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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중에서

  • 작성일 2013-07-04
  • 조회수 2,240

   김수우,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중에서




서부 아프리카의 모리타니. 그 사하라 사막의 끝단에 있는 누아디부라는 해안 도시에서 나는 2년여를 지냈다. 우리는 그곳에서 유일한 한국가정이었다. 나중에 두어 집 생기기는 하였지만,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임신기간을 보내었다. 입덧을 잘 견디는 중인데 하루는 느닷없이 생 무가 먹고 싶어졌다.

   “저, 생 무가 먹고 싶은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그냥 중얼거렸을 뿐인데, 남편은 고민했고, 그날부터 대서양 앞바다는 생무를 구하는 무선들로 바빠졌다. 한국 원양어선들이 서로서로 불러 무를 찾고, 없으면 다시 각각 다른 배를 불러 물었다. 

   “생 무가 있는가, 생 무가 급히 필요하다. 오버.”

   다 대서양에 조업 중인 배들이었고, 모두들 육지를 떠난 지 오래되어 가끔 선박 편으로 부식을 조달받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한 배에서 대답이 왔다. 

   “무우는 없는데 깍두기는 있다, 오버.”

   서로 가까운 배들끼리 몇 번의 접선을 거치며, 건네지고 건네져서 깍두기는 사하라사막의 모퉁이 항구 누아디부에 닿았다. 열흘 만에 식탁에 깍두기가 놓인 것이다. 그 눈물겨운 행복감. 양파로 김치를 담아먹던 그 시절. 아삭이는 깍두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다음날부터 복숭아도, 다른 과일도 대서양을 누비는 무선을 통해 원양선박에서 계속 날아든 것은 물론이다. 사막이라 물질적으로 부족했는지 몰라도, 아마 난 가장 행복한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기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태아였을 것이다. 

   3.5kg. 아기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손길을 받으며 건강한 첫울음을 터뜨렸다. 그 나라에서 최초의 한국인으로 태어난 아이는 그곳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중략)

   대서양을 오가던 그 목소리들이, 마음속에서 봄풀처럼 돋았다 가을잎 처럼 물들었다 하는 동안 아이는 의젓하게 자랐다. 아이는 자기를 위해 대서양을 누비던 그 따뜻한 목소리를 알고 있을까. 무선을 주고받던 그 무수한 사람들의 사랑을 알고 있을까.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락 닿은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하나의 생명이 기적으로 태어나는 데는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랑들이 출렁거린다.



• 작가_ 김수우 – 시인. 1959년 부산 출생. 1995년 시와시학상 신인상 수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시집 『젯밥과 화분』, 에세이집 『유쾌한 달팽이』『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등이 있음. 현재 부산에서 인문학카페 <백년어서원> 운영중

   • 낭독_ 서진 – 배우. 연극 <안티고네>, <모든 것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송명기 – 배우. 연극 <위기의 햄릿>, <다락방> 등에 출연.

   • 출전_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전망)

   • 음악_ back traxx /atomospheric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어디 그림뿐이겠어요? 음악도 시와 소설도 마라톤과 낚시도 퀴즈대회 우승이나 병원치료도 그러겠지요. 더더욱 아이의 탄생은 따로 설명할 필요 없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작은 기적들 아니면 세상을 살아내지 못할 그런 종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사하라 사막에 살면서 대서양 조업 중인 선박들의 도움으로 입덧을 해소했으니 멋집니다. 범 지구적이라서 시샘도 납니다. 아, 이 책은 사진집입니다. 책속의 흑백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담담하고 잔잔한 모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담담하기 위해서도 기적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지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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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참 특별한 사랑을 먹고 자랐네요~

    • 2013-07-08 19:17:3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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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웅

    작가님 덕분에 잘 보고, 잘 듣고 있습니다. 작가님을 비롯한 성실한 작가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단편집 출간 축하드립니다! 응원하겠습니다.

    • 2013-07-06 10:15:43
    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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