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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병후에」

  • 작성일 2014-03-18
  • 조회수 1,928

박재삼, 「병후에」


봄이 오는도다.
풀어버린 머리로다.
달래나물처럼 헹구어지는
상긋한 뒷맛
이제 피는 좀 식어
제자리 제대로 돌 것이로다.


눈여겨볼 것이로다, 촉 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


땅에는 목숨 뿌리를 박고
햇빛에 바람에
쉬다가 놀다가
하늘에는 솟으려는
가장 크면서 가장 작으면서


천지여!
어쩔 수 어쩔 수 없는
찬란한 몸짓이로다.


▶ 시_ 박재삼 -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文藝》에 시 「江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았고, 1955년에는 《현대문학》에 시조 「섭리(攝理)」, 시 「정적(靜寂)」으로 신인 추천 과정을 완료하고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春香이 마음』, 『햇빛 속에서』, 『千年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추억에서』, 『대관령 근처』,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다시 그리움으로』 등이 있고, 사후에 『박재삼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 낭송_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배달하며

앓아보긴 했나? 몸이건 마음이건 앓아보긴 했나? 이렇게 속삭이며 맨 처음 봄기운의 햇빛은 내리지요. 봄기운의 바람은 이렇게 수런대며 면수건의 촉감으로 목에 감기지요.
한결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져서 달래의 향기를 닮아가지요. 그것도 ‘헹구어진 뒷맛’의 향기를 닮아가지요. 달지만은 않은, 쓴맛 매운맛이 다 가시지 않은 그러한 표정이 되지요.
진저리치며 살아남은 것이 장하여 모두가 ‘형뻘’로 보이는 갓 봄날입니다. 우리나라 시를 읽어는 봤나? 조선 피가 도는 시를 입에 녹여는 봤나? 속삭이며 스며오는 이 시를 몸짓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솟구치고 달리고 숨 쉬고 걷다가 구르는, 그저 그렇게 읽어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말로 어찌 이 시의 소감을 감당하겠어요!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천년의 바람』(민음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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