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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별밭 공원』중에서

  • 작성일 2013-12-12
  • 조회수 1,493

   송기원, 『별밭 공원』중에서


   내가 세상을 이승과 저승 식으로 둘로 나누는 버릇을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자살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1980년의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구 년이라는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그만 자살을 하고 만 것이었다. 당신으로서는 세상이 뒤집힐 만한 죄목으로 자식이 감옥에 갇히자 새벽마다 뒤울안에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당신의 신불에게 치성을 드리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중풍을 맞고 쓰러져 급기야 문밖출입도 못한 채 남의 손에 대소변을 받아내던 끝이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였다.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는 아내며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자칫 어머니의 뒤를 따라 흉한 생각이라도 품을까 염려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중풍이 약화된 때문인 것처럼 둘러댔던 것이다. 감옥에서 나와 서해안에 있는 어머니의 산소에 들린 나는 우연하게 마을 사람으로부터 자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단발마의 순간이 너무 선연하게 눈앞에 떠올라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마비된 손이며 발이며 배며 허리 같은 전신을 안간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무슨 척수동물처럼 안방을 기어 마루를 넘고 안마당을 뒹굴어 대문에 다다른다. 좀 더, 조금이라도 더, 자식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이윽고 대문의 문고리를 잡아 노끈을 잡아맨다. 그리고 그 노끈으로 목을 감고는 척수동물 같은 몸을 뒤틀어 한껏 뒤로 버틴다.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어미가 어떻게 죽어가는지 자식에게만은 기필코 보여주어야 한다.
눈앞에 너무 선연하게 그려지는 단발마의 순간을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눈에 시퍼렇게 광기를 품은 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게 하는 폭음으로 보냈다. 그런 폭음에 빠져 마침내 정신을 잃기까지 나는 결코 단발마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차라리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을 저승 쪽이 부러웠을 것이다. 폭음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나에게는 이승이란 차라리 저승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어떤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침내 나는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지 않게 되었다.

▶ 작가_ 송기원 – 소설가.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와《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소설과 시로 등단. 시집으로『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마음속 붉은 꽃잎』등과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마』『청산』등이 있음.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 출전_ 『별밭공원』(실천문학사)

   ▶ 음악_ sound idea - romantic ,pastoral 8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절절합니다. 무겁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아서 승천하지 못하고 있는 영혼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혈육, 사회, 국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이 구성체는 왕왕 구성원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곤 하지요. 어쩌면 인류역사 자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어서 그렇겠지만 송기원 선생은 성과 속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람입니다. 천진한 어린이와 노련한 어른이 뒤섞여 있다고 할까요. 어쩌면 이런 고난을 견디고 넘어설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은 자신의 죽음이지 않을까 하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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