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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작성일 2015-02-23
  • 조회수 2,139



③ 2015년 2월 19일 목요일 귀농한 젊은 남자 (40대 초반 귀농 남자, 아마도 지식인)



“이 일은 얼마나 하셨어요?”
“삼십사 년쨉니다. 긴 시간이죠. 좋은 일이에요. 평화롭고.
생각할 시간도 주고. 하지만 일 자체는 고돼요.”

- 필립 로스, 장편 「에브리맨」중에서 -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 황선생은 어리석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해가 가며 차츰 신지(神智)가 돌아왔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따뜻이 덮어주고 땅이 은혜롭게 부리를 대어 알껍질을 까주었다. 그리하여 후년에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웠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들이 빚만 남는 농사에 공연히 뼈만 상한다고 하였으나 개의치 아니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
선생은 천성이 술을 좋아하였는데 사람들은 선생이 가난한 것은 술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은 어느 농사꾼보다 부지런했고 농사일에도 익어 있었다. 문중 땅과 나이가 들어 농사가 힘이 부친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주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술로써 망한 것이 아니라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나간 것이다. 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社稷)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樂天)의 뼈였다.




▶ 작가_ 성석제 - 소설가.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함. 작품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조동관 약전』『호랑이를 봤다』『왕을 찾아서』등이 있음.


▶ 낭독_ 백석현 - 연극연출가, 배우. 연극「개천에 용간지」, 「염도」, 「고향」 등 연출 및 출연.



배달하며

이 황만근이라는 사람, 국내 소설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소설 말미에 화자는 황만근이라는 사람을 두고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았지만 비루하지 않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 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이 낸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음력 설날 아침입니다. 초지일관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이 ‘초지’, 처음에 품은 뜻이나 의지가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2월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비. 2002)

▶ 음악_ Backtraxx - coolstuff 1 중에서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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