 톡 떨어졌다. 발랑 뒤집힌 채 두 발을 바둥대고 있었다. 눈알도 어지러운 듯 뱅글뱅글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에 깔깔깔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니 내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엄마다.
“어어어 어어어.”
엄마는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뭐라 말하려는 듯 보였다.
“아아, 아아.”
엄마가 턱을 잡고 입을 쩍 벌린 채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빨 괴물이 엄마에게 콩콩콩 뛰어갔다. 도움닫기를 한 이빨 괴물이 힘껏 뛰어올라 엄마 입속으로 들어갔다.
“아아아, 아아 이제야 말이 나오네.”
턱을 만지던 엄마가 쉴 새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턱이 빠져 버렸나? 얼마나 놀랐는지. 어휴 세상에. 지금은 괜찮네.”
나는 엄마 입에서 반짝이는 이빨 괴물을 힐끔거렸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휴대전화도 놓고 말이야. 내가 요즘 어디다 정신을 두고 다니는지 모르겠어.”
나는 입으로 풍선을 만들며 웃음을 참았다.
“김준. 너 손 씻었어? 손부터 씻어야지. 엄마가 몇 번을 말해!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했어? 안 했어?”
떡 싫어한다고 말하려는 걸 꿀떡 삼켰다.
“아아아, 턱이 왜 이렇게 뻐근해. 또 빠지는 거 아냐? 아아아.”
나는 귀를 후비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 놓고 거울을 봤다.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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